'우연과 상상'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가 포착하는 것
'우연과 상상'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가 포착하는 것
  • 김민세
  • 승인 2022.06.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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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라는 거짓과 진실, 그리고 진심"
ⓒ 그린나래미디어

<우연과 상상>(2021)을 보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이야기는 왜 영화로 만들어져야 하는가' 영화로 다루기에 가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각각의 단편은 많지 않은 씬과 그에 비해 긴 분량의 대사로 이루어져 있지만, 흥미로운 대사는 한 씬 안에서 나름의 기승전결을 만들고 씬이 전환될 때마다 우리는 이야기의 중심으로 가게 된다. 그만큼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흡입력이 있다. 이야기꾼으로서 하마구치 류스케의 재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꼭 '영화'로 만들어졌어야 하는 질문 앞에서는 의심이 든다. 오히려 이 영화의 이야기들은 소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하마구치의 영화들이 소설과 닮아있는 것은 전작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하마구치 류스케는 왜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닌 영화를 찍는 것을 택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우연과 상상>은 '소설적'임을 넘어서서, 스스로 '영화됨'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는 가끔 의도를 알 수 없이 연속적 편집에 반하는 이미지와 미학적으로 불균형하고 조악하다고까지 느껴지는 구도의 개별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또 인물을 따라 패닝(panning)하고 틸팅(tilting)하는 카메라는 불안하게 덜컹거리고, 초점은 피사체에서 자꾸만 벗어난다. 그러나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런 방법을 통해 특정한 미적 효과를 일으키거나 영화적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야기의 힘이 영화를 진행시키는 동안, 오히려 영화 연출의 기본적 단위라고 할 수 있는 숏(shot)은 힘없이 무너지길 반복한다.

원작 소설을 갖고 있는 <아사코>(2018)와 <드라이브 마이 카>(2021)가 소설의 영화화였다면, 어쩌면 <우연과 상상>은 영화의 소설화가 아닐까. 터무니없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연과 상상>은 '영화는 숏으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 아래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닐까. 위험한 가정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감상이 단순히 서사를 따라감에 있는 것이 아닌 진정한 시네마적 체험임을 믿기에, '영화는 숏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역설적이고 이상한 주장을 해보려 한다. 물론 관객이자 비평자의 입장에서 '영화는 무엇이다', 혹은 '영화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할 권리가 없는 것은 알고 있다. 필자는 하마구치를 대변하는 위치에서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이다.

 

ⓒ 그린나래미디어

하마구치 류스케의 카메라가 포착하는 것. 그의 영화가 갖는 기이한 힘. 그것은 시청각적으로 명확하게 형상화되는 요소에 있지 않다. 그의 텍스트(대사)와 카메라(숏)는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다. 먼저, 대사는 인물들의 특정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 즉 관계를 지목한다. 그리고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봐왔던 그 기이한 시점 샷이 <우연과 상상>에서 재현될 때, 그의 카메라가 가리키는 것은 카메라가 비추는 말하는 대상, 카메라가 대리하는 듣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 둘 사이의 선(180도 가상선)이다. 그의 영화와 닮았다고 할 수 있는 하루키의 소설에서 미지의 것으로 '우물'이 자주 등장하듯이,

하마구치 류스케의 대사가 지목하고 카메라가 가리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깊은 우물'이다. 마치 극 중 인물 사츠코가 말하는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처럼.

<우연과 상상> 속 우물-구멍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행위는 '연기(acting)'이다. 하마구치는 '인간은 사회 속에서 모두 연기하며 살아간다'는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명제를 비튼다. 사회 속이 아니라 우물 속. 우리의 욕망을 통제할 수 없는 가장 은밀하고 개인적인 순간에 다다렀을 때, 그리고 그 욕망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충돌하거나 공명할 때. 어떤 연기가 나올 것인가. 그리고 그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각각의 단편들이 흐름으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그리고 다시 등장하지 않는 군중들로 시작했다가 주요 인물의 세부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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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는 인물들

첫 번째 단편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의 메이코는 자신의 행동이 연기인지 아닌지 모르는 사람이다.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는 친구 츠구미(현리)가 사랑하는 상대가 우연히도 자신의 전 애인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카즈아키의 회사로 찾아간다. 전 애인을 두고 이른바 '밀당'을 하는 메이코는 자신의 진심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할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연기라는 거짓말의 방식을 택한다.

두 번째 단편 '문은 열어 둔 채로'의 나오(모리 카츠키)는 타인에 의해 연기를 하게 된 사람이다. 소설가 세가와 교수(시부카와 키요히코)의 교수실을 찾은 나오는 친구 사사키(카이 쇼우마)의 복수를 해주겠다는 목표는 잊은 채로 교수와의 대화에 진심으로 빠져들게 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복수를 위해 연기를 하는 부분과 교수와 솔직하게 대화하는 부분이 한눈에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은 솔직한 대화조차 욕구와 결핍이라는 타자가 만드는 연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 번째 단편 '다시 한번'의 나츠코(우라베 후사코)는 연기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나츠코는 모르는 사람이었던 아야(카와이 아오바)를 사랑했던 고교 동창생으로 착각하고 그녀의 집까지 동행한다. 나중에서야 서로서로 착각했다고 알게 된 그들은 서로가 그리워하는 대상을 연기해주기로 한다. 그때의 진실을 되돌아보기 위해 그들은 서로 알지도 못하는 타자를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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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메이코와 나오, 나츠코는 연기라는 행위를 하면서 거짓과 진실 사이를 진동한다. 그리고 각 단편은 각자 새로운 형태의 연기로 막을 내린다. 메이코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싶지만, 카즈아키를 모른 척하며 츠구미와의 사랑을 응원한다. 나오는 사건 이후 이혼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만 버스를 내릴 때는 사사키 앞에서 더 나아진 척한다. 나츠코는 이제 자신을 고백하는 연기가 아닌 아야를 위한 연기를 해준다. 그들의 마지막 연기가 진실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들이 연기를 통해 진심에 닿을 수는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 같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숏이 지탱하지 않는 영화는 무엇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하마구치 류스케는 그것이 '배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진심을 전할 방법이 '연기'라고 믿는다. 그는 숏의 완성보다 그것을 집중한 것이다. 그의 글을 배우가 말하고, 그의 카메라에 배우가 존재한다면 영화는 영화가 될 수 있다. 소설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저 그곳에 그 사람으로서 있는 배우. 소설 속 시점의 위계를 벗어난 섬세한 몸짓.

메이코는 고개를 들어 사진을 찍고, 나오는 쓸쓸함과 희망참을 동반한 채 걸으며, 나츠코와 아야는 서로를 끌어안는다. 텍스트로는 전달될 수 없는, 영화 이미지로만 그 감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그렇기에 <우연과 상상>은 영화가 될 수 있다. 그는 세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영화로 본다. 그리고 세상 속의 사람들과 그 사이의 우물을 본다. 흔들리는 카메라를 보고 있더라도, 그것이 결국은 그 우물을 쫓는 안간힘과 설렘을 동반하고 있기에 웃음 짓게 된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그린나래미디어

우연과 상상
Wheel of Fortune and Fantasy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Hamaguchi Ryusuke

 

출연
후루카와 코토네
Furukawa Kotone
현리Hyunri
나카지마 아유무Ayumu Nakajima
모리 카츠키Katsuki Mori
시부카와 키요히코Shibukawa Kiyohiko
카이 쇼마Kai Shouma
우라베 후사코Urabe Fusako
카와이 아오바Kawai Aoba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21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5.04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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