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발굴하기
'오마주'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발굴하기
  • 이현동
  • 승인 2022.05.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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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필름을 보는, 일상을 보는 우리의 뒷 모습"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프랑스어로 존경을 의미하는 '오마주'(homage)는, 단어가 가진 범주적인 속성으로부터 일종의 의미를 재구축하는 단어로 조정된다. 오마주의 최초의 고고학적 함의가, 중세의 기사 서임식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봉신이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는 예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할지언정, 표현 방식에서 있어서 현재에 고스란히 기술되는 용법이나 정의는 아닐 것이다. 물성이 아닌 정신으로 대체된 모더니즘의 역학관계에서 오마주는, 과거의 탐사할 수 있게 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감행한다. 결국 변용되는 의미의 변주가 시대와 더불어 작동하게끔 지시하는 건, 과거와 현재의 기류에서 새로운 질서가 편성됨을 알리는 신호이다. 필연적으로 오마주는 과거를 추적함으로 채취할 수 있는 어떠한 것으로 생성된다. 그것이 개인적인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든, 사회구조의 문제를 발각하기 위한 것이든, 신수원 감독은 끊임없이 이 두 가지의 지평 속에서 자신의 일관된 문제의식을 드러내 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신수원 감독의 대표작인 <명왕성>(2012), <마돈나>(2014) 등에서 '과거로부터 현재를 추출하는 서사 방법론'에서 고려할 수 있는 건, 그녀의 관심이 사회시스템에 관류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오마주>가 위에 언급했던 두 영화보다 사회 고발적인 메시지를 최대한 배제하고 긍정적인 제스처를 취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신수원 감독이 지금까지 영화를 통해 성취해놓은 커리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직설적으로 단언한다면 여태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일지도. 그렇기에 이 영화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구심점으로 관객에게 도약한다.

<오마주>는 영화 자체에 대한 회고의 오마주면서, 자신의 첫 번째 영화 <레인보우>(2010)의 주인공이었던 지완의 오마주, 즉 감독인 자신의 오마주이기도 하다. 영화는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1962)라는 영화의 필름 복원 사업에 참여하는 영화감독 지완을 조명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디지털화된 지금의 영화와 시스템과는 달리 필름은 손상되기도 쉽고, 오래되면 될수록 저장하기도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필름을 복원하는 과정은 굉장히 복잡하고 수고스러운 일이다. 물리적 보수와 세척, 영상을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들에서 마치 유물을 발굴하는 것과 유사하다. 영화에서 필름을 복원한다는 것은 시간여행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의 위치를 재정의하는 역할을 감당한다는 점에서 <오마주>는 감독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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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지완과 '현재'의 지완

<레인보우>의 지완과 <오마주>의 지완은 무엇이 다른가. 직장을 그만두고 시나리오를 쓴지 어연 5년차가 된 <레인보우>의 지완과 이제는 감독으로 활동하는 것이 어느 정도 능숙하여 3편의 개봉작을 가진 <오마주>의 지완은, 신수원 감독의 과거와 현재를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레인보우>가 '여자' 감독이라는 꼬리표에서 자유하지 못한 한 가정의 엄마인 지완을, 그 구속에서 구원하기 위해 환유의 대상으로 아들의 음악 활동을 응시하며 감정의 상태를 고조시켰다면, <오마주>에선 격동적인 감정의 상태와 편견에 관련된 불합리함을 어필하기보다, 영화 자체가 가져다준 안락했던 기억, 그리고 그녀가 무엇보다 사랑하는 한 영화에 대한 오마주다. 과거와 현재의 지완은 마찬가지로 여전히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영화들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이는 신수원 감독도 마찬가지다. 칸영화제, 베를린영화제에서의 수상과는 별개로 알려지지 않은 그녀를 영화는 유머로 승화시킨 셈이다)

두 명의 지완에겐 외동아들이 있다. 15살 된 아들과 20살 된 사춘기와 청년이 된 아들의 모습은 물리, 정신적으로 큰 변화가 있다. 사춘기의 아들이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딱딱한 인물이라면 20살의 청년은 조금 더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영화에 대한 느슨해진 태도라고 할까. 하지만 영화에 대한 주변의 인식은 동일하다. 엄마가 만든 영화제목만 봐도 별로라는 아들은 어벤져스 같은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핀잔을 주고, 지완의 남편들은 영화를 5, 10년씩이나 했는데 성과가 없으면 그만두거나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런데도 지완, 그리고 신수원은 독립영화감독이란 타이틀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녀는 이 일을 자처하는 사명자로 보인다. 진실로 고전영화 필름을 복원하는 이 이야기를 누가 보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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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곳의 '영화관'

<오마주>에선 세 군데의 상영관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영화배급이 원활하고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반 상영관, 두 번째는 곧 폐쇄될 시골 동네의 허름한 영화관, 세 번째는 <여판사>의 스크립터를 담당했던 할머니와 지완이 녹이 슨 오래된 영사기를 꺼내 복구한 필름을 마당에서 감상하는 이 세 가지 공간이 그 사례들이다. 첫 번째 영화관에서 그녀는 관객 수 20만 명이라는 수익 분기점에 대한 염려가 가득하지만, 세 번째 장소인 마당에서 지완은 눈을 번뜩이며 영화란 존재를 지긋이 응시하며 본래 영화를 사랑했던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사이에 위치한 두 번째 영화관을 응시해보는 것이 좋겠다. 계속해서 지방에서 독립영화관이 문을 닫고 철거되는 현실에서 상업성이 소거된 영화의 죽음이 더욱 밀접하게 목도됨을 생각해보라. 디지털 상영이 아닌 필름 상영이 유지되는 아날로그 시스템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나 감독은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상상한다. 영화관은 철거될 위기의 순간에도 문이 닫히지 않는다. 천장에 구멍이 나고, 개방된 영화관 뒤로 잡음이 들려와도 관객들이 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감상한다. 세 영화관의 공백의 공간 안에 객석을 채우는 건 진정 영화를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만이 남는 셈이다. <오마주>는 이처럼 그녀의 영화가 비록 소수에게 호응받을지라도 당당하게 영화를 통해 세상에 문을 두드리겠다는 일종의 선언으로도 관측된다.

 

'필름'이란 그림자

과거를 표징 하는 물체와 공간은 현재를 쫓아오는 법이다. 필름을 간직하고 있는 남은 이는 소실된 과거를 현재로 재생할 힘이 없다. 지원의 <여판사> 작업 과정에서 유실된 필름을 찾기 위해 마주한 할머니는 '영화'라는 말을 까먹을 정도로 그 존재를 망각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필름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쫓기 위한 오랜 분투다. 보이스가 녹음되지 않은 인물들의 대사를 입 모양으로만 파악해야 하고, 새롭게 대사를 더빙해야 하며, 필름이 사라진 경우에는 수소문해서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진실인지 환영인지 모를 그림자와 마주한다. 필름을 찾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옆집 아가씨의 존재는 주변부를 형상화하는 장치다. 인적이 드문 주차장에서 연탄재를 태우고 자살한 여자의 시체와 지완의 집 옆집에서 들려온 의문의 소리는 여자의 원혼을 드러내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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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 금지 표시가 되어 있는 차는 지완의 일상에서 필연적으로 목격하게 될 집 앞에 배치되어 있다. 그만큼 영화의 그림자는 그녀의 주위를 횡행하면서 의미를 부여한다. 차량이 정리된 빈자리엔 과거에 속박되어 있었던 필름의 정체인 '여자'가 지완 앞에 명시되고, 자살했다고 생각했던 옆집 여자가 나타난다. 여행 가방을 들고 지완의 옆집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에 지완은 이렇게 말한다. "멀리 갔다 오셨나 봐요"라는 지완의 대사는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자 앞으로 개방될 관계들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녀의 주변부를 가공하는 건 일상이며 얼굴조차 관심이 없던 이웃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라는 점이 이 영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웃을 향한 관심은 그녀 서사의 기틀이자 민첩한 공감과 감수성에서 비롯되는 것일 테다.

<오마주>의 오프닝에서 수영하는 지완의 모습을 보며 강사는 몸에 힘을 빼라고 말한다. 그간 신수원 감독의 영화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는 것과는 별개로, <오마주>는 가장 편안한 영화로 관철된다. 개인적으론 초심으로 돌아가 '영화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레인보우>가 개봉되고 불안에 떨었다던 감독은 영화를 그만두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영화의 마지막이 예고하듯 오래된 영화관은 문을 닫지 않고, 사람의 그림자는 계속해서 문을 서성인다. 이는 감독의 과거에 대한 대답이자 해답이다. 그녀는 영화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누군가는 감격스러운 영화를 보고 비평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 것처럼.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오마주
Hommage
감독
신수원

 

출연
이정은
권해효
탕준상
이주실
김호정
유순철
고서희
오정우

 

제작 준필름
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08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5.26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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