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th JIFF] '애프터워터' 되살아난 흐름의 감각
[23th JIFF] '애프터워터' 되살아난 흐름의 감각
  • 이지영
  • 승인 2022.05.26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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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라는 소우주: 수면과 심연"
ⓒ Flaneur Films

1. 스크린에서 '흐름'의 감각을 일깨우다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다네 콤렌 감독의 <애프터워터>는 흐름의 감각에 대한 영화다. 영화를 하나로 관통하는 서사적 흐름은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는 대신에, 이 영화에서는 풍경만이 유유히 흐른다. 문명에서 자연으로, 현대 사회에서 태곳적의 과거(혹은 문명이 사라진 아주 먼 미래), 과학에서 시와 문학으로, 언어로부터 춤과 같은 비언어로 모든 것은 흐른다. 또한, 감독의 카메라는 인간이 자연과 일체되며 느끼는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을 스크린 위에 재현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호수'라는 작은 우주,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의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 영화 도입부의 내레이션에 따르면, 호수는 화산 폭발 등 대재앙의 부산물로 탄생하였다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에 걸쳐서 그 자체로 생태계가 운영되는 하나의 소우주(microcosm)가 된다. 마치 우주에서 수억 광년 전에 출발한 별빛이 지금 우리의 눈에 비치듯이, 호수에서도 아주 먼 과거의 침전물들이 순환하다 현재, 우리가 떠 있는 찰나의 표면을 스쳐 간다. 다네 콤렌은 '호소학'(湖沼學)이라는, 호수에 대한 학문을 최초로 주장한 미국 생물학자 'G. 에블린 허친슨'에게서 영감을 받아 <애프터워터>를 만들게 되었다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밝혀 왔다. 그는 과학과 문학,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허친슨의 풍성한 텍스트를 길어 올려 영상 언어로 번역한다.

그러나, 이러한 언명은 우리가 직접 호수에 가서, 생태의 순환을 직접 느끼기 전까지는 인식 속에 존재하는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현대 사회에서는 문명의 이기가 자연을 보는 인간의 시야를 방해하고, 스크린에 떠오른 복제된 상을 먼저 바라보게 한다. 예컨대 우리의 일상에는 스마트폰이라는 기계가 자연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다. <애프터워터>의 첫 시퀀스는, 어떠한 맥락도 없이 익스트림 클로즈업된, 형체가 모호한 노란 빛의 이미지를 통해 관객에게 돌연 낯선 감각을 선사한다. 카메라가 이내 뒤로 물러나자, 우리는 곤충을 연구하는 대학 연구실의 샘플로 가득한 거대한 벽면 앞에 서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다음으로, 식물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이 현미경을 통해 식물의 세포를 들여다보고 있는 시퀀스가 있다. 이렇게 굴절된 렌즈를 통해 미시적으로 들여다본 식물 세포는, 역설적으로 광활하고 거시적인 우주에서 떠돌아다니는 운석을 상기한다. 이렇듯 원경과 근경을 교차하는 카메라는 평상시에 익숙했던 인지 감각을 낯설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그 속에서 자연의 실제 모습은 실종된다.

 

ⓒ Flaneur Films

2. 호수라는 소우주: 수면과 심연

 

지친 이가 침대를 찾듯 우리는 돌아간다.

위 영화의 인용구처럼 각자의 연구실에서 일하던 두 연인은 학교에서 빠져나와 기차를 타고 근교의 호숫가로 간다. 거기서 그들은 서로에게 책을 읽어 주기도 하고, 노래를 틀고 춤을 추고, 옷을 입은 채 호수에 몸을 담그고 수영도 하며, 서로를 껴안은 채 끝없는 잠을 청한다. 또 폭풍우가 치는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근교 자연에서 보내는 일상적인 휴식과도 같이 보인다. 그러나, 갑작스레 아무런 맥락도 없이 제3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 존재로 인해 연인이라는 양자적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어쩌면 이 남자는 꿈속에서 등장한 가상의 인물은 아닐까?) 이때부터 남자와 여자라는, 서로의 연인이라는 역할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호숫가에서 서로의 몸에 밀착하고 기대어 잠을 청하는 세 사람은 무성(無性)의 합성물처럼 보인다.

이렇듯 다른 관계성을 가지게 된 세 사람은 호수에서 그야말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실천한다. 무위, 즉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옷을 한 겹씩 벗어 던지고 나체로 호수에 들어간다. 자연의 굴절된 상을 보여주던 렌즈도, 몸을 가리던 옷마저 다 사라지자, 이제 호수와 인간 사이를 방해하는 것은 어떤 것도 남지 않는다. 인간들은 호수의 물살을 거스르며 수영하지 않고, 호수도 대양의 그 거친 파도로 이들을 떠밀어내지 않는다. 모두가 수면 위에 그대로 누워서 떠 있는다. 아마도 물결의 진폭을 더 크고 민감하게 느끼기 위함일 것이다. 마치 뭍에서처럼, 물 위에서도 부레 달린 물고기들처럼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이제 세 사람은 서로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정삼각형의 꼴을 하고 떠 있는데 잔잔한 물결이 이 정삼각형을 아주 느리게 흐트러트린다. 셋이 호수 위에 떠 있는 모습을 익스트림 롱 샷의 부감으로 찍은 풍경은, 인간이라는 개체들을 점차 지우고 풍경 속에 편입시킨다. 마치 앞서 연구실 장면에서 보았던 샬레 위의 식물 세포들처럼, 인간 또한 작고 규정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망망한 수면 위를 한없이 부유한다. 정적인 것과 흐르는 것, 멈춘 것과 유동적인 것, 수면 아래 가라앉은 것과 떠 있는 것이 공존하고 있는 호수는, 이를테면 바다나 수영장에서는 불가능한, 자연과 '고요히' 일체 되는 감각을 허락한다.

 

ⓒ Flaneur Films

지금까지 우리는 호수의 '표면'에서 포착된 풍경을 이야기했다. 이제 호수의 심연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호수는 표면의 저 너머 심연 바닥에 수몰되고 퇴적된 과거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아간다. 퇴적물들은 너른 대양의 파도처럼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는다. 감독은, 브라질리아 근처의 수몰된 도시 빌라 아마우리(Vila Amaury)라는 마을에 대한 기사에서도 영감을 받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이 마을은 브라질리아의 건설 노동자들이 폐기된 건설 자재를 모아서 지은 마을인데, 나중에 수몰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도 감독은 여러 나라의 수몰된 마을에 대한 증언을 수집하였다. 영화는 이러한 사건들의 비극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한 마을 전체가 수몰되더라도 그 마을의 이야기는 여전히 후대에 전승되고 기억된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3. 먼 과거 혹은 미래로 회귀하는 카메라

<애프터워터>는 엄밀히 구분되지는 않지만, 크게는 세 파트로 나뉜다. 가장 나중 파트는 거친 질감의 저화질 16mm 카메라로 촬영되었는데, 이는 연대를 알 수 없는 먼 과거로 회귀한 듯한, 아니 어쩌면 문명이 사라진 아주 먼 미래로 이동한 듯한 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이제 고대 신전의 무녀 같은 복장을 한, 3명의 전문 무용수들의 극단적으로 느린 템포의 움직임이 앞 파트의 내레이션을 대체한다. 예술의 원초적 형태인 춤이 언어를 대체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숲속 나무들 같기도, 호수 안 물고기의 느릿한 움직임을 닮아 있다. "짐승이 되고 싶다"는 내레이션의 인용구처럼, 이 후반부 파트에서는 지극히 동물적인 감각을 체험할 수 있다. 앞서 나온 검은 들개 한 마리가 진흙땅을 앞발로 파 내려가듯이, 무용복을 입은 세 사람은 두 손으로 진흙더미를 긁어 파낸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제 스스로 '짐승'이 된다.

이 파트에서 인간은 자신의 숨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체액과 분비물을 자연에 배출하는 본능적 쾌감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누군가의 깊은 들숨과 날숨소리가 사운드를 대신한다. 이것은 숲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무용수들이 느끼는 호흡일 수도, 토양과 숲이 허공으로 내뿜는 신선한 공기일 수도, 문명사회 안에서는 들을 기회가 없는 우리 자신의 호흡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은 다양한 체액(침, 눈물, 땀, 소변)을 호수 주변에 흘려보내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소변을 보는 자, 야생의 열매를 입을 벌려 따먹는 모습 등,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데에는 어떤 현대 문명의 이기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 외에도 '눈물'이라는 체액은 사회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페이소스와 관련된 것 같다. 이때 "우리는 울고 싶다"고 내레이션은 읊조린다.

 

ⓒ Flaneur Films

4. 다시 돌아온 세계

어쩌면 60~70%의 수분으로 이루어졌다는 인간의 신체도, 잔잔하게 안팎으로 순환하는 하나의 호수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자연과 인간이, 한 호수와 또 다른 호수가 서로에게로 흘러들던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현재가 아닌 다른 시공간을 상상하던 카메라의 시선은 이제 자연을 떠나, 수명을 다한 원자력 발전소의 지하 시설로 이동한다. 무용수들은 아무도 없는 건물 안을 고요히 걸어간다.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 같은 공간, 거대하게 버려진 시설물과 그 안에 고여 있는 죽은 물을 보면서, 조금 전까지 자연과의 일체되는 해방감을 느끼던 관객에게는 다시 한번 생경한 느낌이 찾아올 것이다.

오래전에 사라진 마을들은 물 안에 수장되는 비극을 겪었으나, 그럼에도 물속에서는 여전히 종탑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은 그 마을의 이야기를 기억한다고 했다. 그렇게 호수는 비극의 역사마저 품고 보존했다. 반면에,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수몰되지도 않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이 기이하고 육중한 시설은 앞으로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영화는 이런 시대적인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진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Flaneur Films

 

애프터워터
Afterwater
감독
다네 콤렌
Dane KOMLJEN

 

출연
요나스 하프카
Jonasz HAPKA
톤그라Ton GRAS
로즈-애너벨 비어맨Rose-Anabel BEERMANN
사인 웨스트버그Signe WESTBERG

 

제작 Flaneur Films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93분
등급 12세 관람가

이지영
이지영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평이한 문장이지만 사색을 담은 글을 씁니다. 투박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글을 통해, 삶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실의 일면에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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