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프랑코] '뉴 오더' 기다림의 시간 끝에서
[미셸 프랑코] '뉴 오더' 기다림의 시간 끝에서
  • 김민세
  • 승인 2022.05.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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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영화에서 질주의 영화로"

'미셸 프랑코'가 지금까지 찍어온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그저 인물을 멀찍이서 지켜보고만 있던 카메라. 그 속에는 어떠한 상징과 비유도 보이지 않았다. 프랑코 자신만의 미적 형식의 성취도 개별 작품의 목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관객으로서 그의 작품을 보는 것은 흥미로웠지만, 비평자로서는 난감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들을 따라오면서 나름의 작가론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가 일련의 작품들 안에서 '어떠한 공통된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차의 뒷좌석에서 엿보는 시선. 영화의 서사를 운명의 순간 앞으로 이끌던 차, 보트, 그리고 육체.

필자는 그의 작품에 대한 글들을 하나씩 써오면서, 이러한 작가적 태도를 프랑코가 관객을 상대로 구축하는 '관계 맺기', 또는 극 중 인물과 관객을 함께 '운반하는 이야기'라는 말로 설명했다.

 

ⓒ 찬란

그러던 그가 <뉴 오더>로 우리에게 도착했다. 계급, 인종, 권력 격차의 문제로 인해 언젠가 도래할 수 있는 멕시코의 비극을 상상적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영화이다. 전작 <애프터 루시아>, <크로닉>, <에이프릴의 딸>의 주요 인물들은 비교적 중산층에 속하는 백인 멕시코인이었고, 원주민 멕시코인 메스티소는 그저 영화의 배경으로만 존재했다.(오히려 멕시코 현지에서 프랑코가 마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메스티소의 폭력 시위가 핵심 사건이 되는 <뉴 오더>는 그가 지금까지 피해왔던, 또는 의도적으로 숨겨왔던 멕시코의 정치적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뉴 오더>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영화이다. 폭력 시위대가 던지는 녹색 페인트. 살육의 현장에서 흘러내리는 붉은색 피. 그 혼란 안에 섞인 백인과 메스티소. 첫 장면에서 플래시 포워드로 가시화되는 파편적인 이미지와 영화 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색에 대한 메타포는 멕시코라는 국가를 지목하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엔딩 직전에 등장하는 멕시코 국기의 상승 이미지와 교수대 처형과 함께 평행하게 추락하는 세 밧줄의 하강 이미지는 모두 종의 방향으로 나란하게 놓인 3분할의 이미지라는 점에서 서로 겹쳐진다. 그리고 그 겹친 잔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가능성이라기엔 필연에 더 가까운 멕시코의 미래일 것이다.

 

ⓒ 찬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뉴 오더>를 기점으로 프랑코의 스타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전작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그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는 이전 작품에서 무엇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제 무엇을 차이로 두고 있는가. 그의 전작들에서 공통적으로 읽어냈던 '엿보는 시선', '영화적 관계 맺기' 같은 말로는, 정치성과 상징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뉴 오더>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뉴 오더>에는 그가 찍어왔던 영화를 명확하게 상기시키는 무언가 또는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을까.

영화의 서사는 3부로 요약할 수 있다. 1부는 백인 멕시코인이자 상류층인 마리안느의 결혼식이다. 행복한 파티 와중에 도시 한쪽에서는 폭력 시위가 일어나고 마리안느의 집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롤란도가 아내의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 결혼식을 찾는다. 2부는 시위대가 마리안느의 집 담장을 넘으면서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상류층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마리안느는 정체 모를 군인들에게 납치당한다. 3부에서는 정권교체를 도모하는 군부의 실체가 드러난다. 군인들에게 납치되어 고문당하고 몸값을 요구당한 마리안느는 자신들의 만행을 숨기려는 군부의 목적으로 결국 살해당한다.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롤란도'의 존재이다. 마리안느를 제외한 그녀의 가족들은 간절한 부탁에도 결혼식을 방해하지 말라며 롤란도를 차갑게 대하는데, 어쩔 수 없는 그의 퇴장에 조응하듯 나타난 시위대는 가족들이 그를 외면했던 것에 대한 업보처럼 다가온다. 그런 면에서 그는 1부와 2부를 잇고 영화를 서사의 중심으로 가져다 놓는 기폭제이다. 그리고 돈을 들고나오겠다는 마리안느와 그녀의 가족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마치 프랑코가 만든 앞선 세 편의 영화들과 닮아있다. 프랑코의 영화에는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프터 루시아>은 과거의 상처를 감내하고 있던 로베르토가 복수의 결심을 하기까지 기다렸고, <크로닉>은 데이비드의 육체가 지탱하던 영화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기다렸으며, <에이프릴의 딸>은 '발레리아의 딸'이라는 또 다른 영화가 시작되기까지를 기다렸다.

이 세 영화를 따라오면서 결론지을 수 있던 것은, 그 기다림의 끝에 도래하는 것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얼굴'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얼굴은 스크린을 내리고 나서도 또다시 영화를 시작한다. 아니, 프랑코는 왠지 모르게 끝낼 수 없는 이야기를 세 번에 이어서 멈춰온 것이다. 영화라는 형식 위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는 카메라. 그의 카메라가 무언가를 관찰하는 것 같다는 말은 이런 의미이다.

 

ⓒ 찬란
ⓒ 찬란

그리고 <뉴 오더>의 롤란도가 하염없이 기다린다. 근심에 빠진 그의 얼굴이 영화의 미래를 암시한다. 그 기다림을 체화한 영화는 파티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저 상류층의 파티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롤란도의 등을 오랫동안 지켜본다. 만약 프랑코가 이 영화를 이전 작품들처럼 찍었다면, <뉴 오더>는 롤란도의 등에서 끝날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프랑코는 기다림에서 멈추지 않는다. 폭력 시위로 인한 충돌과 혼란까지 우리를 밀어 넣다가도, 결국은 그 내부에 있던 군부 세력의 음모를 마주하게 만든다. 정말 끝까지 간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의 영화 중에서도 유난히 짧은 86분의 러닝타임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부를 마치고 2부와 3부가 진행됨에 따라 <뉴 오더>는 다양한 인물의 얽힌 서사를 동시에 진행시키고 있음에도 스스로 속도를 잃지 않는다. 기다림의 끝에서 정체모를 얼굴(들)을 마주했던 프랑코는 이제 속도와 질주가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세상의 질서는 스스로 욕망을 키워나가며 우리도 모르는 새에 변경되고 교체되고 무효화·무질서화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프랑코가 그의 작품 세계 안에서 '새로운 질서 New Order'를 만들어낸 이유이다. 이를 증명하듯 아내가 병원에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던 롤란도는 새로운 질서가 가져온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군인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는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찬란

뉴 오더
New Order
감독
미셸 프랑코
Michel Franco

 

출연
나이안 곤살레스 노르빈드
Naian Gonzalez Norvind
디에고 보네타Diego Boneta
다리오 야즈벡 베르날Dario Yazbek Bernal
모니카 델 카르멘Monica Del Carmen
하비에르 세풀베다Javier Sepulveda
로베르토 메디나Roberto Medina

 

배급|수입 찬란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86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1.11.11

김민세
김민세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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