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주공'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봉명주공'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 이현동
  • 승인 2022.05.2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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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밀려오는 재개발의 바이러스 한 가운데에서"
ⓒ 시네마달

<봉명주공>(2020)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최초의 모티브는, 영국의 빈민가 철거 문제를 드러낸 에드거 앤스티와 아서 엘튼의 <주택 문제>(1935)이다. 대부분 다큐멘터리가 그렇듯이 미학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사회·정치·경제적 양식들을 배열함을 통해 일관된 주제를 고수한 장르적 영향력이란, 그 당시에도 파격적이었다. 해설자와 내레이션, 빈민과 주택관계자와의 인터뷰들은 지금도 자료로 인용되곤 한다.

<봉명주공>은 다큐멘터리적 차원에서 동일한 방법론을 채택하면서도, '사진'이란 독특한 몽타주의 배열을 통해 정서적으로 은은하게 정동을 불러일으킨다.

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심사단상을 수상한 <봉명주공>은 충북 청주 흥덕구 봉명동에 위치한 어느 한 주공아파트의 재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거주민들의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2008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시공사의 선정 어려움으로 연기되다가, 비로소 2019년도에 사업이 시작되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재개발이 어떤 의미인지'를 반추하는 이 영화에서 근원적으로 작동하는 테마가 '단순히 사회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호소 및 담론으로만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재개발이 거주민들에게 환희로만 감화되지 않는 이유는, 지방 소도시의 부동산 정책뿐만 아니라 그들이 간직하고 있었던 터전으로서의 기억들 때문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Land and Housing'이다. ‘땅과 주택’이란 뜻으로 직역한다면, 이 영화는 단지 봉명주공아파트로 한정할 수 없는 보편적인 현상에 관한 이야기로 변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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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떠나도 언제고 돌아올 수 있는 집,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내 물건들이 편히 자리 잡고 있는 공간, 그곳이 내 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공선옥, 『춥고 더운 우리 집』, 2021, 한겨레출판, p.79

소설가 공선옥이 쓴 『춥고 더운 우리 집』을 통해 우리는 집이 가진 기억의 가능성을 논구할 수 있다. 집은 '기억을 복기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장소'라는 점에서 그렇다. 1980년도에 완공된 봉명주공아파트에서 공간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단지 물건뿐만이 아니라, 기억의 채취와도 결부된다. 영화에서 거주민들이 아파트의 시초와 함께했던 이들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감지되는 건 주민들의 추억을 향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봉명주공이란 공간은 자본주의에 노출된 공간이 아니며 그들이 축적해놓은 기억의 저장소임을 상기할 때 집의 의미는 더더욱 각별해진다.

영화 <봉명주공>은 상실에 대한 토로를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면서도 주제를 단단하게 묘사하는 작품이다. 주공아파트의 조경을 감상하는 감독과 일행들은 이 영화의 첫 번째 시퀀스로 그 주변부를 돌며 꽃과 나무들을 시각과 촉각, 후각 등으로 감지한다. 아파트의 나이를 상징하는 균열과 주위 구조물들의 표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커다란 나무, 다양한 꽃, 그리고 작물들의 크기와 반비례한다. 이어서 운영이 종료된 슈퍼마켓의 텅 빈 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할아버지의 씁쓸한 미소와 서서히 철거를 준비하고 공사를 위한 장벽을 건축하는 일꾼들의 몸짓은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과 더불어 쓸쓸함을 배가한다.

 

ⓒ 시네마달
ⓒ 시네마달

영화는 재건축의 곧장 시작되기 전인 2019년과 시작된 후인 2020년도를 기록한다. 재개발 상담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사무실로부터 본격적으로 주민들과의 인터뷰는 그들의 집의 공백을 응시하기 전까지 계속된다. 겹벚꽃이 만개할 때 나무 길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주부의 인터뷰가 가리키듯, 이 공간의 정취는 그들이 이 아파트에 대한 애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시간이 흔적이 남은 집의 풍경은 그들이 간직하고 있었던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가득 쌓여있다. 주민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 터전의 폐허가 된다는 점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인터뷰가 담긴 집은 점차 비워진다. 이삿짐 차량이 좁은 길목을 들어와 짐을 쌓고, 택배가 나가기 위해 길목에 자리 잡은 기다란 나무를 자르는 장면에서 <봉명주공>의 메시지는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가만 보면 우리는 재건축에 웃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봉명주공에서 더욱이 정서적인 교감이 가능한 지점은, 자본주의의 체계가 독점한 이 세계에서 재개발이 그들의 시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고령인 강은순 할머니의 청주에 대한 보고와 노랫말은 봉명주공에 오랫동안 새겨진 기억과 반응하고, 이곳이 살기가 좋다는 주민들의 말은 변화하지 않은 고유의 생활방식이 주는 안락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모든 것이 제거된 빈집과 철거되는 폐허의 푸티지를 목도하면서, <봉명주공>이 증언하는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 시네마달
ⓒ 시네마달

사진작가 지은숙, 지명환 작가는 아파트를 둘러싼 자연의 생태뿐만 아니라 철거의 현장에 이르기까지를 성실하게 담는다. <봉명주공>에서 이따금 드러나는 사진이라는 보조 장치는 주요 장치인 영상매체의 흐름에 덧칠해지며 의미를 창출한다. 사진은 형체의 순간을 포착하는 장치이자 보존의 장치라는 점을 염두해보자. 주민들은 사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사진은 기억을 소환한다는 지점에서 <봉명주공>에서의 사진의 역할은 과거와 현재를 융합한다. 사진이 애초에 영화의 작동 원리라는 점을 상고할 때 이는 봉명주공에 잔존하는 향수를 기능적으로 표현한다.

우린 봉명주공이 자전적으로 모색하는 희미해지는 공백들에 대해서 자문한다. 이별을 상징하는 나무인 버드나무가 매가리없이 고개를 숙이고 이내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에서 주민들은 기억과 절멸한다. 철거의 파편들, 그 한 복판에 서 있는 포크레인 역시 기억을 철거한다. 공사 현장 사이로 ‘위험 건축물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의 존재는 이미 붕괴된 그들의 처소 앞에 들어선 자본주의를 향한 메시지로도 보인다. 봉명주공은 이제는 기억의 부름에만 응답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교류하던 소통의 창구가 소멸된 지방 소도시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이미 깊게 뿌리내린 기억의 처소에서 그들은 앞으로 무엇을 간직하며 살아야 할까. 이제 집은 어디로 떠나도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아니게 된 곳은 아닐까. 새로운 아파트가 건축될 봉명주공과 같은 생태는 나중에는 다시금 볼 수 없는 자본이란 이름으로 대체될 위기의 징후는 아닐까. 결국 영화 <봉명주공>의 이미지는 그리움의 이미지면서 그리워할 이미지로 남을 것 같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시네마달

봉명주공
Land and Housing
감독
김기성

 

출연
홍덕은
지은숙
지명환
김남용
어중수
이동주
최옥년
이은길

 

제작 리을필름, 케플러49
배급 (주)시네마달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83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 2022.05.19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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