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셔젤] '위플래시' 그의 템포가 시작되는 작품
[데미안 셔젤] '위플래시' 그의 템포가 시작되는 작품
  • 선민혁
  • 승인 2022.06.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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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리듬에 매료되지 않기는 어렵다"

<위플래시>(2014)로 이름을 알린 1985년생 데미안 셔젤은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들보다도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감독이라고 할 만하다. 장편 데뷔작 <위플래시>에 이은 <라라랜드>(2016)의 큰 성공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데미안 셔젤을 음악과 연관된 영화를 훌륭하게 만드는 감독으로 인식하곤 한다. <위플래시>의 앤드류처럼 그가 재즈 드러머였던 경력이 있고, <위플래시>와 <라라랜드>에서 모두 음악이 영화의 전반적인 미쟝센을 형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만큼,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으로 음악의 절묘한 활용을 뽑는 것은 합당하다. 그러나 최근에 발표된 <퍼스트 맨>(2018)까지 두고 본다면, 절묘하게 활용된 음악 이외에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다른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데미안 셔젤의 작품세계 안에서는 항상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물'이 극의 중심이 되어 스토리를 이끌어 나간다. 평범한 성공을 한 재즈 드러머가 아닌, 'be great'을 원하는 <위플래시>의 앤드류, <라라랜드>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라져 가는 재즈를 지키려는 세바스찬과 수많은 실패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배우가 되기를 원하는 미아, 여러 차례의 죽음의 고비와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달에 닿으려는 <퍼스트 맨>의 닐 암스트롱. 이들은 모두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에 닿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이것이 영화에서 서사를 전개하는 동력이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목표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이라는 데미안 셔젤 작품세계 속 주인공들에게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위플래시>의 앤드류와 <라라랜드>의 세바스찬, 미아를 조명하는 방식이 다르고, <퍼스트맨>의 닐 암스트롱을 비추는 방식 또한 전작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 워터홀컴퍼니

특히, <위플래시>는 다른 두 작품과 비교하였을 때, 앤드류(마일스 텔러)라는 한 인물에 크게 집중하는 편이다. 드럼에 열중하고 있는 앤드류를 문 열린 연습실이라는 프레임의 중앙에 둔 채 멀리에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영화의 첫 장면처럼, <위플래시>는 앤드류라는 인물이 철저히 중심이 되어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영화다. 이 첫 장면이 앤드류가 재학 중이던 음악 학교의 악명 높은 교사 플레처(J.K. 시몬스)의 시선이었음은 바로 다음 컷에서 밝혀지고, 그 역시 영화에서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며 캐릭터가 확실한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주체는 오직 앤드류 한 명 뿐이다. 그를 제외한 인물들은 그의 감정 상태를 드러내거나, 그의 성격을 설명하거나, 그가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등의 도구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이를테면 앤드류의 여자친구 니콜(멜리사 베노이스트)이라는 캐릭터는 '앤드류의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데에 쓰인다. 앤드류의 감정 상태가 자신이 쫓고 있는 일에 대해 긍정적일 때, 그는 그녀와의 관계 진전을 위한 무언가를 하며, 부정적일 때는 그녀와의 관계를 유예 시키거나 종결하고자 한다. 셰이퍼 음악학교에서 메인 드러머가 되지 못하고 있을 때, 앤드류는 니콜에게 관심이 있지만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하다가, 플레처의 눈에 띄여 메인 드러머가 되자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이후 코널리(오스틴 스토웰)에게 밀려 메인 드러머 자리를 내주게 되자, 앤드류는 니콜에게 이별을 고하며, 플레처 밴드의 드러머로 큰 무대에 서는 기회를 얻게 되자 다시 니콜에게 연락한다.

 

ⓒ 워터홀컴퍼니

아마 <위플래시>를 본 관객이라면, '플레처'를 가장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는 앤드류와 함께 이 영화를 끌어 나가는 주요한 인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이후에 '과연 이 캐릭터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서 감을 잡기는 어렵다. 교육자로서의 어떠한 사명감도 없이 그저 학생들에게 악담을 퍼붓는 인물로 보기에 그는 제자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으로 보이며, 결국 경지에 다다른 앤드류를 보며 감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생들을 엄하게 가르칠 뿐 단지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인물로 보기에는 또, 그는 앤드류에게 사적 복수를 치밀한 방법으로 하고자 하며, 옛 제자가 세상을 떠난 원인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거짓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플레처 역시 주인공 앤드류와 상호작용하는 한 인물이 아니라, 니콜과도 같은 하나의 '장치'라고 보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울 것이다.

극 안에서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계기이자 동기이며, 극복해야 할 시련이다. 그가 앤드류를 발견하고 자신의 밴드의 일원으로 만듦으로써 앤드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극적인 성격이었던 보조 드러머 시절의 앤드류는 플레처 밴드의 일원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점차 변화해간다. 플레처의 다그침에 밴드 멤버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앤드류는 그의 훈육이 반복될수록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보조 드러머였던 시절과는 달리 밴드 멤버들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플레처에게 대들기도 한다. 플레처라는 자극을 통해 변화하는 앤드류는 성공에 대한 열망을 넘어, 광기에 휩싸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 워터홀컴퍼니
ⓒ 워터홀컴퍼니

특히, 플레처라는 장치를 통해 앤드류에게 부여되는 광기는 앤드류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가속화한다. 인상적인 점은 이것이 재즈 드럼을 소재로한 이 영화에 '리듬감'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플레처 밴드의 더넬런 경연이 있는 날 앤드류가 그곳을 향하는 시퀀스이다.

앤드류가 타고 가던 버스에 문제가 발생하자, 그는 곧바로 택시를 잡으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차를 렌트하려 한다. 마감 직전의 렌터카 업체에서 차를 빌리는 데에 성공하고, 경연 시작 전에 공연장에 도착하지만, 그는 급히 차를 빌리느라 렌터카 업체 사무실에 드럼 스틱을 두고 온다. 앤드류는 그가 경연장에 늦었기 때문에 보조 드러머였던 코널리에게 당일 경연의 메인 드러머를 맡길 것이라고 말하는 플레처와의 논쟁 끝에, 드럼 스틱을 가져오기 위한 10분을 얻어낸다.

<위플래시>는 앤드류의 버스에 문제가 생기는 순간부터, 그가 늦지 않기 위해 무슨 짓이든 벌이는 모습과 렌터카 사무실에서 드럼스틱을 찾고, 다시 경연장으로 향하는 과정을 빠른 컷 전환과 긴박한 드럼 사운드로 보여주다가, 관객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만한 순간에, 이 흐름에 정지를 준다. 앤드류에게 차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때 드럼 사운드도 함께 끊기고, 긴박하게 흘러가던 영화의 템포는 낮아진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는 앤드류는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고 피 흘리는 몸을 이끌고 다시 경연장으로 출발한다.

그가 달리기 시작하자 드럼 사운드는 다시 시작된다.

 

ⓒ 워터홀컴퍼니

더넬런 경연 시퀀스는 <위플래시>의 리듬이 가장 잘 드러난 시퀀스이기도 하면서, 전체적인 영화의 리듬을 조정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또 'be great'을 향해 광기에 휩싸인 채 나아가던 앤드류의 템포를 진정시킨다. 앤드류는 이날 무대에 오르긴 하나, 몸이 너무 다친 상태라 연주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플레처 밴드에서 쫒겨나게 된다. 플레처와 분리된 앤드류는 그를 만나기 이전처럼, 광기를 내려놓은 듯한 모습을 보이며 보다 차분한 상태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위플래시>는 이러한 조정기를 거친 후, 다시 관객이 예상하지 못했을 만한 순간에, 원래의 긴박한 템포로 서서히 다시 돌아간다. 이는 역시 앤드류와 플레처의 재회와 함께 이루어진다. 악행이 드러나 셰이퍼 음악학교에서 쫓겨난 플레처를 앤드류가 다시 만나게 되면서, 앤드류는 플레처가 새로 맡은 밴드의 중요한 공연에 메인 드러머로 서게 된다. 모든 것이 앤드류가 원했던 대로,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관객들이 인식할 만한 순간, 영화는 앤드류가 자신의 악행을 고발한 것을 알고 있던 플레처의 복수라는 설정을 통해 마지막 변주를 하고, 이는 앤드류의 광기를 다시 발동시키며 앤드류가 드디어 연주자로서 경지에 다다르게 한다.

<위플래시>는 이처럼 주인공 앤드류의 여정을 위해 다른 인물들이 존재하는 앤드류라는 유일한 주체를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위플래시> 이후에 데미안 셔젤이 연출한 두 작품 <라라랜드>와 <퍼스트 맨> 역시 앤드류와 같이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데, 그들을 다루는 방식이 <위플래시>에서와는 확연한 차이를 가진다. 다음 글에서 <라라랜드>의 방식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자 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워터홀컴퍼니

위플래쉬
Whiplash
감독
데미안 셔젤
Damien Chazelle

 

출연
마일스 텔러
Miles Teller
J. K. 시몬스J. K. Simmons
멜리사 비노이스트Melissa Benoist
폴 레이저Paul Reiser
오스틴 스토웰Austin Stowell
네이트 랭Nate Lang
크리스 멀키Chris Mulkey
수앤 스포크Suanne Spoke
찰리 이언Charlie Ian
제이슨 블레어Jayson Blair
카비타 패틸Kavita Patil
에이프릴 그레이스April Grace
데이먼 겁튼Damon Gupton

 

배급|수입 워터홀컴퍼니
제작연도 2014
상영시간 106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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