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th JIFF] '레이와 디오' 마스크가 얼굴을 뒤덮을 때
[23th JIFF] '레이와 디오' 마스크가 얼굴을 뒤덮을 때
  • 김민세
  • 승인 2022.05.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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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화가 봉합하는 세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스크린에 드러나는 동시대는 그 어떤 때보다 특별한 힘을 발했다. 스크린 너머로 희망을 전하던 <드라이브 마이 카>(2021)의 엔딩, 이제는 평범한 일이 되어버린 팬데믹을 지극히 일상으로 전제하고 있는 <소설가의 영화>(2021), 최근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이창동의 단편 <심장소리>(2022)까지. 물론, 만든 이 또는 보는 이의 자의식으로 인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화들은 어떤 시대적 배경을 하고 있더라도 불가피하게 팬데믹의 맥락 안에서 읽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중에서 신체 일부로서 또는 확장으로서 존재하는 '마스크'가 등장하는 영화는 그 어떤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동시대로서 우리에게 달라붙는다. 마스크 방역은 크고 작게 범세계적이었다는 점 때문에 특정 사회권이나 역사 안의 맥락조차도 무시한 채 만국 공통에 닿는다. 동시에 마스크는 대개 영화 안에서 시각적으로 제시되지만, 물리적인 피부와 현대인의 삶이라는 주체에 달라붙어 기생한다는 특징 안에서 촉각적이고 말초적으로 감각되기도 한다.

그리고 마스크를 쓴 얼굴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것은 팬데믹 이전 세계를 온전히 보전하고 있던 영화 내 세계의 균열과도 같으므로 스크린을 마주 보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도 다가올 가능성을 지닌다.

<레이와 디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전제로 작동하는 영화이다. 주요 인물들이 모두 마스크를 쓴 얼굴로 등장하고, 코로나로 인해 변화된 일상을 억지로 숨기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코로나 시대가 영화의 토대이자, 서사를 작동시키는 주요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달리, 코로나 시대를 균열로 인식하고 재현해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는 팬데믹의 맥락 안에서 발생한 구체적 사건을 통해 적극적으로 세계에 균열을 내며, 영화적으로 다시금 봉합하기를 시도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영화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화임을 넘어서서 시대를 재창조하고 있는 영화이다. '응시하기'를 넘어선 '만들기'의 영화.

 

ⓒ 전주국제영화제

<레이와 디오>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세팅하는 방식은 이러하다. 먼저, 코로나 사태로 인해 큰 위기를 겪은 영화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온다. 주인공 디오는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버지 레이와 생계유지를 하는 청년이다. 그가 일하고 있는 영화관이 팬데믹으로 인해 정상적인 영업 유지가 되고 있지 않음을 영화는 반복적으로 확인시킨다. 여기에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테마를 레이와 디오라는 어색한 부자 관계와 겹쳐놓는다. 디오가 식사를 위해 사놓은 패스트푸드를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손님이 오지 않는 영화관에서 계속 일을 하는 디오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는 레이의 모습들은 지금까지 그들의 관계가 어떠했고 지금에 와서 어떻게 미끄러지고 있는지 설명한다.

이런 설정들은 이 서사가 왜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동시대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증명 과정인 것처럼 보인다. <레이와 디오>에서 동시대의 점검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코로나 시대를 인위적인 소재로써만 사용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함도 있지만, 나아가서는 단순한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반복이 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영화는 코로나 시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만영화라는 점에서부터 어쩔 수 없는 두 가지 목표이자 의무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 전주국제영화제

잠시 목표를 달성했느냐에 대한 대답에 앞서서, <레이와 디오>가 보여주고 있는 형식미는 그 자체만으로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디오가 방역복을 입고 극장 내부 소독을 하는 직원들을 지켜보다가 환상에 빠지는 순간은 코로나 시대 안에서의 독특한 해방감과 새로운 가능성을 느끼게 한다. 방역 직원들의 한 발짝이 달에 착륙한 우주인의 도약과 겹쳐 보이는 순간. 이 연결은 다소 비약적이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시네마만이 만들 수 있는 기이한 체험일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것들이 영화가 이 세계를 상상적으로 봉합하는 방식이다.

그 합일의 주제는 후반부 레이와 디오의 질주로도 설명된다. 디오가 고장 난 오토바이를 끌고 집까지의 먼 길을 향할 때. 레이가 범죄 사실을 들키고 도주할 때.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지속해서 미끄러지던 부자 관계는 각자의 계기적 사건 이후에야 정확히 만난다. 좋아하는 사람을 스토킹 했던 디오와 전 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했던 레이가 모두 각자의 대상에게 정확히 닿지 못했던 점을 상기해봤을 때, 그들은 그제야 서로라는 대상을 찾게 된 것이다. 그렇게 둘이 만난 뒤, 레이를 등에 업고 걸어가는 디오로 영화는 눈을 감는다. 결국 이루어진 둘의 합일이 질주라 할 수 없는 질주로 이어지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 전주국제영화제

그러나 과연 <레이와 디오>의 전반적인 내용과 형식이 두 가지 목표를 정확히 향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우선, 이 영화는 코로나 시대 밖에서도 작동하기 위해서 레이와 디오라는 부자 관계 사이 본질적인 소통의 부재에 집중한다. 동시에 기존의 대만 뉴웨이브 영화와는 차별점을 두기 위해 코로나 시대와 환상에 기반한 독특한 연출을 하기도 한다. 다만,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각자의 목표가 모순적으로 서로에게 상충하기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영화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순간, 영화는 그 소재에만 기대어 연출될 뿐이고 궁극적인 변주와 새로움은 가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이 영화가 자신이 처한 운명을 알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런 고민을 만드는 장면이 레이가 '마스크'(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를 쓰고 백화점을 털 때이다. 마치 코와 입을 가리던 마스크가 얼굴 전체를 뒤덮는 듯이. 마스크를 쓴 레이가 CCTV를 바라보는 것은 코로나 시대의 운명에서 거짓으로 가장할 수밖에 없는 영화의 자의식 또는 기웃거림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CCTV의 시선 자체가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영화의 시선일까. <레이와 디오>를 지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화의 운명과 유의미한 질문 안에서 진동하고 있는 영화임은 확신할 수 있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레이와 디오 
Raydio
감독
잔카이디
ZHAN Kaidi

 

출연
환사오양
HUAN Shao-Yang 
린주LIN Ju
황주민HUANG Jou-Min 
천자언CHEN Chia-en

 

제작 LUNAGIN Production Company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93분
등급 15세 관람가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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