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th JIFF] '누가 우릴 막으리' 시간의 푸티지
[23th JIFF] '누가 우릴 막으리' 시간의 푸티지
  • 이현동
  • 승인 2022.05.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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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아카이브는 영화에서 무엇을 촉진하는가"
ⓒ 전주국제영화제

최근 개봉한 호나스 트루에바의 <어거스트 버진>(2019)에 이어 그의 신작인 <누가 우릴 막으리>(2022)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는 행운이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어거스트 버진>은 벌써 필자의 '2022년 BEST 10' 목록에 있기 때문. 그의 영화는 일련의 소소한 대화들과 자연이란 광채의 선율이 마치 시공간에 접착되어 호흡하는 인상을 받는다. 어디서나 있고. 언제든지 가능한. 그의 작품에서 전개되는 에너지는 에릭 로메르의 정취와 숨결을 내포하면서도 캐릭터가 '주체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그가 <누가 우릴 막으리>에 담은 주체적 대상은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그들은 끊임없이 무엇인가에 대해 저항하고, 또 영화란 매체와 코로나 팬데믹을 직접 경험하며 자신을 발견한다.

감각과 감정이 담긴 <누가 우릴 막으리>는 청소년기의 순수성을 현상하는데 의미를 기울인다. 영화를 구성하는 최초의 과정에서 실질적인 기획이 없었다는 이 영화는 통상적인 배우 오디션 없이 마드리드의 공공 기관에서 진행된 영화 워크숍을 통해 매우 자연스럽게 이 프로젝트가 구상되었다. 그리고 감독은 처음에 만난 배우 칸델라와 파블로로부터 점차 기획과 캐스팅을 확장했으며, 마드리드에 있는 여러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촬영했던 아카이브들을 모아 영화에 활용했다.

<누가 우릴 막으리>는 2016년부터 5년 동안, 마치 무의식적으로 숨 쉬는 것처럼 찍었다. 감독은 시간을 온전히 할애하지 않고, 그 와중에 다른 영화들을 찍기도 하면서 배우들의 성장과 변화를 관성적으로 촬영했다. 여기서 관성이란 물리적인 시간과 정신적인 시간, 두 가지의 시간을 포괄하는 것이다. 5년에 걸친 촬영 과정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만드는 연대는 이 영화의 목적지가 애초부터 설정되어 있지 않음을 명시한다. 관객들은 이 영화적 체험을 함께 참여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이 불능한 상황 속을 모험하게 된다.

 

ⓒ 전주국제영화제
ⓒ 전주국제영화제

12년간의 실제 시간을 반영하였던 한 아이의 성장 영화인 <보이후드>(2014)나 청소년들의 파격적인 행보를 그렸던 래리 클락의 첫 번째 작품인 <키즈>(1995)와는 다르게 <누가 우릴 막으리>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형태, 두 가지를 한 번에 포섭하는 하이브리드 영화이다. 인터넷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감독 호나스 트루에바와 아이들의 첫 장면과 후반 부 장면은 시종일관 잔존하는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관객들에게 주입함으로 영화 전체를 픽션으로 우선하여 대상화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아닌 실제의 연기처럼 하라"라는 감독의 요구는 이 요구 자체로 영화, 아니 다큐멘터리라는 실재가 재현된 영상의 범주에서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픽션으로 드문드문 밀착하는 방식을 차용한다. '실제의 연기처럼’에서 이 '처럼’이란 조사는 그의 영화적 특성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단서이다. 그는 현실을 촬영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현실을 카메라를 통해 새롭게 가공한다. <누가 우릴 막으리>의 카메라 워크는 격동의 시대를 경험하는 청소년기의 감정을 역동적으로 포착하고 그 성격을 규정한다. 바닥에 카메라를 놓고 낮은 위치에서 촬영하거나 핸드헬드로 인물들의 움직임을 담는다.

특히, 누벨바그 영화를 연상시키는 카약을 타는 장면들은 청소년들이 부여하는 영화적 형태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자 자유의 이미지들이며 그 시기에 그들만이 뿜어낼 수 있는 어떤 생명력으로 지향된다

 

ⓒ 전주국제영화제
ⓒ 전주국제영화제

총 3번의 푸티지(footage)

<누가 우릴 막으리>(2021)의 총 3번의 인터미션이 각 챕터를 구분하는 것이라면 첫 번째 챕터는 그들의 체계를 향한 원론적인 저항의식에 기반하는 것으로 보인다.(물론, 이러한 구분을 감독은 원치 않을 것 같지만) 학생들이 모여 피켓을 든 시위 현장에서 "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라는 청소년들의 외침과 학교에 교육체계가 없고, 자퇴율의 증가, 정치 세습, 그리고 회의 시간에 졸고 있는 정치인들을 맹렬하게 비판하는 담론의 현장은 그들이 가장 먼저 표출할 수 있는 의식적 표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챕터, 혹은 영화 전체가 사회문제를 함의한 것인지 물을 수 있다. 그러나 호나스 트루에바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사회학적 목적을 갖고 탄생한 영화가 아니라고 밝히듯이, 이 챕터는 그 당시 아이들의 관심과 직관적인 요소로 관철된 푸티지의 흔적 중 하나에 불과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간이 지날수록 변주되는 그들의 관심사를 유기적으로 다루는 <누가 우릴 막으리>는 특정한 주제를 매개로 한 영화가 아니다.

이러한 궤적은 두 번째 인터미션 후에 이어지는 카델라와 실비오의 애정행각 속에서 또 다른 양상으로 관측된다. 우발적인 만남으로 시작된 둘의 만남이 고조되는 순간은 두 사람이 카약을 타고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로 건너가는 장면이다. 감독은 이 장면을 영화에서 가장 영화적인 순간이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이는 그가 평소에 존경을 마다하지 않았던 포르투갈 2명의 감독인 미구엘 고메스의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8월(2008)과 히타 아제베두 고메스의 작품들을 향한 경외를 드러내는 오마주이면서 그의 감수성을 끌어낸 훌륭한 시퀀스이다. 셋이 카약을 타면서 즉흥적으로 장면과 내용, 촬영 방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찾아낸 이 사랑스러운 시퀀스는 보물을 찾아 나서는 항해하는 모험가처럼 진귀한 한순간을 맞이하는 환희의 표정들로 만개한다.

 

ⓒ 전주국제영화제
ⓒ 전주국제영화제

두 번째 인터미션이 끝나고 등장하는 칸델라의 드럼 연주는 더욱 강렬하게 이 영화의 제목에 답변하는 제스처로 발산된다. 청소년들이 연주하는 폭발적인 '누가 우릴 막으리'라는 음악은 스페인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축제와 거리 문화에 익숙한 그들의 폭발적인 정서와 맞물리면서 문화적 지평을 초월하여 감각적으로 대중에게 도달한다. 이것은 사회 현상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 지를 세상에 공포하는 뭉클한 장면이다.(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마치 성인식 같다) 그들은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을 훌쩍 지나 성인이 되어 인터넷으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이전 장면들이 픽션임을 인식할 때, 이 영화는 또 다른 목적을 수행한다.

갑작스레 침입한 팬데믹으로 인해 자신들의 학업 생활과 일상을 감독하고 나눌 때 우리는 이 영화의 목적이 일상을 포착하는데 있음을 인식하게 되며, 더 나아가 성인이 되어 영상을 보고 있는 배우와 감독들이 서로의 코멘트를 나누는 쇼트에서 <누가 우릴 막으리>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가 완전히 제거되면서 영화는 실재화된다.

<누가 우릴 막으리>에는 청소년기에 가질 수 있는 활력과 인상적인 대사들이 가득하다. 청년들의 담론과 인생의 문제, 말들의 힘이 공존하는 이 영화에서 그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연기 아닌 연기를 한다. 호나스 트루에바가 자신의 영화적 집념을 모두 투사한 것으로 칭할 법한 이 영화는 그의 특성을 대변한다. 그들의 모든 제스처가 인위적인 힘을 상실할 때 이 영화는 편집이란 검열 과정 없이도 자연적으로 발화하게 되며, 이는 지적인 실험으로 치환되지 않고 도리어 자연을 소묘하는 작품이 된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Ilusos Films, Los

누가 우릴 막으리 
WHO'S STOPPING US
감독
호나스 트루에바
Jonás TRUEBA

 

출연
칸델라 레시오
Candela RECIO
파블로 호요스Pablo HOYOS
파블로 가비라Pablo GAVIRA
클라우디아 나바로Claudia NAVARRO
실비오 아길라르Silvio AGUILAR

 

제작 Ilusos Films, Los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220분
등급 12세 관람가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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