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th JIFF] '내림 마장조 삼중주' 이해의 하모니
[23th JIFF] '내림 마장조 삼중주' 이해의 하모니
  • 이현동
  • 승인 2022.05.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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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감독이 스카우트 한 환상의 트리오 : 감독, 배우, 배경"

 

ⓒ 전주국제영화제

 

프랑스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는 『From Mozart to Beethoven: An Essay on the Notion of Profundity in Music』라는 책을 쓰면서, 'Trio'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차르트의 트리오를 주의 깊게 들으면 각각의 악기는 캐릭터에 해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남자는 비올라, 여자는 클라리넷, 모차르트는 피아노다. 이 곡에서 세 악기의 조화와 불협화음이 느껴진다" 

히타 아제베두 고메스 감독의 <내림 마장조 삼중주>(2022)는 서로 다른 속성의 남녀가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하모니의 선율과 같이 연주되는 따스한 느낌의 영화이다. 더 나아가 이 영화의 감상을 에릭 로메르의 영화와 대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연극에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히타 아제베두 고메스는 라디오를 위한 무대 연극을 녹음하기 에릭 로메르의 연극에 영감을 받고 이번 영화에 대한 계획을 수립했다. 로메르의 연극은 상대적으로 설계하기가 쉽고, 많은 무대 연출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로메르가 모차르트의 음악의 구성에 영감을 받은 연극 <Le Trio en mi bémol>(1988)를 참고로 한 <내림 마장조 삼중주>는 로메르의 형식을 전면적으로 공유하면서도 감독과 연기자의 '필름 메이킹' 장면을 통합하며 그 안에서 미묘한 변화를 촉발해 내는 작품이다. 에릭 로메르의 오마주로 보이는 '보르헤'라는 감독을 통해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매력적으로 맵핑하는 이 영화는 길고 정교한 대사들, 영화 전체와 공명하는 부드러운 미장센, 그리고 음악을 통해 시종일관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만 아쉽게도 3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모든 것을 촬영된 <내림 마장조 삼중주>는 펜데믹 상황에서 진행되었으며, 영상통화로 리허설을 해야 할 정도로 준비 작업이 부족한 작품이었다. 이런 아쉬움에서 출발한 리허설 장면의 삽입은 감독의 의도를 반영하여 실제와 허구의 세계를 왕복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종종 감독, 배우, 스태프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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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림 마장조 삼중주>의 환경을 조명하는 뛰어난 로케이션은 이전 작품인 <포르투갈의 여인>(2018)에서 주교를 연기한 건축가 알렉산드로 알베스 다 코스타(Alexandre Alves da Costa)의 소개를 받아 북부 포르투갈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이루어졌다. 로메르의 연극은 창문이 도시를 내려다보는 파리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연출되었지만, 이 영화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자연주의적 풍광을 통해 전체적인 영화의 톤을 구성한다. 특히나 바다 옆에 있는 비치 하우스는 둘만의 공간이면서 개방된 문들을 통해 열려있는 관계를 형상화한다.

실상 이 영화 전체를 로메르의 오마주로 본다면, 그의 연출을 연상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통상적으로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서 남녀 관계는 어떤 '어긋남'에 의해서 시작된다. 남과 여 중 한 부류는 무기력한 상태에 있거나 흩어졌던 관계를 쫓기도 하고, 또 기다리기도 한다. 그리고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어떤 식으로든 그 중간에서 만나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대화들을 긴 시간 동안 한다.

그의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대화는 늘 그렇듯이 미끄러지고 연장되거나 지연되며, 그것이 유희로 발화하기까지 수없이 튕겨지는 대화들의 춤은 결국 사랑스럽게 연결되는 그의 지적 결과물로 이어진다. 이런 자그마한 소란스럽고 자질구레해 보이는 대화들이 역시 <내림 마장조 삼중주>의 이야기를 축조하는데 큰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 전주국제영화제

짤막한 리얼리즘에 대한 탐구와 대화의 실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일반적인 리얼리즘을 해체하고 스크린적 리얼리즘에서 진리를 찾았다. 그는 실제를 있는 그대로 찍으면 도리어 리얼리즘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방식에 의하면 영화는 리얼리즘의 규율을 해체하고 여러 조작을 통해 관객들에게 감응하도록 의도하는 방식으로 발현되고 체감한다는 것이다. 의도적인 촬영 장비의 노출과 과장된 소리, 영화 안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찍는 감독, 그리고 감독으로 위장하는 배우들, 키아로스타미가 시도한 기법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림 마장조 삼중주>에서도 관측되는 영화적 속성이다. 대표적으로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에서 감독의 디렉션과 연기가 반복되는 지점에서 스크린적 리얼리즘은 선명해진다.

앞서 언급했던 로메르의 연극이 이혼한 부부 사이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듯이 둘은 이별한 연인이면서도 집이라는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헤어진 지 1년이란 시간 동안에도 감정이 약화되지 않은 것 같은 둘의 대화는 애초부터 관계의 재결합의 여지를 두는 대사들로 가득하다. "최근에 자주 봤다고 할 수 없지"라는 폴의 대사가 바로 그렇다. 폴(피에르 레옹)에게 연애 감정이 아닌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좋다는 여성 아델리아(리타 두르뇨)는 현재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그럼에도 둘의 만남은 둘의 간격을 더욱 밀접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동하며 어떠한 변용도 없이 느슨하게 연결된다.

폴은 아델리아의 연애를 인정하면서도 그 끈을 놓지 않는다. 대화의 중심에는 문화 예술을 상징하는 음악 장르의 취향으로부터 관계는 성립된다. 폴은 음악에서의 끌림이 존재의 핵심과 결부되며, 이것은 어떤 정치, 도덕, 종교 등의 관념적인 체계와는 예외적이라 말한다. 깊은 끌림의 불능성을 우회하여 음악에 반응하는 육체는 물리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이끌어내는 요소로 배치된다. 특히 클래식과 락이라는 취향의 불일치는 둘의 성향의 차이를 대변한다고 할지언정 둘은 다시금 감정을 연주하는 '이해'라는 악기로 둘의 온전한 관계를 포섭한다.(아델리아는 폴에게 '이해'라는 재능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동의하는 척보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음을 말해야 함이 좋다고도 말한다.

<내림 마장 삼중주>는 서서히 대화라는 연주를 맞춰나가는 연습 과정이자 일종의 실험으로 보이기도 한다.

 

ⓒ 전주국제영화제
ⓒ 전주국제영화제

아울러 미디엄 롱 숏이 <내림 마장조 삼중주>의 기본적인 프레임을 구성할 때, 이 영화의 연출은 회화적인 측면과도 관련이 있다. 이를 드러내듯 정태적인 이 영화의 표면과 리듬감은 전반적으로 대사의 음성과 음률 등에서 서사의 공백을 메꾼다. 가끔 인물들을 클로즈업하거나 좌측으로 패닝 숏을 하며 주위를 환기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아주 미세하게도 감정을 증폭하기도 하고, 시야에서 인물이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면서 여전히 소거되지 않은 관계를 묘사하기도 한다.

각각 시퀀스의 중간에 감독이 홀로 앉아 상념에 빠지거나 대본을 쓰고, 스태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감독의 생활을 반추하는 것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극 중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밤에 집 안에 있는 돼지를 보고 있는 감독의 시선은 고메스 자신의 꿈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한 익살스러운 묘사다. 이것은 팬데믹으로 인해 영화의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할 때 꾸었던 악몽에서 비롯된다. 꿈에서 그녀는 세트장에서 대본이나 메모가 없이 길을 잃어버린 망연자실한 상태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었다고 한다. 돼지는 정치인의 처벌에 관한 은유이지만, 이를 희극적으로 대비할 때 그녀는 이 운명을 극복했음을 표기하는 셈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촬영이 끝나고 "수고 많았어요"라는 감독의 목소리는 종결되지 않고 다음 시퀀스로 이어진다. 전부 다시 찍어야 한다는 감독의 말과 무책임하게 던지는 "그냥 그렇게 됐어요"는 감독의 앞으로의 작품들을 향한 선언같이 보인다. 스태프가 다시금 대본을 감독에게 쥐여주었을 때, 대본을 옆에 올려놓으며 분실되었다고 말을 하는 것도 계속 순환될 사랑이 암기의 대상이 아닌 감각의 대상에 놓여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대사와 미장센의 배열 중 일부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 자신만의 버전을 창의적으로 전개했다는 점에서 <내림 마장조 삼중주>의 가치는 앞으로도 고무되어야 할 위치에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Gomes, Gonzalo García Pelayo

내림 마장조 삼중주
The Kegelstatt Trio
감독
히타 아제베두 고메스
Rita AZEVEDO GOMES

 

출연
리타 두르뇨
Rita DURÃO
피에르 레옹Pierre LÉON
아도 아리에타Ado ARRIETA

올리비아 캐베즈Olivia CÁBEZ

 

제작 Gomes, Gonzalo García Pelayo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27분
등급 G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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