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th JIFF] 전주대담: 신수원, 그리고 한국여성감독
[23th JIFF] 전주대담: 신수원, 그리고 한국여성감독
  • 문건재
  • 승인 2022.05.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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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판사>, <여자만세>

올해 전주국제영화제가 '오마주'를 중심으로 한국영화사 속 여성 감독들을 주목하는 '오마주: 신수원, 그리고 한국여성감독' 특별전을 개최했다.

'오마주: 신수원, 그리고 한국여성감독'이라 이름 붙여진 이번 특별전에서는 <여판사> <여자만세> <레인보우> <오마주> 모두 4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더불어 특별전과 함께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전주대담'이 지난 4월 30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렸다. 이날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세상에 화두를 던져온 신수원 감독, 부지영 감독, 윤가은 감독이 참석해 '한국에서 여성 감독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전주국제영화제

이다혜 모더레이터 : 우선 오늘 <여판사>를 보고 느낀 점 부탁드린다.

└ 신수원 감독 : 오랜만에 <여판사>를 봤다. 11년 다큐멘터리를 찍을 당시에는 상당히 답답했다. 홍은원 감독님에 대한 자료가 없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찾던 찰나 어느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감독님의 필름을 기증받았다. 이후 영상자료원에서 복원되었다. 당시에는 유튜브로만 보았고, 오늘 처음 극장에서 봤다. 세련된 미장센. 글 쓰는 방식, 동선, 대화 장면, 권선징악이 아닌 점 등 첫 장편을 이렇게 찍고 투자가 이루어졌으면 엄청난 여자거장이 됐을 것 같다. 당시 영화에 비해 섬세하고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들이 연출의 힘으로 봤을 때 뭉클함을 느꼈다.

└ 부지영 감독 : <여판사>는 세련된 영화다. 결말에서 다 범인일 수 있었는데, 만약 미스터리 장르로 갔어도 재밌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들 중에서 특히 시누이는 의상부터 성격까지 귀엽다. 자기 욕망에 솔직한 게 좋았던 캐릭터다. 또 판사의 희생,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바라보는 시점 등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모습이 모두 새로웠다.

└ 윤가은 감독 : 홍은원 감독님은 내가 공부한 감독님이다. 특히, <여판사>는 보고 싶었고, 궁금했던 영화다. 오늘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경험이다. 영화가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재밌다. 지금 리메이크되어도 충분히 재밌을 것 같다. 특히, 카메라 워킹에 놀라웠다. 시대상을 고려할 때, 놀라운 영화이다.

 

이다혜 모더레이터 : <여판사>는 홍은원 감독님이 시나리오 작가답게 잘 써진 작품이다. 인물 하나하나 설정을 잘했다. 악한 면, 무던한 면 등 유머러스하게 잘 풀어냈다. 마치 슈퍼 히어로 영화를 보는 듯하다. '영화를 계속 찍었으면 어땠을까' '홍은원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게 뭘까' 생각이 든다. 신수원 감독님에게 <여판사>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신수원 감독 : <여자만세>는 <레인보우> 찍은 후 만들었다. 그 당시 내게 자극을 주었던 것은 '두 번째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다. 홍은원 감독님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 – 타임)을 제안을 받고, 제작을 하면서 감독님의 사라진 필름, 따님과의 대화, 여러 문서를 봤다. <여판사>는 스크립터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15년 동안 조감독,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 이후에 만든 최초의 작품이다. 당시에 20만 명이나 봤던 대박 난 영화다. 그러나 감독님은 세 번째 영화 <오해가 남긴 것>(1966) 이후 작품을 찍지 못하였다. 박남옥 감독님 또한 마찬가지다. 나 또한 단절되는 두려움이 있었다. 외롭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 시절의 찰나와 당시 영화를 만들었던 필름메이커들은 왜 사라졌을까 생각을 하였다. 이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에선 너무 짧게 비추어서 안타까웠다.

 

신수원 감독 ⓒ 전주국제영화제

이후 영화로 만들고 싶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고, <오마주>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시나리오는 편하게 써졌다. 생각해보니 <여판사>의 필름을 발견된 게 큰 힘이 됐다. 저예산으로 제작하기에 <여판사>를 구현할 수 없었지만, 반대로 영화 속에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따님도 고인이 됐지만 없어진 필름을 영화 속에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명감은 없는 사람이지만, 그런 마음에 동질감을 느끼고 감독님의 집에 취재하러 가서 고인의 책상에 앉아 '60년도에 활동했던 사람의 집에 있구나' 생각했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이다혜 모더레이터 : 박남옥 감독님, 홍은원 감독님 모두 미신적인 이야기, 이를테면 여자가 영화 만들면 재수가 없다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그러한 것들이 현장에 남아있다고 느끼고 있는지.

└ 부지영 감독 : 현장에 맴도는 미신은 모르겠지만, 여성을 배제하는 문화는 있다고 생각한다. 인용할 만큼의 명제는 없지만, 산업 속 여자 작품은 드물게 발견된다. 그것만 봐도 많은 여성 감독들이 작품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들은 한정돼있다. 암묵적으로 배제돼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독립영화 여자감독들이 주목받았고, 산업 안에서는 여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 윤가은 감독 : 최근에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 없지만, 정확히 알 수 없는 암묵적인 편견이 아직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현장에서 소리를 지르면 여자감독이라는 이유로 신경질 낸다 등 여러 들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개인이지만 여성감독 대표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부분이 있다. 아직도 뭔가 그 속에서 전투를 치른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 신수원 감독 : 두 분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어느 순간 어떤 자리에서 문득 내가 유령인가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을 때 물론 여자감독이 적었지만, 내가 유령 취급을 받는다는 암묵적인 그런 것들을 느낀 적이 많다.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남자들보다 몇 배를 노력해야 봐주는구나. 영화를 시작한 지 12년인데 증명하는 게 여전히 힘들다. 홍은원 감독, 박남옥 감독 및 다른 여성 감독들은 칼 없이 전쟁터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전주국제영화제

이다혜 모더레이터 : <여판사> , <미망인> 제목부터 작정하고 여성감독이 가질 수 있는 관점이다. 영화 연출 입장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혹은 '나'로부터 나오는 여성의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생각과 '여성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아야 다음 기회가 오지 않을까'라는 갈등을 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영화를 찍으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 윤가은 감독: : 최근까지도 왜 더 확장된, 이를테면 더 진짜인 어떤 산업에 가까운 것을 하지 않냐는 질문을 들었는데 계속 고민하게 된다.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선보이는 걸로 시작했는데, 그거 말고 다른 거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 나도 다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는가 혹은 더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등 복잡한 고민이 든다. 가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들이 산업 안에서 자리매김 못 하는 걸 계속 하고 있나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순간들이 오는 것 같다. 시장의 성격이 메이저 안에 편입이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한다.

└ 신수원 감독 : 저 역시 <명왕성>은 남학생이 주인공인데, 나머지는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었는데, 항상 들었던 말이 여성이 주인공이면 투자받기 힘들다 였다. 어쩔 수 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서 저예산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저예산을 감수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오마주>를 찍을 때 언제까지 저예산 영화를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영화일 수도 있겠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상업 영화를 할 수밖에 없겠다. OTT도 해야 되고, 여러 가지 고민들이 코로나로 인해서 발생했다. 여전한 지금의 고민도 다음 작품이 또 여자가 주인공인 것을 하고 싶다 이다. 저는 감독이 잘 아는 것을 만드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성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피상적으로 남자를 더 깊게 들어가서 팔 수도 있지만 편한 건 여자가 주인공일 때 편하다. 여배우랑 소통할 때 남배우보다 아무래도 편하다. 내가 이렇게 해도 되나, 한 번 정도는 대박 한 번 쳐야지 살아남는다는 주변인들이 있는데, 몇 년 전에도 여자가 주인공인 걸 썼는데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 부지영 감독 : 그런 질문은 창작자를 위축시키는 부당한 질문이다. 다른 감독들한텐 안 물어보시면서 왜 나한테만 물어보나 싶다. 고민스럽긴 하지만 질문 자체가 화나게 만드는 게 있다. 내가 알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인데, "그거 하지마 돈 못 벌어"라고 느껴진다. 단순히 여자 하나로 꼬투리를 잡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OTT는 남녀 비율 50%씩 넣었는데, 의식한 걸 수도 있지만, 그런 질문은 더 이상 안 나와야 한다.

[코아르CoAR 문건재 기자, ansrjswo@ccoart.com]

문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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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운영위원 및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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