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 교차되는 두 운명의 섬
[Critique] 교차되는 두 운명의 섬
  • 이지영
  • 승인 2022.05.04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pple TV+] <파친코> "1910년 부산 영도에서 1989년의 도쿄까지"
ⓒ Apple TV+

1. 현재와 또 다른 현재를 잇는 '시간'의 직조술

1910년대부터 1989년까지 4세대에 걸친 한 가족의 역사를 다룬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는, 식민 지배와 전쟁, 관동 대지진이라는 참극을 견뎌야 했던 이민 1세대의 이야기와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의 무한경쟁 속에 편입되어 디아스포라의 삶을 감내해야 했던 이민 2·3세대 이야기를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고자 한다. 장장 한 세기에 걸친 이야기를 2권의 책 안에 모두 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듯, 소설은 한 챕터에서 다음 챕터가 시작될 때 수년의 공백을 두고 시점을 도약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남아있는 것들은 정제되고 벼려져 살아남은 텍스트들이다. 살아남은 것들은 각 시절의 초상이며, 잊지 못할, 잊혀지지 않아야 하는 얼굴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남은 텍스트를 영상화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수 휴의 극본, 코고나다와 저스틴 전이 공동 연출을 맡은 TV 드라마 <파친코>는 극의 진행 방식을 원작 소설에 온전히 기대는 대신, 즉 문학 텍스트를 그대로 영상화하는 데 그치는 대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 영상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의 직조술을 활용한다. 즉 선대와 후대가 각자가 마주한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서로 대비하고 공명하도록 하기 위해 청년 선자(김민하)의 시간과 솔로몬(진 하)의 시간을 교차 편집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로써 두 시대는 모두 유효성을 가지고 동등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인물들이 처하는 상황은 묘하게 닮아 있지만, 각자가 마주한 시대적 과제는 다르다. <파친코>가 1910년대의 부산 영도, 1930년대의 오사카, 1980년대의 뉴욕과 도쿄를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면서도 유기적이고 연속성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교차 편집된 영상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리듬은 오프닝 크레딧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파친코의 인물들은 화사하게 빛나는 파친코장을 배경으로 The Grass Roots의 'Live for Today'라는 곡에 맞춰서 극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정서로 신명 나게 춤을 추는데, 이들의 춤추는 동작들은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연속성 있게 편집되어 하나의 춤처럼 보인다. 다큐 푸티지들과, <파친코>라는 픽션 속 인물들의 사진이 한 데 섞여 있는 이미지들은, 마치 W.G. 제발트의 소설 <이민자들>에서 텍스트 일부처럼 삽입되어 당시에 대한 인상을 독자들에게 강하게 전달하는, 현실과 상상에 기반한 사진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2. '어머니'의 증언, '아버지'의 유산

다음으로 문학 텍스트를 차용할 때, 원전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묘사되는 과거의 생활상, 캐릭터 묘사, 거시적인 상황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어떻게 인물의 대사로 표현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다. 결론적으로는 인물들이 스스로 화자가 되어 각자의 인생을 증언할 수밖에 없다. 이때, 어떤 서사가 누구의 입으로 증언되는지, 듣는 청자는 누구인지에 주목해볼 만하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전 세계 독자에게 깊이 각인된 내용으로 시작하는 1장 전반의 내용은 후사를 위해 무당집에 찾아간 양진(정인지)의 입으로 서술된다. 마치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운명의 문을 두드리듯 두렵지만 결의에 차서 다가가는데, 양진은 마치 이 <파친코>라는 긴 역사의 포문을 여는 듯하다.

 

ⓒ Apple TV+

"저희 어머니는 박복한 분이었심더"라는 첫 마디로 그녀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양진이 자기 삶을 증언할 때 그녀보다 윗세대의 무당, 그리고 시중을 드는 어린아이, 이 3대의 여성이 청자로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설정은 특별한 함의를 갖는다. 양진은 자신을 낳은 어머니가 겪은 고난, 궁핍했던 어린 시절, 훈이네 가족을 만난 것, 자식을 여러 차례 잃은 것, 앞으로 자식을 낳고 싶다는 소원까지 이 두 사람 앞에서 고백한다. 누군가의 과거일 수도, 누군가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여성들의 수난사는 후에 다른 아낙의 입으로 청년이 된 선자에게 증언되기도 하며, 앞으로 이국땅에서 취약 계층 노동자로 살아갈 선자 자신의 삶을 예견하기도 한다.

선자야, 여자의 일생은 일이 끊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삶이데이. 고통스럽고 또 고통스러운 게 여자의 인생 아이겠나. 니도 각오하는게 좋을끼다. 인자 니도 여자가 되었으니까네 이건 꼭 알아둬야 한데이. (중략) 항상 일을 해야 한데이. 가난한 여자를 돌봐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가. 기댈 건 우리 자신 뿐이다 이기라. (파친코 1, p.48)

자기 손으로 일해서 자신의 인생을 구제하라는 모든 어머니들의 메시지와 함께, 아버지 훈이의 깊은 사랑은 어린 선자가 질곡의 세월을 견디는 강인함을 갖게 해주는 또 하나의 원천이 된다. 특히 그는 돈은 곧 사람에게 주는 정이라고 표현하는 유일한 인물인데, 반세기가 흘러 그의 후손 솔로몬 세대에게 돈이 갖는 의미와 전면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는 뒤에서 다시 다루도록 한다. 훈이의 남다른 부성애는 원전에서 비록 짧게 묘사되지만 선자에게 평생에 걸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첫 번째 화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다.

선자가 세 살이 됐을 때에야 비로소 선자의 부모는 옆에 누운 작은 몸뚱이가 숨쉬고 있는지 몇 번이고 계속해서 확인하지 않고도 잠을 잘 수 있었다. (파친코 1, p.20)

위의 묘사는 드라마에서 훈이가 선자에게 직접 전하는 대사로, 즉 부녀간의 깊은 애착 관계를 보여주는 씬으로 바뀐다. 아버지에게 누구 못지않은 커다란 사랑을 받은 기억을 유산으로 가지고, 선자는 '선한 아이'이자 '조선의 아이'로서 억척스럽지만 선함을 잃지 않고 한평생을 살아간다. 삶과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훈이와 선자의 관계는, 후에 천부적인 선한 인물이자 극진하게 아들을 사랑하는, 그러나 이내 부재하게 되는 아버지 이삭(노상현)과 아들 노아의 운명으로 계승된다.

 

3. 사랑하고 대척하는 인물들의 '관계성'

<파친코>의 인물들에게는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숙제가, 동시에 '연인, 배우자, 자식을 올바르게 사랑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숙제가 주어진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인물들은 현재에 자신이 결심한 사랑이 상대를 어떤 결과로 이끌 것인지 알지 못한다. 이들은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결과적으로 그 대상을 구원하기보다는 불행으로 몰아간다. 한수와 선자가 그러할 것이고, 이삭과 선자, 요셉과 경희, 하나와 솔로몬, 그리고 다음 시즌에서 다뤄 지리라고 예상되는 선자와 노아, 경희와 창호, 하루키와 아야메, 모자수와 유미, 이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그로 인해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 Apple TV+

한수(이민호)는 선자를 평생 사랑하지만, 그녀가 노아를 가지고, 이삭을 따라서 고향을 떠나 떠도는 삶을 살도록 하는 불행의 원인이 된다. 첫 만남에서 시장의 맞은편에서 나란히 걸으며 한수가 선자를 응시하는 장면은, 일평생을 한 행성 주위를 도는 위성처럼 그녀 주위를 맴도는 그 자신의 일생과 닮았다. 일본 순사들이 지나갈 때 몸을 숙이며 조아리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선자는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있는데, 원경으로 찍힌 이 한 장면의 연출만으로 그녀의 타협하지 않는 당당함과 의연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태도는 한수 자신의 본성과도 닮아 있다.

이처럼 둘은 비슷한 현실주의자이며 압제에 굴하지 않는 태도로 서로에게 끌리지만, 그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는 평행적으로 상반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한수는 선자의 꿈을 묻고, 미래를 대비하고 현재의 안위를 지켜주는 유일한 조력자이기도 하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조총련과 함께 공산주의의 이상향을 꿈꾸었던 선자의 남편 이삭의 세계관과 정면충돌한다. 한수에게 세상이란 이상을 실현하려는 곳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 정복해야 할 대상이다. 앞에서는 자신이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선자의 뒤를 캐고, 그녀와 노아의 삶을 알지 못하게 좌지우지하는, 자기중심적이고 기형적인 사랑의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원전에서 묘사되듯이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깊이 사랑하는 두 사람의 삶을 파국으로 이끈다.

 

4. 각자가 그리는 '미국'이란 이상향

<파친코>에서 4세대를 관통하는 '이상향'이 있다면 그것은 미국이란 미지의 땅이다. 미국이란 꿈은 애초에 한수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아버지(정웅인)의 소원대로 미국으로 이주하려 하였으나 관동 대지진 때문에 그 꿈이 좌절되고 아버지가 빚을 진 고리대금업자인 야쿠자 가족과 같이 지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유품으로 얻은 금색 회중시계는, 나중에 선자에게로, 그리고 다시 한수에게로 돌아갔다가 마지막에는 증손자 솔로몬이 물려받게 된다. 이 회중시계는 마치 <동경 이야기>의 노리코가 물려받는 시계를 상기하도록 하는데, 처음에는 눈부시게 빛났으나 오랜 세월에 걸쳐서 빛이 바래 버린 '미국'이라는 꿈을 상징하는 듯하다.

한수의 아버지나 선자에게, 미국이란 막연히 안전하고 행복과 성공이 보장된 미지의 땅이었고, 실제로 가보았던 한수에게는 "모든 것,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Everything and nothing), 솔로몬에게는 이제 막 편입에 성공하여 꼭대기를 향해 질주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또 한편으로는 병든 하나(마리 야마모토)를 살릴 수도 있는 마지막 기회와 희망이기도 하다. 솔로몬의 대사처럼, 미국 특유의 물신주의와 낙천주의적 태도는 어느새 일종의 생존 본능으로 변모한다. 그에게는 나라와 민족이 주는 의미가 더 이상 없으며 돈을 지불하는 '시플리'라는 왕국이 충성을 바칠 대상이다. 다시 하나를 만나고 재일 동포 노인과 부동산 거래로 일련의 사건을 겪기 전까지 체계에 순응하는 하수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만족한다.

 

ⓒ Apple TV+

5. '파친코'라는 인생, 인생이라는 게임

돈에 담긴 의미와 명분을 중시했던 윗세대(훈이, 선자)에서, 후세에서는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깨끗한 돈과 더러운 돈, 자랑스러운 돈과 창피한 돈의 구분 없이 그저 '돈은 돈이다'라는 명제로 바뀌어 간다. 그리고 파친코는 일종의 질시와 경멸, 선망의 복합적인 상징이 된다. 마치 빈곤하고 희망 없는 삶을 살아가던 에쓰코(미나미 카호)와 하나에게는 외국인 등록증을 목에 걸고 다녀야 하고 언제 어디로든 추방될 수 있는 모자수(박소희)와 솔로몬의 삶이 그저 돈이 더 많다는 이유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과 같다.

일본의 자산 버블이 최고조에 이르는 80년대 말, 솔로몬과 하나의 인생을 관통하는 것은 오직 돈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다. 원작 소설에서 청소년 시절의 하나는 성에 눈을 떠가는 사춘기의 솔로몬과 관계를 나누고 그때마다 돈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자 가출하고 후에 성매매 업소와 클럽을 전전하게 된다. 반면에 솔로몬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서 금융권에 취업을 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잠깐 원문을 인용해본다.

모자수는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희망의 여지가 남아있는 게임에 손님들이 빠지는 이유를 모자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파친코 2, p.95)

파친코를 인생 그 자체에 비유한다면, 솔로몬은 성공한 아버지(모자수) 덕분에 판돈을 상대적으로 크게 걸고 더 많은 성공과 부를 얻기 위한 인생의 베팅을 건다. 반면, 하나는 어린 나이부터 자신과 어머니(에쓰코)에게 그럴 만한 판돈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자신에게 주어진 어중간한 재능과 관능을 무기로 남자들에게 기대야만 생활이 유지될 것이라고 믿으며, 스스로 자포자기해 버린다. 즉, 그녀는 인생이란 게임의 베팅 자체를 포기한다. 에이즈에 걸린 하나는 메마르고 상처가 나고, 안구는 노랗게 병든, 사회적 병리 현상을 그대로 현현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가 이토록 비극적인 자신의 말로를 예상하지 못했듯, 솔로몬도 자신이 어떤 식으로 소속된 사회에서 배신당하고 내리막길을 걷게 될지 예측하지 못한다. 그는 파친코 사장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날 수 없고, 식민 시절부터 뿌리 깊게 박힌 차별을 아직도 받으며, 일본, 미국, 한국, 이 세 나라에서 모두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솔로몬에게 사회적 시스템은 아무리 큰 판돈을 걸든, 모든 것을 잃고 원점으로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는 파친코 게임기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핀이 설정한 방향대로 움직이는 핀볼 같던 솔로몬에게도 각성하는 계기가 생기는데, 이를 위해 소설의 2권 끝에 솔로몬이 이끄는 부동산 거래는 드라마에서 보다 비중 있게 다뤄진다. 특히, 한국계 재일본인인 '마쓰다'의 캐릭터가 더욱 부각된다는 차이가 있다. 집 없이 살던 시절의 설움을 잊지 않고 억척스럽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90살이 넘은 노인은 솔로몬에게 (한수에 따르면 선자보고 잊어버리라고 했던) 동포애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불러일으킨다.

이 거래가 최후에 어떤 결말을 맞는지는 다음 시즌에서 다뤄지겠지만, 드라마는 그 결말을 맞기 전에 솔로몬과 마쓰다, 그리고 선자 사이에 관계성을 부여하고 솔로몬의 의식을 한번 각성하도록 한다. 상사로부터 '제다이', 즉 회사를 수호하는 기사단이자 용병으로 불렸던 솔로몬이 스스로 의식적인 선택을 하고 비를 맞고 춤추며 순간적으로 해방감을 만끽하는 순간을 선사한다.

 

6. 그리고 남은 이야기

시즌 1의 마지막 화에서 <파친코>의 이야기는, 남편이 투옥되고 두 아이와 식구들의 생계를 잇기 위해 오사카역 앞에서 김치 장사를 갓 시작한 선자의 외침을 마지막으로 하고, 이제 현실로 넘어와 2021년의 일본을 보여준다. 90세가 넘은 재일 동포 할머니들은 <파친코>가 오늘날까지 유효한,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임을 천명한다.

앞서 우리가 문학 텍스트를 어떻게 영상화하고 있는지 그 형식에 주목하였다면 아마도 이들의 살아있는 증언은 왜, 지금 이 시점에 <파친코>라는 이야기를 다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W.G. 제발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잔혹한 전쟁과 홀로코스트 이후 침묵과 망각 속에 유령 같은 삶을 살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반면 <파친코>의 인물들은 고통받은 모든 기억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력을 다한다.

아들 노아에게 있던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증손자 솔로몬을 멀리 유학 보내려고 했던 선자가 그러했고, 모든 것을 잃고도 파친코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그녀의 아들과 손자들이 그러하다. 자신이 겪은 질곡의 세월을 증거하다가도, 한국어로 "할머니, 할머니" 하며 자신을 부르는 손주들에게 감사하다는 리창원 할머니는 만면에 미소를 띤다. "저만의 길을 걸어왔으니까 제가 선택하고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추남순 할머니는 말한다. 그렇게 소설이 운을 뗐던 그 선언을 이들의 목소리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반복한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인용

- 『파친코1, 2』, 이민진, 이미정 옮김, 문학사상

- 『이민자들』, W.G.제발트, 이재영 옮김, 창비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Apple TV+

파친코
Pachinko
감독
코고나다Kogonada, 저스틴 전Justin Chon

 

출연
윤여정
이민호
김민하
진하
박소희
정인지
미나미 카호
안나 사웨이
지미 심슨
노상현

 

제작 Media Res
제공 Apple TV+
제작 2022
상영시간 8부작
등급 15세 관람가
공개  2022.03.25~04.29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