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의 극단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에서 '형식'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애초에 사실과 진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형식이라는 말은, 어쩌면 다큐멘터리라는 양식 안에서는 모순일지도 모른다. 주로 다큐멘터리 감독은 형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방식으로 사실에 가까워지길 택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태도이고 내용이다. 반면, 형식은 부차적인 것이며 카메라가 순수하게 대상에 닿기를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물론, 지금 여기의 영화를 두고 사실주의와 형식주의의 정의와 경계를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 않다. 게다가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순간이라는 말 또한 동시대에는 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틀란티스>의 형식적 시도'는 앞서 언급한 뻔할 수도 있는 논의를 다시 꺼내놓으며 질문한다. 형식은 사실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카메라라는 형식은 어떻게 대상에 닿을 수 있는가. 영화는 그 둘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숨기고 드러내는가.
이탈리아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영화 감독인 유리 안카라니의 <아틀란티스>는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과잉된 형식미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영화는 물의 도시 베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유영하는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은 모터보트의 최고속력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경주하기도 하고, 보트에 마약을 숨겨 경찰들과 추격전을 벌이며, 물가에 커다란 스피커들을 갖다 놓고 음악을 들으며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유리 안카라니는 이들이 하는 행동들을 커다란 맥락없이 늘여 놓으면서도, 그들 각자의 서사를 의도적으로 지워낸다. 따라서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서사가 아니라 스크린을 가로지르는 모터보트의 운동성이 만드는 영화 이미지이다. 이러한 생략은 마치 베니스 물 위를 움직이는 곤돌라를 대체한 모터보트의 질주가 은유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유리 안카라니는 <아틀란티스>를 찍기 위해 4년간 이들의 일상을 쫓고 관찰하며 기록했다. 긴 시간 동안 카메라가 피사체를 관찰하고 함께 한 만큼, 등장인물들은 카메라 앞에서도 마약과 폭행, 범죄, 섹스 등의 행위를 가감 없이 행한다. 이 부분이 이 영화가 사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로서 이뤄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카메라 앞에서 그들은 어떻게 그런 행동들을 할 수 있을까. 카메라는 그 사실의 순간을 담기 위해서 등장인물과 어떤 시간을 보내왔을까.
이런 의문을 남기는 장면이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주인공 다니엘레가 자신의 모터보트 속력을 올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모터를 훔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그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각도에서 찍혔다. 오히려 다니엘레는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모르는 체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시선을 돌린다.
두 번째는 다니엘레가 연인과 헤어진 후 만난 새로운 여성과 보트 위에서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다. 한밤중이라 할지라도 운하의 한가운데에 모터보트를 세워두고 그 위에서 관계를 갖는 그들의 대담함만으로 이 장면의 충격을 설명하진 못한다. 앞선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행동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지만, 그 앞에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는 카메라로 인해 더 특별해진다.
그 행위들은 단지 그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 기록되고 결국에는 영화관 스크린에 당도하고 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을 불현듯 인지하게 한다.
<아틀란티스>는 분명 대상의 욕망으로 대표되는 사실과 진실을 가감 없이 담아내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의 사실주의적 태도를 이어 나간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이 더 놀라운 것은, 독특한 방식(다큐멘터리와 현대미술의 결합)으로 사실성과 진실성을 드러내고 있는 각 장면들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형식미 또한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밤의 정취를 강화하는 원색의 인위적인 (것처럼 보이는) 조명들. 모터보트의 운동성을 강조하는 광각 이미지. 음악이라는 과도한 형식에 따른 편집과 점프컷. 극영화와 미디어 아트의 연출 방식을 떠오르게 만드는 미장센과 몽타주들. 특히, 주인공 다니엘레가 연인과 결별하는 장면은 극영화의 고전적 편집 방식으로 느껴질 정도로 시선과 시점을 사용해 형식적으로 컷을 분할하고 쌓아나간다. 이런 점에서 <아틀란티스>의 영화적 방법론은 논픽션의 전제 안에서 어떠한 형식적 연출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닿을 수 없는 진실'을 향해 서서히 가까워지려는 움직임이었다면, <아틀란티스>는 '그 사실'에 형식을 더해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형식은 오히려 사실성을 강화한다. 픽션이 현실의 조작, 조정, 반복, 설계를 기반으로 형식을 쌓아가고 있다면. 이 영화는 최소한 피사체와 마주하는 순간의 조작, 조정, 반복, 설계를 지워낸다. 그리고 낯설게 하기에 따른 카메라의 시선, 세계의 부분들을 주목하고 관통하는 편집으로 형식을 쌓는다. 이것은 극영화가 카메라라는 형식을 통해 세계를 기계의 눈으로 재창조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아틀란티스>가 하고 있는 것은 '카메라가 현실의 극단(일상에서 잘 보이지 않은 영역)을 담을 수 있는 단계까지 대상과 가까워졌을 때, 그때부터 작가의 형식이 어떻게 사실에 침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다. 그로 인해 '카메라의 눈'(작가의 1인칭 시점)은 '사실을 담는 눈'이자 '형식을 만드는 눈'이 된다.
기억을 붙잡으며 눈에 도달했던 강렬한 이미지들을 돌이켜 보면, 움직임으로써의 예술인 영화만이 담을 수 있다고 느껴지는 '모터보트의 질주'가 계속 떠오른다. 왠지 <아틀란티스>는 때로는 질주하고 때로는 천천히 유영하며 베니스를 떠돌던 모터보트처럼 자신만의 속도로 시네마를 운반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수없이 반복되면서 물을 가르던 그 질주를 <아틀란티스>가 시네마의 전선 앞에서 유지하고 있는 속도라고 할 수는 없을까.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 그 사이를 끊임없이 진동하는 영화. 필자는 이 영화를 '동시대의 논픽션과 픽션의 관념을 두고 가장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 감히 말해보고 싶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아틀란티스
Atlantide
감독
유리 안카라니Yuri Ancarani
출연
다니엘 베리슨Daniele Barison
비앙카 베레니Bianka Berényi
메일라 다발루Maila Dabalà
알베르토 테데스코Alberto Tedesco
야코포 토르첼란Jacopo Torcellan
공개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00분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