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th Venice] '황혼으로의 여정' 의식의 살해
[78th Venice] '황혼으로의 여정' 의식의 살해
  • 이현동
  • 승인 2022.04.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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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무대 앞에서 암전 된 우주를 바라보기"

"사유함이란 언제나 해석함이다. 다시 말해 한 기호를 설명하고 전개하고 해석하고 번역하는 것이다."(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서동욱, 이충민 옮김, 민음사, 1997, p145)

2021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 비경쟁부문으로 첫선을 보였던 <황혼으로의 여정>(2021)은 현대 이탈리아의 역사를 다룬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60년대와 70년대의 역사를 주축으로 이 이야기의 그림자처럼 등장하는 이탈리아 거장 감독 마르코 벨로치오의 작품 4편은, 감독인 아우구스토 콘텐토가 궁극적으로 발견하고자 하는 그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어떤 것'으로 존재한다.

<황혼으로의 여정>의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충돌하며 관객들을 교란시킨다. 이는 국가의 정체성, 영화와 혁명의 역사, 그리고 픽션 이미지들이 담고 있는 이중적인 관계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쉽사리 파악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활공하며 의미를 확장하는 이 여정에서 점차 탈각되어지는 건, 미결정된 이미지의 정체들이다. 이는 양가적인 두 개의 몽타주, 즉 초월적인 이미지로 형성화되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들, 그리고 실제 존재했던 사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매개되는 내용들로부터 이 이미지의 정체는 그 자체로 해석의 가능성을 담보한다.

 

ⓒ Augusto Contento

챕터를 가르는 뮤직비디오의 사운드트랙과 가사들은 이를 강화하고, 시적 메시지처럼 고무되었다가도 불쑥 침투하는 역사의 아카이브들은 이 여정의 종착지를 모호하게 제시하고, 식별하기 힘든 황혼으로 인도한다. 또 미셸 세라, 가드 러너, 자바티니, 게라르도 콜롬보, 로베르토 헤를리츠카, 마르틴 하이데거, 벨로치오 등 감독, 배우, 비평가, 철학자, 기자 등의 수많은 인물의 내레이션 삽입은 이탈리아의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이해를 요구함으로 이 영화는 대중들을 계속해서 짓누른다.

꿈속을 헤매는 듯한 <황혼으로의 여정>은 가족, 가부장제 사회, 역사, 종교, 교육 등의 미로 속을 배회한다. 이 여정이 축조하는 수많은 이미지와 아카이브들은 이탈리아 쇠퇴를 차갑고도 어두운 점선들로 표시한다. 혁명과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이상은 마니교와 천주교와 혼합되어 전체주의적 도그마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이탈리아를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감독은 그 공간을 애니메이션으로 교직하여 드러낸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유령, 금욕, 퇴폐, 황폐한 장소가 혼합된 이미지가 바로 그러하다.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활공하며 의미를 확장하는 <황혼으로의 여정>의 특징 중 하나는, 마르코 벨로치오의 영화적 주제와 특성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벨로치오의 영화에서는 주로 인물들의 관계가 해소되지 못한 채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대표적인 그의 작품 <주머니 속의 주먹>(1965)에서 다루는 가족 살해는 특정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가장 정치적일 수 있는 장소인 가족을 겨냥함과 동시에 차남의 행위를 부정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종결되지 않은 상태로 이야기를 끝이 난다. 이는 이탈리아에 존재하는 물리적이며 정신적인 공간의 상처를 가시화하는 동시에 끝나지 않고 연장되고 있는 상태임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 Augusto Contento

얼굴과 가면, 그 존재의 후면

얼굴은 무엇일까. 철학에서 '얼굴'은 '개인'(person, personne)의 개념인 어원인 πρόσωπον과 persona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어원적으로 '눈앞에 있는 것'을 뜻하며, 고대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페르소나를 '썼다 벗었다 할 수 있는 또는 다른 것으로 바꾸어 쓸 수 있는 가면'처럼 한 사람이 가지는 여러 가지 역할들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러한 얼굴의 겉면과 그 뒤편의 내적인 얼굴들은 <황혼으로의 여정>이 갖고 있는 인간의 초상을 대변한다. 얼굴이 산업화를 상징하는 톱니바퀴에 새겨졌다가 점차 희미해지고 이내 형체를 감추기도 하고,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오마주 하듯 돼지와 동물의 탈을 쓰고 있는 인간 아닌 인간이 세계를 대체하기도 한다.

또 빙하에 갇혀있는 애처로운 목소리의 여자는 검은 형체로 식별할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며, 도움을 청하는 이 여인은 결국 비명을 지르다가 점차 희미해진다. 이 여인의 등장이 가부장적 사회에 희생당했던 여자들의 아카이브들이 등장한 이후 나온 장면이라는 점을 의식한다면, 이 영화는 의연하게 그 형체들의 죽음을 즉물적으로 보도하기도 한다.

 

ⓒ Augusto Contento

인간성의 상실은 획일화된 자본주의, 선입견과 편견 등을 규격화할 때 발생한다. 이러한 은유는 인간의 얼굴을 은폐하고 반복적으로 얼굴을 생산한다. 후반부에서 세 여자의 얼굴이 서로 역할을 바꾸면서 읊조리며 반복되는 대사는 마치 기계처럼 보인다. '의미를 찾는다'는 말속에서 의미는 부재하고 정신없이 분화한다. 결국, 얼굴의 표면은 <황혼으로의 여정>의 가면과 실체, 앞서 언급한 픽션과 실제라는 두 가지의 몽타주와 결합하는 대표적인 예시인 셈이다.

극 속에서 '사실주의'는 '표현주의'의 작품을 제한한다는 말, '거짓'과 '진실'의 문제들과 마주한다는 말, '매체'가 '현실의 이미지'를 통제하는 일이라는 말 등의 진위 여부는 온통 말과 이미지들로도 포착할 수 없는 아포리아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 Augusto Contento

마르코 벨로치오는 16살에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것을 깨닫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애니메이션의 인물로 가시화되어 등장하는 그는 그가 운행하던 범고래 안의 관객들과 영화관을 발견하고, 그 여정에서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혼미한 채로 그곳을 재빨리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그에게 있어 '영화는 더 진짜 같은 것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점철된다.

반면에 <황혼으로의 여정>의 이질적인 영역, 다시 말해 정념, 감각 등으로 기호화된 이미지, 픽션을 매개로 한 영화, 애니메이션이 반드시 아카이브들을 근거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까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그전에 이 영화가 (선악) 구조를 구별하거나 정의하는 영화, 정치적이거나 사회의 현상을 지시하는 환유, 상징적 영화가 아님을 명시해둔다면, 필자가 이 영화를 환각의 영화로 규정할 수 있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이런 이미지와 이탈리아의 역사와의 거리가 우리와 너무나도 멀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에 '되는 동시에 잃는 것'이란 뮤직비디오의 가사는 이 이중성이 생성과 상실을 전제함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어디로부터 구획되었는지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얼굴'모양을 하고 있는 행성을 무한히 회전하는 우주복을 입고 있는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얼굴, 수레바퀴, 길들이 지시하는 원형적인 세계를 반복적으로 응시할 뿐이다. 이러한 이질적인 구성요소 내지는 실험요소는 전통적인 영화 문법 전체를 갱신함으로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개방하고 기존의 영화문법을 해체한다.

결론적으로 <황혼으로의 여정>은 서두에 언급했던 들뢰즈의 말처럼 무던히 사유함을 강요하고 요구한다. 무궁한 해석의 가능성이, 기호들의 심연이, 과거의 역사들이 관계 맺는 무수한 광경들이, 황혼의 빛이 점멸할 때마다 시각을 그리고 사유를 마비시키는 이 영화는 마지막 가사의 일부분처럼 우린 그렇게 '얼굴을 잃고'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로 영화관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Augusto Contento

황혼으로의 여정
Journey into the Twilight
감독
아우구스토 콘텐토
Augusto Contento

 

출연
마르코 벨로치오
Marco Bellocchio
파올라 피타고라Paola Pitagora
로베르토 헬리츠카Roberto Herlitzka

 

공개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42분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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