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흠, 잠시만, 지금 시간이 벌써 11시……"
몇 년 전 해체한 한 힙합 레이블 노래의 훅(Hook)을 떠올릴법한(혹시 "11분!"이라고 외치신 분이 있으실까요) 이 글의 제목과 첫 문장은, 다름 아닌 이 기사가 발행된 시간입니다. 혹시 힙합에 관한 글인 줄 아셨다면 안타깝게도 '영화'에 관한 글입니다. 정확히는 영화전문매체 코아르CoAR 편집자의 지극히 사적인 글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편집자 'O'입니다"
초면에 실례지만 여러분께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도대체 영화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영화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혹시 이 질문이 불편하셨을까요. 아니면 너무 중2병스러웠을까요. 그러나 영화를 쓰는 제게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영화가 무엇인지 알아야, 이해를 해야 비로소 글로 쓸 수 있기 때문이죠. 이따금 혼자서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할 때면, 저와 같이 '이 질문'에 고민하는 이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영화는 무엇인가"는 바보 같은 질문이라 말한 프랑스 영화감독 '장 콕토'는 이런 저를 한심하게 바라볼지도 모르겠군요.
저보다 앞서 영화가 무엇인지 고민한 선배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시네마』라는 혁신적이고 문제적인 저술을 쓴 철학자 질 들뢰즈는 영화란 "움직임-지속의 덩어리"라며, 재밌게도 "정오와 자정 사이에 언제나 시간이 있다 할지라도, 더 이상 '영화가 무엇인가'하고 자문해서는 안 되며,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자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 말은, 그의 관심이 영화가 아닌 시간, 운동, 진리 등과 같이 자신이 탐구한 개념에 있음을 상기시킵니다.(분명한 건, 그는 영화사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개념이라 말한 사람입니다)
『카예 뒤 시네마』의 편집장을 지낸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는 영화를 '지도에 추가된 나라'로 정의하며, "시네마를 지도에 추가된 또 다른 나라와 동일시한 인물은 다름 아닌 고다르이다. 나 또한 이러한 사고를 무척 좋아했으며 반복하여 되풀이했다. 시네마는 나의 지리부도에 나오지 않는 나라이다. 지금 사람들은 시네마가 한 제국인지, 한 나라인지 아니면 한 지방에 관계되는 것인지 자문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프랑스 추리소설 장르인 '네오-폴라르néo-polar'의 선구자 장파트리크 망셰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영화는 예술과 동시에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서 라디오 이전과 텔레비전 출현 이전에 20세기 전반의 중요한 문화 혁신이었다"라며 "영화는 단순히 관념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관념(미)이다" 여기에 콕토는 그의 작품인 <오르페의 유언>(1960)에서 "영화는 사고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힘이다. 영화는 죽은 행위를 부활시킨다"라고 말합니다.
유운성 평론가는 자신의 저서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보스토크 프레스, 2021)에서 '영화는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찰을 보여주는데, 그는 "(...) 오늘날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시네마란 사진 축음기 시네마토그래프 텔레비전 비디오 컴퓨터 VR 등의 장치들을 통해 역사적으로 차츰차츰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이와 더불어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고 또 새로운 장치를 산출하기도 하는 변증법적 대상이라 보는 유령주의적 입장이다."이라고 설명합니다.
위의 분들에 비하면 제 대답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촬영' '이미지' '몽타주', 영화는 오직 이것들의 예술이다"(여기서 '오직'이라는 부사가 인상을 찌푸릴 만한 단어라 생각하는데, 이 같은 생각에 대한 이유는 이후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라는 것은 존재 방식‧언어‧매체로서 미학적‧철학적‧언어학적 고찰이 문제시되나 당연하게도 분석될 수 있고 해석될 수 있는 예술입니다. 이 존재에 대한 물음은 간단히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입니다.
문득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건 '영화가 무엇인지' 부단히 고민하지 않은 지난날 '이건 진정 시네마다!' '이 작품은 시네마틱한데?' '이 작가는 시네마에 가장 가까운 작가야'라고 떠들고 다니거나, SNS에 어줍잖게 올린 기억들 때문입니다. 더욱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건 제가 뱉은 '시네마'라는 의미가 결국에는 바쟁, 에이젠슈타인, 고다르, 다네, 로메르 혹은 장 두셰, 자크 오몽, 미셸 마리, 장 루이 뢰트라, 스탠리 카벨, 크리스티앙 메츠, 하스미 시게히코, 정성일 등등 익히 알려진 이론가나 학자, 평론가의 말을 빌리거나 베끼는 식이라는 사실입니다.
제 살을 깎는 말이겠지만, 여러분은 제게 이런 비판을 할 수 있겠군요. "당신은 영화를 쓸(혹은 말할) 자격이 있는가" 이 질문의 대답은 저 대신에 <타짜>(2006)의 고니씨가 대신 하겠습니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잠깐, 마지막 한마디는 수정해야겠네요. "눈(응시)은 손(글쓰기)보다 빠르니까"라고. 허무하게 들리시겠지만 자격, 즉 역량을 묻는 말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결국 제 눈이 계속해서, 지금도 여전히 멈추지 않고 '영화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해서』(문학사상, 2009)라는 제목의 단편이 있습니다. 주인공 '나'는 하라주쿠의 뒷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한 여성을 두고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는 고민합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면 좋을지. 저 역시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영화가 제게 100퍼센트'라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 여러분께 말해야 좋을까요. 지금과 같이 꾸준히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일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생각이 듭니다.
이제 고작 3년을 우연히 넘긴 '코아르CoAR'는 '영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보아야 할지' 등의 질문 위에 만들어진 매체입니다. 보다 더 저널적인 평론에 집중하여 기사를 발행하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물론, 차마 다 좋은 글이라고 말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글은 영화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만이 쓰였거나, 또 어떤 글은 개인의 자기만족을 위한 표현내지는 자신의 논지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화를 썼던지, 또 다른 어떤 글은 지나칠 정도로 철학적인 사유가 가득 차 있거나 단순히 '좋다' '나쁘다' 정도밖에 글을 채우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코아르CoAR의 글은 작품을 정의하고 그 가치를 분석하며 판단하는 작업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한 개인이 가진 고유한 변별력을 통해서 완성된 글은, 상투성이 짙거나 오독의 소지가 있을 수 있고 불명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희가 하는 일이라는 것은 예술로서의 영화의 지위를 위해 헌신한다기보다,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마주한 영화를 자신들의 '언어'를 통해서 '영화가 무엇인지'를 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답을 내리는 과정에서 저는 "영화 분석의 목적은 영화를 이해함으로써 그 작품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이다"라는 자크 오몽의 말과 "영화평론 역시 영화의 일부분이다. 영화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다양한 반응 속에서 존재한다. (...) 정확한 사실 자체를 기술하는 것보다 한 편의 영화가 꿈같이 흘러갔을 때 내 안에 무엇이 남는지, 기억된 것들이 과연 내안의 무엇이 남는지가 더 중요했다"라는 이상용 영화평론가의 말을 계속해서 생각하곤 합니다.
결국, '영화를 쓴다는 것'은 '왜 이 영화가 좋은지'를 묻고, 한 개인의 세계와 영화의 세계의 충돌 속에서 발생된 울림과 떨림을 적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매해 쏟아지는 영화들 속에서 '탐색'하며, 좋은 영화를 '발견'하는 행위와 영화를 쓰는 실천을 부단히 더 밀고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 매일은 아닐지라도, 앞으로 오전 11시 코아르CoAR에서 발행되는 영화글을 통해서 소중한 독자이신 여러분께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편집자O'인 저 또한 사적인 이야기를 들고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귀한 시간을 내어 조금의 광고 사이에서 코아르CoAR의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 마음 깊이 전합니다)
※ 참고서적: 『영화를 생각하다』(동문선, 2005),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홍시, 2008) 『들뢰즈: 철학과 영화』(열화당, 2019)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