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러렐 마더스' 역사와 허깅(Hugging)하는 모성애
'페러렐 마더스' 역사와 허깅(Hugging)하는 모성애
  • 이현동
  • 승인 2022.04.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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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과거의 어머니와 현재의 어머니의 의미를 발굴하면서"
Rene Magritte, '데칼코마니'(Decalcomanie), 캔버스에 유채, 81 x 100 cm  ⓒ ADAGP Banque d'Image
Rene Magritte, '데칼코마니'(Decalcomanie), 캔버스에 유채, 81 x 100 cm  ⓒ ADAGP Banque d'Image

르네 마그리트의 《데칼코마니》(1966)에서 대칭으로 위치한 두 남자의 형태는 시각적으로 동일하지만, 내포하는 내용의 차이는 극명하다. 우리는 그 속에서 인간의 실존과 그 심연을 넘어 무엇인가 보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지각 방식을 재정립하고 어떠한 사유의 세계로 나아가는 건, 각자가 가진 가능성의 부피와도 밀접한 것일 테다.

이를 관측할 수 있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그녀에게>(2002) 속 기약을 알 수 없는 식물인간 생활을 전전긍긍하는 여자를 돌보는 두 명의 남자와 <패러렐 마더스> 속 아이의 존재를 공유하는 두 여성은, 서사에 있어서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형태들이라 할 수 있다. 그 구조 속에서 새로운 연대를 발견하는 이 영화들의 핵심에는 고통이 잔존하지만, 희망이라는 방향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항해한다. 이내 도달하는 건 가족이란 목적지이자 늘 갈망해왔던 정신적 고향이자 영화적 항로로 귀결되는 '마드리드'이다. 그의 영화에서 분명 미장센은 유려하고 독특한 성질의 것인 반면에 서사는 일관적이고 단순하다.

양가적인 세계가 융합될 수 있는 것인지를 의문 삼아 가족공동체를 범위를 확장하는 이 병렬적인 제목의 영화, <패러렐 마더스>는 역사와 직접적으로 합을 이룬다. 1939년 스페인 내전 후, 프랑코 독재 정권 시대를 배경으로 깊게 수몰되어 있었던 죽음의 흔적을 '침묵'하지 않으려는 주제의식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들 중에서도 다분히 회고적인 성향의 영화라 여겨진다.

 

영화 <그녀에게>(2002) 속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와 베니뇨(하비에르 카마라) ⓒ 판씨네마
ⓒ 찬란, 스튜디오디에이치엘

여성을 화자로 세계를 세공하고 성찰해왔던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가장 고귀한 여성이 어머니임을 드러냈던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에 이어 '어머니'를 제목으로 배치한 것은 어떤 의도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패러렐 마더스>에서 '자녀에 향한 어머니의 모성애에 관한 이야기'는―최근의 <줄리에타>(2016)가 그랬던 것처럼―주제로 발화되지 않고 자녀가 기억하는 어머니를 회고함으로 주축이 되는, 즉 이번 작품은 역사와 가족의 의미를 발굴하는 영화이다. 이 두 종류의 의미에서 주목해 볼 수 있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연대의 오브제로 사용된 '나이' 또는 '세대'가 주제를 강화한다는 점이다.

 

과거와 현재를 부검하기

<패러렐 마더스>는 과거와 현재를 부검하는 영화다. 최초 법의학 인류학자인 아르투로(이스라엘 엘레할데)를 촬영하는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의 카메라는 현재를 응시하는 한편, 증조할아버지의 유해가 묻어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암울한 과거의 장소를 조명하는 시선으로 자리한다. 이러한 요소는 세대에 응고되어 있는 불가항력적인 연대로 침입한다. 20살가량 차이가 나는 야니스와 아나(밀레나 스밋)의 첫 만남 장소가 생명을 창출하는 산부인과라는 것은 묘연하게도 그들이 공유하게 될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암시다. 또한 출산장면에서 등장하는 교차편집은 과거와 현재라는 세대를 오묘하게 드러내는 알레고리로 보이기도 한다. 부모가 된 그들의 긴밀한 연대가 손상을 입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아이의 존재가 부검될 때이다. 이 시발점이 되는 건 아르투로가 자신의 유전자로 잉태된 야니스의 아이인 세실리아의 외모를 관찰할 때이다.

 

ⓒ 찬란, 스튜디오디에이치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이 세실리아의 친모가 아님을 확인할 때, 급속도로 영화의 서사는 혈육과 밀착되어 있는 관습적인 가족의 형태에서 비롯된 담론을 대중에게 요청한다. 야니스는 아나가 일하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가정부를 권유하면서 이 이야기는 급속도로 연대를 구축하지만, 그 과정에서 세실리아가 아나의 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후에 친밀했던 관계는 일시에 냉각된다. 어쩌면 그것은 야니스에겐 예측되었던 죽음이고, 아나에겐 아이의 새로운 부활의 모양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제목이 함의하듯 'Parallel'은 한쪽 선이 탈락하지 않고 평행한 상태를 이룬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는 어느 지점에서 탈각되지 않는 부모라는 옷을 동시에 착용함으로 연대한다. 이는 유해를 발굴하게 되는 종반부와 엔딩 장면에서 부각되는데, 과거의 유골이 누워있던 자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등장인물로 변화하는 광경에서 역사는 비로써 과거와 현재로 통섭하는 자리에 영화가 있음을 지시한다.

아울러 두 여성에 관한 연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는 건 그들의 엄마에 대한 과거의 묘사들이다. 극 중에 히피 세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인 재니스 조플린의 대표적인 곡인 'Summertime'이 흘러나올 때, 야니스는 아나에게 히피였던 자신의 어머니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 시절의 사진을 보여준다. 짙게 깔려 있는 히피에 대한 진술은 영화의 성질을 일순간에 드러낸다. 물질문명에 대한 부정과 자유의 평화를 추구하는 히피들의 경향성은 시대성을 함의한다. 남성 중심의 문화를 저항하고, 이성이 아닌 동성적인 관계로의 성 역할의 변화 등은 과거와 동일하게 현재에도 여전히 산재해있는 코드들이다. 히피의 성향을 가진 건 아나의 엄마인 테레사(아이타나 산체스히혼)도 마찬가지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에 맞는 역할극을 해야 했던 아나의 엄마 또한 자유를 박탈당해야 했다는 점에서 그 동기는 유사하다.

그녀가 가정이 아닌 자신의 오랜 염원인 배우를 할 수 있게 되는 건 자신의 딸인 아나가 엄마가 되는 순간이라는 점은 유의미하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오랜 염원인 연극 무대의 꿈을 이루는 그 과정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가 대변하는 고통, 그리고 자기 성찰의 메시지는 이를 극복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결국 엄마들은 엄마가 될 자녀들에게 과거를 물려주고 현재를 사는 것이다. 세실리아가 아나의 자녀로 확인된 후 엄마가 태어난 장소에서 이뤄지는 아르투로와 성관계를 통해 다시 한번 잉태되는 야니스의 자녀는 과거가 선사하는 희망인 셈이다.

 

ⓒ 찬란, 스튜디오디에이치엘

한편으로 <패러렐 마더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가 이전에 구축한 가족이란 담론을 서구권의 형태로 재구성하는 영화로 관측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가 혈연관계보다 시간을 통해 고무되었던 동양적인 정(情)이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게 하였던 것과는 다르게 서구에서의 가족은 혈육이라는 개념 아래 관습을 해체하고 공동체가족이라는 또 다른 시스템을 창출하며 연대를 유지한다. 물론 두 사례는 모순적인 관계가 아닐뿐더러 굵직한 가족영화들을 제작했던 두 감독의 삶의 토양에서 구성된 가족의 표상임을 직시하게 된다.

그러나 필자에게 '마더스'라는 제목을 위시하여 역사라는 이 거대한 주제와 온전하게 결합했느냐를 묻는다면, 그것을 긍정적으로만 답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껏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가 사회현상의 그늘에 옅게 마모되어 있는 미묘한 관계들에서 권태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실체가 인간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는지를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드러냈다면, 아쉽게도 <패러렐 마더스>는 이러한 점을 의식하면서도 역사라는 거대한 주제를 담지만 이것이 다소 산만한 경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프닝이나 엔딩에서 누군가는 역사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그의 영화를 한 걸음 더 성장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동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 다소 과한 면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과격하다는 말로도 환원할 수 있을 정도로. 물론, 이 영화는 역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라는 점에서 반문할 여지가 없이 훌륭한 작품임이 분명하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찬란, 스튜디오디에이치엘

패러렐 마더스
Madres paralelas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Pedro Almodovar

 

출연
페넬로페 크루즈
Penelope Cruz
밀레나 스미트Milena Smit
로시 드 팔마Rossy de Palma
아이타나 산체즈-기요Aitana Sanchez-Gijon
다니엘라 산티아고Daniela Santiago
줄리에타 세라노Julieta Serrano
이스라엘 엘레할데Israel Elejalde
아델파 칼보Adelfa Calvo
카르멘 플로레스Carmen Flores
아란트사 아랑구렌Arantxa Aranguren

 

수입 찬란
배급 스튜디오디에이치엘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23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3.31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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