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뭔가를 좋아하는 일'의 힘과 소중함
[interview] '뭔가를 좋아하는 일'의 힘과 소중함
  • 홍상현
  • 승인 2022.04.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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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필름 페스티벌 2022 <썸머 필름을 타고!> 마쓰모토 소오시 감독
마쓰모토 소오시 감독의 「우리들의 여름」은 코미디, 액션, 로맨스, 서스펜스, 심지어 SF까지를 망라하는 ‘크로스오버 청춘영화’다. (C)2020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마쓰모토 소오시 감독의 「썸머 필름을 타고!」는 코미디, 액션, 로맨스, 서스펜스, 심지어 SF까지를 망라하는 '크로스오버 청춘영화'다. (C)2021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입구 어디선가 피에로 복장을 한 샌드위치맨이 트럼펫이라도 불고 있을 것 같은 낡은 극장의 객석에 앉자마자 영화가 시작된다. 심사를 보러온 게 아니다. 시니어프로듀서로 따라가기 바빴던 영화제가 어느새 폐막을 하루 앞둔 시점에 관객으로서 작품을 즐기러 왔을 뿐.

그렇지만 도화지 위에 크레파스로 그린 타이틀부터 거슬리는 작품의 퀄리티가 덜미를 잡는다. 재연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첫 장면의 연기까진 그렇다 치자 답답한 사운드에 엉성한 편집까지, 애써 비평적 시선을 억눌러보지만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기 쉽지 않다.

'아니, 이런 걸 도대체 누가 만든 거야?'

반전은 프로그램 북에 적힌 감독의 이름을 재차 확인하는 순간 일어난다. '만듦새'의 문제가 아닌 '만들기'의 본령에 대한 질문을 담은 작품이었다.

오키타 슈이치. 장편상업영화 데뷔작 <남극의 쉐프>(2009)부터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2020)까지 국내개봉작만 모두 합쳐 여섯 편, 그중 대부분이 부산, 부천 등 굵직굵직한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받은 커리어의 감독. "배우 동료들과 놀이하듯 찍은 자주영화"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 결국 사람과 사람을 묶는 연결고리이고, 그런 까닭에 당연히 즐기며 만들 수 있는 게 영화 아니던가.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불타는 애정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준비했다는 마쓰모토 감독. (C)2020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불타는 애정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준비했다는 마쓰모토 소오시 감독. (C)2021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극장 문을 나서며 부지불식간에 영화 '만들기'에 대한 고정, 혹은 강박관념이 튀어나온 계기를 되짚어보니 역시 개인적인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홈비디오 한 번 제대로 찍어본 경험 없이, 무슨 암기과목 시험 준비하듯 방안에 틀어박혀 하루 네 편, 많게는 다섯 편씩 영화를 몰아보기만 했던 필자는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해 "남의 영화 욕하기는 쉽고, 칭찬하기는 어렵고, 내가 만들기는 죽도록 어렵다"는 학과 내 구전(oral tradition) 격언을 통감하는 시간을 거치며 '위대한 창작자가 되기는 글렀으니 위대한 관객이라도 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후 한참의 세월이 흐른 오늘. CF, 뮤직비디오, TV드라마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약하다 도쿄국제영화제를 거쳐 온라인 JFF(재팬 필름 페스티벌)2022를 통해 한국관객을 만나게 된 마쓰모토 소오시 감독의 장편상업영화 데뷔작 <썸머 필름을 타고!>(2021)는 필자의 이런 트라우마를 치유해주었다. 코미디, 액션, 로맨스, 서스펜스, 심지어 SF까지를 망라한 크로스오버 청춘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고교생 맨발(이토 마리카 분)은 무협영화 마니아. 교내축제 프로그램 경쟁프레젠테이션에서 참패했지만 어떻게든 무협영화 기획을 현실화시켜보려 고군분투중이다. 주인공은 영화관에서 만난 '훈남' 린타로(가네코 다이치 분), 무술감독은 검도 고수이나 실은 '감성폭발' 순정만화 마니아인 블루 하와이(이노리 키라라 분), 엄연히 동급생인데도 액면가는 영락없는 성인연기자인 대디보이(이타바시 슌야 분)까지. 어렵사리 팀은 꾸렸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은 어림도 없는 소리. 영 맘에 안 드는 연애영화 제작진과 사방에서 마주치는 것도 모자라 해프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심지어 미래에서 왔다는 암시를 주는 린타로는 무슨 엄청난 비밀이라도 알고 있는 듯 안절부절.

맨발은 여름방학동안 무협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까.

 

고교생 하다시(이토 마리카 분)는 무협영화 마니아. 교내축제 프로그램 경쟁프레젠테이션에서 참패했지만 어떻게든 무협영화 기획을 현실화시켜보려 고군분투한다. (C)2020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고교생 맨발(이토 마리카 분)는 무협영화 마니아. 교내축제 프로그램 경쟁프레젠테이션에서 참패했지만 어떻게든 무협영화 기획을 현실화시켜보려 고군분투한다. (C)2021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홍상현

일단,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해 볼까요?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서 뵙는 분들께 늘 드리는 질문인데요. 한국영화, 즐겨 보시나요? 좋아하시는 작품이나 감독, 혹은 배우가 있으시면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쓰모토 소오시

한국영화요. 너무 좋아하죠!

하나하나 꼽아 보자면 너무 많아서 고민이 될 정도인데요. 제작연도까지 다 외우지는 못하니 생각나는 순서대로 말씀드려보면, <고양이를 부탁해>(2001), <신세계>(2012), <오아시스>(2002), <버닝>(2018), <차이나타운>(2014), <마더>(2009), <괴물>(2006), <벌새>(2018), <써니>(2011), <아가씨>(2016), <공동경비구역 JSA>(2000), <범죄도시>(2017)... 와... 이 작품들 말고도 엄청 많은데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 얘기만 끝없이 하게 될 거 같아서요. (웃음 ※ 그는 이 영화들의 현지공개 타이틀 뿐만 아니라 또박또박한 한국어 발음으로 한국어 제목까지 함께 언급해주었다)

감독은, '좋아한다'기보다 '경애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거 같네요. 이창동, 봉준호, 김보라 감독을 꼽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연기자도 진짜 많은데요. 배두나, 황정민, 송강호, 마동석, 그리고 전미도 배우의 작품을 꼼꼼하게 챙겨 보고 있어요.

아, 그리고 허락하신다면 영화 말고 드라마와 관련해서 이 지면을 빌어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심호흡을 하고)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3 제작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홍상현

정말 엄청난 답변이었습니다! (웃음) 감사드리고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죠. 이번 JFF2022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을 연출하셨습니다. 그런데 도쿄국제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한 이 작품이 무려 장편상업영화 데뷔작이라는 사실에 정말 놀랐어요. 앞으로 자주 뵙게 될 거란 예감이 드는데, 한국 관객들을 위해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려도 될는지요.

마쓰모토 소오시

한국 관객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마쓰모토 소오시라고 합니다.

1988년생이고요. 이번에 영화 데뷔작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만, 평소에는 CF, 뮤직비디오, TV 드라마 등을 만들고 있어요. 그밖에 취미 레벨이지만 친구들과 랩 음악도 하고 있고요. 영화, 음악, 만화, 소설, 그리고 코미디 등 장르를 넘나드는 모든 대중문화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우연히 극장에서 하다시와 마주치면서 무협영화의 주연배우로 캐스팅된 린타로. 두근두근 러브라인부터 대련장면까지 하다시와 놀라운 캐미스트리를 보여준다.  (C)2020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우연히 극장에서 맨발과 마주치면서 무협영화의 주연배우로 캐스팅된 린타로. 두근두근 러브라인부터 대련장면까지 맨발과 놀라운 캐미스트리를 보여준다. (C)2021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홍상현

처음 <썸머 필름을 타고!>의 시놉시스를 읽고 그냥 "영화를 사랑하는 학생들의 '열혈제작기'" 정도의 내용일 거라 생각했는데요. 막상 접해보니 코미디, 액션, 로맨스, 서스펜스, 심지어 SF까지를 망라한 '크로스오버 장르영화'라서 놀랐습니다.

마쓰모토 소오시

<썸머 필름을 타고!>는 극작가인 제 친구 미우라 나오유키와 기획 단계부터 함께한 작품입니다. 그간 미우라와 드라마나 뮤직비디오 작업 등을 함께해왔는데요. 첫 장편 상업영화로 우리가 제일 자신 있는 장르인 청춘영화를 만들어보기로 뜻을 모았지요. 다만,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라도 연애가 아닌, 뭔가 뜨겁고 신선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일본에는 고등학생들끼리의 연애를 다루는 영화가 지나치게 많거든요.

그래서 잡은 테마가 "창작에 열정을 쏟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창작물을 '영화'로 하기까지는 그나마 수월했는데, 그 영화를 어떤 장르로 하느냐는 데서 고민되는 지점이 생기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썸머 필름을 타고!>는 무협영화를 만드는 친구들에 관한 스토리가 되었지만요.

그렇게 기획 작업을 진행하던 가운데 미우라가 "미래에서 온 인물과 함께 영화를 찍는다는 스토리가 어떻겠느냐"라고 아이디어를 내주어서 방향성이 완전히 굳어졌습니다. 일단 미래에서 과거(작품의 중심인물들에게 있어서는 현재)를 생각하는 인물과 좀 더 오랜 과거(무협영화)를 생각하는 주인공이라는 설정이 나름 독특하기 때문에 라스트에서 내용을 미래로 급격하게 전개하는 반전까지 더해지면 정말 유쾌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지점부터 다시 저와 미우라 모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면서 작품이 더 풍성해졌고요.

 

홍상현

<썸머 필름을 타고!>의 맨발이야말로 올해 나온 일본영화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 아닐까 합니다. 특히 무협영화의 팬인데다 액션연기가 뛰어나다는 게 매력적이었는데요, 혹시 감독의 자기반영적인 캐릭터인가요?

마쓰모토 소오시

저도 맨발처럼 좋아하는 것에 열광하고, 그로 인해 치유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십대시절에 만난 영화나 만화, 음악이 그랬죠. 고등학교 생활이 별로 즐겁지 않았는데 대중문화에 의지하면서 견딜 수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당시의 저는 맨발 같은 실천력이 없었던 까닭에 친구들을 모아 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까진 못했습니다. 성격 면에서 전혀 달랐던 거죠. (웃음)

 

어렵사리 팀은 꾸렸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은 어림도 없는 소리. 영 맘에 안 드는 연애영화 제작진과 사방에서 마주치는 것도 모자라 해프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들은 여름방학동안 무협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까. (C)2020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어렵사리 팀은 꾸렸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은 어림도 없는 소리. 영 맘에 안 드는 연애영화 제작진과 사방에서 마주치는 것도 모자라 해프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들은 여름방학동안 무협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까. (C)2021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홍상현

그 밖에도 <썸머 필름을 타고!>를 보면서 감독의 희극적 감각에 몇 번이나 감탄했는데요. 혹시 코미디 연출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마쓰모토 소오시

어휴, 황송한 말씀이십니다!

희극 연출에 대해서는 아직도 공부하는 중입니다만, 일부러 질문을 해주셨으니 설명을 드려 보자면요. 저는 코믹한 장면을 촬영할 때 연기자에게 기묘한 동작 등,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연기를 주문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인간의 행동에 의한 사랑스러움과 그로 인해 비롯되는 웃음을 사랑하니까요.

 

홍상현

<썸머 필름을 타고!>가 특히 감동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극 중에서 다름 아닌 '영화'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잇는 매개체로써의 역할을 한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마쓰모토 소오시

저는 영화가 과거와 미래를 잇는 타임머신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영화는 영상, 사운드와 함께 당대의 공기마저도 보존해 미래세대에게 전해주죠. 일본어 원제도 <썸머 필름을 타고>인데, 일본에서 즐겨 쓰는 "타임머신을 타고"라는 표현을 따서 지은 거랍니다.

 

엄연한 동급생인데도 액면가는 영락없는 성인연기자인 대디보이 등, 정겹고 유쾌한 캐릭터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우리들의 여름」이 가진 커다란 매력 포인트다. (C)2020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엄연한 동급생인데도 액면가는 영락없는 성인연기자인 대디보이 등, 정겹고 유쾌한 캐릭터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썸머 필름을 타고!」가 가진 커다란 매력 포인트다. (C)2021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홍상현

초반부를 보면서 무협영화를 만드는 맨발의 팀과 연애영화를 만드는 다른 팀이 갈등구조가 <썸머 필름을 타고!>의 중심내용일 거라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더군요. 시간이 갈수록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모든 등장인물이 교감하는 따듯한 전개로 흘러가서 좋았어요.

마쓰모토 소오시

말씀하신 대로, 초반부에는 특정 장르와 캐릭터의 차이에 따른 전통적인 대립구도로 스토리를 전개한 게 맞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진행됨에 따라 주인공이 여러 가지 경험을 거듭한 결과, 시야가 넓어지고 상대방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어지면서 끝내 편견을 버리게 되죠. 주인공의 성장을 보여주는 대목인데요. 저는 이 영화를 통해 '대립'이 아닌 '연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성장과 연대야말로 청춘을 그려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거든요.

 

홍상현

<썸머 필름을 타고!>의 캐스트를 보면, 누구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인물이 없습니다. 이런 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이 부러울 정도였는데요.

더 놀라운 건 촬영이 코로나 19가 한창 확산일로에 있던 당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은데 혹시 한 가지만 소개해주실 수 없을까요.

마쓰모토 소오시

<썸머 필름을 타고!>는 2020년 3월, 코로나 19가 만연하기 시작했을 무렵 크랭크인했습니다. 촬영 일정을 진행하는 동안 상황이 계속 악화되었죠. 일단 시나리오 내용대로 스케줄을 진행했는데 결국에는 촬영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어요. 촬영 중단이 결정되어 로케지에서 도쿄로 복귀하던 날 찍은 게 대칭 구도로 전개되는 극 중 무협영화팀과 연애영화팀의 편집 장면입니다.

언제 촬영이 재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영화가 완성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이게 마지막 촬영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캐스트들까지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내면서 디테일을 짜 나가는 아주 즐거운 촬영이 되었어요. 실제로 작품을 보시면 당시의 아이디어가 전부 녹아있습니다. 촬영이 중단되는 날 제 스스로 볼 때도 가장 만족스러운 장편이 탄생한 거죠.

바로 그날을 기점으로 <썸머 필름을 타고!> 제작팀은 3개월의 중단 기간에 돌입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전국의 영화관이 폐쇄되는 사태도 일어났죠. 영화를 보시면 미래사회에서는 영화가 사라지고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설마 그게 현실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영화 속 상황이 현실과 너무나 기묘하게 겹쳐지니까 저로서도 결말부의 내용을 바꿔야 되나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결말부의 내용을 바꾸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작품의 시대성이 더욱 강화되는 결과를 거둘 수 있었고요.

 

“저도 하다시처럼 좋아하는 것에 열광하고, 그로 인해 치유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십대시절에 만난 영화나 만화, 음악이 그랬죠. 고등학교 생활이 별로 즐겁지 않았는데 대중문화에 의지하면서 견딜 수 있었거든요.” 마쓰모토 소오시 감독의 말이다. (C)2020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저도 맨발처럼 좋아하는 것에 열광하고, 그로 인해 치유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십대시절에 만난 영화나 만화, 음악이 그랬죠. 고등학교 생활이 별로 즐겁지 않았는데 대중문화에 의지하면서 견딜 수 있었거든요." 마쓰모토 소오시 감독의 말이다. (C)2021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홍상현

<썸머 필름을 타고!>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작품을 이토 마리카 배우의 대표작으로 꼽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은 캐스팅의 계기, 아울러, 주인공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이토 배우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마쓰모토 소오시

이토 배우는 원래 '노기자카46'이라는 일본의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였습니다. 그 무렵부터 이미 다른 멤버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른바 '이단아' 같은 존재였죠. 그밖에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역시 결정적인 캐스팅 계기는 솔로로 발표한 <시작일까>(제목을 클릭하면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 주)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였어요. 영상에서 보이는 부드러운 몸의 움직임과 독특한 목소리에 매료되었습니다.

또, 본인의 개인전을 열 정도의 예술적 재능이라든가 높은 창작욕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하다시 역으로 캐스팅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어요.

그 밖에 '비트판'으로 분한 가와이 유미 배우나 '블루 하와이'로 분한 이노리 키라라 배우가 학창시절 스스로 영상제작이나 댄스 교습 영상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그들을 <썸머 필름을 타고!>에 캐스팅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요. 제가 캐스팅 과정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니 창작의 기쁨을 나눌 수 있을만한 3인조의 분위기를 풍겨낼 수 있을지 여부였거든요.

 

홍상현

맨발의 캐릭터 만들기야 말로 흥미진진했을 것 같은데요.

마쓰모토 소오시

<썸머 필름을 타고!>에서 영화에 대한 맨발의 사랑은 주변 친구들을 영화제작팀의 일원으로 만들어버리고, 린타로 또한 이 일이 계기가 되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오게 됩니다. 이런 내용 속에서 등장인물들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감정까지 이입시켜서 마지막 장면까지 끌고 가려면, 무엇보다 맨발의 '좋아한다'는 마음에 거짓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이토 배우를 캐스팅하자마자 이 부분과 관련한 설명을 한 후에 극 중의 맨발이 좋아하는 무협영화의 명작을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이토 배우도 재차 시나리오를 정독하더니 첫 촬영 전까지 온갖 궁리와 연습을 거듭해서 캐릭터를 만들어 왔지요. 예컨대 구부정한 자세로 걷는다든가 다리를 벌리고 앉는 등, 하다시의 사랑스러우면서도 섬세한 개성은 대부분 이토 배우의 당시 제안을 반영한 결과였답니다.

 

이토 마리카 배우는 원래 인기 아이돌그룹 출신. 하지만 「우리들의 여름」에서는 기발하면서도 유쾌한 무협영화 마니아 ‘하다시’로 분해 온몸을 던지는 액션 신까지 멋지게 연기해냈다. (C)2020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이토 마리카 배우는 원래 인기 아이돌그룹 출신. 하지만 「썸머 필름을 타고!」에서는 기발하면서도 유쾌한 무협영화 마니아 '맨발'로 분해 온몸을 던지는 액션 신까지 멋지게 연기해냈다. (C)2021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홍상현

가네코 다이치 배우가 분한 미래에서 온 사나이, 린타로도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는데요.

마쓰모토 소오시

린타로는 기본적으로 신비한 존재이지만 감정을 폭발시키는 순간도 있어 소화하기가 무척 쉽지 않은 캐릭터였어요. 게다가 균형상 맨발이 '공격 포지션'의 캐릭터라 린타로는 '수비 포지션'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서도 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야 했거든요. 하지만 가네코 배우는 이 균형을 훌륭하게 유지해주었습니다. 특히 라스트의 대련 장면에서는 에너제틱(energetic)하게 돌진해 오는 맨발을 정면에서 받아들이는 멋진 연기를 보여줬고요.

 

홍상현

웃고 즐길만한 희극적 요소들 외에 두 주인공의 러브라인이 극적 재미를 더해주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썸머 필름을 타고!>의 백미는 결말부에 두 사람이 학교 축제에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무술 실력을 겨룬다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클라이맥스의 설정 아니었나 싶어요.

마쓰모토 소오시

새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썸머 필름을 타고!>는 라스트 신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거든요. 관객의 상상력을 믿고 결말부에 이야기를 좀 비약시켜 봤어요. 관객 모두를 감동시킬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니, 실은 비판도 꽤 있었죠. (웃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평생 잊지 못할 영화체험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촬영해 임했습니다. 저 역시 후자에 포함될만한 사람이라 믿었기 때문에 찍으면서 딱히 헤매지는 않았고요.

 

마쓰모토 소우시 감독은 「우리들의 여름」을 ‘그저 크리에이터를 위한 영화일 뿐만 아니라 뭔가에 푹 빠져 좋아해본 적이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로 소개했다. 이는 작품을 다 보고 난 필자가 뭉클한 감동에 휩싸인 원인이기도 하다. (C)2020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마쓰모토 소우시 감독은 「썸머 필름을 타고!」를 '그저 크리에이터를 위한 영화일 뿐만 아니라 뭔가에 푹 빠져 좋아해본 적이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로 소개했다. 이는 작품을 다 보고 난 필자가 뭉클한 감동에 휩싸인 원인이기도 하다. (C)2021 It's a Summer Film! Film Partners

"<썸머 필름을 타고!>는 '창작하는 것'에 관한 영화입니다. 창작에 조금이라도 관여한 적이 있으신 분,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뭔가에 푹 빠져 좋아해 본 적이 있으신 분이라면 꼭 권해드리고 싶어요. 저 또한 그 행위 자체의 힘과 소중함을 믿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영화, 드라마, 음악은 물론, 문학, 심지어 만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모든 엔터테인먼트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하며,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주변엔 특히 '지금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고요. 그래서 이번 인터뷰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너무 기뻤어요.

아울러, 그런 나라의 관객 여러분께서 제 영화를 봐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코로나 19 때문에 만만찮은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조만간 <썸머 필름을 타고!>가 한국에서 개봉해서, 직접 인사드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불타는 애정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의 만남을 준비했다던 마쓰모토 감독.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풋풋한 러브레터 같은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차기작 계획을 물었더니 '일단 주인공들의 연령대를 좀 높여볼 생각'이라는 이야기를 하다 살짝 머뭇거린다. 그러다 이내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건 정말 생각만 해도 뭔가 뿌듯해지는 이야기인데, 실은, 실사화하고 싶은 한국 문학작품이 있어 두근두근하는 심정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부디 바다 건너 모두를 향한 그의 마음이 또 하나의 멋진 연결 고라를 만들어, 서울 어딘가의 극장을 통해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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