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 잡' 자신의 직업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 대한 예찬
'우드 잡' 자신의 직업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 대한 예찬
  • 선민혁
  • 승인 2022.03.2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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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를 통해 나눈 야구치 시노부 감독과의 대화"
ⓒ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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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라는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의 말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반복적으로 마주한다. 그런데 그의 말처럼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은 존재라 그런지, 선택을 하는 과정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아무리 예상해봐야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에게 그것은 늘 불확실성으로 남고, 합리적인 근거들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려 하지만, 지금껏 해왔던 후회스러운 선택들이 떠오른다. 분명 그 선택들을 할 때도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들이 충분했음에도 말이다.

나는 이럴 때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 <우드 잡>을 떠올린다. 주인공 유키(소메타니 쇼타)의 선택은 무척 인상적이다. 대학 시험에서 떨어진 유키는 고등학교 졸업 후의 진로를 충동적으로 결정한다. 친구들과 술을 마신 후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는 길거리에 전단지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씹고 있던 껌을 뱉는다. 껌이 붙은 전단지에 적힌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뱉은 껌은 자위대를 모집하는 전단지에 붙고, 아무리 그래도 자위대에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던 중 그 뒤쪽에 있던 전단지가 드러난다. 임업 연수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고, 광고 모델의 외모가 예쁘다고 생각한 그는 임업 연수생에 지원하게 된다.

<우드 잡>의 플롯은 단순하다. 도시에서 평생 살다가 우연한 선택으로 전혀 생각해본 적 없던 유키는 산속에서 일을 하는 임업에 발을 들이게 된다. 처음에는 몸을 쓰는 힘든 일과 도시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동료들에게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하지만, 점차 그들에게 동화되어 가며 임업의 매력을 느끼고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이 스토리에는 큰 역경이나 시련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키는 임업 교육을 받던 중 중도에 포기하려고 하고 실종된 아이를 찾느라 위험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위기들은 금방 잘 해결된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이야기에 야구치 시노부 스타일이 굉장히 풍부하게 녹아 들어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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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치 시노부의 영화에서 가장 자주 드러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의 영화에서는 늘 이러한 우연이 비약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우연의 발생에 앞서 그것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사건들을 만들기 때문이다. <스윙걸즈>(2004)에서는 방과 후 수학 보충 수업을 듣던 주인공과 친구들이 밴드 활동을 하게 되는 우연을 발생시키기 위해 도시락 배달과 식중독이라는 몰입도 높은 에피소드를 만들고, <해피 플라이트>(2008)에서는 버드 스트라이크라는 우연을 발생시키기 위해 새 쫓기 전문 직원을 방해하는 기자로 위장한 환경단체 사람들이라는 유머러스한 사건들 만든다.

<우드 잡>에서 역시 유키가 우연히 전단지를 발견하고 임업에 뛰어들게 되지만, 그 전에 대학에 떨어지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유키의 감정을 충분히 보여줌으로써 유키의 결정이 억지스럽거나 맥락 없이 보이지 않도록 한다. 야구치 시노부는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데에 있어서 '우연'이라는 장치를 활용하기는 하나, 그것에 기대지는 않는다.

 

ⓒ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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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야구치 시노부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고 싶어 하는 듯 느껴진다. <워터 보이즈>(2001)나 <스윙걸즈>에서는 소년, 소녀들이 친구들과 서로 의지하며 무언가를 이뤄내며, 최근작 <서바이벌 패밀리>(2017)에서는 현대 문명이 갑자기 사라진 도시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현대인들이 잊고 있는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버스도 잘 다니지 않고, 휴대전화의 통신도 잘 안 되는 산골마을을 주 배경으로 한 <우드 잡>에서 역시 이러한 야구치 시노부의 시선이 잘 드러난다. 

산골 사람들에게 이질감을 느끼던 유키가 그들과 교감하고, 그 삶 속에 적응해 나가며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동과 마을 사람들과의 유대를 느끼는 등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에 걸쳐 현대인들이 잊어버리고 있는 '전통적 공동체의 가치'라는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특히, 영화의 결말부에서 그러한 주제의식이 집약되어 보여진다. 11개월의 연수기간을 마치고 고향 도시로 돌아온 유키의 장면이다. 유키는 긴 임업 연수를 마치고 드디어 가족이 있는 도시로 돌아오지만, 자신의 고향인 그곳에 이질감을 느낀다. 화면 중앙에 유키를 고정해두고 유키가 움직이는데도 마치 배경이 움직이는 것처럼 촬영된 장면에서 유키는 제각각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인파에 부딪히며 '스미마센'을 연발한다. 복잡한 도시의 길거리를 지나 가족이 있는 아파트에 도착한 유키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가자 집을 짓고 있는 공사 현장이다. 유키가 임업을 하면서 맡았던, 건축 자재로 쓰이고 있는 나무에서 나는 냄새였던 것이다. 그 후 유키는 임업을 하러 산골마을로 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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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우드 잡>에서 드러나는 야구치 시노부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직업의식'이다. 이는 장인 정신의 나라답게 이시이 유야의 <행복한 사전>(2014) 같은 일본의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부분인데, 야구치 시노부는 <해피 플라이트>에서 한 비행기의 비행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조명했던 것처럼 <우드 잡>을 통해 임업이라는 직업의 가치와 그것에 임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야구치 시노부는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을 긍정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경매장에서 자신이 소속된 나카무라 임업의 나무가 하나에 무려 80만 엔에 팔리는 것을 본 유키가 산의 나무를 전부 베어다 팔면 억만장자가 되겠다고 하는 말에 작업 반장(미츠이시 켄)과 선배 나무꾼 요키(이토 히데야키)가 보이는 반응이다. 조상이 심은 나무를 다 팔아버리면 다음 세대는 무얼 먹고 사느냐며, 농업은 자신이 키운 채소의 맛을 보며 보람을 느낄 수 있지만, 임업은 자신들이 한 일의 결과가 죽은 후에나 나온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묘목을 심고 정성껏 키운다.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그것을 만든 이와 대화를 했다는 느낌이 든다. 야구치 시노부가 이야기하는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믿고 그것을 꾸준히 하는 이들에 대한 예찬을 듣고 있으면, 9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2010년도에도 일관성 있는 자신의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고, 지금도 그것을 만들고 있을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모습과 크고 작은 역할들로 그의 영화에 꾸준히 등장하는 배우들이 떠오른다.

[코아르CoAR 선민혁, sunpool2@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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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 잡
Wood Job!
감독
야구치 시노부
Shinobu Yaguchi

 

출연
소메타니 쇼타
Shota Sometani
나가사와 마사미Nagasawa Masami
이토 히데아키Hideaki Ito
유카Yuka
니시다 나오미Naomi Nishida
마키타 스포츠Makita Sports
아리후쿠 마사시Masashi Arifuku
타나카 요지Yoji Tanaka

 

수입|배급 엔케이컨텐츠
제작연도 2014
상영시간 116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1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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