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트맨'② "이 수술은 내가 집도한다"
'더 배트맨'② "이 수술은 내가 집도한다"
  • 배명현
  • 승인 2022.03.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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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고담시의 사례(case)를 중심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배트맨』 『슈퍼맨』 『와치맨』 『브이 포 벤데타』 『원더우먼』을 만들어낸 DC코믹스의 DC는 'Detective comics'의 약어이다. 그리고 이 DC는 위의 명작들을 만들어 내기 전, 그 이름에 걸맞게 탐정물 만화를 만들던 회사였다. 오늘의 DC를 떠올린다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최근 개봉한 맷 리브스의 <더 배트맨>(2022)을 본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탐정 영화, 느와르 영화라고 생각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DC의 자장 아래 새롭게 다시 탄생한 <더 배트맨>은 분명 자신의 기원을 정직하게 명시하고 있다.

<더 배트맨>은 범인을 찾기 위해 '사건 이후'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이 추리물의 플롯은 그 원형을 가지고 있다. '의뢰인의 요청-심문-현장 조사 및 검사–논리적 추론-범인 지목-기록'이라는 구조, 소설가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부터 내려온 구조. 의과대학 교수 캐서린 몽고메리는 이 『셜록 홈즈』의 탐정의 추론이 '환자의 요청-문진-신체 진찰 및 검사-논리적 추론-질병 진단-의무 기록'으로 이어지는 의사의 추론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심지어 탐정의 사건을 의미하는 case는 의사의 사례를 의미하는 case와 발음이 같다)


1) ANNE HUNSAKER HAWKINS, Marilyn Chandler McEntyre, 『문학과 의학교육』, 동인, 2005 159-161쪽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더 배트맨>은 정확하게 추리의 플롯을 따라간다. 의뢰인들은 배트 사인을 하늘에 띄우고 배트맨(로버트 패틴슨)은 '응답'한다. 그리고 사건에 관련된 주변 인물들을 '심문'하고, 시장의 방으로 가 '현장 조사 및 검사'를 한다. 배트맨은 리들러(폴 다노)가 남긴 수수께끼들을 하나씩 '논리적으로 추론'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상상한다. 사건의 배후를 상상하고, 고담시의 배후를 상상한다. 그리고 고담시의 기득권의 삶을 상상한다.

추리는 논리적 사고와 함께 서사적 상상을 요구한다. 연역, 귀납, 가설과 귀추와 같은 논리만이 탐정의 도구가 되진 않는다. 직관과 상상력을 활용하여 하나의 사건에 논리적이며 서사적으로 정합한 과정을 그려야 그제야 사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된다. 사실의 영역에 있는 사건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배트맨은 놀라운 추리력과 상상력으로 리들러의 문제를 해결하지만, '날개 달린 쥐' 문제를 틀리며 아버지인 토머스 웨인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어 배트맨은 리들러가 준 힌트('미로 안으로 들어와 쥐(팔코네)를 찾고 빛(가로등 빛)으로 끌어내라')를 통해서 리들러를 찾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리들러는 배트맨 앞에서 브루스 웨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와 자신이 같은 '고아'이지만 전혀 다르다며 절규한다. 리들러에게 고아란 비극적 상황에 얹혀진 생명의 위협이지만, 브루스에겐 부모의 죽음은 내면의 어둠이다. 아울러 토마스 웨인은 고담시 수많은 리들러에게 희망을 선물했다가 도로 빼앗은 악마이며 악의를 숨긴 위선자이다. 리들러는 브루스 웨인을 통해 토마스 웨인의 죄를 실행시키려 한다.

그렇다면 왜 리들러는 아버지의 죄를 아들에게 형벌 내리려 하는 것인가. 토마스 웨인이 살아있지 않아서? 연좌제의 부조리를 무릅쓰고라도 자신의 (무)의식적 분노를 해소할 대상을 단죄하기 위해? 그렇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복수는 개인의 문제이고 그 복수가 해결 혹은 종결된다면 더 이상의 문제는 없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리들러는 토마스 웨인의 아들인 브루스 웨인에게서 그의 아버지를 본다. 리들러에게 토마스 웨인과 브루스 웨인은 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리들러에게 있어 두 사람의 본질은 계급이다. 고담시의 첨탑 맨 꼭대기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이 가능하게 하게끔 작동하는 그 계급. 높이의 차가 만들어내는 힘은 고담을 움직인다. 리들러가 분노하는 것은 나를 불행하도록 만든 계급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분노가 질병의 형태로 표출된다는 데 있다. 자신의 분노를 전파(방송)하고 전염(동화)시킨다. 전염된 바이러스들은 도시 전체로 번져 재해를 일으킨다. 자기 삶의 기반이 된 곳을 자신이 망가트린다.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 그 이전부터 자신들의 기반은 붕괴되어 있으니.

 

영화 <조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또 다른 DC의 작품인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2019)에서 조커(호아킨 피닉스)의 분노가 (평행세계인) 고담시 전체에 퍼졌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복기해보자. 이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노골적으로 보여준 착취와 산업예비군, 유머로 포장된 아편 이 모든 것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장치들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자선모금 행사에서의 시위에서 '우리는 광대다'라는 피켓이 보인다. 조커와 리들러가 공유하는 고담은 이미 곪을 대로 곪아 질병의 조건이 완성된 상태이다. 이 모든 것을 리들러가 물려받았고, 조커와 마찬가지로 그는 다시 한번 고담을 전염시킨다.

당연히 반복될 수밖에. 두 영화들 속 고담시의 권력자들은 앞서 말한 의사의 추론 과정에서 요구되는 정확한 '진찰 및 검사'에 실패했다. 이를테면 <조커>의 세계에서 필요했던 건 자선모금이 아닌 복지였지만, 복지보다 자선모금이 싸게 먹히므로―아이러니하게도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1936)를 관람한―토마스 웨인은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그렇기에 능력의 부족으로 인한 오진이 아닌, 이것은 의학적 타살이다.(리들러의 세계에선 정책의 이행이었다) 리들러와 조커 모두 계급(자본)이 유발한 문제이다.

현실에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고담시와 현실 세계의 공통점이라면 이미 오래전부터 폭발의 제반조건은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이고, 차이점이라면 현실세계에는 '불씨'가 없다는 점뿐이다.(이는 누군가 나 대신 바꾸어줬으면 하는 감정 혹은 문제의 해결책으로 선택된 것이 '적극적 항의'가 아닌 '재테크'가 되어버렸기 때문일지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러나 조커와 리들러의 고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배트맨이라는 존재. 조커의 고담 이후 리들러의 고담에 등장한 배트맨이라는 의사. 그는 폐허가 된 고담을 '치료'하려 한다. 그는 환부를 도려내고 그 근원을 제거하려 한다. 그 결과 고담은 우리가 알다시피 '최악'의 상태에서 벗어나 숨이 붙어있는 상태 정도는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고담시의 근원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을 것)다는 것을.(앞의 문장에 '절대'가 들어가야 할지 '아직'이 들어가야 할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필자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배트맨이라는 존재는 영화의 끝에서 '희망'을 말하지만, 그는 근본적인 문제로 직접 들어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질병 부위는 치료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가 생기는 원인 그 자체는 건드릴 수 없다. 이것이 배트맨이 말하는 희망의 한계이다. 새벽이 지나면 몸을 숨겨야만 하는 날개 달린 쥐 영웅의 한계.

하지만 브루스 웨인은 가능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 속 배트맨은 하비 덴트(투 페이스)를 고담의 영웅(하비 덴트 특별법)으로 남겨두고 자신은 은신했다. 그러나 <더 배트맨> 속 배트맨은 그 방향을 다르게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둠 속에서 빛으로 시민들을 이끄는 모습에서 그는 희망을 느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 명의 '엘리트'가 '혼란'을 '바로' 잡는다는 배트맨의 보수적 정치 성향을 가진 정의가 이번에는 어떻게 해석될까. 과연 배트맨의 이면인 브루스 웨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선택이 기다려진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더 배트맨
The Batman
감독
맷 리브스
Matt Reeves

 

출연
로버트 패틴슨
Robert Pattinson
폴 다노Paul Dano
조 크라비츠Zoe Kravitz
앤디 서키스Andy Serkis
제프리 라이트Jeffrey Wright
콜린 파렐Colin Farrell
피터 사스가드Peter Sarsgaard
존 터투로John Turturro

 

수입|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76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3.01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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