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메어 앨리' 악몽의 해석: 이중성을 중심으로
'나이트메어 앨리' 악몽의 해석: 이중성을 중심으로
  • 이현동
  • 승인 2022.03.08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뷰] "고전으로부터 현재를 응시하기"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창조적 행위이며 노력을 필요로 한다" 앙리 마티스

1946년작인 원작 소설 월리엄 린지 그레셤의 『나이트메어 앨리』를 토대로 한 동명 제목 <나이트메어 앨리>(2020)는 누아르라는 장르 구성을 통해 이전 영화와 현재의 영화와의 물성과 교호하는 어둡고 건조한 영화로 관객들에게 접근한다. 또한 60년대 시대상을 다룬 이전 작품인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에서도 그렇지만 시대의 정취를 도구로 활용했던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번 작품에서 미국의 세계 대공황 시대의 혼란스러운 정황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쇠락을 담아낸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면모를 추동하는 주체적인 요소는 단연 '신체'다. 그의 초기작인 <크로노스>(1993), <미믹>(1997) 등에서 등장하는 뱀파이어, 괴생명체라는 초현실적 묘사는 그가 지속해서 추구해왔던 획일적인 스타일이자 기능적인 장치로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최근에 이와 유사하게 쥘리아 뒤쿠르노가 <주니어>(2011), <로우>(2016), <티탄>(2021)에서 인물의 신체적 변용과 관련하여 캐릭터의 에너지를 주로 개인적인 영역에서 확장시켜 나가는 반면에, 기예르모 델 토르의 캐릭터들은 주변 세계의 영향권 아래에서 집단적이며 사회-과학적인 함의를 이끌어내며 그 의미를 탐색한다. 그러나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생경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기형적인 결합을 배제했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들이 통상적으로 시각적-이미지를 의존한 상징적이지만, 직관적이고 명료한 구성의 서사를 구현했다는 점을 미뤄본다면 이번 영화에서 그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본다'라는 행위는 의식-무의식이라는 이중적인 층위에서 방황한다. 먼저 기예르모 델 토로의 대표작인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에서 우리는 오필리아(이바나 바쿠에로)의 죽음과 동시에 왕궁 입성의 시퀀스에서 이전까지 그녀가 보았던 것은 전부 다 허상이었는지 혹은 사실이었는지를 분명하게 규정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이러한 층위에서 영상매체는 본질적으로 상상의 구현이기도 하지만, 상상을 끊임없이 배반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려는 인간은 스크린을 통해 앙리 마티스의 말처럼 '본다'는 창조적 행위에 동참하며, 선입견과 편견과 지속해서 충돌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결국, 인간의 자의식 속에서 인식의 주체가 되어 현실을 판단하고 적응하고 변화하는 건, 프로이트의 말대로 자아(ego)로부터 지시되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모든 영화는 근원적으로 꿈처럼 우리와 교섭하는 것일 테다.

이번 영화 제목인 <나이트메어 앨리>를 직역하면 악몽의 골목쯤으로 표기될 수 있는데, 이는 꿈의 결말을 예고하는 것이자 방황하는 인간관에 대한 기예르모 델 토로의 보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한쪽 '눈'의 이중성

기예르모 델 토로는 먼저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시대를 관류하는 아메리칸드림의 어두운 면을 집약하는 장소로 '카니발 서커스'를 배정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요건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짓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익명성이 보장된 세계에서 우선이 되는 가치는 '노동을 얼마나 노련하게 할 수 있느냐'이다.

유랑극단에는 인간 군상들이 모여 서커스를 선보이고 관람한다. 왜소증으로 웃음을 유도하는 남자, 전기로 쇼를 선보이는 여자, 점성술사, 살아있는 생물을 뜯는 기인 등의 사람들은 범죄사실과 무관하게도 관객들을 포획하는 도구로만 활용된다. 배경의 익명성만큼이나 아버지를 살해한 스탠턴 칼라일(브래들리 쿠퍼)의 과거 또한 그의 연인인 몰리(루니 마라)에게도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다. 더 나아가서 스탠턴에게 각별히 포착되는 것이 '이중성'이라는 점을 상고한다면 이는 기예르모 델 토르의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미국인이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본의 축적, 즉 성공에 대한 욕망이 초래할 불행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가령 스탠턴이 처음에 닭을 뜯는 기인의 무차별적인 쇼를 보며 안타까워하다가도 귀신의 집에서 도주한 그를 가장 먼저 찾아내어 구타하며 유랑극단에서 몰리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그의 성공 후에는 뒷전이 되어버린다. 동시에 유랑극단에서의 활동과 독심술사로 성공을 거두었을 때의 인물과 배경의 톤을 대조해 보면, 생활 세계는 급격하게 재구축되며 욕망의 형질은 순식간의 차갑게 변화한다. 이런 이중성이라는 주제를 추동하는 것으로 그를 더욱더 부요(扶搖)하게 만들어 줄 대상인 심리학자인 릴리스 리터(케이트 블란쳇)와 에즈라(리처드 젠킨스)는 그의 멸망을 촉진하는 대상으로 점유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중후반부의 서사는 올드 스타일의 복수극의 일환으로 클리셰적인 요소를 일정 부분 함의하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성 캐릭터의 성격과 태도는 당시의 시대를 초월하여 일종의 전경화(foregrounding) 효과로 모색된다. 몰리는 순진하지만 평범하고 착한 여성으로 스탠턴이 에즈라를 살해한 이후에 함께 가자는 마지막 요구를 뿌리치는 강단이 있기도 하고, 서커스에서 점성술사로 일하는 지나(토니 콜렛)와의 성관계가 이뤄지고 헤어질 때 전혀 슬퍼하지 않으며, 릴리스 박사는 과거의 상처를 받았지만 살아남아 복수를 실현하는 여자이다. 누아르 영화에서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주로 희생의 대상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나이트메어 앨리> 속 여성은 시대의 비극으로부터 탈주하며 강인한 여성상으로 변용된다.

스탠턴은 도주한 후 기차 안에 숨어 아버지를 죽였을 때를 회상한다. 타자의 약함을 이용하는 그는 추워 떨고 있는 아버지의 담요를 빼앗아 자신에게 덮는 회상 장면 이후 초반부와 유사하게 그는 카니발 앞에 선다. (마치 기인을 상대로 착취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처럼) 이는 수미상관이자 주제를 병치하면서 그의 초췌한 이미지가 메시지가 되어 부유한다. 그의 존재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건 극단의 관리자에게 찾아가 기인이 했던 일을 할 수 있느냐라는 물음에 답할 때의 내용이다. 그는 "그런 일은 타고났다"라고 말하며 허탈하게 웃으며 운명을 받아들일 때 아메리칸드림으로부터 생성되는 절망을 관조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종합해 보면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독심술은 그런 이중성을 대중들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속여야 살아갈 수 있음을 가시화한다.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냐, 사람들이 자신을 속이는 거지"라는 대사는 우리의 '눈'의 위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욕망'의 위치를 탐사한다. 영화에서 한쪽 눈을 갖고 있는 외눈박이 생명체로부터 연상되는 비홀더(beholder)라는 몬스터가 구경꾼,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듯이 우리는 그 서커스를 관람하면서 그 사회의 불편한 자태를 관음한다. 스탠턴이 착용하는 안대는 그가 접촉하고 있는 세상의 일면이며 그가 진실로 보지 못하는 제 욕망이다.

그 시대의 불안과 공허를 만회하고자 하는 노력은 여전히 현대인에게도 유효하며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로 말하는 '이 세계의 어두움'은 인간의 속성으로 비롯된 것임은 분명하다. 기예모르 델 토르가 한 인터뷰에서 그것이 가장 나쁜, 최악의 몬스터로 바로 언급했던 것처럼. 그것이 구조적이든지 혹은 본질적이든지 간에 세계 곳곳마다 발생하는 인간의 추악한 행위는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기원으로 굳건하게 전승되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나이트메어 앨리
Nightmare Alley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Guillermo Del Toro

 

출연
브래들리 쿠퍼
Bradley Coope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
토니 콜렛Toni Collette
윌렘 대포Willem Dafoe
리차드 젠킨스Richard Jenkins
루니 마라Rooney Mara
론 펄먼Ron Perlman
메리 스틴버겐Mary Steenburgen

 

수입 |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50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2.23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