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부담 없이 무서워하던' 일상에의 그리움을 담다
[interview] '부담 없이 무서워하던' 일상에의 그리움을 담다
  • 홍상현
  • 승인 2022.03.07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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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사메지마 사건> 나가에 지로 감독
「사메지마 사건」은 호러영화의 젊은 명장 나가에 지로 감독이 2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사메지마 사건」은 호러영화의 젊은 명장 나가에 지로 감독이 2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왜?"

"아, 난 역시 안 되겠어. 자기 혼자 봐."

"같이 보기로 해 놓고선..."

"호러잖아, 가뜩이나 자리도 떨어져 앉는데 ..."

"붙어 앉진 못해도 바로 옆인데 뭘."

"그래도 싫어. 고집부리면 나 그냥 간다?"

"알았어, 알았어."

'먼저 하시죠'라는 눈짓과 함께 줄에서 빠져나가는 커플. 사내가 다시 티켓카탈로그를 꺼내 든다. 어서 다른 영화를 찾아봐야겠지. 목례를 건네고 매표구로 다가서지만, 왠지 쓸쓸한 느낌. 팬데믹의 광풍 속에서도 방역에 만전을 기해 오프라인 중심 개최를 실현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였지만 객석간 거리두기야 도리가 있겠나. 순간 2020년 6월 12일 질병관리본부 브리핑이 떠오른다. 어느새 데일리뉴스 아나운서만큼이나 익숙한 얼굴이 되어버린 질병관리본부장이 "3밀"에 대한 경계를 당부했다. "환기가 안 되는 밀폐된 곳과 많은 사람들이 밀집하게 모여서 1m 이내의 밀접한 접촉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설명. 바이러스가 젊은이들의 연애풍속도마저 바꿔놓았다. 비명을 지르며 상대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거나, 땀에 젖은 손을 마주 잡으며 '적당한 공포'를 즐기는 호러영화야 말로 막 '썸을 타기' 시작한 커플에게 감정적 유대의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둘도 없는 데이트 프로그램이었는데.

 

「2채널의 저주」로 장편상업영화 감독에 데뷔한 이래, 「심령사진부」, 「유골함」 등의 작품으로 입지를 굳힌 나가에 지로 감독은 최근 스마트폰 세로화면으로 보는 신개념 공포드라마, 「스마 호러」 시리즈에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 등과 함께 참여했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2채널의 저주」로 장편상업영화 감독에 데뷔한 이래, 「심령사진부」, 「유골함」 등의 작품으로 입지를 굳힌 나가에 지로 감독은 최근 스마트폰 세로화면으로 보는 신개념 공포드라마, 「스마 호러」 시리즈에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 등과 함께 참여했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사고를 조금 더 확장해보면 단순히 서글퍼하며 지나칠 일이 아니다. 호러영화로 대표되는 괴담서사의 의미란 그저 연인들의 소일거리가 아니니까. 나름의 생명력을 가진 문화유산이다. 예컨대 저서가 송나라에서 간행되어 한자문화권 독자들에게까지 이름을 떨친 고려시대 문호 박인량의 대표작은 『수이전』이었다. 당대까지 전승돼온 괴담을 집대성한 이 책에는 짝사랑으로 온몸이 불타 불귀신이 된 사내, 무덤가를 맴도는 두 여성의 원령 등이 나온다. 할리우드 리메이크까지 된 <장화, 홍련>(2003)은 어떤가. 박인수가 실존 등장인물의 자손으로부터 간청을 받아 790년 전에 한문본을 썼다.

문화사의 흐름이란 달라질 수 있을망정 멸절되지 않으며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전 지구적 재난이 우리의 일상의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우리의 의지와 무관한 변화를 강제하는 와중에 호러영화의 젊은 명장(artisan) 나가에 지로가 시대적 개연성('내용의 진실성'이 아니라 '종종 일어난다'는 면에서)을 가진 온라인 괴담을 소재로 비대면 제작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만들어낸 <사메지마 사건>(2020)이 (무서운 내용과는 또 다르게) 필자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내용은 이렇다. 매년 고등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동창회를 하는 나나(다케다 레나 분)는 코로나 19의 창궐로 인해 온라인으로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뒤늦게 참석한 나나는 아유미(직접 등장하지는 않음), 유키(하야시 카라스 분), 스즈(츠루미 모에 분) 등이 20년 전 인터넷에 퍼졌던 괴담 '사메지마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진상을 알려고 하는 자는 목숨을 잃게 된다는 '사메지마 사건.' 아유미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들에게 저주가 시작된다.

열한 번째 장편상업영화로 BIFAN를 찾은 나가에 감독을 만났다.

 

「사메지마 사건」은 시대적 개연성을 가진 온라인 괴담을 소재로 비대면 제작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사메지마 사건」은 시대적 개연성을 가진 온라인 괴담을 소재로 비대면 제작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홍상현

2년 만의 신작 <사메지마 사건>(2020)으로 아시아 최대의 장르영화 페스티벌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오셨습니다.

나가에 지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제는 영화감독에게 가장 큰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제껏 만들어 온 작품이 영화제에 초청된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 이토록 훌륭한 영화제에 참여하게 돼서 진심으로 기쁘고, 앞으로의 영화인생에도 분명 큰 힘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홍상현

장르영화의 젊은 명장이시지만 아직 감독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가에 지로

한국 관객 여러분, 안녕하세요!

1979년 2월 2일생, 고베시 출신의 나가에 지로라고 합니다. 제가 이런저런 말씀을 드리려니까 엄청 쑥스러운데요. (웃음)

조감독 생활을 통해 영화의 기초를 배우고 2011년 <2채널의 저주>로 장편상업영화 감독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심령사진부>(2015), <유골함>(2012) 등 주로 호러영화를 만들면서 입지를 굳혔고요.

근래 들어서는 호러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의료사각지대에서 인술을 펼친 의사이자 여성문인 시다 슈코(야마가타의 문인이자 의사. ※주)의 생애를 그린 <의사선생>(2016)이나 <나비 부부>(2015) 같은 사극, 350만 부 이상 팔린 히트만화를 원작으로 요즘 핫 한 요시자와 료 배우를 캐스팅 한 <도모다치 게임> 3부작(2017)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올해(2021년)에는 <주온>(2000)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 등과 함께 스마트폰 세로화면으로 보는 신개념 공포드라마, <스마 호러> 시리즈의 공동연출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고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뒤늦게 온라인 동창모임에 참석한 나나는 멤버 중 몇 사람이 20년 전 인터넷에 퍼졌던 괴담 ‘사메지마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뒤늦게 온라인 동창모임에 참석한 나나는 멤버 중 몇 사람이 20년 전 인터넷에 퍼졌던 괴담 '사메지마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홍상현

다음은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께 항상 드리는 질문인데요. 좋아하는 한국 영화 작품, 감독 혹은 배우가 있으신가요. 그리고 최근 한국 영화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가에 지로

비단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 같은데, 봉준호 감독 영화를 너무너무 좋아해요.

한 작품도 빠짐없이 다 봤고요. 물론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살인의 추억>(2003)을 처음 봤을 당시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까지 할리우드 작품을 주로 봤는데 말 그대로 압도되었죠. 뼛속까지 울리는 느낌? 영화가 끝났는데도 일어나질 못하겠더라고요. 또, 나홍진 감독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살인의 추억> 때와 버금가는 임팩트를 경험했죠. <추격자>(2008)를 봤는데 할 말을 잃었거든요. 이 두 작품은 제 영화적 경험의 '금자탑'이에요.

연기자분들 가운데서는 송강호 배우를 당연히 좋아하고, 그 밖에도 황정민, 마동석... 하나하나 거론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정도죠.

최근 한국영화와 관련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다음 한마디입니다.

"일본영화계를 여기 두고 가지 말아주세요!!!"(웃음)

 

홍상현

최근 들어본 중 가장 절절한 한국영화 사랑이 느껴지는 코멘트였습니다. (웃음)

데뷔 이래 다양한 장르영화를 만들어 오셨는데, 특히 호러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고 계세요. 호러영화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나가에 지로

제가 어렸을 때는 지상파 방송의 프라임타임 영화프로그램에서 평범하게 호러영화가 방영되었습니다. 요즘은 교육에 좋지 않다든가 그 밖에 여러 가지 이유로 프라임타임에 호러영화가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요.

그런 분위기에서 <폴터가이스트>(1982)나 <공포의 묘지>(1989), <바탈리언>(1985) 같은 호러영화들을 보며 자란 게 큰 것 같아요.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무서우면서도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 게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그 후 열여덟 살이 되었을 무렵 J호러 붐이 찾아왔고, <>(1998)이나 <주온> 등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면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가운데 국제적으로 이렇게까지 흥행해 성공했단 예는 애니메이션 이외에 없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렇듯 '호러영화야말로 세계인에게 통용되는 콘텐츠'라는 인식은 제가 이 장르를 택하게 되는 근거가 되어주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메지마 사건이 공포를 자아내는 이유는 그것이‘확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메지마 사건이라는 가공의 사건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면서 수많은 ‘설’이 탄생하고, 그것을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인 양 착각하는 사람이 속출하게 되는 게 가장 큰 공포의 요소라고 파악한 거죠.” 나가에 지로 감독의 술회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작품에 등장하는 사메지마 사건이 공포를 자아내는 이유는 그것이'확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메지마 사건이라는 가공의 사건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면서 수많은 '설'이 탄생하고, 그것을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인 양 착각하는 사람이 속출하게 되는 게 가장 큰 공포의 요소라고 파악한 거죠." 나가에 지로 감독의 술회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홍상현

호러영화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나가에 지로

방금 말씀드렸듯이 제가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감정, 즉, '무서운 걸 보고 싶다'는 욕구가 호러영화가 갖는 매력의 핵심이 아닌가 싶어요. 인간의 본능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궁극의 엔터테인멘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다 감독이 되면서 깨달았는데, 누군가를 무섭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웃음) 바로 그래서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홍상현

나가에 감독의 호러영화는 일상적인 소재들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어 가성비가 무척 좋다는 평이 있습니다.

나가에 지로

궁극의 호러는 유령이나 괴물을 등장시키기보다 미세한 위화감을 축적해감으로써 만들어진다고 믿습니다. 해서. 이번 <사메지마 사건>도 특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퀀스에서 프레임의 한구석을 클로즈업으로 비춰주는 등, 감정의 스크래치를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연출했고요.

개인적으로 CG를 많이 사용한 호러영화를 재미있게 보면서도 정말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어요. 솔직히 예산 때문에 CG를 잘 쓰지 않는 것도 있지만(웃음), 한편으로는 CG 없이도 효과적인 연출을 해낼 수만 있다면 관객에게 절대적인 공포감을 맛보게 해 드릴 수 있을 거라는 제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연을 맡은 다케다 나나 배우는 시간에 비례해 강도가 더해지는 ‘공포의 에스컬레이션’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주연을 맡은 다케다 나나 배우는 시간에 비례해 강도가 더해지는 '공포의 에스컬레이션'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홍상현

이번 <사메지마 사건>과 데뷔작인 <2채널의 저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인데요. 평소 인터넷 서브컬처에 상당한 식견이 있으신 거로 보입니다.

나가에 지로

제 답변에 살짝 충격을 받으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사실 저는 인터넷 서브컬처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웃음) <2채널의 저주>를 만들기 전까지 익터넷 익명게시판인 2채널에 접속해보기는커녕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웃음)

제가 장편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할 무렵, 일본 영화계에는 <링>이나 <주온> 같은 J호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인터넷에 나도는 도시전설이나 무서운 이야기를 실사영화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는 발상을 현실화한 게 비디오영화(V무비)판 <2채널의 저주>였는데, 그 작품의 감독이 저를 조감독으로 발탁해주셨죠. 당시까지 그게 무슨 소린지조차 몰랐던 저는 아주 기초적인 내용부터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작품이 꽤 히트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시리즈로 제작되면서 계속 온라인 괴담에 대한 취재를 이어갈 수 있었죠. 제 영화인생 일대의 찬스가 그렇게 찾아온 겁니다.

 

홍상현

대단하네요. (웃음) 하긴, 필름메이커가 꼭 평소 조예가 있는 내용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한편 <사메지마 사건>은 코로나 19 이후의 일상을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기할만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영화들의 경우 왠지 팬데믹 이후에 촬영했다 하더라도 마스크 착용이나 손 씻기 등을 일상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나가에 지로

실제 <사메지마 사건>이 개봉한 이후 "일본 최초로 팬데믹의 일상을 그린 영화"라는 평가가 있었는데요. 저로서는 그냥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애초에 촬영, 편집 및 후반작업, 그리고 홍보와 상영에 이르는 전 과정에 별로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거든요. 아니, 오히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이뤄졌죠. 제작에 참여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준 결과인데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캐스트와 스태프 전원이 마스크를 쓰고 땀을 흘린 일들이 몇 년 뒤에는 분명 좋은 추억이자 의미 있는 기록이 되어줄 거로 생각합니다.

 

오빠 역의 사노 가쿠 배우는 촬영장에서 긴장한 스태프들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고 “유령 같은 거 보다 여러분의 분위기가 너무 무섭습니다...”라고 울먹여 폭소를 자아냈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오빠 역의 사노 가쿠 배우는 촬영장에서 긴장한 스태프들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고 "유령 같은 거 보다 여러분의 분위기가 너무 무섭습니다..."라고 울먹여 폭소를 자아냈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홍상현

극 중에 나오는 "피해자(확진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던 코로나 19에 대한 정의가 실로 적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코로나 19라는 현실과 도시전설을 연결하는 발상의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나가에 지로

작품에 등장하는 사메지마 사건이 공포를 자아내는 이유는 그것이 '확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메지마 사건이라는 가공의 사건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면서 수많은 '설'이 탄생하고, 그것을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인 양 착각하는 사람이 속출하게 되는 게 가장 큰 공포의 요소라고 파악한 거죠. 이건 온라인상에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성루머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요. 한 번 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과열되는... 코로나바이러스와도 다르지 않았나요?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의 어둠과 코로나 19의 공포를 영화로써 접목해보고 싶었습니다.

 

홍상현

영화에서도 랜선 회식이 등장하듯, 최근 줌 등의 통신 애플리케이션이 생활 일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를 영화의 소재로 활용한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사메지마 사건>은 그중에서도 무척 성공적인 사례 아닐까 싶어요.

나가에 지로

촬영을 준비하면서 줌 등을 활용한 작품을 몇 편 접했는데요. 솔직히 어느 것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도 그렇지만 캐스트들 간에 템포가 전혀 맞지 않아서요.

특히 거슬리는 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는 설정인데 꼬박꼬박 서로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점이었어요. 말이 되나 싶더라고요. (웃음) 보통 친구들 대여섯 명이 줌 등으로 대화를 하다 보면 반드시 서로 음성이 겹쳐질 수밖에 없거든요. 정말 심각한 내용이라 다른 사람들이 숨을 죽이게 되는 경우가 아니면 나머지가 그렇게 잠자코 있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사를 일일이 다 들려주기 위해 차례차례 말을 하게 시키다 보면, 대사가 없을 때 한꺼번에 입을 다물게 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거야말로 경계해야 할 사태라고 봤던 까닭에 최대한 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애드리브의 영역이 커지니까 배우들로서도 촬영이 녹록지 않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나가에 지로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CG 사용을 자제한다. CG 없이도 효과적인 연출을 해낼 수만 있다면 관객에게 절대적인 공포감을 맛보게 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소신 때문이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나가에 지로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CG 사용을 자제한다. CG 없이도 효과적인 연출을 해낼 수만 있다면 관객에게 절대적인 공포감을 맛보게 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소신 때문이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홍상현

주인공 '나나'를 연기한 다케다 레나 배우의 연기가 놀라울 정도입니다.

나가에 지로

다케다 배우는 제가 예전부터 주목해온 연기자였습니다. 연기력이 좋은 건 물론이고 큰 눈에 숏컷이 어울리는 스타일이 호러 콘셉트와도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프로듀서가 다케다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을 때 무척 기뻤어요. 미팅을 해 봤더니 역시나 인격적으로도 뛰어나고, 제가 설명하는 연출의도를 금방 이해해주는 명민한 배우더군요.

다른 출연자와 접촉이 일절 없는 독특한 촬영환경이었지만 어색해하지 않고 엄청난 집중도의 연기를 보여줘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홍상현

집중도에 관한 언급을 하신 김에 좀 더 들어가 보고 싶은데요. 의외의 말씀일 지도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호러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지나친 리액션(비명 등)이 역으로 관객이 작품에 몰입하는 걸 방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메지마 사건>의 다케다 배우는 시간에 비례해 강도가 더해지는 '공포의 에스컬레이션'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가에 지로

가장 호재였던 건 스토리 전개에 따라 순서대로 촬영이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저도 연출하기가 아주 수월했어요. 리얼타임에 따른 전개가 가능하다 보니까 공포감의 정도도 순차적으로 높여갈 수 있었거든요.

또, 라스트까지 음악을 삽입하지 않아 소리 때문에 분위기가 산만해지는 걸 막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캐스트의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나가에 지로 감독의 호러영화는 특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퀀스에서 프레임의 한 구석을 클로즈업으로 비춰주는 등, 감정의 스크래치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연출방식으로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나가에 지로 감독의 호러영화는 특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퀀스에서 프레임의 한 구석을 클로즈업으로 비춰주는 등, 감정의 스크래치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연출방식으로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홍상현

<사메지마 사건>에는 개성있는 젊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조화시키는 거야말로 상당한 난이도의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나가에 지로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게 등장인물의 성격(캐릭터)입니다. 조감독 시절에 '어떤 장르의 작품이든 캐릭터가 가장 중요하다'고 배우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한 명 한 명의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어요. 아울러, 모여서 대본 리딩을 할 때나 의상 피팅을 할 때마다 각 인물의 성격에 대해 서로 기탄없이 이야기하도록 하고, 그 내용을 빠짐없이 경청하려고 노력합니다. 최대한 조화를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니까요.

특히 이번 <사메지마 사건>은 배우들의 애드리브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리허설 단계에서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몇 번이나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홍상현

캐스트도 스태프도 크게 나이 차가 나지 않다 보니 현장이 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을 것 같은데요. 혹, 촬영 중에 일어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나가에 지로

주연인 다케다 배우의 촬영 직후, 오빠 역의 사노 가쿠 배우의 촬영이 잡힌 날이었습니다. 다케다 배우의 신이 엄청난 공포 신이라서 저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무척 긴장한 상태였죠. 그런데 사노 배우는 가뜩이나 호러영화 출연이 처음이다 보니 그 분위가 정말 무서웠나 봐요. 슛이 들어갈 준비를 하다 말고 갑자기 벌벌 떨면서 "유령 같은 거 보다 여러분의 분위기가 너무 무섭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원래 호러와 코미디는 종이 한 장 차이인데, 그 말 한마디에 모두 긴장이 풀리면서 폭소를 터뜨렸죠. 그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걸 반성하기도 했고요. (웃음)

그 반응이 나오자마자 사노 군이 "호러 현장이라 다들 무슨 저주라도 씌운 줄 알았잖아!"라고 울먹여서 다시 한번 다 같이 '빵!' 터졌답니다. (웃음)

 

「사메지마 사건」은 코로나 19 이후의 일상을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기할만한 작품이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사메지마 사건」은 코로나 19 이후의 일상을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기할만한 작품이다. (C)2020 The Samejima Incident Film Partners

"<사메지마 사건>은 딱딱한 타이틀과 달리, 한 가지의 심플한 상황을 설정하고 실시간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패닉 호러 엔터테인먼트 영화입니다. 잠시나마 복잡한 일상을 잊으시고 80분 동안,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즐겨주시면 좋겠어요.

팬데믹의 세계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죠. 그래서 <사메지마 사건>은 '서로 간의 접촉을 최소화한다'는 가이드라인 하에서, 배우끼리 어떤 접촉도 없이, 직접적인 대화를 피하면서 촬영하는 제작방식을 택했습니다. 그야말로 '코로나 19의, 코로나 19에 의한, 코로나 19를 위한' 영화라고나 할까요. (웃음) 하지만 여기 담겨있는 건 이전처럼 평범하게 만나서 대화하고, 접촉하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시대로 하루빨리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어서 세상이 제 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일상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를, 그리고 영화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느껴지는 장르에 대한 애정에 '대체 5년간의 (호러영화 제작) 공백기는 어떻게 버텨냈을까 싶은 신기함마저 들었던 시간. '분명한 건, 제가 아직도 식지 않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사자후를 토한 나가에 감독은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다시 호러 붐이 도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기대감을 내비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아주 잠깐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필자는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서 팩트가 뭐 그리 중요할까. 호러영화야말로 이 의욕 넘치는 젊은 작가가 세계의 시네필(Cinephile)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방법인걸. 아울러 그가 꼭 자기 입으로 몇 번이나 언급했던 <링>이나 <주온>의 계보를 잇는 감독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도 지칠 수밖에 없는 이 가혹한 세월에, 한 사람의 젊은 크리에이터가 끝내 좌절하지 않고 버텨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으니까.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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