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 MAX] '키미' 코로나19 시대: 관음증의 진화
[HBO MAX] '키미' 코로나19 시대: 관음증의 진화
  • 이지영
  • 승인 2022.03.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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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밀실에서 광장으로 항해하는 오디세이"

미국 영화평론가 브라이언 탈레리코(Brian Tallerico)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신작 <키미>(2022)에 대해서 "히치콕의 <이창>(1954)에 대한 코로나19(코로나19) 시대의 재해석이자 오마주"라고 말했다. <이창>에서 주인공 제프리스(제임스 스튜어트)는 다리에 깁스를 하고 집에 칩거하면서, 거리 반대편 아파트 창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망원경으로 관찰한다. 제프리스가 바라보는 씬들은 뮤트(음소거) 처리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상상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히치콕의 세계에서는 '소리의 부재'가 사건의 해석을 왜곡하게 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

엿듣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이다.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굴절된 소리는 청자의 해석을 왜곡하기도 한다.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2002)>에서는, 빈곤가의 얇은 벽 하나를 두고 한쪽 방에는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는 류의 누나(임지은)가 있고, 바로 옆 방에는 그 소리를 들으며 페티시를 즐기는 10대 소년들이 있다. 이처럼 안 보이고 안 들리는 부족분은 인물들의 욕망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토록 순진하게 이웃집 벽에 귀를 대고 소리를 엿듣는 침입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집은 온전히 자신만 향유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며, 타인의 소음이 그 공간을 침투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현대인의 방음 처리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다.

 

@ HBO MAX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19 시대가 도래했다. 거리를 활보하던 사람들은 광장에서 밀실 안으로 쫓겨 들어오고, 집과 사무실은 점차 혼연일체가 되어갔다. 무료하게 반복되는 칩거 생활이 매끄럽고 편리해지도록 인공지능이 생활을 보조한다. 영화 <키미> 속에서 '키미'는 이미 상용화되어 있는 '시리'나 '알렉사'와 같은 음성 기반 인공지능이다. CEO 인터뷰에서 키미는 일상의 모든 대화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명령 오류 시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상황들에만 사람이 선택적으로 개입하여 수정을 거친다. 결국, 아웃라이어 케이스가 발생하면 사람의 손길이 개입해야 하며 그 주체는 기술 노동자라는 알 수 없는 타인이다.

<키미>는 고립과 개인화가 만연한 코로나19 시대에, 우리는 타인의 문제에 어디까지 책임을 느끼고 개입하려 하는지 그 심리 여정을 파악하고자 한다. 나아가 관음증적인 욕망과 타인을 향한 이타적 마음의 경계를 흐리면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윤리는 무엇일지 시의적절하게 주목한다.

 

@ HBO MAX

우선, <키미>는 화상 회의라는 대안으로 어딘가 불완전하게 소통하고 있는 인간의 소통 양식을 보여준다. 안젤라(조이 크라비츠)는 재택 근무는 물론이고 가족과의 대화, 의료 진료까지 모두 영상 통화로 해결한다. 그녀는 과거의 트라우마적인 사건으로 인해 실외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광장공포증(agoraphobia)이 있으며,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녀는 직접 방문해서 치료를 받으라는 전문가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화면을 매번 황급히 종료한다. 점차 심해지는 치통과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고립감과 불안감은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된다.

그러나 안젤라는 SNS 계정에 자신이 경험한 적 없는 가짜 이미지들을 전시한다. 실제 맞닥뜨려야만 하는 고통이나 치부를 드러내지는 않은 채, 선택적으로 자아를 전시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음을 영화는 성찰한다. 개인들의 관계 맺음 또한 마찬가지로 부자연스러운 단절의 연속이다. 안젤라와 테리(바이런 보워스)의 관계는 순간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에 그치고 그 이상 진전되지 못한다. 그녀는 쾌락의 시간이 끝난 순간에 바로 침구에서 그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현대인이 자기 삶의 가장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대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족과 지인이 아닌,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은 그들의 가장 가까운 벗이자, 파편화된 조각으로 이뤄진 거울이다. 검은 스크린 너머로 온전한 자기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며 불완전한 소통을 하는 인간들(예컨대 아믹달라(Amygdala)의 CEO 브래들리 해슬링은 첫 장면에서 지하실에서 뉴스 인터뷰에 참여하는데, 그의 상체는 프로페셔널한 CEO이고 하체는 헐렁한 파자마를 입고 있는데, 마치 현대적으로 해석된 '반인반수'의 모습이다)과 달리, 키미는 이들의 바로 옆에서, 아니 전 공간을 장악하고는 관찰하고, 기록하고, 상호작용한다.

 

@ HBO MAX

타인이 없는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언어의 더미는 남들에게 전시된 자아상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 가까울 수 있다. 소더버그는 히치콕이 포착한 관음증적 욕망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어찌 보면 코로나19나 IT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더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를 타인의 소리로부터, 진짜 모습으로부터 가로막는 것은 얄팍한 한 겹의 벽이 아니라 거대한 소음으로 이뤄진 소리의 장벽이다. 이 노이즈들을 뚫고 타인의 삶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복잡한 사운드의 조작, 대형 장비, 그리고 거대한 테크 공룡들의 횡포와 맞서 싸워야 하는 배짱까지 갖춰야 한다.

그렇다면 그 모든 병리적이고 무력하게 방치된 마음, 익숙해지지 않는 공포를 이겨내면서 안젤라를 밀실에서 광장으로 밀어내는 이 문제적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오래전에 내뱉었을 절규의 메아리와 같은 것이다. 같은 고통을 겪은 자만이 포착할 수 있는 어떤 미세하지만 강력한 신호이다. 거대 플랫폼 기업이 내려주는 워크플로우는 노동자로 하여금 최고의 효율성을 요구한다. 바로 키미를 계속 수정하고 발전시키는 작업이다. 이들은 어떤 윤리적인 판단의 지침 또한 내린다. 어떤 유형의 정보는 저장되고 피드백 받아야 하며, 어떤 종류의 정보들은 묵살되고 삭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하고 친근한 얼굴을 하였지만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권력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 주체로서 일어나 맞서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창>의 주인공이, 곧 벌어질(그렇다고 믿은) 사건을 막기 위해 맞은편 아파트로 달려가고자 했듯(그는 다리를 다쳐서 리사(그레이스 켈리)를 파견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떤 의식의 각성으로 인해, 증인으로서 책임감으로 인해, 공명심으로 인해, 같은 고통에 대한 본능적인 연대에 의해 우리는 두려움의 문을 열고 타인이 쓰러져 있는 광장으로 나아간다.

 

@ HBO MAX

안젤라는 핵심 증거를 FBI에 넘기려고 하고 불법 해커와 폭력배들이 그녀에게 따라붙는다. 그녀를 중간에 구해주는 것은 노숙인 옹호 집회에 참여하던 익명의 시위자들이다. 이들은 납치되려던 안젤라를 본능적으로 차 안에서 끌어 내린다. 그럼에도 계속 쫓기고 쫓겨 어딘가 엉성한 추격전 끝에 도착한 곳은 안젤라 자신의 집이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현대사회의 블랙코미디적인 단상이다. 집이 홈 오피스로 변신하고, 게임공간으로, 휴가지로, 온갖 용도로 변신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집은 자신을 호신하는 무기가 된다. 하다못해 집수리하는 데 쓰이는 연장이 강도들을 무력화시키는 무기로 탈바꿈하는 장면에서는 실소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이 장면들은 코엔 형제의 블랙 코미디적인 격투씬을 떠올리게도 한다.(특히 <블러드 심플>에서 애비(프랜시스 맥도먼드)가 강도들을 물리치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결국 이 영화는 집에서 시작해서 집에서 끝나는 영화이다. 그렇다면 오디세이처럼, 집을 떠나 힘든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안젤라에게는 어떤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는가? 격투씬이 끝나고 마치 공연이 끝난 듯이 테리가 꽃다발을 들고 문 앞에 서 있다. 장면전환 후, 피가 난무했던 집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넓고 고요하고 적막하다. 인물들은 이제 어디로 갔는가? 삶은 이 사건 전후로 어떻게 변했는가? 머리색이 하늘빛에서 핑크빛으로 바뀐 안젤라와 테리가 광장 한가운데서 만나는 순간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우리는 안도한다. 이들이 마스크를 벗고 밝은 빛 가운데로 나오는 것을 보는 순간, 우리는 드디어 이들에 대한 관음증적인 시선에서 해방된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HBO MAX

키미
KIMI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Steven Soderbergh

 

출연

조 크라비츠Zoe Kravitz
리타 윌슨Rita Wilson
데빈 래트레이Devin Ratray
에리카 크리스텐슨Erika Christensen
인디아 드 뷰포트India de Beaufort
로빈 기븐스Robin Givens
하이메 카밀Jaime Camil
제이콥 바가스Jacob Vargas
바이런 보워스Byron Bowers

 

제작 New Line Cinema, Warner Bros.
제공 HBO MAX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89분
등급 15세 관람가
공개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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