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F 2022] '어웨이크' 영화는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JFF 2022] '어웨이크' 영화는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 김민세
  • 승인 2022.03.02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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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지만 세상에 닿지 못하는 이야기"

모든 영화가 그렇겠지만, 특히 실화 기반의 영화들이 거쳐 가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다. 영화화는 결국 사건의 서사화라고 할 때, 누구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서사를 대리할 것인가.

예를 들어, 우리는 아우슈비츠 참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그 사건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던 인물을 따라가 볼 수 있을 것이고 (<인생은 아름다워>), 사건의 외부인의 입장에서 다시 쓰기 할 수 있을 것이며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의 육체와 내면을 따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울의 아들>). 또는 이오지마 전투라는 사건을 미국 병사의 입장에서 볼 수 있을 것이고 (<아버지의 깃발>), 일본 병사의 입장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오지마의 편지>).

또 다른 질문. 영화 내에서 사건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예를 들어 우리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역사적 사건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고 (<빅쇼트>), 주요 서사 뒤에 감춘 채 아래에서 은밀하게 작동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브레이킹 배드>). 또는 최근의 탈식민주의 영화들처럼 역사의 환유로 서사를 재구성하거나(<자마>), 산발적인 사건들을 영화의 형식으로 재조합할 수 있을 것이다 (<바쿠라우>).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시선만으로도 의도가 될 수 있는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특정한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시선 및 관점은 서사의 원동력이 됨과 동시에 영화의 핵심적인 메시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장기 대국을 소재로 하는 <어웨이크>에 새롭게 다가온다. 인간 대 인공지능. 정해진 구도가 있기 때문이고. 그 이면에서 사건으로써 주목할 것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 <AWAKE> FIlm Parters

실화를 재구성해 만든 <어웨이크>의 서사를 하나씩 짚어볼 수 있겠다. 주인공 에이이치는 유년시절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아 프로 장기 기사 교육을 받게 된다. 교육원에서 라이벌 리쿠를 만나 경쟁하는 에이이치는 그와의 결정적인 대국에서 패하고 충격에 장기를 그만두게 된다. 대학에 들어가 장기 게임 프로그램과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에 대해 알게 된 그는 장기 인공지능 '어웨이크 AWAKE'를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리쿠는 프로 기사가 되고, 2015년 둘은 인간과 인공지능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경기에서 다시 대결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국은 프로그램의 오류로 인해 인간 리쿠가 승리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2016년, 2017년에 있었던 두 번의 대국에서 인공지능이 모두 승리한 뒤 이후의 정식적인 대국은 없었다고 언급하며 이야기를 끝마친다. 이것은 어찌 보면 흥미로운 소재이다. 2016년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상기시키기도 하며,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의 미래라는 사회적 이슈를 불러들여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의문점이 들기도 한다.

영화는 누구에 편에 서야 하는가. 인간의 편에 설 것인가, 인공지능의 편에 설 것인가.

만약 인간에 편에 선다면. 승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뒤로 인간은 장기로 인공지능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인간의 편에서 이 내용을 다룬다면, 그것은 이미 벌어진 결과를 미뤄두고 사건을 인간의 승리로 자축하는 셈이다. 또는 지나간 것을 붙잡고 희망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반대로 인공지능에 편에 선다면. 인공지능의 작은 실수로 인한 패배를 다시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실화를 다루는 영화로써 <어웨이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 <AWAKE> FIlm Parters

 

그래서 <어웨이크>는 질문을 바꾼다.

소수의 편에 설 것인가, 다수의 편에 설 것인가.

먼저, 실화 영화가 주로 그렇듯이 사건의 이면을 들추기 시작한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라는 타이틀 뒤에 있던 리쿠라는 인간과 에이이치라는 인간의 삶을 따라간다. 그리고 프로 장기 교육이라는 일종의 시스템에서 이탈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에이이치를 쫓는다. <어웨이크>가 둘 중 누구의 편을 들고 있다고 단정 짓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스템의 반복(프로 기사 과정)이 아닌, 전복(장기 인공지능 개발)을 보여주는 데 시간을 쏟고 있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즉 <어웨이크>가 에이이치의 입장을 따라가는 것은 소수의 외로운 싸움에 동참하는 것이다. 소수의 위치에 선 에이이치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와 리쿠의 대국이 끝난 다음이다. 일련의 서사를 따라온 관객으로서, 대국에서 누구를 응원하였는지에 대한 대답은 쉽게 한쪽으로 귀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가 에이이치의 욕망에 충분히 납득할 만큼 서사를 부여하긴 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리쿠의 입장도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이 둘의 대결 자체에 초점을 둔 나머지 각자의 승리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는 큰 설명을 하지 않는다.

 

ⓒ <AWAKE> FIlm Parters

그러나 대국이 끝나고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시청자들의 댓글들을 보게 될 때, 인간의 승리에 환호하는 반응들을 마주하게 될 때, 이 게임은 처음부터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소수와 다수의 게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인공지능 어웨이크가 대국에서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는 그것을 인공지능의 승리 또는 인간의 패배로 볼 것이지, 에이이치의 승리로 볼 것이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웨이크>가 이런 서사에 기대는 순간, 인공지능에 대한 소재는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오히려 영화는 한 사람의 고군분투를 따라가는, 그리고 결국은 화해의 결말로 도달하는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서사 안에 갇혀버린다.

그래서 <어웨이크>는 사회적 담론을 가능할 수 있게 할 만한 이슈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세계로부터 단절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감상을 자아낸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장기 대결이라는 실제 사건을 그저 소재로만 사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실화 영화는 실화를 사용해야 할 합당한 이유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이 영화가 선택한 소재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지금 여기의 이 세계에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는지는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AWAKE> FIlm Parters

어웨이크
AWAKE
감독
야마다 아츠히로
Atsuhiro Yamada

 

출연
와카바 류야
Wakaba Ryuuya
요시자와 료Yoshizawa Ryo
오치아이 모토키Ochiai Motoki
칸이치로Kanichiro
바바 후미카Fumika Baba

 

제공
일본국제교류기금
JAPANESE FILM FESTIVAL ONLINE 2022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119분
공개 2022.02.14-27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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