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핑이 가득한 피자 한판 ['리코리쉬 피자' #1]
토핑이 가득한 피자 한판 ['리코리쉬 피자' #1]
  • 이현동
  • 승인 2022.02.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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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A가 달리고, 또 달려서 배달한 유별난 사랑 한판"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폴 토마스 앤더슨이  전작인 <팬텀 스레드>(2017)에 이어 <리코리쉬 피자>(2021)라는 독창적인 작품을 내놓았다. <팬텀 스레드>가 '드레스'라는 소재로 귀족적이며 고혹적인 사랑의 에너지를 촘촘하게 발산했다면, <리코리쉬 피자>는 그와는 다르게 젊음의 활기가 곳곳마다 생기롭게 아른거린다. 이 작품은 <부기 나이트>(1997) 와 유사한 1970년대의 시대성을 비스듬히 간직하면서도 러브 코미디 장르로는 유일했던 <펀치 드렁크 러브>(2002)와도 그 모양새가 흡사하다. 구조적으로 병존하는 인물들의 사랑의 형태는 그 과정을 추정하기가 힘들 정도로 몹시 분주하게 움직인다.

개리(쿠퍼 호프먼)가 알라나(알라나 하임)와의 첫 만남에서 "이것은 운명"이라 말할 때 우린 '운명'이라는 인과관계가 어떤 서사 구조로 드러날지를 가늠하는 것으로 이를 먼저 측정할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 있어 '사랑'이란 건 마치 숨바꼭질처럼 은연중에 잠식되어 있는 관념처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대상으로 위치하며 끊임없이 배회한다. 그들에게 공존하는 매력적인 모습과는 별개로 나이 차이라는 전제가 극적인 아이러니로 이 영화를 맵핑하고 있다는 점은 모호한 긴장감을 유발하면서 영화의 접근 방식으로 점멸한다. 그 관계를 진입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사랑은 선형적으로 마주한다. 질주하면서 혹은 사랑의 울타리에서 탈주하고 난입하기를 반복하면서.

 

ⓒ 유니버설 픽쳐스

마치 인스턴트 피자와 같은

'피자'라는 음식과 무관한 이 제목의 혼종성은 오로지 폴 토마스 앤더슨의 기억을 반영한 것이다. 먼저 <리코리쉬 피자>의 촬영 장소가 그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남부 캘리포니아라는 점과 영화의 제목의 출처가 '리코리스 피자'라는 레코드 체인이라는 것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그가 언급하듯이 그의 기억에 기대어 친근하면서도 소프트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듯한 이 영화는 그 의도에 맞게 비교적 짧은 시간인 65일 동안 촬영되었으며 대중들도 가볍게 즐기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배경에서 필자는 이 영화의 정체성을 인스턴트 피자(?)라고 정의하고 싶어진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식. 완성될 때 재료 하나하나의 조합이 감질맛이 나는 그런 음식. 그렇다면 어떤 재료가 이 영화를 맛있게 하는 걸까?

개리와 알라나의 나이 차이는 이 영화에서 '빵'과 같은 존재다. 빵이 없으면 피자가 될 수 없듯 나이 차이는 이 영화에서 주도적으로 서사와 인물의 관계를 매칭시키는 주요한 요소이다. 무려 10살가량 차이는 겉모습에서는 특별히 드러나지 않지만, 이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선으로 삶의 패턴을 조율한다. 알라나는 "난 15살 아이랑 데이트 안 해"라는 개리를 향한 단호함과는 역설적으로 그녀는 개리의 끊임없는 애정공세에 미소를 보인다. 나이의 격차를 절감하는 건 그들의 정식적인 첫 만남이 이뤄진 레스토랑 tail O' the cock과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개리가 주문하는 콜라라는 음료에서이다. 또한 운전을 할 수 없는 나이인 개리 대신에 알라나가 운전을 하는 장면들에서 그들의 사랑은 직관적인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시대적인 배경이 관객들에게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 이외에도 이 영화의 훌륭한 토핑으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 유니버설 픽쳐스
ⓒ 유니버설 픽쳐스

이러한 활기는 캐릭터의 성격으로부터 유도된다. 개리는 비교적 일관적인 반면에 알라나는 입체적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개리는 배우로서 일찍이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도하려는 도전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알라나는 허황된 꿈을 꾸지 않고 현실을 선택한다. 현실은 이처럼 알라나의 선택을 좌지우지한다. 그녀는 개리보다 나이가 많은 그의 동료 배우였던 랜스와 잠시 교제하기도 하고, 개리가 핀볼 사업에 동참하지 않고 시장 선거의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녀의 선택이 개리를 향하는 것은 그 사랑의 일관성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녀가 만난 모든 남자들은 한 가지씩 나사가 빠져있는 부류들이다. 알라나가 집으로 초대한 랜스는 눈치 없이 자신의 종교적인 문제를 소신 있게 말하다 교제를 거절당했고, 과거에 영광에 사로잡힌 남자인 배우인 잭 홀든(숀 펜), 공과 사를 구별 못하는 시장 후보인 조엘 웍스(베니 샤프디)는 그녀의 현실적인 조건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남자들이었지만, 그녀는 그녀와 함께 달릴 수 있었던 존재는 개리뿐이었다.

<리코리쉬 피자>의 내용을 표출하는 핵심적인 구도는 서로를 향해 달리는 프레임을 좌, 우 병렬로 하여 트래킹 숏으로 그 인물의 운동성을 지목할 때이다. 몇 차례 등장하는 질주는 그전까지 일방적으로 한쪽 프레임으로만, 그 달리기가 이어지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완성된다. 그들이 운명적으로 만나 몸과 입술이 밀착될 때 그들이 갖고 있었던 모든 격차는 그 움직임에 의해 붕괴된다.

 

ⓒ 유니버설 픽쳐스

또한, 이 영화의 토핑으로 작동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실존 인물들과 사건들이다.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했던 존 피터스와 윌리엄 홀든을 패러디한 잭 홀든은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듀서이자 배우이다. 감독은 훈련되지 않은 두 명의 배우를 섭외하는 동시에 할리우드 배우를 동시에 등장시킴으로 이 영화가 독특한 에너지를 갖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 가지 더 이 영화의 사회 모순을 퇴락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펫 버니'라는 개리의 물침대 사업이 실패한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73년 석유 위기에 대해 논의하는 TV 뉴스 보도는 특정한 국가와 직간접 교역을 중지시키고, 투자, 금융거래 등의 모든 경제교류를 차단하면서 물침대의 중요 재료가 되는 석유의 판매를 금지시킨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의 사업은 개리의 대사 "세상에 종말이 왔다"라는 말처럼 망한다. 하지만 개리는 실망하지 않고 다른 사업을 추진하면서 일관된 태도로 이 영화의 기둥 같은 역할을 한다. 개리의 일관적인 자세는 이러한 사회 모순을 극복하며 알라나의 향한 사랑의 태도를 변치 않는다.

전작인 <팬텀 스레드>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유아기적 퇴행 속에 잠재한 사랑을 강제하는 형국이었다면, <리코리쉬 피자>는 사회의 현실을 일시적으로 감추면서 사랑의 순수한 형태를 복권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영화는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였던 뮤직비디오 <아니마>(2019)에 뒤이어 나온 작품임을 고려할 때, 그가 인터뷰에서 드러냈던 이 영화의 특징은 그가 그동안 설계했던 (영화) 구조적인 작품과는 스타일의 차이가 있다. 끝으로 <리코리쉬 피자>의 싱그러움은 구조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사랑의 형태라는 사실을 지목하면서 속도전을 펼진다. 이 영화가 누군가에겐 가볍고 무난할지 몰라도,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이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을 것이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유니버설 픽쳐스

리코리쉬 피자
Licorice Pizza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Paul Thomas Anderson

 

출연
알라나 하임
Alana Haim
쿠퍼 호프만Cooper Hoffman
숀 펜Sean Penn
톰 웨이츠Tom Waits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
베니 사프디Benny Safdie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34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2.16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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