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빛과 철' 마지막 진실의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 이유
[신년기획] '빛과 철' 마지막 진실의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 이유
  • 이지영
  • 승인 2022.02.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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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예술영화 비평 특집 ⑤

신년기획 <코아르CoAR> '한국 독립·예술영화 비평 특집' 다섯 번째는 배종대 감독의 <빛과 철>(2020)이다. 이지영 기자는 다양한 위치에서 영화를 쫓는다. 이를테면 관객으로서, 비평가로서, 혹은 범인을 잡는 탐정으로서, 심지어는 영화에 가장 가까운 거리에 서서 마치 극 중 인물들의 당사자라도 된 듯한 인물로서. 그가 영화를 향해 계속해서 물음을 갖는 행위는 영화를 낱낱이 해체하는 동시에 섬세히 이해하는 작업이다. 여기에 영화의 장르, 영화 밖의 텍스트, 감독의 말 등 영화밖에 있는 것들을 불러와 극 속 공간·인물·도상 등을 명료하게 풀어낸다. 이렇듯 그는 영화 속에서 부유하는 '미스터리'(mystery)라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 혹은 현상을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그리고 흔들리지 않은 태도로 써내려간다. 분명 영화를 본 이후에 남는 찝찝함이 이 글을 통해 거의 다 씻겨 내려갔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 찬란

어두운 밤 중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누군가의 차가 한 교통사고 현장 앞에 도착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전조등만이 심하게 훼손된 두 차량을 비추고, 신원을 알 수 없는 운전자의 시점 숏이 창문을 통해 사고의 흔적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고의 잔해는 두 차량이 충돌했을 때의 엄청난 에너지를 상상하도록 한다. 밤 중에 누군가가 졸음운전을 했거나, 과속으로 달리다가 차선을 침범하여 충돌에 이르렀던 것일까? 이 차량들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지만 의문의 목격자는 사고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유유히, 무심하게 그곳을 지나친다. 배종대 감독의 첫 장편영화 <빛과 철>은 도입부의 명징한 은유로 서론을 꺼낸다. 두 육중한 차(철)의 충돌이라는 교통사고 사건 그리고 누군가로 하여금 이 사건을 목격하게 만드는 전조등의 빛이다. 빛은 곧 시선이고, 앎이다. 그리고 알고 있음은 목격자도 이 사건에 간접적으로 연루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영화는 사건의 진위를 규명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것보다도 사건 현장에서 빠져나가는 이 조심스러운 움직임에 주목한다.

<빛과 철>은 크게 1부와 2부, 두 파트로 나뉜다. 먼저 남편을 차 사고로 잃고 5년 전 일하던 공장으로 돌아온 희주(김시은)가 있다. 그녀는 남편이 자동차 사고를 내고 목숨을 잃은, 과거의 기억에서 도망치려는 인물이다. 파트 2는 어떤 계기로 인해서 희주가 그 오랜 회피를 끝내고 U-턴을 하여 다시 사고 현장으로 정면 돌진하는 '역주행'의 이야기이다. 처음 도시에 입성한 희주는 횡단보도에서 영남(염혜란)을 만나고 사색이 되어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희주의 남편이 사고를 낸 피해자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남은 희주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듯 무심히 지나친다. 그러나 이들은 점차 공장이라는 공간에서 서로를 대면하게 되는데, 희주는 이들이 가해자 가족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공포에 가까운 불안에 떤다. 그녀는 영남을 보고 도망치고, 은영(박지후)이 영남의 딸이란 사실을 알게 되자 증오하는 듯이 거부한다. 여기까지 피해자의 가족들은 운명론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삶을 견디는 무고자로 비춰지는 한편, 김시은 배우가 표현해내는 희주의 공포나 증오심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강렬하다. 이것은 과연 누구를 향한 분노인가? 피해자를 향한 분노인가, 자신을 가해자 가족으로 만들어버린 죽은 남편에 대한 분노인가?

 

ⓒ 찬란

진실을 밝히는 인물들과 미스터리 장르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는 희주의 시선으로부터 점차 영남과 은영의 관점으로 이동한다. 같은 공간 안에서 부딪히게 되자 자신이 누군지 아냐고 묻는 희주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이들은 조금씩 자신이 아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의 중심은 계속 이동하는데, 이는 '사건의 미스터리에서 인물들의 마음의 미스터리로 옮겨가고자 한' 감독의 의도를 담고 있다. 희주를 대하는 영남과 은영의 약속이라도 한 듯 차분하고 담담한 태도는 여러 의문이나 궁금증을 파생한다. 이 모녀는 가해자의 가족을 마주쳤는데, 왜 원망하지 않으며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는가? 피해자의 가족이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로 여겨지는 원망의 기색이, 왜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가? 희주는 가해자로서 자신이 가지는 죄책감, 불안함이 원래는 이들의 몫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또한 자신이 사실은 사고와 관련하여 어떤 중요한 비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한다. 진실은, 은영의 입을 통해서 허망할 만큼 쉽게 희주에게 던져진다.

희주가 사건의 전말을 밝히려고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희주의 오빠 형주(이주원)의 물질주의적인 혹은 가부장적 태도와 과학 수사를 표방하지만 무능하고 아마추어적인, 박경위(김광식)로 대변되는 공권력을 꼬집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회로일 뿐이다.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영남, 형주, 형주의 아내 소은, 박경위)은 교통사고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과거에 한 행동을 부분적으로 진술하거나, 아예 사실을 은폐하거나, 가부장적으로 윽박지르며 회피하거나, 불쌍한 이웃이라는 명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고 한다. 이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나 살아온 방식에 따라서 이 불행한 이야기를 각자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간단히 말해, 이들의 악의적이지 않았던 비겁한 '거짓말'로 인해 진실은 점차 실종된다. 여기에 더하여, 절실하게 피해자의 위치를 점하려 하는 희주의 신경증적인 태도는 그녀 또한 이 일련의 사건에서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여기까지, <빛과 철>은 전통적인 미스터리한 구성을 충실히 따르면서 사건의 진실을 한 겹씩 벗겨가도록 관객을 인도한다. 배종대의 세계에서 미스터리가 해소되는 방식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명료하며 관객에게는 친절할 정도이다. 예컨대 이 영화는 극단적인 미완의 구조를 가지며, 인간 본성에 대한 허무주의를 견지하는 점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0)과 같은 맥락의 미스터리 영화가 의도적으로 '되지 않으려' 한다. 이들 영화에서는 감독이 긴장을 만들어내고 수많은 질문을 던지기만 뿐 관객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수많은 답이 가능하도록 한다. 이는 감독들 자신의 세상의 불가해성에 대한 인식을 투영한다.

"진실은 실종되었다. 어쨌든 이 영화는 사건의 진실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강하게 제기하는 소위 미스터리적인 구성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궁금증을 풀어줄 해답 어느 하나도 제시하지 않는 미완의 구조로 이루어진 영화이다. 이 영화는 마성적 존재인 인간에 대한 회의와 비관이 암울하게 뒤섞여 있는 허무주의 적인 시각과 관점에서부터 시작되고 진행된다."(송희복, 『영상문학과 감성의 진폭』, 월인)

 

ⓒ 찬란
ⓒ 찬란

그러나 <빛과 철>은 카메라(CCTV)가 부재했던 그 단 한순간만을 남겨놓고 모든 진상을 인물들의 입을 통해 직설적으로 해명한다. 특히 희주와 영남의 주변 캐릭터들은 마치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2015) 속 인물들처럼, 상황이 파국에 이르기 전까지 비밀을 끌어안고 자멸하는 '철인'들이 아니다. 그런 유형이었던 두 가장은 자동차에 올라타서 진실을 묻은 채 죽음과 같은 잠에 빠져들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의 죄의식에 고통받다가, 결국 사실을 실토하고 거짓으로 얻은 대가를 다시 내어 놓기도 한다.(이를 테면, 합의한 사실을 고백하는 형주나, 아파트를 구매한 보상금을 돌려주는 소은, 영남에게 찾아가는 기원) 그리고 고통에서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한다. 이들은 악인이라기엔 나약하고 자기 합리화에도 서툰 인물이다. 어쩌면 미학적으로는 인물들의 입을 빌려 진실의 일부를 드러내는 순간, 미스터리의 긴장이 잠시 이완된다. 또 대단원으로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선택이기도 하다. 대신에, 배종대 감독은 진실을 밝혀 내는 순간 인물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에 주목한다.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로 진실을 밝히기 시작한 사람은 가장 나이가 어린 은영뿐이다. 그녀가 일으킨 연쇄는 어디까지 파장을 일으키는가? 카메라는 자신이 일으킨 파장을 바라보는 시종일관 은영의 표정에 떠오르는 불안을 포착한다. 이토록 여린 다음 세대의 윤리의식을 통해 감독은 인간 사회를 다시 한번 신뢰해보자는 메시지를 담은 것일까? 그러나 은영은 이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한 다음, 불현듯 사라져 버린다. 희주의 집에서 창문 밖을 내려다보는 로우 앵글 숏(low angle shot)은 일말의 불길함을 자아낸다. 공장의 폐단과 남편의 마지막에 대해 알게 된 영남은 불같이 파괴적인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가 은영을 끝내 찾지 못한다. 그때 카메라가 부재했던 그 순간을 증명할 누군가가 깨어난다.

영남과 희주는 남편들이 지났던 같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가 전복된 이후, 서로 목을 조르며 뒤엉킨 두 사람은 이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상반된 두 사람은 이제 서로를 닮아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 남은 진실을 알게 된다고 기대하는 순간, 마치 모든 걸 시작하게 만든 은영이 이제는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듯이, 환상적인 이미지의 고라니가 불현듯 길 한복판에서 환히 길을 비춘다. 그 의도를 감독은 한 대화를 통해 명료하게 설명했다.

희주와 영남 모두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사건에 자신들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양립할 수 없다. 희주 남편이 자살하려고 했다면 영남은 면죄부가 생긴다. 반대로 영남의 남편이 가해자라면 희주는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두 여자가 진실을 듣기 위해 병원으로 가지만 그들이 찾으려는 진실은 영남 남편의 마음속에 있다. 결국 또 혼란이 계속될 것이다. 고라니는 위태로운 질주를 멈춰줬다.

2021.02.28, 부산 영화의 전당, <빛과 철> GV 관객과의 대화 中

미스터리 영화를 만든 숱한 감독들이 아무리 보고자 애써도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진실을 말하고자 했다면, 배종대 감독은 마지막 진실의 문 앞에서, 때로 멈추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찬란

빛과 철
Black Light
감독
배종대

 

출연
염혜란
김시은
박지후
이주원
강진아
조대희

 

제작 원테이크필름 , 영화사 새삶
배급 찬란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7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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