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보스'에서 굿(Good)만 잘라내기
'굿 보스'에서 굿(Good)만 잘라내기
  • 이현동
  • 승인 2022.02.15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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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자본주의라는 유령과 굿 보스라는 환영"
ⓒ 디스테이션

스페인 영화감독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Fernando Leon De Aranoa)는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처럼 캐릭터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분명 그가 말하는 리얼리티에 기반한 영화의 장점은 다른 영화에 영향을 덜 받고 독립적이며 고유한 특성의 작품들 창출할 수 가능성에 내재하고 있는 것일 테다.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는 사회의 암울하고 불안한 이면들을 발굴하면서도 동시에 일상에 귀속되어 있는 자그마한 해학을 놓치지 않는다.  스페인 북부 해안 산업도시에 거주하는 실업자 친구들이 그 시간성에 동요하지 않고 희망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그린 <햇빛 찬란한 월요일>(2002)이나, 멸시받는 직업인 매춘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 우정과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프린세사스>(2005) 등의 초기작들은 그의 영화세계와 접촉하는 형상들의 기호들이다. 주제적인 측면에서 데 시카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되면서도 미학적인 측면에서는 점차 펠리니적인 영화가 되고 있다고 할까.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굿 보스>(2021)는 사회 문화 환경을 고스란히 투영하면서도 그 내밀한 곳에 존재하는 모순들을 블랙 코미디로 조명한다. 이전 작품인 콜롬비아의 마약 왕인 보스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모티브로 한 <에스코바르>(2017)에서 실제 알려진 사건들을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걸출한 배우를 통해 캐릭터와 서사를 입체적으로 구현해냈다면, 이번 작품에서 한 번 더 그가 블랑코라는 상류 사회의 구성원이자 보스를 연기하면서, '좋은' 보스의 통념과 고찰들을 여러 영화적 장치를 활용해 서사를 이어나간다.

 

저울과 불확정성 원리

<굿 보스>에서 주기적으로 관측되는 사물들과 장소들은 집요할 정도로 그의 정체를 폭로하는 장치로 활용되는데, 그것 중 하나는 '저울'이라는 이미지와 불확정성 원리라는 개념이다. 저울의 상징성을 통상적으로 언표 하는 것은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티아(Justitia)이며, Justice(정의)의 어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기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울이 '균형' '형평성'등을 의미한다. 이 본래적인 의미와 영화에 등장하는 그의 언행과 행위를 주목한다면, 이 아이러니한 영화의 제목과 주제의 연관성을 각별히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 디스테이션

우선, 저울의 등장은 <굿 보스>의 주제와 캐릭터의 인과관계를 작동시키는 일종의 엔진과 같다. 영화 내내 회사를 앞에 위치한 저울은 도무지 그 균형을 맞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그 균형을 맞추는 과정 또한 속임수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된다. 기울어진 저울 한 부분에 총알을 달아둠으로써 그 균형을 유지하는 장면은 마치 에스코바르가 '은 아니면 납'(Plata o Plomo)이라는 정책, 즉 경찰, 공무원, 정치인들에게 공언했던 '협조해서 부자가 되거나 나를 적대해서 죽거나 둘 중의 선택'하라는 어구를 떠올릴 법하다.(여기서 '납'이 보통 총알을 은유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은 감독의 의도를 약간이나마 추측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영화에서 저울의 무게를 맞추기 위해 희생이 강요된다는 점은 사회 체계의 담론을 발생시키는 모티브가 된다. 저울을 만드는 회사를 22년간 운영하고 있는 블랑코는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은 베테랑 사업가이다. 그의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호감을 얻는 것이다. 직원들과 허물없이 소통하는 그를 앵글로 잡는 동시에 부당한 방식으로 직원들을 다루는 이중성, 그리고 그가 집착하고 있는 우수기업상에 대한 탐욕을 고발하면서 이 영화는 '굿'이란 형용사의 탐문을 거듭한다.

이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장면은 초반부의 조례 시간의 언행에서 드러난다. "저는 아이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자식이니까" 이는 위계를 탈피하여 민주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선언으로 종결되지 않고 곧이어 갑작스럽게 쇼트를 침범하는 해고당한 직원과 자녀들이 그 부당함을 호소하는 장면을 통해 블랑코의 이중성에 대한 의심은 마침내 저울의 출몰과 함께 가시적인 증표로 발화된다. 그는 해고당한 직원과의 분쟁 조정을 위한 협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자기 직원의 아들을 소환하여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왔던 친구이자 동료인 미랄레스(마놀로 솔로)의 고민인 아내와의 분열된 관계를 봉합하지 못하면서 결국 블랑코는 저울대를 교정하기 위해 그를 희생양으로 이용한다. 가족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고취시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인턴사원이었던 릴리아나(알무데나 아모르)를 팀장으로 채용하고, 인종이라는 선입견을 회피하기 위해 아랍계 직원을 승진시킴으로 심사위원들의 환심을 사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개인과 사회의 이면을 겨냥하는 이미지들이다. 저울이 교정되지 않는 건 한마디로 교정된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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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보스> 속 저울은 환영처럼 표류한다. 저울의 공정성은 필연적이며 절대적인 정언명령과도 같은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작동하는 건 하이젠 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이다. 영화에서 불확정성 원리가 최초로 언급되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인턴으로 처음 회사를 둘러보는 아름다운 여인 릴리아나에게 첫눈에 반한 블랑코는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한다. <굿 보스>나 <에스코바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중성은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 들끓는 욕망의 자태를 주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블랑코가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관습적인 행위와 릴리아나가 침대에서 나누는 뜨거운 대화에서 등장하는 불확정성 원리는 변화의 징후를 저울로 포착할 수 없음을 현상한다. 황당하리만큼 혼재되어 있는 관계의 실타래는 미랄레스가 블랑코의 비서와 불륜 관계였다던가, 릴리아나가 아내의 친구의 딸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 표면적으로 이 영화의 정체성이 물질적인 의미인 저울에서 형이상학적인 의미에서의 불확정성 원리로 이행한다. 물론 불확정성 원리를 논의하면서 사회 체제 비판이라는 주제가 변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불확정성 원리라는 수사는 세계에서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사건들이 우연성과도 결합되어 있음을 해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블랑코가 규정하는 (정의도 공정도 균형도 없는) 저울의 세계란―그의 진열대 속 수많은 상장들의 조명과 위치가 교묘하게 바뀌는 장면을 상기한다면―이는 저울과 불확정성 원리라는 두 가지의 의미가 표상된 지도와도 같음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쇼트에서 툭 하니 떨어지는 상장은 분명히 블랑코와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자본의 몰락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 디스테이션

결과적으로 <굿 보스>는 블랑코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의 문제가 되는 내용들을 은유적으로 제시하며 캐릭터의 관계 안에서 그 내용을 저글링 한다. 사회의 잉여로 묘사되는 아랍 청년은 어둠 속을 배회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릴리아나는 결과적으로 친구의 딸이라는 이유로 팀장이라는 위치로 안착한다. <굿 보스>는 적확하게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로 현실 속에 정초하고 있는 굿 보스의 부재를 지시하는 일상의 현시다. 블랑코가 지속적인 농성을 거듭하는 직원에게 시간이 지나 협의를 요청할 때 나눴던 대화가 선명하게 이 세계를 적확하게 설명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돈, 이직 등 원하는 걸 해줄 테니 시위를 멈춰", 이에 직원은 "이제 네가 무슨 회유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난 네가 망하면 돼"라는 대답. 이 대화에서 노동자들의 참다 참다 터져 나오는 절규가 들려지는 것 같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블랑코의 행위가 이해가 가는 것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욱 잔혹한 것은 세상이 그를 굿 보스라고 칭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디스테이션

굿 보스
The Good Boss
감독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Fernando Leon De Aranoa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Javier Bardem
마놀로 솔로Manolo Solo
알문데나 아모르Almudena Amor
오스카 데 라 푸엔테Oscar de la Fuente
셀소 부가요Celso Bugallo
소니아 알마르차Sonia Almarcha
페르난도 알비주Fernando Albizu
타릭 르밀리Tarik Rmili

 

수입 (주)엔케이컨텐츠
배급 (주)디스테이션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20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02.10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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