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틱, 틱… 붐!' 우리의 친구 조너선 라슨
[NETFLIX] '틱, 틱… 붐!' 우리의 친구 조너선 라슨
  • 선민혁
  • 승인 2022.02.1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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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관객에게 가까운 위치에서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야망을 가진다는 것은 쉬웠다. 청소년이었던 나에게 교사, 혹은 부모가 이따금씩 던지거나, 누군가가 쓴 책에서 등장하는 인상적인 문장이 주는 힘은 강했다. 15년도 되지 않는 인생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기회는 왔을 때 잡아라" "하고 후회하는 것이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 등의 문장에 큰 공감을 했으며,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한 것은 어떤 어른도, 책도 그것을 꼭 어린 나이에 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어떤 이유에서 인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인 아티스트를 조명하는 예능 프로그램 <M! PICK>에 출연한 국내 최연소 힙합 듀오 '올 블랙'을 보며, 10대 때부터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티오 월콧'을 보며 그들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쓰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된 고등학생일 때에도, 고교 재학 중 등단했다는 최인호 작가의 이력을 동경했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할 때면 작가의 출생 년도와 등단 시기를 확인하곤 했다. 무언가 하고자 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대가 지나기 전이면 좋고, 미성년일 때 해낸다면 더욱 좋다'라고.

 

ⓒ 넷플릭스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한 포부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이러한 생각을 대했다면 적당했을지 모르겠으나, 이는 조급함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넷플릭스 영화 <틱, 틱… 붐!>의 오프닝 장면에서, 조너선 라슨(앤드류 가필드)이 만화에 나오는 시한폭탄처럼 자신의 머리속에서 째깍, 째깍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이야기를 이러한 조급함의 표현으로 이해했다. 이 영화는 1990년을 살아가며 뮤지컬 작가로의 데뷔를 꿈꾸는 조너선 라슨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직업인 뮤지컬 작가를 멸종 위기종이라고 표현하는 조너선 라슨은 서른 살 생일을 앞두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1990년의 조너선 라슨이 마치 2022년의 우리처럼, 서른이라는 나이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며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그는 서른이라는 자신의 나이에 대해 스티븐 손드하임이 브로드웨이에 데뷔하고,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마지막 곡을 쓰고,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낳은 나이보다 많다고 표현하며 '이들에 비해 자신이 해 놓은 것은 뭐가 있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있다. 조너선이 머지않아 그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룬다는 것을. 실존 인물 조너선 라슨에 대해서 모르더라도 영화가 미리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데뷔에 성공하며 토니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되어있다. <틱, 틱… 붐!>은 청춘의 시간 속에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이 역경에 부딪히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과연 꿈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관객이 가지도록 만들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일까?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이야기하는 것' 그 자체가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틱, 틱… 붐!>이 서사를 전개하기 위해 취하는 형식은 난해하지는 않지만, 특이하다. 조너선 라슨이 뮤지션들과 무대 위에 올라있다. 그는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의 시선은 주로 무대 아래의 관객들을 향한다. 8년째 공들여 쓴 '슈퍼비아'라는 작품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해당 작품을 위한 발표회를 가지는 것인가 싶기도 한데, 그가 무대 위에서 이야기하는 주제는 '슈퍼비아'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스토리이다.

영화의 서사는 무대 위에 선 조너선의 장면과 그가 이야기하는 스토리에 대한 장면을 오가며 전개되고, 무대 아래의 관객들을 향해 이야기하는 것 같던 조너선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화면 너머의 우리에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틱, 틱… 붐!>은 조너선의 성공이 예정되어 있음을 미리 밝히는데, 그 이유가 그것이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영화는 주인공이 맞게 될 결말을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미리 밝힘으로써 관객이 이 인물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긴장감을 가지고 극에 몰입하게 하는 방식을 포기한다. 대신 조너선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스크린 너머의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처럼 하여 인물 자체를 관객들이 가깝게 느끼도록 만든다. 이러한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조너선의 삶이라는 스토리가 어떻게 결말을 맺을 것인가에 대한 것보다 그 스토리 안에 존재하는 딜레마와 인물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효과적이었다.

 

ⓒ 넷플릭스

<틱, 틱… 붐!>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결과적으로 토니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조너선 라슨은 평범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위대한 예술가에 가까운데, 그가 이야기해주는 서른 즈음의 그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살아가며 지나온 순간들과 느꼈던 감정들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마감 직전까지 하지 않게 되는 모습, 혐오하던 것과 타협했다가 다시 혐오했다가 결국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모습, 비슷한 길을 걷다가 각자의 선택을 하게 되는 주변 인물들, 이런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우리에게 '당신도 그런가? 나도 그렇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것은 나름의 위로가 된다.

 2022년의 나는, 1990년의 조너선 라슨처럼, 스물 보다 서른이 가까운 나이가 되어있다. 나의 부모가 나를 낳은 나이는 진작에 지났다. 이제는 내가 티오 월콧도, 최인호도, 자비에 돌란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스물여덟 살의 비비안 웨스트 우드와 서른의 하루키와 같은 인물들이 비슷한 자극을 때때로 주긴 하지만, 현재의 나는 어린 내가 꾸던 위대한 꿈을 꾸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만화 속 시한 폭탄 같은 조급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제 나에게 조급함을 주는 이들은 주변에 있다. 일을 잘하는 직장의 후배, 자리를 잘 잡고 결혼을 하는 또래 친구들 등이다. 혹시 당신도 그렇다면, 나도 그렇다고 이야기하겠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넷플릭스

틱, 틱... 붐!
Tick, Tick... Boom!
감독
린-마누엘 미란다
Lin-Manuel Miranda

 

출연
앤드류 가필드
Andrew Garfield
알렉산드라 쉽Alexandra Shipp
로빈 드 지저스Robin De Jesus
바네사 허진스Vanessa Hudgens
브래드리 휘트포드Bradley Whitford
주디스 라이트Judith Light

 

제공 넷플릭스(NETFLIX)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20분
등급 12세 관람가
공개 2021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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