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프랑코] '애프터 루시아' 영화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미셸 프랑코] '애프터 루시아' 영화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 김민세
  • 승인 2022.02.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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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와 책임 사이에서 삶을 운반하는 것"

멕시코를 대표하는 거장 알폰소 쿠아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기예르모 델 토로와 함께 주목해야 할 시네아스트인 감독 미셸 프랑코의 두 번째 장편 <애프터 루시아>(2012)는 '과거 위에 세워진 영화'라고 축약 가능하다.

'애프터 루시아 After Lucia'라는 제목과 걸맞게 영화는 어떠한 비극적 사건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을 바라본다. 아내이자 엄마인 루시아를 사고로 잃은 주인공 로베르토(헤르난 멘도자)와 그의 딸 알레한드라(테사 아이아)는 도피하듯이 멕시코시티로 이주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부녀는 서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루시아의 죽음을 애도하고 현재를 살아나간다.

죽음이라는 과거에 묶여 있는 자들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던 영화는,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기 시작한다. 전학 온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적응해가던 알레한드라는 파티에서 술에 취해 친구 호세(곤잘로 베가 주니어)와 관계를 맺는다. 그때 둘의 관계를 담고 있는 영상이 다른 친구들에게 유출되면서, 알레한드라는 각종 성희롱과 굴욕적인 집단 폭행을 당하게 된다.

 

ⓒ 팝엔터테인먼트

이 사건을 통해서 프랑코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집단 폭행의 범인들을 심문할 수 없는 시스템의 부조리와 범죄를 은폐하는 방관자의 존재 등에 시선을 두며 공동체 내의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화두로서 제시한다. 이것은 시스템의 폭력에 대해 극단적인 스타일로 표현하고 있는 그의 최근작 <뉴 오더>(2020)까지 이어져 오던 공통적 테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애프터 루시아>, 나아가 미셸 프랑코의 영화를 말할 때면 '사회적 혹은 윤리적 문제들을 그만의 미학으로 얼마나 사실적으로 표현해냈는지'에 초점을 두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영화 안에서도 무고한 알레한드라가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고립이 되어가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심각한 폭력을 당하게 되는지 묘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해석의 방향성은 어느 정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영화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애프터 루시아>를 두고 우리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문제들의 '표현'이 아니라 프랑코가 관객을 상대로 하고 있는 영화적 '관계 맺기'이다.

 

ⓒ 팝엔터테인먼트

많은 것을 숨기고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장면은 첫 장면이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한 남자(로베르토)가 자동차 정비소에서 수리된 차를 인계받는다. 남자는 아무 말없이 차를 운전하다 말고 시동을 끄더니 열쇠는 안에 던져 놓은 채로 차에서 내린다. 차는 도로 한복판에 서있고 남자는 도로 위를 걸으며 떠난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을 뒷좌석에 놓인 카메라가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물론 우리는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그의 행동이 아내의 죽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애프터 루시아>는 이렇게 맥락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로베르토와 알레한드라의 현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루시아의 죽음이라는 과거를 소거한다. 영화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과거를 남겨진 자들의 현재라는 상부구조 아래에 숨기고, 둘을 동시에 은밀한 방식으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이사한 집에서 짐을 정리하다가 돌연 얼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로베르토의 행동. 엄마에 대한 새 친구들의 질문에 태연한 척하며 함께 살고 있지 않다고 대답하는 알레한드라의 모습. 딸이 입은 원피스를 보고 엄마의 옷이 아니냐고 묻고 그렇다고 답하는 부녀의 건조한 대화.

그리고 제목을 제외하고 영화 내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루시아라는 이름. 이렇게 상기시키려 하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떠오르고야 마는 과거의 흔적들은 인물들의 정서를 지배하고 관객의 입장에서 한 번에 쉬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야기한다.

 

ⓒ 팝엔터테인먼트
ⓒ 팝엔터테인먼트

이런 장면들의 연속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프랑코의 연출적 패턴은 인물들과 충분히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장면들은 롱테이크로 촬영되었고 인물에게 클로즈업으로 다가가지 않으며 적절한 거리에서 그들을 관조한다.

이는 알레한드라에게 가해지는 집단 폭행 장면들에서도 드러난다. 심지어 숙소의 화장실에 감금되어 방치당하는 그녀의 모습은 파티가 한창인 방 안의 움직이지 않는 화장실 문으로 가시화될 뿐이다.(알레한드라가 강간을 당하는 장면은 강간 직전까지 직접적으로 묘사되긴 한다. 하지만 프랑코는 폭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인물에게 명확하게 가해진 사건을 불확실하게 표현하는 무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러한 선택을 한 것 같아 보인다.)

이러한 연출적 방법론은 폭력의 가시화에 대한 윤리적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프랑코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친구들에게 강제로 잘린 알레한드라의 머리카락과, 오물로 뒤덮인 그녀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영화라는 일종의 사회 실험을 만들고 우리에게 그것을 목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 팝엔터테인먼트

프랑코가 <애프터 루시아>를 통해서 무언가를 목격하게 하는 방식은 이례적이다. 목격을 넘어서 육체를 통한 체험을 일으키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 싸늘한 시선으로 사회와 역사를 관조하는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두 작가들의 영화를 떠오르게 만들지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프랑코는 상황을 만들고, 상황을 안고 있는 인물을 만든 뒤, 인물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만든다. 그리고 영화 속 인물과 우리를 '운반'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거리는 운전석의 로베르토와 뒷좌석의 우리라는 관계가 대변하고, 운반은 함께 타고 있는 차를 움직이게 하는 로베르토의 운전이 대변한다. <애프터 루시아>를 스크린과 우리의 '관계 맺기'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를 증명하듯 영화는 차를 운전하는 로베르토에서 보트를 운전하는 로베르토로 끝난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잃었고,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 과거의 후회를 응시하고 있던 카메라는 이제 미래의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다. 그럼에도 바다는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이제 로베르토는, 영화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로베르토의 보트에서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팝엔터테인먼트

애프터 루시아
After Lucia
감독
미셸 프랑코
Michel Franco

 

출연
테사 아이아
Tessa Ia
헤르난 멘도자Hernan Mendoza
곤잘로 베가 주니어Gonzalo Vega Jr.
타마라 야즈벡Tamara Yazbek
모니카 델 카멘Monica del Carmen
프란시스코 루에다Francisco Rueda

 

수입 토러스엔터테인먼트
배급 팝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12
상영시간 103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13.09.26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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