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세컨드' 단 1초만 볼 수 있는 것이 생긴다면
'원 세컨드' 단 1초만 볼 수 있는 것이 생긴다면
  • 이현동
  • 승인 2022.02.08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뷰] 그의 1초를 바라보는 우리의 1초라는 시간
ⓒ 찬란

위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장예모의 <인생>(1994)이 중국이 공산주의 정책을 처음으로 시작했을 때에 암담했던 사회·정치적인 상황을 한 개인으로 담담하게 풀어냈듯이,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기획된 <원 세컨드>(2020)는 인민에게 실패와 좌절을 안겨준 문화대혁명이 끝나기 이전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장예모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필름'이란 소재를 통해 풀어 놓는다.

<원 세컨드>는 장예모의 필름 메이커로서의 자전적인 이야기면서, 반복되는 역사의 시공간에서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삶의 의미를 관객들에게 따뜻하게 선사하는 영화이다. 이번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공간-이미지와 시간-이미지로, 그 가시적인 이미지가 즉물적으로 확장되면서 펼쳐지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사막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필름이라는 시대적 산물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작동함으로써 그 의미를 발견하도록 한다.

 

사막의 공간-이미지

<원 세컨드>(2020)의 시작을 알리는 사막과 초라한 형색의 남자의 발걸음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성을 설명하는 메타적인 기호다. 모래 사(沙)와 넓을 막(漠)으로 구성된 단어인 사막은 인간이 온전하게 존립이 불가능한 곳으로 불린다. 모래 입자들은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시각적으로 분간이 어려운 개체이면서, 바람과 같은 자연적인 이유로 유동성이 강하기 때문에 사막의 이미지는 불안과 공포를 야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빛과 어둠 속에서도 사막의 변화는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미묘한 장소로 느껴진다.

 

ⓒ 찬란
ⓒ 찬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 세컨드>에서 사막이 수미상관으로 서사를 구축하는 이미지로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영화에는 총 네 번의 사막 시퀀스가 등장한다. (1) 처음 노동교화소를 탈출한 것으로 예상되는 오프닝의 장주성(장이)의 등장 장면, (2) 장주성과 류가녀(류하오)가 필름 통을 놓고 사막에서 실랑이를 벌이면서 서로를 추격하는 장면, (3) 장주성이 마을에 소란을 일으키고 교화소에서 탈출했다는 이유로 경찰들에게 잡혀가는 장면, (4) 마지막으로 잡혀가는 과정 중에서 사막에 떨어진 필름을 장주성과 류가녀가 사막으로 다시 찾으러 갈 때의 장면이다. 사막/마을로 도약하는 이 네 번의 쇼트들 사이에는 생애의 반복 속에서 발화되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들로 활용된다.

장주성은 중화 뉴스에서 나온다는 자신의 딸을 보기 위한 일념, 류가녀는 동생이 실수로 친구의 필름으로 만든 전등 갓을 훼손한 것을 복구하기 위한 이 여정은 사막의 경로를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원 세컨드>는 필름을 찾는 영화이면서, 필름이 이동하는 경로인 사막이 형성하고 있는 장예모의 '가족' 혹은 '인생'이라는 서사로 회귀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주성이 노동교화소에서 보낸 2년이 세월이 지나 사막에서 놓치고 만 필름을 발견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류가녀와 함께 웃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도리어 그들에게 체화된 건 필름이란 사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화 뉴스와 영웅아녀의 시간-이미지

필름의 역사는 영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필름으로 구성된 영상 매체는 디지털 문명에서 관측되지 않는 물질적인 이미지로 시간-이미지를 대표한다. 또한 디지털의 문명에서 상영되는 흑백의 영상물을 보고 있는 관객은 그 시간성을 체감하는 모종의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시간의 궤적 속에서 '영화'에 환호하고 있는 관객들의 표정은 우리의 표정과 별다른 것 없는 가시적 정취이다. 이것은 영화가 가진 특권적인 요소임은 틀림없다. 처음 영화라는 것을 영화관에서 보았던 떠올려보면 더욱 그러하다. <원 세컨드>에서 필름의 성분에 할당된 시간-이미지는 그 필름의 내용물이 어떠한 것인지로 더욱 명확하게 판별할 수 있다. 영화에서 '중화뉴스'와 '영웅아녀'라는 두 종류의 내용물이 표상하는 공통점은 국가를 선전하기 위한 선전물이라는 점이다. 어떤 영화는 프로파간다의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물을 때, 상대적으로 불온하게 느껴지는 것은 소거할 수 없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 찬란
ⓒ 찬란

그러나 이 두 영상에는 본디 의미가 내재해 있는데, 먼저 미국에 맞서 싸우는 중국 인민지원군을 통해 국가주의적 사상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영웅아녀>(1964) 같은 경우는 이전에 원작이 되는 바진의 소설 '단원'에서 부녀 상봉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는 점과 <원 세컨드>에서 장주성의 노동의 주체가 된 딸의 모습이 담겨 있는 중화 뉴스를 통한 또 다른 가족 상봉은 분명 동일한 매개로 전시되는 주제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필름, 영화라는 소재를 메타적으로 보면 이것은 장예모의 기억의 재현인데, 그의 영화에 대한 애정과 마을 한편에 자리 잡았던 영화관에 기억들 때문이다. 실상 그는 전문적으로 영화를 배운 사람이 아니었다. 촬영, 현상, 인화, 약품, 처리에 관한 모든 것을 스스로가 터득했고, 필름이 손상되거나 더러워졌을 때 물에 씻거나 얼룩 없이 또는 약품 처리를 통해 어떻게 복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흔적과 경험들이 <원 세컨드>에 녹아있다.

12미터나 되는 필름을 복구하기 위해 영사기사인 판영화(판웨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는 장면은 과거를 투영하는 것 외에도 영화에 대한 애착이 사람들을 어떻게 결속시켰는지를 반영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원 세컨드>의 제목은 시간을 충실히 관통하는 제목으로 제시된다. 중화 뉴스에 등장하는 딸의 모습은 고작 1초의 시간뿐이기에 그 1초를 다시 보기 위해서 장주성은 영사기사인 판영화에게 10번, 100번이라도 반복적으로 영상을 틀어달라고 요청한다. 그의 1초는 가장 애절한 영화적 순간이기도 하고, 그 자신에게 있어 숭고하고 귀중한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1초를 다시 보는 장주성의 뒷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장주성이 거쳐 온 공간과 시간은 우리에게도 동시에 영사되는 장면이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 우리의 표정과도 닮았다. 필름이란 사물은 분명히 사막이란 유동적인 공간에 묻혀 그 형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소실된 과거일지라도, 카메라의 기원인 옵스큐라(Obscura)가 그 의미의 자리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각자가 간직하는 영화적 세계는 동일한 인장으로 기억에 새겨져 있을 것임은 틀림이 없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마지막 웃음을 잊지 못한다. 허무하거나 공허한 웃음이 아닌 희락이 담겨 있는 그 웃음을.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찬란

 

원 세컨드
One Second
감독
장예모
Zhang Yimou

 

출연
장역
Yi Zhang
류호존Haocun Liu
범위Fan Wei
여애뢰Ailei Yu

 

수입|배급 찬란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3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1.27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