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라운드' 술의 꿈, 춤의 꿈
'어나더 라운드' 술의 꿈, 춤의 꿈
  • 이현동
  • 승인 2022.01.2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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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술의 윤리, 그 역설적인 가능성의 전조속에서"

"디오니소스 축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유대를 맺어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화해시킨다. 땅은 자발적으로 선물을 내놓고, 가장 광포한 야수들마저도 평화롭게 서로 가까워진다. 표범과 호랑이들은 꽃으로 장식한 디오니소스의 마차를 끈다. 궁핍과 자의가 인간들 사이에 그어놓았던 세습적 신분과 같은 경계들은 사라진다. (중략) 노래하고 춤추면서 인간은 스스로를 좀 더 높은 이상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이라고 천명한다."(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70, 1873) 디오니소스적 세계관, 비극적 사유의 탄생 외』 中, 이진우 옮김, 책 세상, 2020.)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으로 풍요를 관장하고, 포도재배와 관련되어 있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에게 술은 예로부터 광란적인 종교적 의식을 위한 도구로 사용됐지만, 점차 술은 하나의 문화로 축제와 식탁 등의 모임문화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왔다. 술의 기원이 인류의 역사와 그 걸음을 동행했던 것만큼 술에 대한 명시적인 정의를 할 수 없을 만큼의 담론들이 축적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술의 '좋음'과 '나쁨'이란 각기 다른 규정들 가운데 가장 무난하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적당히'일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적당히가 가능할까라는 질문. 두 번째로 적당히란 기준이 무엇일까라는 질문. 세 번째로 적당히를 넘었을 때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

 

ⓒ 엣나인필름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어나더 라운드>는 이 질문들을 서슴없이 관통하면서 그 적당히란 너머에 있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으로 도래한다. 더 나아가 관습적으로 자행되던 술에 대한 담론을 현상학적인 의미에서 재구축하려는 유쾌하면서 비범한 영화이기도 하다. 현상학적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의미의 탈 규범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 사유하는 의미가 끊임없이 어떤 대상에 의해 분열과 교란의 과정을 거쳐 정의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영화적인 의미에서 시각적이며 물리적인 형태, 혹은 경험에 의해 지속해서 분화되는 (의미) 개념들의 집합이 생성되는 것이다.

토마스 빈터베르그는 도그마 95 시절의 첫 번째 작품인 <셀레브레이션>(1998)을 시작으로 그가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던 영화가 '형식'이 아닌 주제의 가능성이라는 점을 주목해 본다면 <어나더 라운드>는 가족이란 형태의 가능성을 실험했던 <사랑의 시대>(2016)와 유사성을 띠고 있다. 0.05%의 혈중 알코올 유지하면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가설을 실험하면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4명의 배우들의 처치에 따라 가변적으로 삶에 용해된다. 술은 가시적인 액체이자 취함이라는 가시적인 형태로 인간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근원적이며 원초적인 실존이란 물음에 답을 준다는 점에서 술은 유의미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술의 시작과 끝

덴마크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연령은 16세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고등학교 진학 후에 자연스럽게 음주문화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학생들의 광란적인 술 문화를 시각화하는 오프닝과 학생들의 졸업과 동시에 선생님들과 함께 축하하는 엔딩 시퀀스는 나이 혹은 위계라는 경계, 술에 대한 관념적이며 물질적인 경계가 허물어지는 희락의 축제를 기술한다. 이러한 희락은 개인과 공동체의 궁극적인 이상향이자 감독의 처지를 메타적으로 투영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술은 나이 듦으로 인해 도래하는 삶의 상실감을 억제하는 기제가 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은 <어나더 라운드>를 구현하는 동력이자 동기다.

 

ⓒ 엣나인필름

한 학교에서 친구로 함께 근무하는 4명의 교사인, 마틴(매즈 미켈슨), 토미(토마스 보 라센),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 피터(라스 란데)는 학생을 지도하는 일과 가정을 돌보는 일이라는 두 가지의 생활에 존재하는 무기력함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마틴은 야간 근무를 하는 아내인 아니카(마리아 보네비)와 부부 사이의 친밀한 소통이 힘든 상황으로 서로 간의 권태에서 마땅한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상태다. 또 그가 무기력한 상태에서 학생들과 원활한 소통이나 수업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서 그들과의 불신은 계속해서 커져만 간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으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술'이다. 술은 그들의 삶의 온도를 뜨겁게 만들기 시작한다.

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몸의 변화이다. 얼굴 혈색에는 탐스러운 선홍빛이 깃들고, 얼굴근육은 이완되어 굳어졌던 인상이 해동된다. 이러한 효과는 술이란 촉매제가 삶의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지시하면서 증발되어 있었던 젊음이란 에너지와 접합한다. 선생님(노화)과 학생(젊음)과의 관계는 이를 코드화하고, 중의적인 술의 이미지 속에서 <어나더 라운드>는 술의 '시작'과 '끝'의 그 과정에서 인생의 의미를 탐문하며 우리의 감각에 용해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 실험은 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술의 의미는 중첩된다. 총 세 단계의 실험 속에서 알코올의 강도는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면서 술이 그들의 삶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드러낸다.

 

ⓒ 엣나인필름

술과 함께 마지막 춤을

<어나더 라운드>는 본래 알콜이 없는 인생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단순히 '술'에 대한 찬가를 주제로 기획되었지만,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딸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술로 활력을 얻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내용으로 선회했다. 아니. 어쩌면 '보충했다'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술로 얻게 되는 삶의 탄력은 모임이 거듭해갈수록 그들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휘발되는 것임이 드러난다. 그 휘발성의 종국에는 토미의 죽음으로 연결되지만, 공교롭게도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친구들과 학생들의 졸업식축제로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마틴의 춤이다. 극중 마틴은 젊은 시절, 재즈 댄서로 친구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영화에서 공공연히 이야기되면서도 춤시위를 선보이는 건 오직 마지막 장면뿐이다. 마틴을 연기한 매즈 미켈슨이 젊은시절에 댄서였다는 것은 이를 메타적인 차원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도 하는데, 이는 배우 자신의 젊음에 관한 투영이면서 감독 자신의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딸을 향한 자신의 고백이기도 하다. 이는 <어나더 라운드>의 주제를 명증하게 선언하는 장면이다. 필자는 이 장면에서 그가 딸의 죽음을 의도하면서 촬영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술의 찬가에서 은폐되어 있던 인생이란 주제를 발견한 건 아이러니하게 딸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그의 춤은 영화의 톤을 불가시적인 성질로 위치된다.

이전에 잠시 언급했던 <사랑의 시대>에서 시도했던 공동체 가족이란 실험이 결국에 이상적인 성공을 거둘 수 없었지만, 그 공백 사이에서 점멸하는 '희망'을 모색할 수 있었듯이 <어나더 라운드>의 끝에 원인을 판별할 수 없는 토미의 죽음 속에서 춤을 출 수 있는 것은 그가 정의하는 희락의 총체는 결국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필연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니체가 말한 초인(Übermensch)이 바로 토마스 빈터베르그 자신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그렇게 술처럼 발효되는 것 같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엣나인필름

어나더 라운드
Another Round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Thomas Vinterberg

 

출연
매즈 미켈슨
Mads Mikkelsen
토마스 보 라슨Thomas Bo Larsen
라스 란데Lars Ranthe
마그누스 밀랑Magnus Millang
마리아 보네비Maria Bonnevie
헬렌 레인가드 뉴먼Helene Reingaard Neumann
수세 볼드Susse Wold
알베르트 루드베크 린드하르트Albert Rudbeck Lindhardt
마르틴 그레이스-로젠탈Martin Greis-Rosenthal
프레데리크 빈테르 라스무센Frederik Winther Rasmussen

 

배급|수입 엣나인필름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16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1.19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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