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잔칫날' 밸런스를 통하여 극대화되는 아이러니
[신년기획] '잔칫날' 밸런스를 통하여 극대화되는 아이러니
  • 선민혁
  • 승인 2022.01.3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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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예술영화 비평 특집 ③

신년기획 <코아르CoAR> '한국 독립·예술영화 비평 특집' 세 번째는 김록경 감독의 <잔칫날>이다. 선민혁 기자는 작품을 보기 전 트레일러를 통해 느꼈던 '인상'을 중심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그가 쓰는 영화의 순간순간은 그의 인상을 설명하는 근거이자 영화의 핵심특징을 설명하는 주요한 장면들이다. 그의 글은 자신의 인상에서 비롯된 시선을 섬세히 적어가며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는 좋은 작품인지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하려는 듯 스스로 검열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함에 피력하는 묘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건 분명 자신이 쓰는 이 영화에 대한 강한 '확신'에서 비롯된다. 신기하게도 인상에서 확신으로 굳어지는 이 글의 맥락은 우리가 영화를 볼 때 특정 장면이 좋다고 느끼는 것처럼 익숙하면서도 분명 색다르게 다가온다. [편집자 주]

보통의 극장에서는, 표에 적힌 상영시간보다 10분 늦게 영화가 시작된다. 그전까지는 광고를 상영한다. 나는 이 광고를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입장이 허락되는 시각이 되자마자 상영관에 입장하곤 한다. 이외의 광고들도 재미있지만, 개봉 예정인 작품들의 예고편을 보고 있으면, 기대가 되는 작품들이 많다. 앞으로 봐야 할 영화가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들게 만든 모든 영화를 챙겨보진 않는다. 극장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달라 잊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칫날>의 예고편은 잊히지 않았다. 예고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대략적인 스토리이다. 가족 중 한 명을 잃어 장례를 치러야 하는 주인공 남매가 있고, 남매 중 오빠는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장례를 치르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러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오빠는 MC를 직업으로 삼고 있고, 하필 장례 도중 받게 된 일은 잔치를 진행하는 일임을 추측할 수 있다. 뻔하지만 어느 정도 영화의 '준수함'을 보장하는, 실패하기 어려운 소재라고 생각했다. 조사를 치르기 위해 경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설정 자체에서 이미 흥미로운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었다.

예고편을 통해 이 영화를 '좋은 작품'이라고 느낄 확률이 높다는 판단을 마친 나는 <잔칫날>을 관람했다. 그리고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 이상이라고 느꼈다. 트레일러를 보며 자연스럽게 예상했던 것들뿐만 아니라 의외의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트리플픽쳐스

최근 한국 독립영화에서 드러나는 공통적인 특징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억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자주 꺼내어 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잊지는 않고 있던 일상의 순간들에 대한 생생한 재연이다.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지만 기억 한편에 공고히 자리 잡고 있는 유년시절의 어떤 순간들을 절묘하게 재연하는 <남매의 여름밤>(2020)이나, 부모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가족의 해체에 대한 불안을 품기도 하고, 그것에 대해 이상하게도 용감한 태도를 가지던 기억을 상기시키는 <우리집>(2017)처럼 <잔칫날>은 관객들이 갑자기 찾아온 비일상적인 사건 속에서 겪어 보았을 만한 사소하면서도 모순적인 순간들은 절묘하게 재연한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비현실적인 사건은 생각보다 현실적인 것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조문을 온 친구들은 조의금으로 얼마를 낼 것인지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들을 통해 결론을 도출한다. 그들은 상을 당한 친구를 위로해주고 식장을 지키며 카드놀이를 한다. 상주의 사촌형제는 애도를 표하다가 고인이 남긴 채무 문제에 대해 처리를 요구하며, 아버지의 남매들은 오열을 하다가도 금세 멀쩡해져 조카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그러다가도 금방 다시 곡소리를 낸다. 장례식이라는 상황이 일차적으로 풍기는 분위기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 풍경들은 오히려 현실에서 본 것만 같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비현실적인 사건이 일어나도, 현실에서 변하는 것은 없기에 경만(하준)은 일을 하러 가야 한다. 장례비가 없어 고민하던 중, 일자리가 생겨 여동생 경미(소주연)에게 장례식장을 맡기고 사천의 시골 마을로 떠난다. 한 할머니의 팔순 잔치를 진행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초상을 치르기 위해 잔치를 진행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것인데, 아이러니는 단지 이러한 설정에서 그치지 않고 이어진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맞고 슬픔에 빠질 시간도 없이 일을 하러 온 경만은 누군가를 웃게 만들어야 한다.

 

ⓒ 트리플픽쳐스

팔순 잔치의 주인공 할머니는 남편이 죽은 뒤로 웃음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었고, 행사를 주최한 그녀의 아들이 경만에게 어머니를 웃게 만들어주면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경만은 할머니를 웃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아들의 부탁대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옷을 입고 춤을 추기도 한다. 결국 경만은 할머니를 웃기는 데에 성공한다. 경만은 이제 행사를 잘 마무리하고, 일당을 챙겨 남의 어머니가 아닌 자신의 아버지에게 돌아가면 되는데, 문제가 생긴다. 웃음을 되찾은 할머니가 쓰러져 버린 것이다.

할머니는 급히 병원에 가게 되고, 경만은 행사비를 받지 못한 채 일단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경만은 행사비를 받고 떠나려 하는데 마을 청년회장은 행사를 끝까지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비만 주려 하고, 그 와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까지 듣게 된다. 잔칫집은 초상집이 되어버리고, 급기야 마을 사람들이 경만에게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하면서 갈등은 심화된다.

행사비를 못 받을 상황에 놓이고,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누명까지 쓸 위기에 놓인 계속해서 꼬이고 꼬이는 경만의 스토리에 관객들은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아버지의 장례를 잘 치르기 위해 남의 어머니를 축하하는 잔칫집에 가서 슬픔을 감추고 남을 웃기는 일을 하다가, 그 잔칫집이 초상집이 되어버리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인물로 비춰졌던 동네 바보가 꼬였던 일을 해결하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아이러니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 트리플픽쳐스
ⓒ 트리플픽쳐스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은 친구들이 카드놀이를 하는 모습, 오열을 하다가도 금세 멀쩡해졌다가, 또다시 곡소리를 내는 친척들. 이런 장면들이 현실을 보는 것만 같게 한다면, 초상날 잔칫집에 가야하고, 그 잔칫집이 초상집이 되어 사람들과 갈등하게 되는 장면들은 현실에서 볼 법한 것들은 아니다. 그런데도 <잔칫날>에서 작위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이 영화가 밸런스를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에 대한 것이든,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것이든, <잔칫날>은 밸런스를 잘 맞춘다.

<잔칫날>은 자본의 차가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나, 그것이 극악무도하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러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어야 하는 잔인한 상황을 연출하지만, 금전을 통해 위로와 격려가 전달되는 장면 또한 포함한다. 영화는 언뜻 보면 인간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문을 와서 조의금을 계산하며 상주의 슬픔에 무정한 채 카드놀이를 하며 상주의 친척에게 애인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친구들의 모습, 이런저런 참견을 하며 상주 자매를 고통스럽게 하는 친척들의 모습, 할머니를 웃기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성공한 경만을 의심하고, 누명을 씌우려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

 

ⓒ 트리플픽쳐스

하지만 <잔칫날>은 인간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적인 면 역시 이야기한다. 자신의 어머니가 죽음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만에게 곤경에 빠지게 만들어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어머니를 웃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감사를 표하는 잔칫집의 아들 일식(정인기)과 오해를 한 것에 대해서 사과하고 경만을 장례식장에 데려다주는 마을 사람들, 함께 온 다른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뒤에도 며칠간 식장을 지키며, 경만에게 따로 위로를 건네는 친구 성현(박건규), 서로를 이해하며, 위하고 의지하는 경만, 경미 남매의 모습이 그렇다.

우리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고 싶어하고 현상에 대한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내고 싶어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어떤 현상에 대한 원인은 한가지가 아니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정확하게 나누기 어렵다. <잔칫날>은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하면서도, 세계의 모호함이라는 본질을 인지한 채로 서사를 전개해 나간다. 그 결과, 영화의 이야기는 현실의 여러 장면들을 보는 듯 자연스러워진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트리플픽쳐스

잔칫날
Festival
감독
김록경

 

출연
하준
소주연
오치운
이정은
정인기
김자영
안민영
황재열

 

제작 스토리텔러 픽처스
배급 트리플픽쳐스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8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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