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허구는 어떻게 진실의 자리를 대체하는가
'프랑스' 허구는 어떻게 진실의 자리를 대체하는가
  • 김민세
  • 승인 2022.01.2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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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로서의 언론, 성찰로서의 영화"

"영화는 점점 더 환상에 접근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판타스틱이 실제로는 현실 전체라는 것을 언제나 더 잘 깨닫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판타스틱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클레망 로세, 『특별한 대상』, p.52)

언론이라는 사회적 지위에 항상 따라오는 것은 진실이라는 책임이다. 동어반복일 수도 있겠지만 언론의 궁극적 목표와 존재 이유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혹은 집중하지 못하는 현실에 빛을 비추어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언론은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을 만들어낸다. 부패한 언론의 조작 행위 같은 극단적 경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언론은 현실의 다양한 상황들 사이에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에는 가치 개입적인 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언론이 말하는 것에 대한 관건은 진실이 아니라 시선이며 관점이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매체로서의 영화에도 그대로 대입될 수 있다. 영화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든 현실을 재현하거나 반영하고 그것에서 진실의 순간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그 목표를 구체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객으로서의 동일시 이전에 객관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영화 또한 허구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나아가 진실인 척하는 허구이다. 그러므로 진실에 닿지 못하는 언론의 이면을 들추려는 영화는 실패한다. 영화 매체 자체가 허구라는 요소로 세워져 있다는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그렇다면 영화감독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영화 속의 허구를 은폐할 것인가, 인정하고 드러낼 것인가. 당연히 이 문제가 양자택일의 상황으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며 개별 영화는 그 질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답이 존재할 것이다. 그중 브루노 뒤몽의 <프랑스>는 영화라는 매체의 허구와 환상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허구를 통해 진실을 비춘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 철학자 클로망 로세의 말을 조금 뒤틀어서 <프랑스>의 영화적 방법론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점점 더 허구에 접근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허구가 실제로는 진실 전체라는 것을 언제나 더 잘 깨닫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허구(영화)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프랑스>의 주인공 '프랑스'(레아 세이두)는 모든 국민이 아는 프랑스의 저명한 기자이다. 영화는 프랑스의 위선적인 행동들과 취재 영상을 인위적 연출로 조작하는 모습들을 따라가면서 언론의 실체를 드러내는데 주목한다. 그러다가 영화는 이상한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프랑스가 실수로 오토바이 운전자를 차로 치는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그때부터 프랑스는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다가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알프스 일대로 요양을 가게 된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라틴어 교수로 위장한 기자와 사랑에 빠진다.

<프랑스>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요양원이라는 장소에서는 절묘한 방식으로 허구적 기호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프랑스가 요양원의 자리에 앉아 쉬고 있을 때 한 노파가 다가와 수년간 요양을 온 이곳에서 유명인사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바로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독일 총리와 미국의 유명한 가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파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진 못한다. 카메라 또한 그들이 누구인지는 확인 불가능하게 촬영한다. 아마 닮은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고, 실제 그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의료진들이 와서 치료 시간이라며 그 노파를 데려간다. 이것이 뒤몽이 이야기하는 허구와 진실의 농담이다. 노파의 주장은 진실이었을까. 다른 말로 바꾸어 보자면 '헛것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

 

ⓒ 엠엔엠인터내셔널

위장한 기자인 카스트로(엠마누엘 아리올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를 카메라 뒤에 은밀하게 숨겨두었다가 나타나게 하는 방식으로 담는다. 정체가 밝혀진 카스트로가 다시 나타날 때 프랑스는 '헛것을 보는 걸 거야'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카스트로가 프랑스의 집에 직접 찾아오는 장면에서는 그의 등장에 대한 어느 맥락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마치 유령처럼 프랑스의 주위를 맴돈다. 극단적으로 말해보자면 카스트로는 허구와 판타지의 상징이다. 판타지의 침투, 또는 미디어라는 헛것.

나아가 <프랑스>는 프랑스가 취재 영상을 즉흥적으로 연출하는 모습들을 통해 허구가 진실을 대체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방송영상을 연출하는 모습이 마치 영화의 촬영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프랑스가 취재 영상을 만드는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먼저 프랑스 자신과 취대 대상의 인터뷰 과정을 투샷으로 촬영한다. 인터뷰가 종료되면 그녀를 정면으로 담을 수 있도록 카메라의 위치와 앵글을 조정한다. 그리고 그녀는 카메라를 마주 본 채 조금 전에 했던 질문을 독백으로 반복한다.

이는 영화 현장에서 장면의 전체 시간을 기록하는 마스터 샷과 주목할 대상의 일부분만을 기록하는 커버리지를 촬영하는 모습과 닮았다. 이것은 일상에서의 연기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방송이라는,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대리하는 카메라는 대상을 대체하기 때문에 주체는 대상 없이 허구의 대상을 상상해야 한다. 그리고 방금 했던 말들을 기억을 잃은 듯이 똑같이 반복해야 한다. 이것은 오즈 야스지로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상대방의 부재를 전제로 하는 분절된 쇼트의 연결을 통해서 탐구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진실이 반복될 때, 허구가 그 사이로 침투한다. <프랑스>는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의 허구성을 노골적으로 외면화하고 성찰한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그 외에도 <프랑스>는 허구가 현실 너머로 스며들어 현실의 소통이 실패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집에서 돌아왔음에도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것. 아침 출근길에 사람을 치는 사고를 내는 것. '좌파인가 우파인가' 같은 의미심장한 질문이 제대로 된 대답 없이 수수께끼로만 남게 되는 것. 그 이유는 바로 아들의 시야를 막는 스마트폰, 아들의 청각을 막는 헤드폰, 질문자의 신경을 빼앗는 전화라는 미디어가 현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재 한다고 여겨지는 허구의 헤게모니가 프랑스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단초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얼굴, 프랑스의 눈물은 진실일까 허구일까. 만약 그것이 위선적인 연기라면 방송 카메라 밖에서는 왜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눈물을 흘리는 프랑스에 대해 사실 여부를 따질 수는 없다. 과연 무엇을 답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프랑스의 눈물은 모순의 얼굴, 허구의 얼굴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서 진실을 읽어낼 수 있다면, 카스트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눈물을 흘리는 프랑스의 엔딩처럼, 결국 우리는 허구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프랑스>는 세계의 부조리와 영화라는 허구에 대한 기이한 탐구이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엠엔엠인터내셔널

프랑스
FRANCE
감독
브루노 뒤몽
Bruno Dumont

 

출연
레아 세이두
Lea Seydoux
블랑슈 가르댕Blanche Gardin
벤자민 비올레이Benjamin Biolay
율리아네 쾰러Juliane Kohler
엠마누엘 아리올리Emanuele Arioli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33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1.13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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