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표정의 영화, 존재의 영화
'프랑스' 표정의 영화, 존재의 영화
  • 이현동
  • 승인 2022.01.1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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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프랑스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프랑스>(2021)의 트레일러를 보며 레아 세이두가 연기한 기자 '프랑스 드뫼르'와 동일한 직업을 가진 <나이트 크롤러>(2014, 댄 길로이) 속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렌할)이 떠올랐다. 위험천만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특종이 될 만한 사건들을 취재하는 그들의 욕망과 광기는 시각적으로 중첩되어 있지만, 한편으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적인 측면에서 분명한 차별성을 두고 있다. 가족과 단절된 루이스 블룸은 단독적으로 행동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언론계에서 슈퍼스타이자 한 가정의 어머니인 프랑스는 그와 같이 단독적으로 행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제목으로부터 <프랑스>는 모종의 장르적인 범용성을 획득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뒤몽이 추구했던 인간성이라는 테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주제는 압축된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먼저, 프랑스 국적을 지닌 브루노 뒤몽의 정체성과도 결속되어 있는 <프랑스>라는 제목에서 대중들은 어떤 장르를 연상할 수 있을까? 보통은 역사, 정치, 사회 비판 드라마 등등의 관행적으로 생산되는 주제를 연상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은 무엇이든 가능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이를 관통하는 그 구심점에는 그가 구축하는 부르주아 문화, 모더니티, 덕과 비도덕의 경계를 횡단하는 인간성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또 이민자들, 좌파와 우파, 실재와 허구라는 유형과 무형의 관계를 지시하는 이 영화는 브루노 뒤몽의 작품에서 발견하게 되는 (행위)모순적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논구로 서사의 방향과 결말을 지칭하며 전진한다.

브루노 뒤몽을 대표하는 작품인 <휴머니티>(1999)에서 그의 관심은 명확하게 측정되는데, 강간된 후 살해된 어린 소녀의 범인을 체포해야 하는 시골 경찰관 파라온 드윈터(엠마누엘 쇼테)에게 닥쳐오는 모순은 친구인 조셉이 이 일을 행했다는 사실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 파라온은 체포된 조셉을 심문하지 않고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에게 입을 맞춘다. 이러한 행위는 마지막 쇼트에서 드러나는 그의 표정에서 어떤 의미를 함의하는데, 그의 표정에서 감정의 행방을 알아챌 수 없는 유보적인 상태로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미묘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다시금 무표정으로 전환될 때에 체감하는 당혹감이라는 건, '인간이란 존재가 결국 해석 불가능성, 비가시적인 영역에 있음'을 대중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으로 감독의 의도를 표출한다.

<프랑스>에서 마찬가지로 프랑스에게 닥쳐오는 역설적인 상황 가운데, 파라온의 얼굴에서 관측되었던 동일한 인간성을 그녀에게도 발견하게 된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레아 세이두와 프랑스

세계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는 레아 세이두의 <프랑스>는 후기 브루노 뒤몽의 영화들 중에서도 배우의 의존도가 높은 작품이다. 그의 초기의 영화들이 무명 배우를 기용한 자연 주의적이면서 관습에서 벗어난 영화를 기획하는데 주력했다면, 줄리엣 비노쉬와 작업한 <까미유 끌로델>(2013)부터 유명 배우와의 작업을 꺼리지 않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영화 언어를 구축하는 분기점이 된다. 흥미롭게도 <프랑스>에서 레아 세이두와의 컨택은 브루노 뒤몽이 의지가 아닌 오로지 그녀가 감독의 작품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뒤몽은 그녀와 만남을 가지면서 그녀가 가진 이미지만을 고려하여 시나리오를 기술했다.

'레아 세이두의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이미 배우로 각인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뒤몽이 주력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스타성 속에서 잠재하고 있는 다채로운 가능성들을 확장할 수 있다는 지점이다. 더 나아가 이 영화가 프랑스라는 국가에 존재하는 미디어에 대한 비판으로 소급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일정 부분은 그 대답을 허용한다 할지라도(레아 세이두가 프랑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는 점도 이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프랑스>는 시각적 형태의 두 층위인 실재와 허상이라는 이미지로부터 인간의 가변성을 응시하는 영화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레아 세이두는 스타성과 미디어의 관계 속에서 번민하면서 어떤 결정이 그녀에게 구원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디제시스, 그 실재와 허상을 판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국내 개봉한 래드 리 감독의 <레미제라블>(2019)이 프랑스의 이민자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의 순환 구조를 직관적인 방식으로 고발하고 해체했다면, 브루노 뒤몽의 <프랑스>(2021)는 ‘카메라’라는 특정한 장치로부터 영화적 체험이라 일컬을 수 있는 디제시스(diegesis)를 통해 한 개인의 이미지를 프랑스로 대입하며 추적해낸다. 여기서 디제시스란 미메시스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고전주의적 ‘모방’ 혹은 ‘재현’이 아닌 감독의 주관적인 의도가 영화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감독이 의도적으로 구상한 시각적인 정보를 부여받은 대중들은 기호를 감별하는 감별사가 되고, 그 안에 내재된 여러 지향성들을 발견하며 그 가치를 자신의 경험과 융합하는 방식의 감상이 바로 디제시스이다.

우선 <프랑스>에서 시각적 이미지는 두 가지의 기호로 직관적으로 감별된다. 그것은 진실과 허상이라는 기호들에 의해서다. 브루노 뒤몽이 한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마크롱 대통령의 등장'은 이를 의도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장치로 위치하는데, 사전에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허가를 받고 3시간 동안 이를 지켜본 뒤에 2년 전에 실제 회견 장면과의 편집을 통해 허구가 진실이 될 수 있음을 밝히는 장치로 활용된다. 실재와 허상을 연결하거나 분쇄하는 역할을 하는 건 다름 아닌 뉴스이다. 뉴스는 실재이기도 하고 반대로 허상이 될 수 있는 매체로 묘사된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왜 늘 당신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죠?"라고 묻는 앵커에게 프랑스는 자신의 스타일이 감상적인 접근이며 주관적인 것이라 말한다. 이것은 감독이 미디어를 향한, 아니 정확히는 카메라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보고이다. 민병대를 촬영하는 프랑스와 그녀의 촬영팀은 어떻게 하면 이 영상이 대중들에게 인상적으로 남을지를 고민하며 촬영한다. 사건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 대중들도 주관적이며 감정적인 체험의 영역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핸드 헬드를 강조하는 쇼트가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러한 연출이 픽션임이 발각되는 순간은 난민들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거짓말이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경험하기 위해 난민과 함께 배를 탄다는 보도와는 다르게, 프랑스는 다른 배로 갈아탄다. 이 극적인 영상이 보도되는 도중에 그녀와 매니저는 그들을 향한 조롱을 하다가 실수로 그 목소리가 나가면서 일파만파 대중들에 의해 이 허구의 세계는 파괴된다. 이러한 허구적 세계는 집단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다. 또 요양을 할 명목으로 떠난 장소에서 만나게 된 자신을 라틴어 교수로 소개한 한 남자와의 불륜에서도 그의 정체에서 드러나는 허상은 그녀를 공격한다.

<프랑스>에서 ‘자본주의란 타인에 대한 자신의 선물이다’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유물론적 세계관에 은폐되고 있는 부르주아 문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감독의 시선을 적확하게 드러내는 문장이다. 이는 그녀의 명성이 고조될 때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장애가 있는 부인과 직업이 없이 실업수당으로 삶을 전전하는 남편의 가정에는 사고를 당한 아들뿐이다. 그들의 사정을 듣고 프랑스는 물질적인 보상을 하게 되는데, 이는 실제로 프랑스에 존재하는 이민 문제에 대한 실례를 자본과의 연관성 속에서 논구하게 된다.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러한 보상은 선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뒤몽은 <프랑스>에서 국가적으로 프랑스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정치적인 논의로 영화를 종결하지 않는다. 프랑스라는 '국가'가 갖고 있는 사회적 담론에 대한 흔적들을 남겨두면서도 프랑스라는 '개인'이 겪고 있는 카오스적 세계에서 그녀의 표정만이 그 실체를 기호로 남겨둘 뿐이다. 그녀의 가족의 비극적인 죽음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프랑스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불륜 상대이자 그녀의 믿음을 배신했던 기자였음을 상기한다면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휴머니티>에서 파라온의 표정을 동시에 프랑스에게서도 관망하게 되는 표정의 영화, 뒤몽의 말대로 존재의 영화가 된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엠엔엠인터내셔널

프랑스
FRANCE
감독
브루노 뒤몽
Bruno Dumont

 

출연
레아 세이두
Lea Seydoux
블랑슈 가르댕Blanche Gardin
벤자민 비올레이Benjamin Biolay
율리아네 쾰러Juliane Kohler
엠마누엘 아리올리Emanuele Arioli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33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1.13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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