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당연함' 너머, 그 사랑 이야기
누군가의 '당연함' 너머, 그 사랑 이야기
  • 홍상현
  • 승인 2022.01.10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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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초청작 <둘만의 세계> 이이즈카 카쇼 감독
「둘만의 세계」는 트랜스젠더 신야와 파트너 유이의 10년에 걸친 러브스토리를 그린 작품이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둘만의 세계」는 트랜스젠더 신야와 파트너 유이의 10년에 걸친 러브스토리를 내용으로 하는 작품이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2015년 11월 파리 경제대학원 팀과 공동프로젝트를 하는 연구실에서 바쁘게 지내던 시절, 아침저녁으로 오가던 전차역 앞 빌보드가 무지갯빛으로 칠해졌다.

시빌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 실시.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키고 차별을 금지하는 공적제도를 도임, 독자적인 증명서(파트너십 증명서)를 발행함으로써 이성간 혼인에 준하는 행정ㆍ민간서비스를 제공받도록 하는 정책. 1989년 덴마크에서 첫 선을 보인 이 시스템은 당시까지만 해도 생경하던 용어인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및 관련 인식을 높여주는 데 기여했지만 '준하는'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이성간 혼인에 따르는 다양한 권리까지 보장해줄 수 없던 까닭에 성소수자의 포괄적인 권리 보호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7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 필자가 이이즈카 카쇼 감독과 대화를 나누며 맨 처음 느낀 감정이 '부끄러움'인 이유도 바로 이 대목과 이어진다. '다 해결된 거지?'라고 믿고 있던 안일함.

한계는 고사하고 애초에 건드리지조차 못한 문제도 있었다. 예컨대 트랜스젠더인 이이즈카 감독이 법률적으로도 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동일성장애(GID) 진단을 받아야 하며, 국가가 정해놓은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 중 대표적인 항목이 "생식선이 없을 것. 또는 생식선의 기능이 영속적으로 결여된 상태에 있을 것." 강제화된 외과적 수술. 혹자는 당연하다 생각할지도 모르는 이 규정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신체의 자기결정권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WHO 등에서도 강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UN의 경우 2013년 따로 특별보고까지 진행했다.

 

세 번째 장편독립영화 「둘만의 세계」로 SIPFF를 찾은 이이즈카 카쇼 감독. 만 서른 한 살의 청년감독인 그는 여성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세 번째 장편독립영화 「둘만의 세계」로 SIPFF를 찾은 이이즈카 카쇼 감독. 만 서른 한 살의 청년감독인 그는 여성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대체 너희들만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하는 신경질적인 반응도 나올지 모르지만 생각해보자. 정체성이란 단지 생물학적 요소에 좌우될 수 없는 자유의지의 문제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조정과정조차 없었던 정책의 의학적 개입은 합당한가.

제11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 초청작 <둘만의 세계>는 바로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다. 물론 그렇다고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큰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불편함이나 책임감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을 잡은 이이즈카 감독도 강조하거니와 "성별을, 상식을, 시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영화를 통해 어떤 형태에도 얽매지 않는 '사랑'을 그리는 작품"이니까.

내용은 이렇다. 유치원에서 일하는 유이(가타야마 유키 분)와 도시락 가게에서 일하는 신야(반도 료타 분)는 장래를 약속했지만 어느 날 신야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혼도, 유이가 간절히 바라던 출산도,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불거진다. 고민 끝에 동거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던 유이는 마침내 이별을 선언한다. 이후, 유이는 다른 이성 파트너를 만나 임신을 시도하고, 신야도 다른 동성 파트너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지만 두 사람 다 허전함을 떨치지 못한다. 결국 유이의 임신 실패와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재결합하는 연인들, 유이가 게이 친구에게 정자를 제공받아 다시 임신을 시도하지만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이제 자신들의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게 남겨진 선택은 하나. 유이 대신 신야가 아이를 낳는 것이다.

장편독립영화 데뷔작 <우리의 미래>로 피아필름페스티벌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벤쿠버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이래, <푸른 가을비>, <바다로 가는 이야기> 등을 발표하며 주목받는 청년감독으로 부상하다 드디어 한국 관객을 찾아온 만 서른 한 살의 이이즈카 카쇼를 만났다.

 

코로나 19로 인해 오프라인 참가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SIPFF에서 「둘만의 세계」를 관람한 많은 관객들의 성원이 SNS를 통해 이이즈카 카쇼 감독에게 전해졌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코로나 19로 인해 오프라인 참가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SIPFF에서 「둘만의 세계」를 관람한 많은 관객들의 성원이 SNS를 통해 이이즈카 카쇼 감독에게 전해졌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홍상현

세 번째 장편독립영화 <둘만의 세계>가 SIPFF에 초청되면서 한국에 오셨습니다.

이이즈카 카쇼

코로나 19 때문에 오프라인으로 한국에 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SIPFF에서 작품을 보신 한국 관객 여러분께서 SNS로 감상을 많이 보내주셨어요. 심지어 "앞으로도 이런 영화를 보고 싶다"는 코멘트까지 전해져 청작자로서 정말 보람을 느꼈습니다.

요전에 한국인 성소수자 친구들한테 한국에는 종교적 입장에 근거한 부정적 관점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인 일본에선 무척 드문 일이거든요. 이렇듯 다른 환경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보여드릴 수 있었다는 건, 참으로 영광되고 기쁜 일입니다.

아울러, 코로나 19에도 불구하고 영화제를 개최해 주신 주최 측에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성소수자들에게 너무나 뜻깊은 시간이었으니까요.

 

홍상현

다음은 "홍상현의 인터뷰"에 모시는 분들께 늘 드리는 질문인데요.

평소 한국 영화를 즐겨 보십니까? 좋아하는 감독이나 작품, 배우 등이 있으신지요.

이이즈카 카쇼

물론이죠. 평소 한국영화를 꼬박꼬박 챙겨 봅니다. 가까운 이웃나라에서 깜짝 놀랄 만큼 높은 수준의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명을 받고 있어요.

특히 이창동 감독을 좋아해서 학창시절에 <오아시스>(2002)를 여러 번 봤지요. 그리고 <살인의 추억>(2003)을 분석하는 시나리오 수업도 들었는데 극작술의 높은 수준에 감명을 받았어요. 벤쿠버국제영화제에서 알게 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2009)도 여러 번 봤는데요. 개봉했을 당시 학생이었는데 우리 사이에서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실습작품의 폭력장면을 찍으면서 거기 나오는 신(scene)을 참고하는 친구도 여럿 있었을 정도니까요.

 

「둘만의 세계」는 그간 별로 논의되지 않았던 트랜스젠더의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동경을 다룬 작품.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둘만의 세계」는 그간 별로 논의되지 않았던 트랜스젠더의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동경을 다룬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홍상현

이번엔 좀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성전환 수술을 통해 여성에서 남성이 되셨잖아요. 이런 개인적 경험이 영화의 길을 선택하는데도 영향을 미쳤는지요.

이이즈카 카쇼

아, 실은 제가 아직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상태에요. 그래서 호적상으로는 여전히 여성이죠(호적이라는 제도 자체가 일본에만 있는 걸로 압니다만). 호르몬 주사 등을 정기적으로 맞고 있기 때문에 외모나 목소리는 남성적이지만, 일본에서는 법률상 생식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성별을 변경할 수 없어요. 호적을 변경할 수 없으니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도 할 수 없고요. 이런 법률체계에 갖는 강한 의문이 <둘만의 세계>을 만드는 동기로 이어진 겁니다.

아울러 그간 일본영화에서는 성소수자를 적절하게 다룬 작품이 매우 적다고 느끼기도 했는데요. 영화 속에서 트랜스젠더로서 롤 모델을 찾고자 하는 갈망이 제 창작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 같으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답변이 적절하겠죠? (웃음)

 

홍상현

이런, 제가 잘못 알고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의문'이라는 말씀을 꺼내신 김에 말씀드리면, 데뷔작인 <우리들의 미래>에서 <둘만의 세계>로까지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를 보더라도 이른바 '노멀(normal)'이라는 세상의 기준에 의문을 품으면서 함께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하는 작품들을 만들고 계시다는 공통점이 나타나는데요.

이이즈카 카쇼

바로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생각하는 '당연함' 아래서 짓밟히고 있는 존재가 있음을 우선 알리고, 스스로의 상식ㆍ감각을 한 번쯤 의심해 볼 것을 촉구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으니까요.

 

유치원에서 일하며 신야와 사랑을 키워가던 유이는 어느 날 그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에 휩싸인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유치원에서 일하며 남자친구 신야와 사랑을 키워가던 유이는 어느 날 그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에 빠진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홍상현

<둘만의 세계>는 그간 별로 논의되지 않았던 트랜스젠더의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동경을 다뤘다는 점에서 또한 특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이즈카 카쇼

일본영화 중에서는 성소수자를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 지극히 적습니다(독립영화 쪽에서는 확실히 리얼리티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그러나 저와 마찬가지로 이런 상황에서도 평소 접하기 힘든 소재에 대해 파고들려 하는 다른 작가들이 존재하지요. 관객들도 이런 작품들을 접하면서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해요.

아무쪼록 관객 여러분께서 <둘만의 세계>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즉, 트랜스젠더 남성과 그의 이성애자 연인의 모습을 보시면서 스스로의 인식이나 현재의 제도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셨으면 합니다.

 

홍상현

작품의 프로덕션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지네요.

이이즈카 카쇼

우선, 주변 친구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경험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현 상황에서 그런 일들이 불가능한 우리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단숨에 시나리오를 썼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성소수자를 다룰 작품이 외면당하는 게 현실이었고, 당연히 <둘만의 세계>의 경우도 제작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주는 프로듀서가 없었죠. 그 와중에 손을 내밀어 주신 분이 저와 같은 다카사키 출신이자 아소 구미코 배우의 소속사 대표인 카노 씨였습니다. 창작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힘을 실어 주는 카노 씨의 도움으로 <둘만의 세계> 제작이 현실화될 수 있었지요.

제작이 결정되고 나서 가장 먼저 연락을 했던 건 촬영감독인 네기시 켄이치 씨였습니다. 네기시 씨는 후카다 코지 감독의 칸영화제 수상작 <하모니움>(2016)에서도 촬영을 담당했는데요. 그의 비주얼을 너무 좋아해서 제작진 합류를 제안했죠. 다만, 촬영기간이 11일 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현장스케줄을 진행했습니다.

 

이이즈카 카쇼 감독의 자기반영적 인물인 신야는 감독 극중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이이즈카 카쇼 감독의 페르소나인 신야. 극중에서 감독과 마찬가지로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홍상현

일정은 빠듯했지만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지 않았나요?

이이즈카 카쇼

감사합니다. (웃음) 적어도 제가 볼 땐 그랬어요. 네기시 감독이 촬영 내용을 철저하게 숙지하고 있었거든요. 다 찍고 나서 편집으로 이어 붙인 그림을 봤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각 신마다 카메라의 아주 미세한 진동까지 디테일하게 조정되어 있었고, 조명도 완벽하게 계산이 되어 있어 멋진 장면들이 연출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역시 젊은 세대가 일본영화계가 활기에 넘치던 시절을 기억하는 네기시 감독 같은 분에게서 제대로 기술을 전수받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홍상현

<둘만의 세계>는 트랜스젠더 신야와 파트너 유이의 10년에 걸친 러브스토리를 그리고 있는데요. 감독의 자기반영적인 측면도 있는 건가요.

이이즈카 카쇼

그렇죠. 애초에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 자체가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했고요. 제 미래에도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었어요. 나아가, 성소수자에게도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꿈이 있다는 걸 진정성 있게 그려낸다면 영화를 본 다른 성소수자들도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SIPFF에서 <둘만의 세계>를 보신 관객 분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 더욱 기뻤고요. 제작과정의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까닭에 정말 구원받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후카다 코지 감독의 칸영화제 수상작 「하모니움」에서 촬영을 담당했던 네기시 켄이치 촬영감독은 「둘만의 세계」에서도 예의 치밀한 계산을 통해 연출된 비주얼을 보여준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후카다 코지 감독의 칸영화제 수상작 「하모니움」에서 촬영을 담당했던 네기시 켄이치 촬영감독은 「둘만의 세계」에서도 예의 치밀한 계산을 통해 연출한 비주얼을 보여준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홍상현

<둘만의 세계>는 시빌 파트너십이라든가 법적인 성별 변경 등 성소수자의 현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인데요.

이이즈카 카쇼

아시다시피 일본에서 모든 지자체가 시빌 파트너십을 도입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마다 상황이 다르죠. 하지만 설령 도입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시빌 파트너십은 결혼을 대체할만한 효력이 없어요. 결국 과도기적 시스템이라 결국에는 동성결혼이 가능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제 견해지요. <둘만의 세계>에는 이런 저의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아울러,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일본에서 호적상 성별 변경이 가능하려면 수술을 통해 생식선을 제거해야만 하거든요. 끔찍하지 않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둘만의 세계>에서 이런 불편한 현실을 다루고 있는 까닭은 우리 사회 바깥에서, 사안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하실 수 있는 분들께서 영화를 보시고 의견을 제시해 주시기를 바라서예요.

 

홍상현

한편, <둘만의 세계>는 비단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에게 보편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매력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이이즈카 카쇼

<둘만의 세계>에서는 성소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모처럼 만든 작품인데 특정한 집단 사이에서만 공유된다면 아쉽잖아요. 궁극적으로는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끌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그 편이 더 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냄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판단했고요.

 

「둘만의 세계」는 성소수자가 주인공이지만 결코 관객에게 어떤 불편함이나 책임감도 느끼게 만들지 않는다.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둘만의 세계」는 성소수자가 주인공이지만 관객에게 어떤 불편함이나 책임감도 강요하지 않는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홍상현

가타야마 유키 배우가 분한 '유이'는 '트랜스젠더와 사랑에 빠진 일반인(이 표현이 적당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이라는 아주 독특한 캐릭터인데요. 사회적 환경 상 적지 않은 관객들의 감정이입이 가능한 인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이즈카 카쇼

유이는 지극히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여성입니다. 그런 사람이 트랜스젠더인 신야와 사랑에 빠지게 된 건데요. 여기서 문제는 상대의 성정체성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된다는 점입니다.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은 난관이죠. 어느 날 갑자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정'을 이루는 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거니까.

다만, 단지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연기를 해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타야마 배우와 시나리오를 놓고 많은 논의를 진행했어요. 또, 실제 트랜스젠더 파트너와 교제중인 여성과 인터뷰도 진행했고요. 그렇게 카타야마 배우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소통을 거듭해 갔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요.

 

홍상현

감독으로서는 카타야마 배우에게 어떤 걸 요구하셨나요?

이이즈카 카쇼

'신야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진실을 안 순간 돌아서버리면 힘들 것도 없겠지만 신야를 사랑하니까 심적으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이 '갈등'이야말로 <둘만의 세계>를 성립시키는 필수요소니까요.

 

홍상현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당시 가타야마 배우의 반응이 궁금해지는데요.

이이즈카 카쇼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아이를 원하는 마음을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시나리오의 갈등구조상 좀 더 적극적으로 이해해주실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설득했습니다. (웃음)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아이를 원하는 마음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카타야마 유키 배우를, 이이즈카 카쇼 감독은 ‘시나리오의 갈등구조상 좀 더 적극적으로 이해해주실 필요가 있다’고 설득했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아이를 원하는 마음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카타야마 유키 배우. 이이즈카 카쇼 감독은 그를 '시나리오의 갈등구조상 좀 더 적극적으로 이해해주실 필요가 있다'는 말로 설득했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홍상현

반도 류타 배우의 연기를 정말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이즈카 카쇼

반도 배우를 캐스팅하기 전에 트랜스젠더 역할은 실제로 트랜스젠더인 연기자를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잠시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요. 바로 그때 <트랜스아메리카>에서 트랜스젠더로 분한 펠리시티 허프만 배우가 떠오르더라고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캐릭터를 정말 훌륭하게 연기해냈거든요. 전체적인 특징에서 디테일을 어찌나 잘 잡아내는지 누가 보더라도 트랜스젠더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죠.

그런 사례를 보더라도 트랜스젠더를 꼭 트랜스젠더 연기자가 맡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딘지 트랜스젠더 같은 특성이 엿보이던 반도 배우를 섭외했죠. 연기경력이 긴 편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영상을 보여주면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 나름대로 어떤 가능성과 확신이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결과 또한 대단히 만족스러웠고요.

 

홍상현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어떤 부분을 가장 어려워하던가요?

이이즈카 카쇼

처음엔 본인이 정말 트랜스젠더로 보일 수 있을지 걱정을 진짜 많이 했어요. 저로서도 일단 트랜스젠더를 제대로 알고 난 후에 연기에 임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바(bar)라든가, 트랜스젠더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데려가서 관찰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같이 만나는 트랜스젠더 분들이 반도 배우에게 '우리들처럼 보인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이런 경험이 반도 배우에게 어느 정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고요.

 

신야로 분한 반도 류타 배우는 트랜스젠더가 아니다. 그러나 지극한 우연일까 노력의 결과일까. 촬영 준비 과정에서 이이즈카 카쇼 감독과 함께 만난 트랜스젠더들은 하나같이 반도 배우에게 ‘우리들처럼 보인다’고 말해주었다고.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신야로 분한 반도 류타 배우는 트랜스젠더가 아니다. 그러나 지극한 우연일까 노력의 결과일까. 촬영 준비 과정에서 이이즈카 카쇼 감독과 함께 만난 트랜스젠더들은 하나같이 반도 배우에게 '우리들처럼 보인다'고 말해주었다고.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홍상현

<둘만의 세계>는 단지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서만 제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입니다. 수익금의 일부가 성소수자 단체에 기부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이이즈카 카쇼

제가 십대이던 시절만 해도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단체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고, 관련 정보도 만족스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가장 고민이 심하던 시기에 그런 불편을 경험하다 보니 자연스레 저보다 어린 성소수자 친구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내게 된 게 이번 기부입니다. <둘만의 세계>가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이런 노력들이 모여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성소수자 친구들이 어깨를 펴고, 더 밝은 분위기에서 십대시절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청춘시절인데 성정체성과 무관하게 즐겁게 보내는 게 당연하잖아요.

 

홍상현

모두에서 SIPFF에 상영 이후 같은 성소수자 분들의 감상을 많이 전해 들었다고 하셨는데요. 혹시 어떤 내용이었는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이즈카 카쇼

네. 많은 감상을 전달받았는데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걸 그대로 인용해드리면 이래요.

"저 역시 섹슈얼마이너리티로 어둠 속에 숨어 지내고 있었는데, 언젠가 작품에 등장하는 유이 같은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겠어요."

영화를 통해 객석에 계신 성소수자 분의 손을 잡아드릴 수 있다니,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보람도 있거니와 용기가 생깁니다. 아울러, 영화라는 만국공용어를 통해, 바다 건너 다른 문화를 가진 땅에서 살아가는 분들과 소통하는 기쁨도 느끼고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에요.

 

“제 미래에도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었어요. 나아가, 성소수자에게도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꿈이 있다는 걸 진정성 있게 그려낸다면 영화를 본 다른 성소수자들도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신념을 가졌습니다.” 이이즈카 카쇼 감독의 말이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제 미래에도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었어요. 나아가, 성소수자에게도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꿈이 있다는 걸 진정성 있게 그려낸다면 영화를 본 다른 성소수자들도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신념을 가졌습니다." 이이즈카 카쇼 감독의 말이다. (C)2021 The World for the Two of Us Film Partners

"SNS를 통해 많은 한국 분들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어요. 이 지면을 통해 메시지를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둘만의 세계>는 비단 성소수자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와 깊은 관련이 있는 보편적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예요. 다만, 이 영화가 누군가에게 좀 더 희망을 전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상황이나 양상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망정, 아직도 성소수자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세상인 게 사실이니까요.

또한 어서 한국 개봉이 이뤄져, 한국 관객 여러분의 다양한 코멘트를 들을 수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날이 오면, 이번에야말로 직접 한국으로 건너가서, 여러분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최근 <둘만의 세계>의 국내개봉(1월 14일)을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이즈카 감독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올해 첫 장편상업영화를 찍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상당한 예산이 투여될 거라는 귀띔과 함께. 어떤 내용이냐고 물으니 현재로썬 성소수자가 주인공이라는 정보 정도만 드릴 수 있단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 하지만 더 이상의 질문은 자제하기로 한다. "예산은 '메이저'일지라도 '마이너리티'를 세심하게 조명하는 완성도 높은 신작을 내놓아 영화계에 파문을 던지고 싶다"는 그의 젊은 패기를 믿으니까.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ㆍ일 양국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 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 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새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주최 디지콘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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