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야쿠자와 가족' 변화하는 것과 불변하는 것
[NETFLIX] '야쿠자와 가족' 변화하는 것과 불변하는 것
  • 선민혁
  • 승인 2022.01.03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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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에 기대하는 요소들이 풍부하다"
ⓒ Kadokawa Pictures, NETFLIX

일본 영화를 보고자 할 때 자연스럽게 예상되는 것들이 있다.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전달하는 참신한 주제의식, 어디로 튈지 모르는 빠른 템포의 스토리 전개,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여 성장하는 이야기,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다소 과장된 인물의 행동 등의 것들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필자의 취향에는 잘 맞기 때문에 기대가 되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고 일본 영화를 굳이 찾아보는 이유가 되지만, 주변에는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일본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그런데 <야쿠자와 가족>은 일본 영화에 대한 이러한 예상을 그저 선입견으로 만든다.

'일본 영화를 즐긴다'는 생각을 가지고 <야쿠자와 가족>을 감상했을 때 내가 기대했던 것들은 충족되지 않았다. 일본 영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들이 이 영화에 나타났다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도리어 이 영화에는 '좋은 영화'에 기대하는 요소들이 풍부하게 들어있었다.

<야쿠자와 가족>은 기본적으로 깔끔하다. 1999년부터 2019년까지, 20년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는데도 흐름이 전혀 늘어지지 않으며, 격정적인 사건 속에서 살아나가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감정은 과잉되지 않는다. 이러한 절제는 화면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감의 화면은 차가움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일관된 분위기를 차분히 형성해나간다. 대부분의 숏들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절묘한 촬영이 많은데, 그렇다고 해서 카메라가 존재를 의식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의도적인 집중을 요구하는 숏이나 지나친 롱테이크 등으로 인하여 피로해질 일이 이 영화에는 없다.

 

ⓒ Kadokawa Pictures, NETFLIX

<야쿠자와 가족>은 야쿠자의 역사와 현실, 흥망성쇠를 다룬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야쿠자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단지 '야쿠자의 역사를 잘 묘사한 영화'와 같은 소개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영화'인 <야쿠자와 가족>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것의 힘에 의지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꼬맹이 겐'이라고 불리는 주인공 야마모토 겐지(야아노 고)는 우연한 계기로 조직에 들어가게 되어 야쿠자가 된다. 영화는 이 인물이 살아가는 20년의 세월을 통해 겐지와 그가 속한 조직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겐지가 야쿠자에 입문하게 되는 1999년, 조직원으로서 활동하는 2005년, 살인 혐의로 수감되었다가 출소한 2019년, 영화는 세 파트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가장 무게를 두고 있는 파트는 후반부인 2019년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듯, 겐지와 그의 조직은 몰락한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겐지가 출소해서 나온 2019년의 사회에서는 야쿠자가 사회적 주체로 취급받기가 어렵다. "이제 너희 시대가 아니거든, 아저씨"라는 츠바사(이소무라 하야토)의 대사처럼, 화려하고 강한 존재가 더이상 아니게 되었다. 강화된 제도적 장치 때문이다. 야쿠자는 보험가입, 계좌개설, 취업 등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되었고, 그가 속한 조직은 대여섯 명 정도의 소수의 조직원만 남은 채로 불법 치어 조업, 마약거래 등으로 겨우겨우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야쿠자를 그만두고도 한참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가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일을 겨우 하게 된 겐지의 옛 동료 하야토(호소노 유타)는 불이익을 받게 될까 두려워 출소한 겐지에게 식사를 대접받는 것을 피한다. 또 겐지가 수감되기 전 그와 사랑하는 사이였던 유카(오노 마치고)는 그와 교제한다는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져 직장에서 해고된다. 출소한 겐지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련 없이 주위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고, 결국 원한을 사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 Kadokawa Pictures, NETFLIX

일본 사회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야쿠자와 가족>은 야쿠자의 역사와 현실을 매우 사실적으로 잘 드러낸 영화라고 평가받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그러한 다큐멘터리적 가치 이외에도 흥미로운 점이 있다고 느꼈던 이유는 절묘하게 발생하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시대는 급변하고 감옥에 있던 겐지와, 마지막까지 조직에 남은 나이 든 조직원들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몰락하고 만다. 두려울 게 없이 화려했던 한 조직을 몰락시킬 정도로 사회는 빠르게 변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1999년, 2005년, 2019년 세 배경 모두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연기를 내뿜는 공장 굴뚝의 장면처럼, 변하지 않은 모습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20년의 세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든 공장은 무언가를 생산해내고 있고, 산업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 병상에 누운 2019년의 히로시(타치 히로시)는 "의리도 인정도 돈에는 못 이기는구나"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하는 불변의 논리이다. 경쟁 세력의 가토(토요하라 코스케)는 경찰 간부와 유착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를 이용해 겐지가 속한 시바자키구미의 구역을 빼앗게 된다. 가토는 2019년에도 권위를 유지하며 잘살고 있다. 겐지와 조직은 야쿠자라서 몰락한 것이 아니다. 경쟁세력보다 자본력 자체가 약했거나, 그를 '영리하게' 사용하지 못해 몰락한 것이다. Z세대 츠바사는 "야쿠자의 시대는 갔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야쿠자가 하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현대 문물을 통해 조금 더 스마트하게 수행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리나 인정 같은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이들의 불행은 세대를 지나도 변하지 않고 대물림된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던 겐지는 아버지와 같은 야쿠자가 되고, 마약을 구할 돈이 없어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전해지는 아버지의 말로처럼, 아이러니하게도 바닷속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겐지를 보고 자라며, 그에게 '자신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던 츠바사는 겐지가 자신을 보살펴주던 것처럼 겐지가 죽은 장소에서 그를 기리는데, 겐지의 딸과 마주친다. 겐지의 딸은 츠바사에게 '자신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러니는 증폭되고, 관객인 나는 겐지의 딸을 바라보는 츠바사처럼 할 말을 잃게 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Kadokawa Pictures

야쿠자와 가족
Yakuza and the Family
감독
후지이 미치히토
Michihito Fujii

 

출연
아야노 고
Ayano Go
타치 히로시Tachi Hiroshi
오노 마치코Ono Machiko
키타무라 유키야Kitamura Yukiya
이치하라 하야토Ichihara Hayato
이소무라 하야토Isomura Hayato
스가타 슌Sugata Shun
칸 수온Kan Suon
니노미야 류타로Ryutaro Ninomiya
스루가 타로Suruga Taro
이와마츠 료Iwamatsu Ryo
토요하라 코스케Toyohara Kosuke
테라지마 시노부Terajima Shinobu

 

제작 가도카와 픽처스(Kadokawa Pictures)
제공 넷플릭스(NETFLIX)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36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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