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시대성을 운행하는 운전대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시대성을 운행하는 운전대
  • 이현동
  • 승인 2021.12.3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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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몸이 온전히 메시지가 되기 위해서"

삼촌 우리는 살아야 해요. 길고 긴 낮과 밤은 끝까지 살아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시련을 꾹 참고 나가는 거예요. 우리 남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기로 해요. 앞으로도, 늙어서도, 그러다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요.

안톤 체호프, 『바냐 아저씨』 中, 장한 옮김, 더클래식, 2020

비극은 인간에게 관성적인 것일까. 인간의 수명은 죽음이란 중력을 결코 이겨내지 못하고 이내 부서져 버리곤 한다. 그럼에도 생성되는 희망은 필연적으로 밀착되어 있는 ―인간과 인간 사이― 관계성과 연대한다. 그것은 결국에 '나'라는 존재와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그들이 시간과 공간을 함께 향유할 때 벌어지는 어느 사건들은 체험의 영역을 넘어서 의미의 영역으로 도달하기도 한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1)는 이러한 경계 속에서 끊임없이 희망을 창출해낸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서사를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증표와 같은 사물은 주인공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가 15년간 운행해왔던 '자동차'이다. 이것은 동시대성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체호프적인 방식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먼저 체호프는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들은 무자비하게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등장한 요소는 허무하게 소비되지 않아야 하고, 끝까지 사용돼야 한다는 체호프적 방식은 이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교차되어 등장하는 '운전 장면'과 '연극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동차는 '시네마'적인, 즉 시간과 공간을 왕복하는 '움직임'으로 묘사되고, 연극은 역사와 전통 속에서 확립되어 있는 어떤 시대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도구인 셈이다. 계속해서 '영화'와 '희곡'이 만나는 지점에서 유독 그 서사의 구심점을 견인하는 건 바로 '언어'와 '몸'이다.

 

ⓒ 트리플픽쳐스

언어와 몸이 공명하는 길목에서

라캉은 이렇게 말했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된다"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구조화된 언어는 입술을 통해서 발화되며 꿈과 혹은 욕망의 절정의 순간에 내뱉는 말들은 의식을 초월하여 발동하기도 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첫 장면은 가후쿠와 오토(키리시마 레이카)의 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라캉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서사의 구조와 욕망으로 대비되는 형상의 파편들. 섹스를 통해서 탄생하는 오토의 이야기는 매번 그다음 날 기억에서 소멸된다. 이야기의 실을 잇는 건 오로지 그 기억을 메모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반복적인 행위는 그녀에게 일종의 '규칙'이며 생활 패턴과도 같은 것이다.

폐렴으로 잃은 4살 된 딸의 죽음 이후, 매 순간 오토는 섹스를 탐닉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육욕은 그녀의 정서적 갈증을 채우는 유일한 수단처럼 드러난다. 몸과 몸, 그리고 말과 말이 뒤섞인 현장에서 오토의 남편 가후쿠는 그녀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면서도 그녀를 잃게 될까 봐 나무라지 않는다. 마치 프랑수아 트뤼포의 <쥴 앤 짐>(1961)에서 카트린(잔 모로)가 딸을 낳고 함께 동거하고 있는 쥴(오스카 베르너)을 간과한 채 계속해서 남자들 사이에서 그 욕망을 표출하는 것을 눈감아 주는 것과 유사한 모양새다. 이 이야기의 분기점이 되는 오토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녀의 몸과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던 이야기의 죽음으로 도래하면서 가후쿠의 삶을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의 이야기와 등치 시켜 놓는다.

이후 가후쿠는 『바냐 아저씨』의 극 감독으로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면서 배우들을 모집하고 그들과 리딩을 시작하면서 <드라이브 마이 카>는 언어가 어떠한 방식으로 인간과 밀착되어가는지를 묘사한다. 사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의 징표처럼 각인된 <해피아워>(2015)의 워크숍 장면과 이번 영화의 대본 리딩에서 어떤 등가적인 속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건 어쩌면 식상한 관점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의 영화에서 언어의 힘이란 것은 몸의 완력까지도 장악하는 힘을 갖고 있음을 강력하게 믿고 있는 것 같다. <드라이브 마이 카>(2021)는 텍스트가 말을 걸어오는 방식. 즉, 등장인물인 가후쿠가 배우들에게 끊임없이 요청했던 다음의 대사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을 바쳐 대본에 대답해"라는 대사. 실제로 하마구치 류스케는 배우들과 대사를 리딩하는 작업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이는 자신을 메타적으로 투영시킨 캐릭터임을 추측하게 한다.

 

ⓒ 트리플픽쳐스

특히, 가후쿠가 『바냐 아저씨』를 연출하면서 독특하게 평가받는 지점은 바로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언어성을 다룬다는 점이다. 『바냐 아저씨』의 배우들을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수어 등을 구사하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모집함으로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담론을 생산해낸다. 더 나아가서 이런 반동적인 언어성의 형태 안에서 '연기'는 그 자체로 자신이 될 수 있는가의 물음에서 하마구치는 예로 답한다. 가후쿠는 배우들과 계속해서 리딩 하는 모습을 감독한다. 처음에는 감정 없이 또박또박 대사를 뱉도록 하고, 그 이후에 몸에 채득되기까지 끊임없이 대사를 암기하도록 한다. 상대방의 전후 대사를 전부 기억해야 하는 이 과정은 언어가 어떻게 몸과 공명할 수 있는지를 구술함으로 그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새김질하게 하는 것이다.

 

차의 움직임과 차 안의 움직임

빨간 자동차는 가후쿠의 시간과 감정을 내밀화한 사물이자 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도구다. 차의 움직임은 내부와 외부의 왕복적인 활동으로 주기적이며 규칙적인 에너지를 드러낸다. 가후쿠가 오토를 마중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고, 차 안에서 오토의 목소리로 녹음된 테이프를 들으며 대사를 암기하기도 한다. 차의 움직임이 균열을 일으키는 가장 큰 동기는 에이전시에 소속된 운전기사인 와타리 미사키(미우라 토코)에게 맡길 때이다. 가후쿠는 이전에 단 한 번도 다른 이에게 운전을 맡긴 적이 없었다. 점차 차의 공기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외부에서 움직였던 차의 움직임은 진동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해졌고, 함께 테이프를 듣기 시작하는 그들은 연대를 형성하면서 차 안의 움직임도 변화되기 시작한다.

 

ⓒ 트리플픽쳐스
ⓒ 트리플픽쳐스

가후쿠는 정지되어 있었던 요코의 꿈의 뒷이야기를 다카쓰키에게 듣게 되면서 "진실로 타인을 보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라는 그의 조언에 자기 자신에게 응어리로 남아있었던 딸의 존재를 생각해낸다. 그리고 살아있다면 자신의 딸과 동갑인 미사키를 바라보며 조수석으로 이동한다. 그전까지 금기로 여겨왔던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 허락하고 동시에 둘 다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이러한 자그마한 공간 이동만으로도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은폐되어 있던 감정들을 밖으로 해방시킨다. 가후쿠가 조수석에 앉게 된 이후로 미사키의 비극적인 사연도 듣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둘은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고 포옹함으로 뒷좌석-조수석이라는 거리 또한 좁히고, 말과 몸으로 진정한 연대를 이룸으로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제는 대중들에게 섬세하고도 따스한 호흡을 불어넣는다.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해. 나와 너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가야 해. 우린 틀림없이 괜찮을거야" 가후쿠가 마사키를 껴안으며.

마지막 장면에서 한국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 여자는 그게 마사키인지 명확히 판별할 수 없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그녀는 외형적으로 마사키를 닮았을 뿐, 그 외에 단서가 없다. 장을 보고 가후쿠의 빨간 차를 타고 있다고 해도 그게 마사키인지 알 수 없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분명히 이 모호함을 이용했을 것이다. 동시대성과 공통된 공간에서 연쇄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그는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필자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이전 영화들보다 명료해진 메시지에서 하마구치 류스케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아서 좋았다. 희망을 놓지 않으며 비극만을 상상하지 않는 가후쿠의 태도는, 아마도 하마구치 류스케의 세상과 영화를 향한 열망이자 추진력임을 분명 절감할 수 있었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트리플픽쳐스

드라이브 마이 카
Drive My Car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Hamaguchi Ryusuke

 

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Hidetoshi Nishijima
미우라 토코Toko Miura
오카다 마사키Masaki Okada
키리시마 레이카Kirishima Reika
박유림
진대연

소냐 위엔Sonia Yuan
안휘태
아베 사토코
Satoko Abe
페리 디존Perry Dizon

 

수입 트리플픽쳐스, 영화사조아
배급 트리플픽쳐스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79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12.23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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