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 소렌티노] '신의 손'을 잡았던 순간을 회고하며
[파올로 소렌티노] '신의 손'을 잡았던 순간을 회고하며
  • 이현동
  • 승인 2021.12.08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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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티노의 영화가 형식을 일탈할 때"

'파올로 소렌티노'는 자신만의 형식을 구축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모더니즘의 젊은 주자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욕망을 시각적으로 확대하고 그 안에 침전되어 있는 '공허'와 '허무' 같은 주제들을 드러내는 시네아스트다. 그의 영화에서 대체로 문화, 예술, 낭만의 도시인 '로마'를 배경으로 주제를 전개해왔던 것을 보면, 그가 추구해왔던 이미지의 정체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신작인 <신의 손>에서 그의 영화적 영감의 기원이 된 '나폴리'를 배경으로 설정한 점과 부를 축적한 이들을 다루지 않은 점은 이례적이다. 특히, '나폴리'는 파올로 소렌티노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장소이다. 한편으로 그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이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과연 온당한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신의 손>은 소렌티노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을 수 있는 다소 과잉적인 상징적 샷(Emblematic shot)의 활용을 최대한 배제한 채 서사의 맥락을 유연하게 연결하는 지점에서 새로움과 또 다른 가능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축약해서 말하면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서사의 힘을 믿고 그간 강조했던 형식을 과감하게 소거함으로써 오히려 창의적인 작품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신의 손>은 소렌티노 영화의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필자는 <신의 손>에서 언급되는 페데리코 펠리니와 소렌티노의 관계성을 주목하여 이탈리아 영화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과 그가 여성의 성을 사용하는 방식의 변용을 다루는 것이 유의미한 비평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과 함께 글을 써본다.

 

ⓒ 넷플릭스(NETFLIX)

<신의 손> 속 '페데리코 펠리니'

<신의 손>에서 페데리코 펠리니와 소렌티노와 영화적 관계성은 이탈리아 영화 역사를 통시적으로 상고하게 만드는 기묘한 측면이 있다. 루치노 비스콘티가 <강박 관념>(1942)을 제작한 것을 기점으로, 그 후의 이탈리아 영화가 '네오리얼리즘'이라는 갈래로 묶인 것은 전쟁이 초래했던 시대적 어둠 속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 초기 페데리코 펠리니의 작품들은 네오리얼리즘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호소했던 이들이었다.

<신의 손>에서 '소렌티노가 펠리니를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질문해 보면 그것은 펠리니가 결국 네오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으로 선회했던 변곡점이 되는 영화인 <달콤한 인생>(1960) 이후 작품들과의 연관성과도 그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달콤한 인생> 이후로 '펠리니적'이라는 용어를 쓰게 된다. 그 이유는 사치스럽고 환락적인 삶을 강조하는 시대적 배경과 과시적이며 방탕한 인물들을 연속적으로 등장할 때 이를 풍자하는 방식이 그의 작품세계 곳곳마다 드러나게 되는데, 이는 점차 이탈리아의 라이프 스타일과 대중문화가 변화하고 있음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영화적 형질을 특징적으로 포착해낸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페데리코의 특징을 수여받은 파올로 소렌티노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감독이다. 그에 대한 존중을 담은 것 같은 <신의 손>은 펠리니의 <아머 코드>(1974)의 인물 관계도와 배경을 떠올리게 하는데, 두 작품들은 '회상'이라는 모티브로 인물과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주로 묘사하기보단 가족과 주변인들과의 해학적이며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형질의 톤을 연출하는 점에서 이와 비슷하다. 반면에 차별적으로 지목할 수 있는 건 모더니즘의 성향이 강한 <아머 코드>가 무솔리니 정권을 풍자하는 묘사들과는 다르게, <신의 손>은 각별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리얼리즘의 영역과 접합하면서 소렌티노의 작품들 중에서 독특한 작품으로 변용된다. 분명히 <신의 손>에서 펠리니의 오디션 현장을 동경의 눈빛으로 응시하는 파비에토 스키사(필리포 스코티)는 소렌티노 그 자신이 갖고 있는 존경의 태도로 선포되는 것일 테다.

 

ⓒ 넷플릭스(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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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어떻게 다루는가?

<신의 손>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강인한 이미지로 표현된다. 친척들의 모임에서 가족들을 웃음을 주기 위해 오렌지를 저글링 하는 엄마의 모습과 바람을 피운 남편을 쫓아내고 그 화를 풀기 위해 이를 악물고 저글링을 하며 화를 추스르는 엄마의 모습은 여성으로 감당해야 할 아픔에 대한 담담한 묘사이면서도 가족을 지키려는 여성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이는 소렌티노 자신이 갖고 있었던 기억들로 구현된다.

남성 서사에 치중했던 소렌티노가 첫 장면에 등장시키는 건 불임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던 파트리치아(루이자 라니에리)의 존재다. 소렌티노가 이전 작품들에서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차용했던 장치였던 여자의 육감적인 신체를 부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파트리치아는 격동의 청소년기를 겪고 있던 파비에토 스키사의 남성성을 개방시키는 존재이자 그에게 위로와 안식을 가져다주는 인물이다. 더 나아가서 그녀는 신화적인 존재다. 누구에겐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 해석될 가능성의 여지를 품고 있는 자유 의지적 존재. 그녀의 헐벗음과 그 안에 내재한 연약함과 예민함은 마치 사회적인 연대와도 무관한 하얀 도화지와 같다. 이러한 입체성은 파비에토를 매료시키는 도화선이 된다.

육체적, 심리적 거리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도 옆집에 사는 여자인 남작 부인(베티 페드라치)이라는 점을 주지해 보면 그 또한 흥미롭다. 부모님이 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이후에 남작 부인은 자신을 파비에토의 성장 동력이자 위로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둘은 성관계를 하는 과정에서 남작부인은 관심 있는 여자를 상상하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라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내어준다. 남작 부인은 '다음에 내 또래랑 하라면서 자신의 역할이 미래를 바라보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이 장면에서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펠리니의 <아마 코드>에서 잡화상점 주인과의 주인공 사이의 성적인 마찰에서 '성장'이라는 유사성을 유추할 수 있었다) 청소년기의 성장을 견인하는 여자들과의 접촉은 소렌티노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영향을 받았던 과거에 대한 회고이면서 <신의 손>의 서사를 이끄는 구심점이기도 하다.

 

ⓒ 넷플릭스(NETFLIX)

신의 손의 아이러니

'신의 손'은 뜻이 두 개인 중첩된 개념이자 중의적으로 발화하게 되는 코드의 집합으로 이 영화에 현존한다. 하나는 '기적'을, 또 하나는 마라도나가 영국을 상대로 손으로 골을 넣었던 장면을 의미한다. 지극히 평범한 나폴리에 살고 있는 한 청소년이 마라도나에 열광했던 건 그리 위대한 일도 아닌 그저 일상적인 일이었다. 마라도나를 향한 열정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있었던 파비에토는 이제는 오직 영화를 하겠다는 일념을 간직한 채 나폴리 출신의 영화감독 안토니오 카푸아노와 마주하게 된다.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라는 그의 강렬한 호소와 조언 속에서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인 돌아가신 부모님의 시신을 보지 못하게 했다는 강렬한 기억을 복원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파비에토와 우리는 자신의 결심을 실제 소렌티노의 멘토 역할을 했던 안토니오 카푸아노를 통해서 실제 존재했던 '기적'이 목격하게 된다.

파비에토는 파트리치아에게 말로만 전해 들었던 미지의 대상이자 불임을 극복하게 한 '어린 수도승'을 마주치면서 이 영화는 '나폴리'에서 '로마'라는 향하는 선택지가 희망으로 변모하는 그 순간을 극적으로 포착해낸다. 결국, 이는 지금의 파올로 소렌티노의 영광을 잇는 결말인 셈이다. 영화가 기억의 매체이면서 기적의 매체라는 사실을 이끌고 가는 건 무엇인가를 향한 강렬한 열망에서 비롯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봉준호 감독이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에서 기차가 달린 이후로 이 지구상에서 영화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제74회 칸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선언했던 것처럼,

엔딩에서 열차를 타고 가는 파비에토, 즉 소렌티노에게도 영화가 멈추지 않도록 계속해서 연료를 넣어주기를 희망해본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넷플릭스(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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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
The Hand of God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Paolo Sorrentino

 

출연
필리포 스코티
Filippo Scotti
토니 세르빌로Toni Servillo
테레사 사포난젤로Teresa Saponangelo
루이자 라니에리Luisa Ranieri
레나토 카펜티에리Renato Carpentieri
마센밀라노 갈로Massimiliano Gallo
말론 주베르Marlon Joubert
베티 페드라치Betty Pedrazzi
비아조 만나Biagio Manna
치로 카파노Ciro Capano

 

제작 The Apartment, Netflix
제공 Netflix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35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공개 2021.12.15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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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2021-12-10 21:43:00
영감있는 글이네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