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th SIFF] '미야모토' 소리 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의 시대
[47th SIFF] '미야모토' 소리 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의 시대
  • 김민세
  • 승인 2021.12.08 12: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의 무기력한 청춘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열정을 외친다"

마리코 테츠야 감독 <미야모토>(2019)의 서사는 간단하다. 야스코(아오이 유우)와 사랑에 빠진 미야모토(이케마츠 소스케)가 둘의 사랑을 가로막는 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과장해서 말하면 이 한 문장이 영화 내용의 전부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연인 야스코에 대한 사랑과 원수에 대한 복수심이라는 주인공 미야모토의 정서 또한 명확하게 제시된다. 게다가 반전으로 다루고 있는 야스코의 임신에 대한 내용조차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진 모티프이기 때문에 서사는 매우 전형적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미야모토>를 보면서 갈피를 전혀 잡을 수 없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서사나 캐릭터의 문제는 아니었다. 모든 것은 명확하게 설명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플롯'의 문제인가. 그렇다. 영화는 결혼을 약속하고 양측의 부모를 만나는 미야모토와 야스코의 현재와 그 둘이 우연한 계기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비극적인 일을 겪기까지의 과거를 '불규칙적으로 교차'하며 진행된다. 만화인 원작의 서사를 2시간의 러닝타임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충분한 설명 없이 시간을 건너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단순히 쉽게 읽어내기 어려운 이유에는 오롯이 플롯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전형적인 이야기 속에서 예상치 못한 것을 뜬금없이 제시하며 기이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겻이 <미야모토>를 매력 있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 서울독립영화제

1. 일본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

먼저 <미야모토>의 독특한 점은 장르에 있다. 무엇보다 장르를 예측하기가 힘들다. 미야모토와 야스코가 양측의 부모님을 만나는 장면은 일상적인 드라마 장르처럼, 둘이 사랑을 시작하는 장면은 멜로처럼, 술에 취한 미야모토가 잠든 사이에 야스코가 타쿠마(이치노세 와타루)에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은 범죄 스릴러의 한 장면처럼 찍혔다. 이들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비극적인 일을 겪은 야스코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미야모토에게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른 이후로, 영화가 갑자기 코미디의 정체성을 발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물론 앞 장면들에서도 코미디적 요소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리코 테츠야 감독은 그것을 코미디처럼 찍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타쿠마를 죽이러 가겠다는 미야모토는 밥통째로 밥을 퍼먹으며 밥풀을 여기저기에 뿜어내고, 야스코의 전 남자 친구 유지(이우라 아라타)의 두 다리 사이를 발로 찬 뒤에 아이처럼 기뻐하며, 야스코의 직장에 찾아가서 막무가내로 결혼하자고 소리친다.

이런 <미야모토>의 분위기 변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한국형 코미디 신파'라고 불리는 영화들과 정반대의 방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파 영화들은 영화 초반부와 중반부에 코미디적 요소를 넣고 후반부와 절정에서 신파적 요소를 넣으며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하지만 이 <미야모토>의 세계는 정적이고 현실적인 세계에서 시작해 코미디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로 변모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가지기 시작한다. 이런 서사 구조를 이 영화가 처음 만들어낸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던 것은 일본 영화가 한국 영화 혹은 다른 나라의 영화와 달리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에너지이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 미야모토의 소리침은 그 에너지의 발현일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지금의 일본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을 충실히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에너지를 갖고 있는 영화를 발견하기는 힘들 것 같다)

 

ⓒ 서울독립영화제

2. 잘려진-잘린 신체

우리가 또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미야모토>가 기어이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이 문장 이후로 직설적인 표현이 많겠지만 마리코 테츠야는 그보다 훨씬 직설적으로 찍었으므로 양해해 주길 바란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를 포함에서 거의 모든 관객들이 비상계단 격투신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1초도 채 되지 않는 순식간에 지나간 컷 하나를 이야기할 것이다. 비상계단 격투씬은 미야모토가 타쿠마를 찾아가 최후의 결판을 짓는 장면이다. 왜소한 몸의 미야모토는 아마추어 럭비 선수였던 거구의 타쿠마와 온 힘을 다해 싸우지만 어김없이 얻어터지고 만다. 그러다 미야모토의 몸부림으로 우연히 타쿠마의 속옷을 포함한 하의가 벗지고 마는데 미야모토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타쿠마의 성기를 잡아 뜯는다. 타쿠마가 고통에 힘겨워하며 소리를 지르고 결국 그의 '그것'은 터진다. 그 순간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타쿠마의 성기 중 일부분이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지나가고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잠시나마 들린다. 정말 '기어이' 보여주려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장면.

이 당황스러운 장면에 대해 혹자는 뜬금없다, 혹은 지나치게 자극적이어서 당황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의 뇌리에 박힌 그 이미지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의 문제로 다가왔다. 마리코 테츠야는 타쿠마의 신체 일부(성기)의 일부(성기의 일부분)를 찍음으로써 '잘려진-잘린 신체'를 프레임에 담았다. 지금까지의 영상 매체가 여성의 잘린 신체를 프레임에 담으며 성적 대상화 했다면, <미야모토>에 등장하는 남성(타쿠마)의 잘려진-잘린 신체는 신체를 신체로, 성기를 성기로 보게 만든다. 이에 따라 그 누구도 타쿠마의 성기를 보고 에로틱한 감정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미야모토의 복수와 함께 하는 <미야모토>의 복수일 것이다.

 

ⓒ 서울독립영화제

이런 점들을 총합해 <미야모토>가 어떤 영화인지 말해보라고 한다면 소리 지르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야스코의 앞에서 '결혼, 결혼, 결혼'이라며 철없이 소리 지르더라도 절대 미워할 수는 없는 미야모토처럼, <미야모토>는 고유의 기이한 에너지를 영화 내내 발산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은 그 에너지를 따라가 미야모토를 응원하는 것이다. 열정만으로 가득한 히어로의 서사가 이제는 낡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의 무기력한 청춘들을 담아온 최근의 일본 영화들 사이에서 등장한 <미야모토>는 그 완성도를 포함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서울독립영화제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