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파워 오브 도그'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당기며 완성된 서사가 갖는 장력
[NETFLIX] '파워 오브 도그'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당기며 완성된 서사가 갖는 장력
  • 이지영
  • 승인 2021.12.02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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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지 않고 드러내기를 택한, 인간 본성에 대한 치밀한 탐구"

1. 제인 캠피온 필모의 반복과 변주

자기 복제를 경계하면서도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의식에 천착하는 것은 감독들의 큰 숙제일 것이다. 12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제인 캠피온의 <파워 오브 도그>를 관람하려는 관객은, 그녀의 이전 필모그래피에서 주로 다뤘던 강인한 여성 캐릭터, 문명 대 자연, 본능을 거스르는 가부장제의 폭력과 저항이라는 키워드들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캠피온은 마치 이러한 공식을 보기 좋게 깨려는 듯이, 이전 작품을 상기할 만한 요소를 그대로 차용하고 전혀 새로운 의미로 반복, 변주한다.

<피아노>(1993)에서 에이다(홀리 헌터)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피아노는 이제 로즈(커스틴 던스트)를 숨 막히게 하는 가부장제의 족쇄로 탈바꿈한다. 엄마를 대신하여 자기 의사를 전달하던 당찬 어린 딸(플로라, 안나 파킨 역)은, 어딘가 소심하고 병약하며 다른 남성들에게 놀림감이 되는 아들(피터, 코디 스밋 맥피 역)로 대체된다. 그뿐만 아니라 강인하고 타협을 모르던 여성 캐릭터는 순종적이고 자기파괴적으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에서 제인 캠피온이 이전의 여성 서사를 전복함으로써 얻고자 했던 효과는 무엇인가? 같은 주제 의식을 견지한다면 이를 어떻게 반복하고 변주했는가? 이런 질문들에 나름의 답을 내려보는 것은 <파워 오브 도그>를 해석함에 있어서 아마도 유의미한 시도가 될 것이다.

 

ⓒ 넷플릭스(Netflix)
ⓒ 넷플릭스(Netflix)

2. 병든 소, 파멸을 향해 입을 벌린 개, 그 사이를 달리는 말

 

"내 영혼을 칼에서 구원하시고

내 소중한 것을 개의 세력으로부터 구하소서"

『성경 시편 22:20』

<파워 오브 도그 The Power of the Dog>라는 제목은 성경 시편 22장 20절의 한 문장을 영화 내내 환기한다. '칼', '소중한 것', '개의 세력', 그리고 '영혼의 구원'이라는 이 4요소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엔딩 직전까지도 뚜렷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1장부터 5장에 걸쳐서 인물들의 이해관계나 권력 구도, 심리적 거리는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말하는 '개의 세력'이 무엇인지를 해석해 내는 것은 작품을 해석하는 키가 될 것이다.

오프닝에서 카메라는 1925년 몬태나의 황무지 같은 벌판에 무리 지어 있는 소 떼를 비춘다. 그 사이로 전형적인 카우보이 복장의 필 버뱅크(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대조적으로 신사복을 입고 있는 조지 버뱅크(제시 플레먼스) 형제가 말을 타고 등장한다. 대농장을 경영하며 지역의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필은, 특유의 마초적인 입담으로 주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소와 목장은 그에게 삶의 전부이며 이 유산을 남겨준 은인 브롱코 헨리를 잊지 않고 추앙한다. 반면 조지는 형과 달리 평범한 중산층 가정을 이루고 살려는 바람이 있으며, 농장을 사회적 성공의 수단 정도로 여긴다. 두 형제의 이러한 온도 차이는, 조지가 인근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로즈와 결혼하게 되면서 갈등으로 번진다.

버뱅크 형제, 특히 필에게 소는 질병이나 야생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전 재산이자 생활의 전부다. 그에게 있어서 소들은 건강하게 살아있거나, 주인에게 직접 도살되어야만 한다. 이는 도축이라는 물리적 죽음뿐 아니라 수송아지를 거세하듯, 야생 본능과 남성성의 죽음까지도 포함한다.(필이 맨손으로 송아지를 거세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한데, 본능을 죽이면서 손을 베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에 나오듯, 깊은 상처는 때로 치명적일 수 있다) 반면 필에게 병들어 죽은 소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으므로 접촉이 불가한, 어찌 보면 두려운 대상이다. 나아가 그는 병든 것, 소위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혐오를 가지고 있다. 필의 혐오감은 미망인인 로즈와 그녀의 아들 피터를 마주했을 때 그대로 드러난다. 필은 그 시대의 기준에서 '정상적인 사내아이답지 못한' 피터를 조롱하고, 그가 만든 종이꽃 장식을 불태워버리면서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시한다. 그리고 조지와 결혼한 로즈가 궁지에 몰릴 때까지 그녀를 잔인하게 정신적으로 압박한다.

하지만 필의 과시적인 남성성과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기질 이면에는 강박적이며 병든 모습이 숨겨져 있다. 그는 남들이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몸을 씻으며, 브롱코 헨리의 유품에도 집착을 보인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이 과거에 우정 이상의 관계였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필이 로즈와 피터에게 보이는 이유 없는 적대감은 역설적으로 그들에게서 자신의 모습, 소수자라는 자신의 처지를 보았기 때문일 수 있겠다. 1925년의 시대 상황으로도 동성애 성향이 발각되는 것은 바로 사회적인 매장을 뜻하며, 이는 곧 죽음과 같은 공포였을 것이다. 목장이라는 본거지를 멀리 벗어났을 때에야 필은 본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은 바로 말이다. 그에게 말 타는 법을 알려준 브롱코 헨리 역시도 뛰어난 기수였다고 묘사된다. 이때의 말은, 본능과 야생으로 일탈할 수 있는 수단, 자아의 탐색을 가능하게 해주는 주체성이라는 의미다.

 

ⓒ 넷플릭스(Netflix)

로즈의 아들인 피터가 대학생이 되어 집에 돌아오자, 필의 태도는 몇 번의 계기로 갑작스럽게 반전된다. 피터에게 이유 없는 적개심을 보이던 그는 이제 피터를 자기 곁에 두고, 말 타는 법을 알려주는 등 친절을 베푼다. 표면적으로는 피터를 로즈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시킴으로써, 또 한 번 그녀의 불안을 증폭시키기 위함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피터가 멀리 보이는 산맥에서 개의 입이라는 형상을 찾아냈을 때, 필의 적개심과 방어 기제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그는 자신과 피터에게 어린 날의 자신과 브롱코 헨리의 관계를 투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산맥이 품고 있는 '개'와 '개의 세력'이란 성경에서 말하는 선악의 구도를 넘어서,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파멸시킬 수 있는 야생적인 힘이자, 부정할 수 없는 본능이라고 재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관점은 바로 필의 시점, 밧줄 중에 한 가닥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머지않아 알게 된다.

 

3. 밧줄의 장력과 그 끝의 죽음

<파워 오브 도그>의 서사는 그 자체로 여러 갈래 끈이 하나로 엮인 밧줄과 같다. 벌어지는 모든 사건과 인물들의 행동은, 하나도 빠짐없이 후반부 전개의 복선이 된다. 앞서 분석한 내용이 전반적으로 필의 관점이었다면, 이야기의 또 다른 장력을 담당하고 있는 주체는 피터라는 소년이다. 영화 오프닝에서, 우리는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피터의 고백 혹은 결심을 듣는다. 그에게 있어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누구보다 자신의 어머니이며, 그녀를 위험에 빠트리는 '개의 세력'은 바로 그녀가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필일 것이다. 그렇다면 피터는 과연 이 태도를 끝까지 견지할까? 아니면 본능적으로 필이라는 인물에게 이끌릴까?

피터와 필은 서로 닮았으면서도 동시에 정반대의 속성을 가진 인물이다. 필에게 (그 자신을 포함하여) 병든 무언가가 통제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었다면, 피터에게는 반대로 자신의 존재 이유이자 직업적인 소명이다. 필이 소를 키우는 방법이나 농장과 관련된 브롱코 헨리의 유산을 물려 받았다면, 피터는 의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의학 서적들과, 그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얻은 트라우마 및 정신 질환마저도 유산으로 물려 받는다. 또 두 사람 모두는 공통적으로 칼을 다루는 기술이 있는데, 필이 소를 칼로 거세한다면 피터는 집안에서 토끼를 해부하고 탄저병에 걸린 소의 가죽을 도려낸다. 겉모습은 상반되지만 두 사람 모두 살생을 하는 데 있어서는 무감동하고 무심하다는 동일한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 넷플릭스(Netflix)

이 두 인물의 삶의 방식은 첨예하게 맞물리며 서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변곡점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이러하다. 1) 피터의 섬세하고 여성적인 성격(종이 꽃을 만듦)은 필의 조롱을 받고, 로즈는 이를 보며 속상해서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이를 본 조지가 로즈와 사랑에 빠지고 이들은 한 가족이 된다. 2) 필은 로즈에게 적대하는 반면 피터에게 관심을 갖고 그에게 말 타는 법을 알려준다. 피터는 그가 알려준 말을 타고 나가서 탄저병에 걸린 소의 가죽을 채취한다. 3) 필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로즈는 그의 가죽을 허락 없이 인디언에게 전부 팔아버린다. 피터에게 밧줄을 꼬아서 주려고 했던 필은 분개하고, 피터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죽을 그에게 제공한다.

각 인물이 팽팽히 당기는 장력은, 결국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마지막으로 매듭지어지고, 그 완성된 밧줄을 끝내 손에 넣게 되는 것은 반대편에 있는 다른 인물이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완성된 밧줄은 또 다른 잠재적인 죽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두 칼잡이들의 싸움은 가시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이것은 "집안에서의 살생을 불허한다"는 어머니 로즈의 정언 명령에 따르고 있다.

 

4. 보여주지 않고 드러내는 카메라

서론에서 우리는 제인 캠피온이 만들어온 여성 중심의 서사가 변주되거나 전복된 것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파워 오브 도그>는 여전히, 문명과 자연의 대비, 제도가 만들어낸 개인에 대한 억압, 여성(성)에 가해지는 폭력, 이에 대한 저항과 파멸과 같은 인간 본성의 문제에 천착해온 이전 전작들과 궤를 같이한다. 전 작품들에서는 여성 캐릭터에 가해지는 가학적인 폭력성을 여과없이 묘사했다면, 지금은 '여성성'을 강요하거나 억압하면서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더욱 집중한다.

이때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다양한 '여성성'의 양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제인 캠피온의 카메라는 이제 눈에 안 보이는 것, 인물 주변의 공기마저도 섬세하게 포착하는 힘을 갖는다.

또 한편으로는 마초이즘의 화신과 같은 인물이 내면에는 강박과 공포를 숨기고 있고, 나약하고 병들어 보이는 인물은 잔인하고 가학적인 속성을 드러내듯이, 모순적이지만 각자 설득력 있는 캐릭터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이야기의 장력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면서 서스펜스를 치밀하게 자극한다. 12년 만에 만난 제인 캠피온의 영화에서 한층 깊어진 캐릭터와 서사를 발견한다는 것은 반갑고 기쁜 일이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넷플릭스(Netflix)

파워 오브 도그
The Power of the Dog
감독
제인 캠피온
Jane Campion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
커스틴 던스트Kirsten Dunst
제시 플레먼스Jesse Plemons
코디 스밋 맥피Kodi Smit-McPhee
토마신 맥켄지Thomasin McKenzie
짐 개피건Jim Gaffigan
키스 캐러딘Keith Carradine

 

제공 넷플릭스(Netflix)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27분
등급 15세 관람가
공개 2021.12.01

이지영
이지영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평이한 문장이지만 사색을 담은 글을 씁니다. 투박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글을 통해, 삶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실의 일면에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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