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지옥' 告知(고지) vs 高志(고지)
[NETFLIX] '지옥' 告知(고지) vs 高志(고지)
  • 배명현
  • 승인 2021.12.01 15: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사건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과 하나의 세계를 만들던 자의 새로운 알파"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감정은 공포이다. 또한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다.

러브크래프트(H.P. Lovecraft), 『문학에 나타난 초자연적 공포』 中

이 세계를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The Thing)이 나타나 정해진 시간에 죽음을 고한 뒤, 정확히 그 예고된 시각에 알 수 없는 것들(The Things)이 죽음을 이행하는 세계를. 새로운 형태의 아포칼립스 혹은 코스믹 호러의 장이라 불러야 할까. 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지옥>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작품 세계관 안의 인간군상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 넷플릭스(Netflix)
ⓒ 넷플릭스(Netflix)

잠깐만 다른 이야기를 경유해 보도록 하자. 작품을 보는데 작품 그 자체보단 작가가 먼저 보이는 작품들이 있다.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이 특히 그렇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가 그의 작품 세계에서 꾸준하게 상정한 주제 의식이 도드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지속해서 인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의 시각에서 인간은 한 마디로 '끔찍하다' 이 형용사는 영화와 결합하여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성질과 상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첫 장편영화인 <돼지의 왕>부터 <반도>까지. 그가 각본과 연출을 동시에 한 작품들의 리스트만 보아도 느낄 수 있다.(유일하게 <염력>이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반박할 수 있지만, 오히려 가장 기만적이다)

연상호 감독은 꾸준히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를 작품을 통해 재구성'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필자는 '이 지점'이 작가적 특성 혹은 한계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 재창조된 세계로 꾸준히 어떤 '시각'을 제시하긴 했지만,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긴 했지만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언제나 (과할 정도로) 냉소적이었다. 그의 작품의 결말을 복기해보자. <사이비>의 자괴적인 동시에 기괴한 결말, <돼지의 왕>에서 주인공 종석이 읊조리는 차가운 대사. <서울역>에서 <부산행>으로 이어지는 종말과 <반도>에서 관객에게 들이미는 이상한 안도감은 지금 서 있는 '이곳'의 문제만을 지적한다. 이 냉소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기에 그가 바라보는 세계엔 해결할 방도가 없다. 그에게는 늘 문제는 여기에 있지만 돌파구는 존재하지 않거나 좋게 봐야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다.

 

ⓒ 넷플릭스(Netflix)
ⓒ 넷플릭스(Netflix)

찾을 수 없는 희망과 찾지 못한 희망은 다르다. 연상호 감독의 세계는 갱신되지 않았다. 특히나 더 그의 세계관을 어둡게 만드는 건, 설정이 아닌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세계를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파멸시킨다는 데 있다. 세계를 적극적으로 파괴시키는 인물들. 여기엔 캐릭터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 지'에 대한 설득 보단 서사로서 존재해야 하는 당위성이 두드러졌다. 그 때문에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늘 가능성이 상실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라면 계속해서 그의 새로운 작품을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이 사람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와 같은 동질감을 얻고 싶은 사람 혹은 정신적 자학을 하고 싶은 마조가 아닌 이상 굳이 그럴 필요성은 느끼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지옥>은 달랐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이전과 같은 파괴된(될) 세계와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악)가 적극적으로 세계를 파괴시키고 있음에도, 이 넷플릭스 드라마는 무엇인가가 달라졌다. 물론 이전 작품들처럼 인간 군상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된 아포칼립스라는 문제의식은 동일하지만 그 구조가 바뀌었다.

'고지'라는 사건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초월적인 그 무엇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인간들이 만들어낸다. 고지를 알리는 천사의 존재, 그리고 그 존재가 행하는 '이유'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해석'이다. 해석은 현실 세계 안에서 논리적 오류로 인해 오염되기 마련이다. 특히, 공포라는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인간들이 무능해 죄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는데, 여기에 신이 개입하여 단죄한다는 해석.(그리고 이것은 현실의 많은 이들이 바라는 소망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해석은 사람들에게 혐오에 대한 욕망(죽이고 싶다)을 자극하는 동시에 대다수의 착각(자신이 무결하며 올바르다)을 자극해 해석적 우위를 선점한다. 덕분에 '새진리회'와 '화살촉'이라는 단체가 차지한 이 우위는 행정적 차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민주주의는 옮음이 아닌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체제이니 당연하다)

 

ⓒ 넷플릭스(Netflix)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고지를 받고 죽은 사람들 중에 죽어 마땅한 죄를 지어 죽은 사람이 누가 있었는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된 박정자의 죽음은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 넣고 화살촉의 자경단 활동과 새진리회의 부흥을 야기한다.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왜곡과 착시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어떤 정치 스탠스를 가지고 있느냐는 전혀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타인을 오염된 인간으로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이를 생각해보면 연상호가 포착한 '현재'는 너무나 새삼스러워지긴 하지만)와 다를 바 없다고 느낀다. 새진리회에 맞서는 단체 '소도'는 어떠한가. 이들은 초자연적 존재의 이유 없는 행위라는 해석으로 대항한다. 그리고 이 두 대립은 드라마의 핵심 주제를 드러낸다. 선한 의도가 만들어 놓은 '지옥'에서 인간들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명백한 현실 세계에 대한 은유인 이 세계 안에서 연상호 감독은 처음으로 투쟁한다.

연상호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닫힌 구조를 설계한 듯 (절대적 존재를 인간이 과연 거스를 수 있을까?) 보이지만, <지옥>은 의외로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인간들이 해결해야한다는 식의 단서를 곳곳에 남겨두었다. 전진수가 진경훈에게 남긴 마지막 한마디나 택시 운전사의 멘트등이 그렇다. 어떤 소수가 전체를 바꿀 수 있을 것이란 믿음. 인간의 의지에 대한 믿음. 이전까지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흔히들 '희망'이라고 불리는 그 추상적 믿음에 대한 긍정이 드러난다.(물론, 여기에 거절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적 존재가 등장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본다면 다시 어떤 혐의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그건 잠시 나중이야기로 미루어보자. 시즌2까지 기다린 뒤 재수사를 진행해도 그리 늦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초월적 존재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이 행하는 행위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접근하려는 의도와 반종교적인 접근으로 다가가려는 시도. 연상호 감독 본인의 종교가 개신교임에도 이러한 접근으로 다가간다는 점이 흥미롭다.

앞서 제목으로 설정한 고지에는 한자에 따라 두 가지 의미가 존재한다. 하나는 게시나 글을 통해 알리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고상한 뜻, 남의 의견을 높여 부르는 말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하나의 고지를 향한 새진리와 소도가 바라보는 두 가지 해석이 함께 겹쳐 보인다. 이 두 가지 해석을 시즌 2에서 본격적으로 대립될 것으로 예견된다. 시즌 1에서 깔아놓은 떡밥이 2에서 훌륭하게 회수될 수 있을까. 기억을 되짚어 말하자면 지금까지 연상호의 작품에 기대를 가진 적이 크게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느낌이 좋다. 어떤 서사적 생경함이나 연출적 성취를 바란다기 보단, 그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새로운 알파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지옥
Hellbound
감독
연상호

 

출연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원진아
양익준
김도윤
김신록
류경수
이레

 

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제공 넷플릭스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311분(6부작)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공개 2021.11.19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