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디스패치' 언제나 그리울 웨스 앤더슨의 세계
'프렌치 디스패치' 언제나 그리울 웨스 앤더슨의 세계
  • 선민혁
  • 승인 2021.11.2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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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

특색이 뚜렷한 감독의 영화를 보는 일은 즐겁다. 이미 그가 가진 특유의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신작을 찾게 된다. 홍상수의 신작을 보러 가는 길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옮긴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낯선 장면들을 머릿속에 그리게 되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볼 때에는 절묘하게 연결되는 스토리와 유혈이 낭자한 장면들을 기대하게 되며, 데미언 셔젤의 신작을 보기 전에는 그가 이번에는 어떤 인물의 내면을 어떤 음악과 함께 그릴 것인가를 궁금해할 것이다. '웨스 앤더슨' 역시 그 이름만으로 관객들에게 기대와 설렘을 주는 감독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의 스타일은 굉장히 선명하다. 화면을 타이트하게 채우고 좌우 대칭된 장면을 활용하는 미쟝센, 비비드나 파스텔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색감, 배우들이 과장된 연기를 하지 않는데도 풍부하게 드러나는 감정, 특유의 유머, 과거의 아름다움이 되어버린 어떤 것들에 대한 노스텔지어, 주인공이 드러내는 낭만에 대한 신조 등의 특징들은 그의 초기작에서부터 최근작은 물론이고,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2009), <개들의 섬>(2018) 같은 애니메이션, 심지어는 광고를 위해 만들어진 단편 영화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도 이러한 웨스 앤더슨 특유의 스타일은 가감없이 표현된다. 관객들이 '웨스 앤더슨 스타일'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눈에 띌 정도로 대칭된 숏인데, 이번 영화에서 웨스 앤더슨은 이것에 대한 집착은 조금 내려놓은 듯하다. 전체 스토리를 관통하는 흥미로운 사건을 소재로 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그의 히트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과는 달리 짧은 이야기 여러 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태의 내러티브를 취하고 있어, 어떤 관객들은 영화에 쉽게 몰입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렌치 디스패치>는 웨스 앤더슨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만하다.(낡은 비유일지라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의 편집장인 아서 하위처 주니어(빌 머레이)의 죽음을 알리며 시작된다. 전체 러닝타임에서 아서 하위처 주니어가 등장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이 인물은 모든 에피소드에서 지속해서 묘사된다. 잡지와 글, 그리고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에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그는 야생동물로서 자신의 본질을 지키는 것을 낭만으로 삼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나, '도살장처럼 변해버린 잔혹한세상 속에서도 존재하는 희망' 무슈 구스타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서는 수십 년 전―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으로 선별한 것으로 보이는―기자들을 모아 주간지 『프렌치 디스패치』를 창간하였고 잡지는 시대를 풍미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아서의 유언에 따라 이 잡지는 그의 죽음과 함께 폐간되기로 결정되었는데, 영화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마지막 호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 자체를 영상으로 옮겨낸 듯한 형식을 취한다. '위대한 기자들'이 쓴 마지막 호에 실릴 기사들을 단지 하나씩 옴니버스 형태로 담는 것뿐만이 아니라, 화면 자체를 마치 종이 잡지의 레이아웃을 연상시키도록 구성한다. 지면 잡지의 논리를 최대한 따르는 화면 구성은 웨스 앤더슨이 가진 특유의 시각적 스타일의 색깔을 극대화 시킨다. 주된 스토리가 진행되는 큰 화면 이외에, 이야기에서 묘사되는 어떤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별도의 화면이 분할되기도 하며, 상황에 따라 컬러에서 흑백으로 전환, 다시 컬러로 전환되기도 한다. 또한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삽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체의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되어 스토리가 진행되기도 하는데, 웨스 앤더슨의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나 <개들의 섬>에서 본 듯한 특징이 드러나면서도 또 다른 매력과 위트를 느낄 수 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기사들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프랑스 도시 앙늬에 대한 전반적인 묘사가 되는 첫 번째 기사. 사회에 위협이 되는 광기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천재성을 동시에 지닌 수감된 화가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기사.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학생들을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진 기자 루신다 크레멘츠(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취재한 세 번째 기사.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장인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최선을 다 해내는 경찰 요리사 네스카피에 경위(스티브 박)와 경찰서장(마티유 아말릭) 아들 유괴사건을 취재한 네 번째 기사. 『프렌치 디스패치』 마지막 호에 실린 이 네 가지 기사에 서로 상관관계는 없다.

그러나 관객이자 독자로서 네 개의 이야기를 즐긴 뒤에는 어떤 유사성이 느껴졌는데, 그것은 '고독'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그의 영화에는 비비드, 파스텔 같은 키워드가 어울린다. 시각적인 색감 자체가 그렇기도 하고, 이야기가 동화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이 관객들에게 더욱 선명한 매력으로 전달되는 이유는, 그의 동화에 흐르는 고독이 전체적인 비주얼과 상호작용하며 아이러니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동경하던 멘토와 사랑하는 연인을 모두 떠나보내고 거대한 호텔에 남아 한 투숙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무스타파', 혹은 사고로 가족을 잃고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위탁 가정을 전전하는 <문라이즈 킹덤>(2012)의 '샘'처럼.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의 에피소드들에도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수감된 채로 작품활동에 몰두하며 때때로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하는 화가 모세 로젠탈러(베나시오 델 토로)와 그의 뮤즈 역할을 하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간수 시몬(레아 세이두),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사랑을 이루지는 못하는 루신다 크레멘츠, 뛰어난 요리 실력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지만, 이방인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항상 인식하고 조직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기울이는 네스카피에 경위. 이들이 풍기는 고독한 분위기는 풍성한 미쟝센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아이러니를 형성해 웨스 앤더슨만이 가진 스타일을 극대화 시킨다. 고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물들뿐만이 아니다. 현시대에는 소수의 독자들만이 읽는 점점 사라져가는 지면 잡지라는 소재 또한 그렇다.

웨스 앤더슨과 같이 자신만의 일관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감독의 영화를 볼 때에는, 그의 세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배우를 만나는 재미도 있는데, <프렌치 디스패치>에는 웨스 앤더슨 영화에 출연하여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적이 있는 배우가 꽤나 많이 출연한다. 주요한 역할들에서부터 단역들까지 배우들은 자신들이 가진 색깔을 웨스 앤더슨의 세계에 조화롭게 녹여낸다. 언제나 그리울 이 세계가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란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
The French Dispatch

감독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출연
틸다 스윈튼
Tilda Swinton
프란시스 맥도맨드Frances McDormand
빌 머레이Bill Murray
제프리 라이트Jeffrey Wright
애드리언 브로디Adrien Brody
베니시오 델 토로Benicio Del Toro
오웬 윌슨Owen Wilson
레아 세이두Lea Seydoux
티모시 샬라메Timothee Chalamet
리나 쿠드리Lyna Khoudri
스티브 박Steve Park
마티유 아말릭Mathieu Amalric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
엘리자베스 모스Elisabeth Moss
세실 드 프랑스Cecile De France
에드워드 노튼Edward Norton
윌렘 대포Willem Dafoe

 

수입|배급 윌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07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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