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국내영화제 취재기②] 평창의 밤
[2021 국내영화제 취재기②] 평창의 밤
  • 문건재
  • 승인 2021.11.24 2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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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2021.06.17-22)
ⓒ 문건재 기자, 코아르CoAR DB
ⓒ 문건재 기자, 코아르CoAR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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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 번째를 맞이하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이사장 문성근, 집행위원장 방은진, PyeongChang International Peace Film Festival)의 슬로건은 '새로운 희망'(A New Hope)이다. 지금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계속되는 거리두기 속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작은 응원처럼 다가온다. 영화제는 온라인(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안전을 원칙으로 삼아 영화의 감동이 관객과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오프라인 개최를 선택했다. 소박하지만 희망찬 영화 축제를 꿈꾸는 2021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취재를 위해 도착한 그곳에는 26개국 78편의 영화와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한 수많은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제 도착 후, 제일 먼저 <모란봉>(감독 장 클로드 보나르도)을 보기 위해서 알펜시아 콘서트홀을 찾았다. 북한과 프랑스 최초의 합작인 이 작품은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노동자와 판소리 음악가의 딸의 러브스토리이다. 또 종전 직후 평양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진귀한 작품이다. 북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만들어진 이 영화에는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강홍식', '원정희', '엄도순'등이 출연한다. 영화가 끝난 후, 바로 'PIPFF클래스: 모란봉' 토크 콘서트가 진행됐다. 이화진 영화사 연구자는 <모란봉>의 중요 모티브이자 1950년대 후반 <춘향전>이 가진 의미에 대해 “북한에서의 <춘향전>은 남한보다 계급문제, 주체적인 여성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느낌이 강하다”고 언급했다.

그날 저녁 <바이크 도둑>을 보기 위해 어울마당을 찾았다. 하천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골목으로 가다 보면 어울마당이 나온다. 그곳엔 몇 명의 사람들이 <바이크 도둑>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난 그들의 모습을 눈으로 담았다. 영화는 런던에서 바이크로 야간 피자 배달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한 남성이 바이크를 잃어버리며 일어나는 일을 그린 작품으로, 이방인의 생계를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 잘 보여준다.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을 모티브로 삼은 이 작품은 평창국제평화영화제 PIPFF 올해 국제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 문건재 기자, 코아르CoAR DB

다음 날 올해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클로즈업' 섹션을 통해 조명하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의 안재훈 감독 전시가 열린 포테이토클럽하우스를 찾았다. 1990년대부터 애니메이터로 활동한 그는 1998년 <히치콕의 어떤 하루>를 시작으로 단편 애니메이션, TV시리즈, 장편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작가다. 특히 <메밀꽃 필 무렵>, <봄봄>, <운수 좋은 날>, <소나기>, <무녀도>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이야기할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그가 만든 이미지들은 모방 불가능한 독특한 정서를 지니고 있으며, 철저한 로케이션 헌팅과 고증을 통해 탄생한 영화적 세계는 관객들을 강하게 끌어들이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 문건재 기자, 코아르CoAR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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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정을 마친 후, 정처 없이 걸었다.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풀냄새와 벌레들의 목소리는 평창의 분위기에 빠져들기 충분했다. 이곳저곳을 걸으며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맡고, 느꼈다. 평창의 밤은 고요하고, 잔잔했다. 영화 얘기를 하며 걷는 사람들을 꽤 봤다. 그들의 모습은 멋진 풍경과 어우러져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당장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아름다운 순간 속에 그저 머물고 싶었다. 찬연한 시간과 공간은 보정하거나 덧칠할 필요가 없다. 물론, 순간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계절도, 음식도, 영화도, 음악도, 정말 좋은 것은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돋보이기 마련이다. 평창에서의 밤은 꽤 오랫동안 내 마음속 담겨있을 것 같다.

[글 문건재, ansrjswo@ccoart.com]

문건재
문건재
《코아르》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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