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디스패치' 웨스 앤더슨의 이토록 개인적인 취재
'프렌치 디스패치' 웨스 앤더슨의 이토록 개인적인 취재
  • 이현동
  • 승인 2021.11.22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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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처음 넘길 때, 잡지를 닫을 때"

1925년부터 1975년 사이에 일어났던 사건을 옴니버스의 형식으로 다룬 <프렌치 디스패치>(2021)는 2번째 에피소드인 68혁명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개별적인 픽션에 기인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리 인터넷으로 이 영화의 정보를 검색했던 사람이라면 웨스 앤더슨이 미국의 잡지인 뉴요커(The New Yorker)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가 뉴요커에 실린 기사들과 이질적으로 조응하는 건 미국이 갖고 있는 다문화적 정체성이다. 이를 역으로 기용한 '역이민'(reverse immigration)라는 상상은 웨스 앤더슨이 열렬하게 사랑했던 뉴요커를 미국에서 유럽으로 이주시킨다. 가장 미국적인 잡지인 뉴요커와 영화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와의 조합은 그가 프랑스의 영화에 가진 애착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된다. 그는 인터뷰에서 프랑스 감독들을 나열하면서 고다르(Godard), 비고, 트뤼포, 타티(Tati), 클루조(Clouzot), 뒤비비에(Duvivier), 자크베케르(Jacques Becker)와 같은 감독으로부터 스타일들을 빌려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특히, 이런 이질감을 유독 강화하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는 엑조틱(Exotic)한 특성이 위치하고 있음을 강조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국적으로 기능하는 미장센, 다소 정적으로 이동하는 수직과 수평의 카메라의 움직임과 갑작스레 등장하는 줌 인, 아웃들은 그의 시네아스트로서의 독창성을 상기시킨다. 필자는 <프렌치 디스패치>를 감상하면서 배경과 인물들이 구현하고 있는 은폐 되어 있는 대표적인 소격효과(Verfremdungs effect)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영화에서 이전의 영화와는 달리 소격효과라는 표현이 합당한 것인지를 감히 따질 수 있는 이유는 다소 산발적으로 생소한 사건들과 기법들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점멸하는 흑백들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시기가 동시에 공존하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배경은 그 자체로 역사를 축조하는 매개로 대응한다. 서두에 잡지를 설명할 때 '과거'와 '현재'를 '흑백'과 '컬러'로 그 대칭축을 형성하며 분리되는 건 다분히 의도적인 연출이다. 미리 말하자면 흑백 화면은 일종의 웨스 앤더슨의 관습과의 거리 두기이자 재프레임화의 일환으로 활용된다. 이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편집장인 아서 호위처 주니어(빌 머리) 대사와 접합되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쓴 것처럼 써봐"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에서 명멸하는 원색 계열의 룩과 배경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정형화된 연극적인 톤과 같은 특징들은 특정한 의도로 계획되고 설정되는 것들이다. 영화의 진화는 과거에 산재해있던 회화적인 요소를 삭제할 때 발생했던 것이라면 이를 지시하는 기원에는 흑백사진이 존재한다.

한스 드레이어(Hans Dreier)가 최초에 언급한 흑백의 영화가 컬러로 나아갈 때 그것을 쉽게 '자의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보면 이런 평가는 이전에 영화가 겪어야 할 예견된 진통과도 같다. 물론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이 언급은 컬러 영화 초기에 작위적 성격에 비판이었고, 그것은 영화가 경유하거나 극복해야 할 시선이었다. 지금은 누구도 컬러 영화를 작위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흑백 영화를 작위적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색감에 민감했던 웨스 앤더슨이 종전에 선보이지 않았던 흑백을 기용한 건 역사와 역사를 잇는다는 지점에서 흥미롭게 작용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흑백 화면으로 치장되고 있는데, 유독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2번째 에피소드는 두 종류의 프레임이 예술이란 주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흑백으로 치장된 화면에 맨 처음 누드모델로 등장하는 시몽(레아 세이두)의 신체는 마치 회화적인 속성을 대변하는 석고상의 형국으로 서 있고, 그녀를 그리는 모세스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르)의 그림에는 회화가 아닌 형체를 식별할 수 없는 다다이즘적인 그림이 채색되어 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러한 흑백과 컬러의 시각적인 이미지는 그림이 등장하지 않을 때에는 잠시 소거되었다가 그림이 등장할 때 섬광처럼 그 빛을 드러낸다. 이들의 사연을 쇼에 나와 소개하는 J.K.L 베렌슨(틸다 스윈튼)이 흑백화면으로 전환되어 과거인지 현재 인지를 가늠할 수 없는 방향으로 등장할 때 이는 시간과 예술의 경계가 '영화'라는 교집합으로 묶여 존립하는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취급된다. 흑백과 컬러를 통해서 대중들은 그 차이를 대조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차원의 이미지가 동일한 속성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흑백영화의 시대를 현대에도 사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또한 웨스 앤더슨의 과거를 향한 동경이자 헌사겠지만.

 

언어와 잡지, 그리고 인물

고다르가 비행기 안에서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영화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하고 이어서, 이를 훌륭한 무성영화처럼 느껴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미지만으로 그 의미를 추적할 때 느끼는 당혹감은 결과적으로 영화의 존재를 묻는 것으로 환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다르는 과격하게도 <이미지 북>(2018)을 발표하고 인터뷰에서 "이미지가 흥미롭다면 그걸 보는 데만도 시간이 없거든요. 모든 영화에 자막이 붙는 건 이미지가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자막을 반대한다고 밝힌 고다르와 웨스 앤더슨의 언어를 대하는 태도는 일종에 교란 상태를 일으키며 결국 이해하는 형태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지칭된다.

이미지는 말 없는 말을 지시하는 형태로 대두되는 것이다.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가끔 프랑스어로 대사를 하다가 영어로 대답할 때 성취되는 건 이미지가 일치되는 순간이다. 그가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전문용어 하나를 발견하기를 '비적응 2개 국어 사용'(Non-accommodating Bilngualism)가 자신의 표현기법과 유사한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언어로 전환하지 않고, 그 의미를 오로지 이미지와 상황으로부터 구원하는 이 행위는 어쩌면 유성영화에 대한 그의 향수를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4번째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요리사인 네스파키에(스티브 박)은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것을 찾고, 남겨진 것을 놓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극 중에서 근본적으로 외국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백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동양인이 찾아야 할 근원적인 방향성은 앞으로 영화와 혹은 잡지와 같은 매체가 극복해야 할 요소로 치환되는 것이다. 그전 작품인 <개들의 섬>(2018)에서 홀연히 개를 찾으러 온 일본 소년 아타리처럼 웨스 앤더슨은 영화가 찾아야 할 지점들을 소수의 인물을 중심으로 그 축을 생성한다. 더 나아가 그는 '잡지'라는 매개를 통해 영화적인 가능성을 확대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잡지에 연재되었던 삽화들을 활용하여 애니메이션을 활용하여 한순간에 다른 장르로 변주하고, 레이아웃을 연상시키는 화면 분할은 그 자체로 실험적이면서 웨스 앤더슨의 고유의 즉물적인 구성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프렌치 디스패치>는 대중들에게 낯선 영화로 도래한다. 시청각적 이미지가 레퍼런스 그 자체를 대체하는 이 영화는 즉각적인 영화다. 잡지의 기사들은 지면상 모든 내용을 실을 수 없다는 점에서 휘발적 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건 특권적이기까지 하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감독의 취향을 온전히 반영한 만큼 배치된 인물과 사건은 프레임의 끊임없는 반동으로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그런 영화. 그건 그의 영화를 계속 지켜봤던 이들이라면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또 하나의 영화언어가 탄생하는 순간을 만끽할 때 얻는 해학들. 첫 영화인 <바틀 로켓>(1996), 그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까지 그의 영화를 인상 깊게 보았던 팬이라면 <프렌치 디스패치>는 그의 영화세계가 확장되는 기이한 행렬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헌사의 중심에 No Crying이 각인된 건 잡지의 주축이었던 편집장의 죽음이란 결과에도 온전하게 동반할 수 있는 추억들이 인장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영화에서 과거는 해동되고, 현재는 그렇게 여전히도 취재되고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
The French Dispatch

감독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출연
틸다 스윈튼
Tilda Swinton
프란시스 맥도맨드Frances McDormand
빌 머레이Bill Murray
제프리 라이트Jeffrey Wright
애드리언 브로디Adrien Brody
베니시오 델 토로Benicio Del Toro
오웬 윌슨Owen Wilson
레아 세이두Lea Seydoux
티모시 샬라메Timothee Chalamet
리나 쿠드리Lyna Khoudri
스티브 박Steve Park
마티유 아말릭Mathieu Amalric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
엘리자베스 모스Elisabeth Moss
세실 드 프랑스Cecile De France
에드워드 노튼Edward Norton
윌렘 대포Willem Dafoe

 

수입|배급 윌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07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11.18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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