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영화사에 추가되는 또 하나의 거대 서사
'듄' 영화사에 추가되는 또 하나의 거대 서사
  • 배명현
  • 승인 2021.11.0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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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모래언덕을 넘어 스크린으로"

1.

거대한 이야기는 강인한 힘을 가지고 있다. 거대 서사는 단순히 어떤 크기 내지는 규모와 같은 서사적 양감의 형태를 의미하는 추상적인 성질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로지 규모만이 거대 서사를 담보하는 것이라면 그 이야기는 곧 시시해져 버리고 사그라져버리고 만다.

거대 서사가 '거대 서사'이기 위해서는 독자적으로 살아남아야 하고 생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간이든 독자의 관심으로 부터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세계관'이 필요하다. 거대 서사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현실적 가상이 아니다. 거대 서사는 상상을 기반으로 한 창작적 현실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창작의 세계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라는 것이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그런데 이상하다. 모든 창작물은 창작의 세계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긴 하지만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가상의 이야기라고 일컫는 대부분은 사실 현실에 기대어 쓰인 가상의 이야기를 의미한다. 먼저, 세계가 우선하고 그다음에 창작이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 이야기들은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세계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존립이 가능한 이야기들이 있다. 예를 들면 『반지의 제왕』 같은 이야기. 이 같은 이야기는 세계의 한 구석을 도려낸 이야기가 아닌, 세계의 총재를 구현해낸다. 그 때문에 거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모두 이 '거대한 이야기'의 형태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마블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이 글에서 이야기할 『듄』은 거대한 이야기의 좋은 예가 된다.

『듄』은 프랭크 허버트가 죽을 때 까지 집필한 소설이다. 그 안에는 인간의 일평생, 아니 그 이상의 무엇이 텍스트로 담겨있다. 그 때문일까. 이미 수차례 영화화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대부분―여러 가지 의미로―실패 했고, 데이비드 린치조차 고난과 수난을 견뎌야 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그런데 다시, 드니 빌뇌브가 이 거대 서사를 카메라에 담겠다는 도전을 한다. 필자는 걱정했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이 만들었던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와 <컨택트>(2016)가 예행연습이었다는 거야?' 그는 분명 훌륭한 감독 중 한 명이 분명하지만, 그의 연출 스타일이 『듄』에 적합할까 우려했다.

그러나 역시 그 명성에 걸맞게 드니 빌뇌브는 극복해냈다. 화면 안에 펼쳐지는 광경은 경의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압도적이었다.(거대한 대자연의 경관으로부터 느껴지는 압박감은 미의 근원 아니었나) 이전까지의 규모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의 용기는 좋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번 영화는 어딘가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2.

이제까지 관객은 소설원작 영화에게 늘 원작이 담고 있는 세계를 시각으로 구현하는 것 그 이상을 요구한다. 현대 기술은 시각적 기술에 완성도를 더해주었지만, 영화가 지향하는 측면에선 늘 같은 것을 원했다. 훌륭함.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늘 이 단어 앞에서 무력해지고 만다. 이 훌륭함이란 언어로 확신성이란 그물로 잡아 올리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훌륭'이 지시하는 것이 분명 있다는 것을.

먼저, 창작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드니 빌뇌브는 '내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다'라고 말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이해도를 가졌으며, 영상화를 하면서 수위도 매우 낮춰 각생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관객수도 그의 말을 방증하는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원작팬의 수를 언급할 수는 있겠지만, 증명할 수 없는 문장으로 자수의 노력이 응집되어있는 작품을 훼손하고 싶진 않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듄>에 대해 강한 호불호를 드러내고 있다.

대게는 너무 느리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지는 사막 다큐멘터리 같다는 말들이다. 물론 한 영화에 있어 이런 엇갈린 반응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고 굳이 언급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새삼스럽기까지 하지만 이 말들은 감독이 지금까지 유지해온 특유의 스타일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언제나 느렸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구조화해낸 내용과 영상을 스크린 위에 올려두었고, 그 시도는 대게 성공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프리즈너스>(2011)부터 <블레이드 러너 2049>(2017)까지 영화들을 생각해보자. 그렇게 느린 <시카리오>(2015)도 '띵작' 소리를 들었다. 그는 분명 멋진 각본을 훌륭한 영상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 능력은 분명 흔치 않은 능력이다. 텍스트 안에 있는 긴장감을 매우 훌륭하게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은 모든 감독에게 요구되지만 모든 감독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아니니까. 그 때문에 느린 호흡이 이번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유독 엇갈리는 이유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만 말하자면, <듄>은 파편적이다.

이는 복합적인 문제이다. 단순히 편집의 문제로만 상정하기엔 다양한 부분들이 조각나있고 흩뿌려져 있다. 시나리오부터 생각해보자. 눈에 띄는 점은 '대사'로 전달되는 '정보'가 유독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듄>은 드니 빌뇌브의 각색을 기반으로 한 시나리오이다. <그을린 사랑>이후 그의 영화는 모두 다른 각본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드니 빌뇌브는 『듄』의 장대한 이야기 전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모든 것을 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영상은 전혀 설명적이지 않다. 데이비드 린치의 <듄>(1984)처럼 독백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 쿨하게 보여준다. 다만 편집이 난삽할 정도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다. 소설원작이라도 <컨텍트>와 <에너미>(2014)는 중편, 장편이었지만 <듄> 규모가 다르다. 역시 그에게도 벅찬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3.

하지만 드니 빌뇌브의 <듄>을 실패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영화는 앞서 말했듯 파편화되어 있긴 하지만, 그가 모으려는 파편들의 완성도는 놀라웠다. 촬영감독 중 한 명인 그레이그 프레이저와 함께해 VFX를 극대화 시킬 영상으로 기술적 완성도를 높였고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조차 CG가 가장 이질적이지 않았다고 평할 정도였다. 이번 영화로 얻은 시각적 성취는 앞으로 나올 SF영화의 어떤 기준이 될 만하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하지만 이런 시각적 성취만이 다는 아니다. 필자가 정말 말하고 싶은 성취는, 글의 서두에서 말한 2021년에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편의적으로 파트 1과 2로 나누어 놓았다고. 한 편의 결말도 제대로 짓지 않고 다음 편에 기대어 버렸다고. 하지만 과연 정말 그게 중요할까. 하나의 세계를 온전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은 제작 시간에는 물론이고 상영시간도 유효할 문장이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는 자신이 <듄>을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16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데에 이유가 있다.(그와 별개로 조도로프스키의 듄은 상당한 괴작이 나왔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기에 빌뇌브의 1편(Part.1) 러닝타임인 2시간 35분은 절대 긴 시간이 아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영화가 세계를 구축하기보단, '세계의 단면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보여주려는데 방점이 찍혀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의 압축의 미학까지 느낄 수 있다.

<듄>은 '꿈은 심연의 메시지'로 시작해, '이제부터 시작이야'라는 문장으로 닫는다. 전자는 텍스트였고 후자는 음성이었다. 전자는 영화 바깥에 있는 자의 덧붙임이었고, 후자는 (영화) 세계 안에서 생존하는 인물이 스크린을 뚫고 밖으로 던지는 선언이었다. 파트1에서 깔아둔 서사의 밑바탕이었다면 아직 빌뇌브의 <듄> 전체를 보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파트2에서 구축할 빌뇌브만의 <듄>월드는 어떤 모습일까. 선언이나 확언은 아직 이른 것 같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Dune
감독
드니 빌뇌브
Denis Villeneuve

 

출연
티모시 샬라메
Timothee Chalamet
레베카 퍼거슨Rebecca Ferguson
오스카 아이삭Oscar Isaac
제이슨 모모아Jason Momoa
조슈 브롤린Josh Brolin
하비에르 바르뎀Javier Bardem
젠데이아 콜먼Zendaya Coleman
스텔란 스카스가드Stellan Skarsgard
장첸Chang Chen
데이브 바티스타Dave Bautista

 

수입|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55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1.10.20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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