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사라졌다' 그들만을 위한 첫눈
'첫눈이 사라졌다' 그들만을 위한 첫눈
  • 김민세
  • 승인 2021.10.29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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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들이 희망이라 말하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이다."
ⓒ 다자인소프트

<첫눈이 사라졌다>(2020)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제니아(알렉 우트고프)를 통해 영화 내내 비현실적 사건들을 늘여놓는다. 그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거주하기 위해 출입국 사무장에게 최면을 걸고, 어렸을 적을 회상하다가 책상에 놓인 물컵을 손을 대지 않고 옮긴다. 또 암으로 죽은 마을 주민 대신에 한 마술 공연 중에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이러한 논리적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장면들은 흡사 판타지 장르의 분위기를 구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혹스럽고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판타지적인 장면들이 아니라, 첫 장면에 등장하는 두 가지 공간의 이상한 연결이다. 제니아가 어두운 밤의 숲에서 나무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오면 교외 지역의 엘리베이터로 장면이 전환된다. 숲이라는 공간과 엘리베이터라는 사물(또는 교외라는 공간). 숲을 뚫고 나오는 자연스러운 걸음과 엘리베이터의 경직된 상승 운동. 서로 자연스레 연결되지 못하는 두 공간과 두 운동이 만드는 시공간과 논리의 비약이라는 징후. 동시에 이 연결은 오히려 서로를 구분 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부자연스러운 연결은 두 공간의 매개자인 제니아가 숲이라는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바르샤바라는 현실의 틈을 열고 침투했다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제니아라는 존재의 시도가 있었기에 연결될 수 있는 현실과 비현실의 공간. 첫 장면을 통해 이렇게 말했듯이 영화는 현실을 향한 비현실의 침투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제니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면 눈을 감고 있는 그들은 첫 장면에 등장했던 숲에서 스스로 심연을 들여다보고, 과거와 고통을 직시하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치유받고 위로받는다. 그들이 무슨 상처가 있었는지,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는 정확하게 주어지지 않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제니아의 존재와 최면의 체험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들의 삶에 새로운 활력으로써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 다자인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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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요한 건 '숲'이라는 비현실이 어떻게 그들에게 당도했는지의 문제이다. 제니아가 최면을 걸기 위해 손가락을 들어 올릴 때, 마을 사람들은 두 눈을 감는다. 그리고 눈을 감은 그들에게 보이는 숲의 장면은 제니아의 카운트에 맞추어 눈을 떴을 때 끝난다. 한마디로 그들이 숲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현실을 잊고 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현실과 비현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독립적인 세계이며 서로를 밀어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세계이다. 마치 첫 장면에서 숲과 바르샤바의 공간이 컷이라는 깜박임으로만 연결될 수 있었던 것처럼. 이렇게 <첫눈이 사라졌다>는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듯하다가도 명확하게 그들을 구분 짓는다.

비현실의 입장에서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매개하는 것처럼 보이는 제니아도 마찬가지이다. 신비로운 인물로서 마을 사람들 사이 마음의 벽을 허물고 비현실적인 기적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그저 나약한 인간이며 이방인이다. 이는 그의 과거가 기억의 형태로 모호하게나마 제시되면서 드러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한 낙진을 경험한 그는 어머니를 잃고 초능력을 얻었다. 한 마디로 그의 초능력은 상실의 기억이다. 집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최면을 통해 숲으로 재현되는 무의식을 마주하는 것과 별개로, 숲에서 온 제니아의 무의식(과거의 기억)은 그가 과거에 어머니와 살던 집으로 재현된다.

집이라는 안과 숲이라는 바깥. 무의식을 불러올수록 마을 사람들은 고통의 바깥으로 해방되지만, 제니아는 고통의 기억 안에 갇힌다. 또는 마을 사람들은 바르샤바라는 정착된 공동체 안에서 보호받지만, 제니아는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바깥의 주변을 맴돈다. 비극적이게도 그가 마을 사람들을 구원함을 통해 그들의 중심에 함께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그의 상처는 되돌아오고 경계와 위치는 곤고해진다. 마을 사람들을 위해 초능력을 발휘해 들춰낸 무의식과 비현실은 그들에게는 환상과 치유의 공간이지만 제니아에게는 그저 보고 싶지 않은 과거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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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아가 마을의 검문소를 지나고, 각자의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 현실이라는 중심의 세계에 도달하더라도 그는 하루의 일이 끝나면 혼자 살고 있는 작은 방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그들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고객과 직원, 주인과 종이라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두 세계의 경계라고 할 수 있는 검문소에서 경비원과 함께 술을 마신다. 그리고 술에 취한 채로 전동 휠을 타고 달리면서 이렇게 소리친다.

"내가 당신들을 구원하겠다"

이 텍스트에서 방점은 '내가'와 '당신들을'에 찍혀야 한다. 그는 바르샤바에서 도움을 주는 객체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제니아는 그들을 치유하지만 그들은 치유하지 않을 것이고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서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구원이 필요한 사람인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기억을 갖고 있는 제니아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외치는 것은 스스로 이방인의 역할과 자리를 직시하는 것이 아닐까. 이 장면은 이전까지 정체불명의 초월자 혹은 희망이라는 특정 관념의 대리자처럼 보였던 그를 발 붙일 곳 없이 방황할 운명의 나약한 존재로 만든다.

그리고 제니아에게 가장 상처가 될 기억인 첫눈이 내린다. 그 눈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현실에 당도한 환상(비현실)일 것이고 제니아에게는 도망쳐 온 곳으로 다시 돌아온 낙진의 기억일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그들은 제니아가 사라졌음에도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며 기뻐한다. 그래서 <첫눈이 사라졌다>는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치유의 시간이고, 제니아의 입장에서 보면 고통의 시간이다. 필자는 제니아가 사라지면서 환상 같은 눈을 내림으로써 마을에 희망을 남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눈을 피해 도망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를 어느 한곳에 정착하게 만들지 못하는 이방인이란 이름, 과거의 기억, 벗을 수 없는 역사. 그들만을 위한 환상과 눈. <첫눈이 사라졌다>는 이방인 구원자가 희망을 주는 서사가 아니라, 어디에서나 역사적 고통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주변인들의 서사이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다자인소프트

첫눈이 사라졌다
Never Gonna Snow Again
감독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Malgorzata Szumowska
마셀 엔그레르트Michal Englert

 

출연
알렉 우트고프
Alec Utgoff
마야 오스타셰브스카Maja Ostaszewska
아가타 쿠레샤Agata Kulesza
베로니카 로사티Weronika Rosati
카타르지나 피구라Katarzyna Figura
안드셰이 히라Andrzej Chyra

 

수입 모쿠슈라픽쳐스
배급 다자인소프트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15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10.20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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