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우주라는 무대로 도약한 드니 빌뇌브
'듄' 우주라는 무대로 도약한 드니 빌뇌브
  • 이현동
  • 승인 2021.10.27 11: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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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의 우주적 알레고리"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드뇌 빌뇌브의 영화에서 서사의 심도(深到)와 이미지의 심도(深度)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흐릿한 속성의 물질이면서 기어코 도달하고야 마는 목적지와 같다. <그을린 사랑>(2010)을 시작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던 그의 영화적 특성은 각각의 시공간에 매설되어 있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대비적인 관계의 기호로 상징화한다는 것에 있다. 필자는 그의 가장 기괴하고 모호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에너미>(2013)가 이러한 상징성을 가장 독창적으로 구현한다고 보았다. 주인공과 분신 사이의 정체성을 쉽사리 규정할 수 없는 '현실'과 '환상'의 상태로 머물게 하면서, 영화가 최초에 언급한 '혼돈은 해석되지 않은 질서'라는 표현과 상응하는 '무의식'이 이미지로 나타내는 대목임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내면을 비롯한 주변을 횡행하는 공간이란 척력은 상호-이항대립적인 관계를 이룬다'는 주제의식은 그의 영화의 메타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그가 제작한 <듄>(2021)라는 영화에도 이런 알레고리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드러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것은 데이비드 핀처의 <듄>(1984)에선 재현되지 않았던 빌뇌브식 수사다. 미적 장치를 활용하여 우주가 방출하는 에너지를 과잉적으로 배열하는 방식의 영화가 핀처의 <듄>이라면 그에 비해 드니 빌뇌브의 <듄>(2021)은 장엄하고도 정돈된 미장센과 더불어 혼재된 인간성에 내재하고 있는 음울한 내면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이 지점에서 서사 전체를 조율하는 독특한 역할을 하는 건 단연 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꿈의 고리들

<듄>의 첫 장면을 장식하는 문장은 "꿈은 심연의 메시지다"라는 문장이다.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리메)가 서사를 주도하는 인물로 위치할 수 있는 건 '꿈'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꿈을 통해 챠니(젠데이아 콜먼)와 조우한다. 그녀의 정체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는 폴은 그저 옷차림을 보고 프레멘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챌 뿐이다. 영화에서 프레멘은 생존과 저항의 상징으로 아라카스 행성의 원주민으로 등장한다. 프레멘은 하코넨 가문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추방당하여 지하에서 거주하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그럼에도 그들이 주체자로서 아라키스 행성에서 주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생명을 주도하는 물질인 '스파이스'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들은 폴의 운명의 고리들을 포착할 수 있는 상징적인 요소들이다. 꿈-프레멘-스파이스라는 도식은 폴이 결국 프레멘과 같은 형국으로 전환될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들이다. 그가 속한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종말을 맞이하여 프레멘에 합류하게 될 미래와 프레멘에게 전승으로 전해 내려오던 '메시아'의 대망을 성취하는 일을 지휘할 것 또한 예견하는 것이다. 그들의 메시아는 다른 행성의 출신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폴은 그 수여자이자 '스파이스'를 둘러싸고 있는 갈등을 봉합하게 될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지시한다.

 

사막에서 스파이스를 찾는 여정

기본적으로 사막의 이미지는 황량함과 척박함, 그리고 하등 쓸모가 없는 공허하고 허무한 느낌을 준다. 사막화된 공간에서 '스파이스'라는 생명의 힘이 내재하고 있다는 건 대비적인 에너지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는 마치 기독교가 발굴해 온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과 유사한 것이다. 폴이 가문의 총명 받는 후계자 자리에서 하강하는 처지로 변화하는 과정은 스파이스를 담고 있는 사막과 생명이라는 두 가지의 이미지를 표상하고 있다. <듄>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외피에 표상된 이미지의 허물을 언급한다. 예언과 미신을 활용하는 베네 게세리트의 복장은 대체로 신비스럽고, 사막과 공존하는 삶을 사는 프레멘의 복장은 생체 공학적으로 신체와 밀착되어 있으며, 미키아벨리적인 가문인 하코넨은 대체로 어둡고 사악한 느낌의 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각기 다른 정체성으로 자신들의 형상을 치장하고 있지만 그들은 '스파이스'라는 힘을 필요로 하는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력 갈등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스파이스'의 소유권에 대한 것이고, 이 소유권의 이전이 확실하게 이뤄질 때 우주의 질서는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듄>은 드니 빌뇌브가 추구하던 인간성의 의미를 광위적인 범위로 확대한 공간인 우주로 밀어붙인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사실 우주는 그의 작품 여정에 대한 일부분이기도 하면서 전부이기도 하다. 드니 빌뇌브는 자신의 인생 영화를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1968)로 꼽은 바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그에게 <듄>은 꿈을 실현하는 현장은 아니었을까. <컨택트>(2016),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는 사실 드니 빌뇌브가 마침내 우주로 도약하기 위한 도움닫기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폴의 여정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듄>이 내포하고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당시의 나처럼 그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폴이 다른 문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방식이 놀라웠다."1)

드니 빌뇌브의 대부분 이야기는 모두 자기 정체성을 찾는 여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서('그을린 사랑'), 자아와 자아 사이에서('에너미', '블레이드 러너 2049'), 언어와 언어 사이에서('컨택트') 인간은 어긋난 질서 안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반면에 희망을 찾기도 한다. 다른 문화적 차원을 내포하면서도 정체성이란 탯줄을 자르지 않고 빌뇌브가 각색한 <듄>은 그 자체로 흥미로우며 관상용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인간의 선명한 실체를 목도하게 한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덧붙여서 드니 빌뇌브는 자연 그대로의 정경을 담기 위해 노르웨이와 헝가리, 요르단,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등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그의 각색에는 사막의 질감뿐만 아니라 소리의 질감 또한 깊이 묻어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 이어 한스 짐머가 음악 감독으로 <듄>의 웅대한 시작을 함께함으로 드니 빌뇌브식의 '우주'가 인간이란 질감과 공명하며 완성되었다. 그의 모든 작품에서 마찬가지이지만 핸드 헬드를 사용하지 않는 질서 정연한 장면들의 연계는 그의 세상을 관철하는 관점을 대변하면서도 어질러 있는 인간 군상의 뒤틀린 공포와 불안에 귀속된 어떤 양면성의 논구가 <듄>의 구심력을 형성하며 인상적인 작품으로 돋보이게 한다.

1)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말하는 <듄>의 5가지 '영화화' 포인트, 씨네21, 2021.10.06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Dune
감독
드니 빌뇌브
Denis Villeneuve

 

출연
티모시 샬라메
Timothee Chalamet
레베카 퍼거슨Rebecca Ferguson
오스카 아이삭Oscar Isaac
제이슨 모모아Jason Momoa
조슈 브롤린Josh Brolin
하비에르 바르뎀Javier Bardem
젠데이아 콜먼Zendaya Coleman
스텔란 스카스가드Stellan Skarsgard
장첸Chang Chen
데이브 바티스타Dave Bautista

 

수입|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55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1.10.20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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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2021-12-10 21:45:46
듄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