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우리들의 세계는 몇 번이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
[interview] "우리들의 세계는 몇 번이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
  • 홍상현
  • 승인 2021.10.25 1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상현의 인터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내 마음속의 사사키>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정형화된 청춘물의 클리셰를 영리하게 뒤집어 가다 끝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마저 허물어버린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정형화된 청춘물의 클리셰를 영리하게 뒤집어 가다 끝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마저 허물어버린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늦은 밤 한 젊은이가 편의점에 들어선다.

배우의 꿈을 안고 상경했지만 박스공장 파트타이머로서의 현실에 덜미가 잡혀있는 그는 얼마 전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담배를 주문하자 주인아주머니가 나이를 묻는다.

"미성년자로 보이시나요?"

"뭐... 일단 확인하는 거죠."

'그럼 그렇지' 낮은 한숨을 쉬며 신분증을 건넨다. 미세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바로 그때다.

"생일이세요?"

"저... 그..."

"보니까... 오늘이..."

어느새 자정을 지나버린 벽시계. 아주머니가 서둘러 그의 나이를 헤아린다.

"어디보자... 스물일곱 살이시네요. 축하합니다."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생일인사. 몇 시간 뒤 사내는 수화기 저편 누군가로부터 한때 자신의 '젊음'이었던 고교시절 친구의 어떤 소식을 전해 듣는다.

영화 <내 마음속의 사사키>의 이 시퀀스만큼이나 최근 필자에게 '페이소스'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게 해준 제재(material)가 있었나 싶다. 수용자로부터 연민, 동정, 슬픔의 정감을 끌어내는 대목에 붙이는 현대비평의 용어. 여기 다시 고뇌와 격정이라는 어원적 의미가 더해지면 그야말로 영락없다.

올해 만 29세인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은 문화복장학원을 나와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한 이력이 말해주듯 비주얼리스트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올해 만 29세인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은 문화복장학원을 나와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한 이력에서 예상되듯 비주얼리스트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주인공(유지, 후지와라 키세츠 분)'과 비슷한 삶을 살았거나, 살고 있을 친구들을 기억해냈다. 연극영화과를 같이 다닌. 스크린이나 TV, 혹은 지하철 옆자리 승객이 응시하는 스마트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화면에 '스타'로 등장하는 몇몇을 빼면 어떻게 생계를 꾸리고 있을지 예상하기조차 쉽지 않은. 친하던 동기의 이름도 떠오른다. '몇 살이든 너희끼리 말 높이지 말라'며 눈치 주는 선배들이 지천임에도 늦깎이 학생이던 필자에게 꼬박꼬박 '형'을 붙여주던 녀석. 품성에 버금가는 뛰어난 실력으로 학부 재학 중에 지상파 방송국 탤런트 공채를 통과했지만 이후의 행보는 몇 번을 바꾼 예명만큼이나 순탄치 못했다.

문화복장학원을 나와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한 이력에서 예상되듯 비주얼리스트로서의 재능이 탁월한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은 그렇게 필자의 가슴을 헤집고 들어왔다. 타이틀 롤로 분한 호소카와 가쿠가 학창시절 실화를 원안으로 제공하고 같이 시나리오를 썼다. 그밖에 동세대 청년 영화인들이 캐스트ㆍ스태프로 대거 참여해 '당사자 시점의 젊음'을 그려낸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정형화된 청춘물의 클리셰를 영리하게 뒤집어 가다 끝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마저 허물어버린다.

이십대의 마지막에 도쿄국제영화제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된 두 번째 장편으로 영화비평가대상 신인감독상을 거머쥔 우치야마 감독을 만났다.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타이틀 롤인 ‘사사키’로 분한 호소카와 가쿠 배우(가운데)의 학창시절 실화가 원안이다. 호소카와 배우는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과 3년 반이라는 시간을 들여 시나리오를 썼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타이틀 롤인 '사사키'로 분한 호소카와 가쿠 배우(가운데)의 학창시절 실화가 원안이다. 호소카와 배우는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과 3년 반이라는 시간을 들여 시나리오를 썼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홍상현

피아필름페스티벌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데뷔작 <바니타스> 이후 5년 만의 장편으로 도쿄국제영화제를 거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오셨습니다.

우치야마 타쿠야

저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영화와 관련한 영향을 받거나 학창시절 전문적인 교육을 경험한 일이 일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문자 그대로 '자주제작 영화'였던 <바니타스>의 경험은, 제 삶에서 영상을 통해 뭔가를 기록하는 최초의 작업이었죠. 이와 관련해서'앞으로도 계속 해 보라'는 격려가 되어준 게 피아필름페스티벌에서의 수상이습니다. 이후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내 마음속의 사사키>로 장편상업영화 감독에 데뷔하기에 이르렀는데요. 그 결과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라는 멋진 영화제에 오게 된 것을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아울러 수고해주신 영화제 관계자, 그리고 한국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싶고요.

 

홍상현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께 늘 드리는 질문인데요. 평소 좋아하는 한국영화 작품이나 감독 혹은 배우가 있으십니까.

우치야마 타쿠야

무수히 많은 프로페셔널 가운데 어떤 분을 꼽는다는 것 자체가 무척 송구스러운 일입니다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은혜와 영향을 받고 있는 분은 이창동 감독입니다.

또, 한국영화 전반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리면, 일단 작품의 질적 수준이 높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고요. 여기에 영화진흥기금의 존재, 활발하게 진행되는 국제공동제작 등과 같이 의식적 토대와 실제적 환경이 기초단계부터 조화를 이루며 갖춰져 있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현실을 볼 때마다 일본영화는 여러모로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고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해질 무렵」에서 열연을 보여준 무라카미 니지로(왼쪽) 배우는 주인공 유지의 연극계 후배 ‘스도’ 역으로 얼굴을 비춘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해질 무렵」에서 열연을 보여준 무라카미 니지로(왼쪽) 배우는 주인공 유지의 연극계 후배 '스도' 역으로 얼굴을 비춘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홍상현

원래 문화복장학원을 다니며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시다 나중에 진로를 바꾸셨습니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미적 감각을 보면 패션 분야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셨을 것 같은데, 굳이 감독의 길을 택하시게 된 계기가 뭔가요.

우치야마 타쿠야

단적으로는 항상 현장에서 대기해야 하는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면서, 잠을 많이 자지 않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하루 한편이상의 영화를 봤던 걸 들 수 있겠는데요. 조금씩 늘려가다 보니 어느새 한 해 천이백 편 정도의 영화를 보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몇 년을 보내던 와중에 문득 '영화를 통해 구원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삶의 방향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영화현장에서 일해 보려고 패션이라는 매개체를 끌어들였는데, 그 매개체 없이 직접 영화와 접하며 살아가야겠다는 확신이 든 거죠. '패션' 없이도 영화현장이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기도 했고요.

 

홍상현

영화를 많이 보셨다고 하시니 그 과정에서 혹시 롤 모델이 되는 감독을 만나시진 않았는지 궁금해집니다.

우치야마 타쿠야

개인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감독을 생각나는 대로 꼽아보면 스탠리 큐브릭, 폴 토마스 앤더슨, 존 카사베츠, 그리고 에드워드 양 등이 있습니다. 더 이야기하다간 오늘 안으로 인터뷰를 마치기 어려울 것 같네요. (웃음)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섬세하면서도 정교한 인물묘사가 유난히 돋보인다. 서로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구도보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하려 노력한 연출 때문이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섬세하면서도 정교한 인물묘사가 유난히 돋보인다. 서로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구도보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하려 노력한 연출 때문이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홍상현

그럼 이제 슬슬 <내 마음속의 사사키>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일단 기획 단계부터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우치야마 타쿠야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는 건 아니겠지만 일단 제작에 소요된 시간부터 좀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네요. 구상단계까지 포함해서 7년 정도가 걸렸는데 시나리오를 쓰는 데만 3년 반 정도를 들였거든요.

타이틀 롤로 분한 호소카와 배우와 구상을 대략적으로 가다듬은 뒤에 캐치볼 같은 형태로 공동 작업을 진행, 초고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개고를 거듭하면서 1년의 시간을 보냈고요. 프로듀서가 합류한 건 이 단계부터였죠.

 

홍상현

다음은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죠. 마초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제 선입견이 부끄러워질 만큼 섬세한 감성이 돋보였는데요.

우치야마 타쿠야

서로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구도보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보니 각각의 캐릭터를 단순히 어떤 유형으로 구분하기보다 나름의 휴머니티와 복잡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ㆍ시대를 경험해 온 관객이라 할지라도 영화 속 사건을 마치 ‘내 일’처럼 느끼실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제가 로케이션, 미술, 그리고 의상 등의 파트를 조율하면서 추구한 목표였습니다.”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의 술회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서로 다른 환경ㆍ시대를 경험해 온 관객이라 할지라도 영화 속 사건을 마치 '내 일'처럼 느끼실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제가 로케이션, 미술, 그리고 의상 등의 파트를 조율하면서 추구한 목표였습니다."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의 술회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홍상현

그밖에 OST의 분위기와 딱딱 맞아떨어지는 편집이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배가시켜주었습니다. 예컨대 인트로 부터 드럼의 강렬한 비트와 커트의 편집이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우치야마 타쿠야

감사합니다. (웃음) 음악과 편집은 영화 전체의 룩(look)이나 톤(tone)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특히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내러티브에 내재된 섬세한 감정을 건져내는 개 관건인 작품이기도 하거든요.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독립적인 리듬의 사운드를 설정해 놓고, 이를 커트가 따라가는 패턴을 시도해 봤습니다.

 

홍상현

'변화무쌍하다'는 표현이 무척 어울리는 컬러와 미장센을 보면 역시 스타일리스트 출신 감독의 작품이라는 실감이 납니다.

우치야마 타쿠야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좀 너무 거창한 거 아냐?'라고 느끼실 수도 있는 비주얼 플랜이 있었습니다. (웃음)

서로 다른 환경ㆍ시대를 경험해 온 관객이라 할지라도 영화 속 사건을 마치 '내 일'처럼 느끼실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제가 로케이션, 미술, 그리고 의상 등의 파트를 조율하면서 추구한 목표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비록 영화관의 스크린을 통해 전달해드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촬영현장의 연기자들만이라도 냄새, 감촉 등 오감의 자극을 통해 삶 속의 기억을 곱씹어 볼 수 있도록 했어요.

히로인인 ‘유키’ 역을 맡은 하기와라 미노리 배우는 데뷔 9년차의 관록이 묻어나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후지오라 키세츠 배우와 멋진 케미스트리를 보여주었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히로인인 '유키' 역을 맡은 하기와라 미노리 배우는 데뷔 9년차의 관록이 묻어나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후지오라 키세츠 배우와 멋진 케미스트리를 보여주었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홍상현

대단하군요!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우치야마 타쿠야

혹시 메이크업에 대해 알고계시거나, 스타일링 작업을 해 보신 분이라면 좀 더 이해가 쉬울 수도 있겠는데요. 예컨대 촬영계획을 하나의 거대한 컬러팔레트라 가정하고, 기본 색조를 설정해 놓는 겁니다. 이걸로 각각의 배우를 표현하는 거죠.

다만, 다양성이라는 부분을 담보해내려면 독불장군 같은 식으로는 곤란하니까 작품 안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캐스트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토론을 반복했습니다. 이 결과로 도출된 표현의 근간(backbone)을 전체, 혹은 개별차원으로 구분해 적용했고요.

 

홍상현

대단히 정밀한 과정이군요.

우치야마 타쿠야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교차되는 과거와 현재 이야기들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영화입니다. 그렇다 보니 똑 같은 과거라도 시나리오에 한 줄 정도로 지시할 수 없는 다양한 층위를 보여줘야 했죠. 각 신마다 최대한 겹치지 않게 촬영기법과 전개방식을 설정해두었습니다. 다만, 운용에 관련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있었는데요. 대단원에서 이 모둔 흐름이 한데 뒤섞이기 진전까지 점층적으로 각각의 경계를 허물어간다는 거였어요. 라스트 신의 통일성이 주는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였죠.

아, 그리고 당연하지만, 미장센의 컬러 또한 이에 근거해서 철저하게 구분해두었습니다.

사사키의 연인 ‘나에무라’로 분한 카와이 유미 배우(왼쪽)는 스토리가 후반부로 접어들 무렵부터 등장하지만 결코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사사키의 연인 '나에무라'로 분한 카와이 유미 배우(왼쪽)는 스토리가 후반부로 접어들 무렵부터 등장하지만 결코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홍상현

타이틀 롤을 맡은 호소카와 배우의 존재감이 무서울 정도입니다.

우치야마 타쿠야

사사키는 특성상 외면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기 쉬운 인물입니다.

이에 못지않게 인물의 그림자나 혼자 등장하는 부분에서의 연기에도 신경을 써 달라고 주문했어요. 표정이나 감정처럼 밖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이와 같은 모색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 생각했고요.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말씀드리면 '이런 모든 지점을 고려하면서 의도적으로 대사처리의 속도를 빠르게 하고 눈을 평소보다 크게 뜬다는 느낌으로 표정을 연기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아물러 배우의 연기 외에도 카메라를 통한 연출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이사이에 인물을 실제보다 더 크게 보여줄 수 있는 구도로 포인트를 줬고요.

 

홍상현

인디영화의 기대주인 후지와라 배우도 연기력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캐스팅하셨는지 궁금한데요.

우치야마 타쿠야

유지는 스토리를 끌어가는 사사키와 함께 달리면서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인물입니다. 그러려면 깊은 애수를 담아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가 필요한데 후지와라 배우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없을 거라 확신했죠. 따라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출연을 제의했습니다.

영화의 도입부부터 이미 파국을 맞이해 있는 유키와 유지의 관계는 역설적이게도 「내 마음속의 사사키」를 다른 청춘영화들과 차별화 시켜주는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한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영화의 도입부부터 이미 파국을 맞이해 있는 유키와 유지의 관계는 역설적이게도 「내 마음속의 사사키」를 다른 청춘영화들과 차별화 시켜주는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한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홍상현

촬영과정에서 어떤 협업의 과정을 거치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치야마 타쿠야

후지와라 배우와 대략 1년 정도 촬영을 준비했어요. 작위적인 '캐릭터 연출'의 방식을 의식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의도한 바는 촬영이 시작되는 순간 어찌어찌 애드리브를 이어가는 게 아니라, 유지의 감정이나 의사를 자기화해서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투영해내는 것이었어요.

 

홍상현

히로인('유키')으로 분한 하기와라 미노리 배우와의 케미스트리가 훌륭합니다.

우치야마 타쿠야

유지와 유키 사이의 수많은 사건들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 훨씬 이전에 일어났죠. 그러니 시나리오에 명기한 부분 외에도 당연히 내용을 따로 정리해두었습니다. 물론 후지와라, 그리고 하기와라 두 배우와도 다 공유했고요.

그밖에 또 하나, 두 사람의 숨결이 동거 중인 원룸을 새어나와 홀로 지내는 사사키의 집 앞에 머물렀다가, 결말부의 여관 장면에서 절정을 맞이하도록 촬영 스케줄을 조정해두었어요.

호소카와 가쿠 배우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베니타스」는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의 장편독립영화 데뷔작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동행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호소카와 가쿠 배우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바니타스」는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의 장편독립영화 데뷔작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동행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홍상현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라스트신은 최근 몇 년간 보았던 작품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압도적이었습니다.

우치야마 타쿠야

감사합니다. (웃음) 캐스트ㆍ스태프 전원이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설정 자체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잘 안 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 하는 마음도 있었지요. 오케이 사인이 나오고 다 같이 눈물을 흘리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때로는 우리 앞을 가로막는 현실보다, 허구에 몸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어쩌면 오늘의 세계를 짓누르고 있는 답답함을 깨뜨려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 카메라가 하늘을 비쳐주는 커트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세계는 몇 번이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캐스트 전원과 영구차의 경적소리, 그들의 춤과 하늘의 모습을 등을 통해 관객 여러분께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홍상현

차기작 계획이 있으신가요.

우치야마 타쿠야

살짝 관념적으로 들리실지 모르겠는데, 스크린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몇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사람' 그 자체의 그윽함에 젖어 보내는 시간의 감각, 종이 한 장의 두께만큼이나 미세한 피막을 넘나드는 스릴, 이 모든 것을 '관계'와 '감정'의 결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그간의 제 필모그래피에 비쳐보더라도 전혀 새로운 작품이 될 거란 사실이고요.

「내 마음속의 사사키」에는 필요이상으로 자극적인 어떤 장면도 등장하지 않지만, 시종일관 관객을 몰입시키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청년 영화인들이 캐스트ㆍ스태프로 대거 참여해 ‘당사자 시점의 젊음’을 그려낸 진정성 때문이리라.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내 마음속의 사사키」에서는 필요이상으로 자극적인 어떤 장면도 등장하지 않지만, 시종일관 관객을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청년 영화인들이 캐스트ㆍ스태프로 대거 참여해 '당사자 시점의 젊음'을 그려낸 진정성 때문이리라. (C)2020 Sasaki in My Mind Film Partners

“이 작품의 타이틀 롤인 사사키는 그저 제 상상 속에, 호소카와 배우의 학창시절에, 혹은 한국에 계신 여러분의 과거에 존재했을 법한 '특정인'의 의미를 넘어서는 존재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의 상징 같은.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그런, 존재에 대한 아주 작고 사사로워 보일 수 있는 감정을 담은 영화예요.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각자 발 딛고 있는 경치가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만나고 있음을 또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다음 작품이 나오면 꼭 직접 한국에 찾아가 선보여 드리고 싶어요. 그때까지 꼭 부디 이 작품을 즐겨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Sasaki in your mind."

새침한 외모에 유난히 차분한 말투 때문에 종종 깍쟁이 같은 스타일일 거라는 오해를 받지만, 실은 영화, 그리고 사회에 관한 주제를 놓고 열정적으로 소통하기를 즐기는 우치야마 감독은, 최근 동료 청년 영화인들과 함께 '산업으로서의 영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조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영화를 좋아하고, 그래서 영화를 업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쉽지 않은 영화계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해 볼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뻔한 격려의 말을 건네기보다 영화를 이야기하는 동료로서 그의 곁을 지키고 싶다. 부디 치열한 '오늘'을 사는 그와 그의 동료들이 '어제'를 그리워하되, 아파하지 않으며 '내일'을 향해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