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 소렌티노] '영 포프' 젊은 인간 교황
[파올로 소렌티노] '영 포프' 젊은 인간 교황
  • 이현동
  • 승인 2021.10.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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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누구인지 하는 물음에 대하여"
ⓒ HBO, Sky Atlantic, Canal+

<영 포프>(2016)를 감상하기 전에 두 개의 영화가 스쳐 지나갔다. 작년에 넷플릭스로 선보였던 <두 교황>(2020)과 1987년에 칸 영화제의 황금 종려상을 차지했던 <사탄의 태양 아래서>(1987)였다. <두 교황>은 교회 질서의 최정점에 기거하는 교황이라는 은폐된 그늘 뒤에 존재하는 안온함을 강조하는 작품이라면 <사탄의 태양 아래서>는 내면의 폐허 속에서 방황하는 무력한 한 사제가 사탄을 마주하면서 소유하게 된 능력을 자신의 목숨을 희생함으로써 신념을 지켜내는 과정을 절절하게 그린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공통으로 하나님의 뜻을 추종하는 인간의 솔직하면서도 연약한 면모를 양극단의 영화적 온도로 드러낸다. 영화에서 캐릭터의 성격과 공간이 은연중에 방출하는 감정의 에너지란 건 분명히 온기와 냉기 사이에 기거하는 변화무쌍한 기호들일 것이다.

<영 포프>는 언급한 두 영화의 중간 지점에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소렌티노가 추구하던 형식주의가 돋보이면서도 서사를 배제하지 않은 노멀한 드라마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내용적인 측면에서 교회판 <하우스 오브 카드>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주드 로가 연기하는 '젊은 교황'인 레니의 성장 드라마로 점철되면서 단순히 하나의 장르적인 방식으로 소모되지 않는다. 신의 뜻을 살피는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권모술수의 아이러니와 조우하는 건 사실 그렇게 이질적인 영역은 아니다. 실화를 배경으로 제작된 토마스 맥카시의 <스포트 라이트>(2015)에서 교회라는 성역의 특권적인 이미지를 붕괴함으로써 교회를 가시적인 형상으로 획득한 대표적인 예로 믿음은 인간을 긍정과 부정의 간극에서 쉬이 포착할 수 없는 잠재태의 형국에 있음을 지시한다.

 

'파올로 소렌티노'가 드라마를 만난다면

파올로 소렌티노의 드라마는 어떨까? 앞서 필자는 그의 영화의 다소 과잉적인 영화적 기예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레이트 뷰티>(2013), <유스>(2015), <그때, 그들>(2018)로 연결되는 인생 3부작은 통상적으로 노화로 인한 인간의 권태가 일상이란 실체와 마주하며 이를 유미주의적으로 융합하는 것에 힘을 기울였지만, 반복되는 주제의식과 결여된 채 부유하는 서사의 궤적은 피로감을 불러일으키고 소렌티노의 이름을 각인시켰던 <일 디보>(2008)에서 퇴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개인적으로는 형식으로 인해 서사가 소모되는 방식의 한계를 드라마가 어떻게 구현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이는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파올로 소렌티노의 <영 포프>는 드라마 10부작으로 긴 호흡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필자는 그가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절제하면서도 절충한 작품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영화에서 중첩되어 관측되었던 각 분야에 '정점'에 위치한 인간 군상들의 욕망이 수평적(일상)으로 이행한다는 점은 동일한 오브제로 배치되어 있지만, <영 포프>에선 영화와는 달리 서사와 충분한 시간을 접촉하면서 운용 원리로 차용되었던 형식주의는 보조적으로 작동하며 <영 포프>는 잘 정돈된 형태의 드라마로 평가할 수 있었다.

 

ⓒ HBO, Sky Atlantic, Canal+

3번의 강론의 의미하는 건

<영 포프>는 47세의 젊은 교황으로 등극된 '레니 벨라도'가 바티칸 뒤편에 횡행하던 고위 사제들의 부패를 마주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레니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대립을 이루는 추기경들과의 마찰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를 극복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임무를 수여받은 성자이자 인간으로 군림한다. 젊은 교황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로 한 이 설정은 기이하게도 무의식과 의식과의 간극에서 포착할 수 없는 신앙이라는 모호함이 <영 포프>의 구심점으로 작동하면서 다채로운 변용을 이끌어낸다. '레니 벨라도'는 비오 13세를 즉위명으로 선택하면서 전통주의적인 권위로 자신을 정체성을 규정하면서도 그의 내면에는 신앙에 대한 회의감과 의심을 갖고 있다. 항락주의에 대한 경고를 주지하고 있는 교황청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애연가이며 친구인 앤드류 두솔리에(스코트 쉐퍼드)와 함께 여성과의 일탈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앙의 변화를 증언하고 캐릭터의 변용을 성취하는 건 '레니'의 총 3번의 강론 장면에 대한 묘사다. 그의 첫 번째 강론은 꿈에서 이뤄지는데, 그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인간 중심적인 '자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강론을 한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대중들을 향해 호소하는 내용에는 동성애, 수녀의 미사 집전, 자위와 낙태를 재고하고 허용해야 한다는 신성모독적인 강론을 한다. 이 처음 강론은 그의 내재된 신앙을 대변하면서 주제를 상기하는 장치로 각인된다. 두 번째 강론은 그의 얼굴이 공개되지 않은 채 진행된다. 처음과는 정반대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이들을 맹렬하게 비판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강압적인 강론을 한다. 비오 13세의 위선의 시작은 이런 극단적인 이중성을 겨냥하면서 어떻게 그가 신앙을 회복하며 정의로운 자로 거듭나는지를 하나님이 아닌 인간과의 관계에서 다룬다. <영 포프>에서는 하나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으며, 하나님이 주신 기적인지 우연인지 모르는 치유의 사건들이 레니에게 도래하면서 우리에게 신앙을 강요하거나 주지시키는 방식으로 영화를 이끌어가지 않는다.

마지막 세 번째 강론에서 그는 자신의 실체를 천하에 드러낸다. 이 장면은 그가 마지막에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행위이며, 자애롭고 자비를 베푸는 본연 교황의 모습을 회복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전의 통렬한 비판은 존재하지 않고, 이제는 온기를 머금고 '하나님은 웃으신다'라고 말한다. 총 세 번의 강론은 점진적으로 레니의 성장을 돋우는 점선이며 성역에서 해방된 인간으로 성육신한 예수와 같이 하강하게 하는 계기로써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점선을 그리는 건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점에서 <영 포프>는 기독교적이 아니라 휴머니즘적이다.

 

ⓒ HBO, Sky Atlantic, Canal+
ⓒ HBO, Sky Atlantic, Canal+

<영 포프>에서 소렌티노가 전략적·의도적으로 모색하는 건 주변 캐릭터의 활용이다. 드라마는 서사를 다루는데 있어 캐릭터를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끝까지 활용한다. 그들의 에피소드는 캐릭터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부여하며 직·간접적으로 드라마의 톤을 구성한다. 대표적으로 국무원장 추기경 역할로 등장하는 안젤로 보이엘로(실비오 올란도)는 카톨릭계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비오 13세의 행위에 대한 앙심을 품고 성 스캔들로 사임을 하도록 계획하는 주변인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 뒤에 지적장애 아동을 보살피는 선한 모습을 갖고 있는 이중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또 다른 인물로 다이앤 키튼이 연기하는 마리아 수녀를 예로 들 수 있다. 레니를 보육원에서부터 키우던 엄마와 같은 위치에 있는 마리아 수녀는 레니와의 관계에서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친부모의 집착을 갖고 있던 레니가 그 집착을 벗어던지는 건 후반부에 엄마에 대한 애증을 떨쳐낸 상태에서 마리아를 향해 부를 수 있는 호칭이 '엄마'라는 사실은 교착되어 있는 관계의 서사를 한 층 더 밀접하게 접합시킨다. <영 포프>에서 레니는 이러한 관계의 장벽을 계속해서 도약하면서 성장한다.

바티칸이라는 은밀하고도 제한된 시공간 속에 구현되는 <영 포프>의 이야기에는 소렌티노의 단점보다 장점이 부각된다. 사운드트랙의 다채로운 활용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요소다. 클래식과 포크, 현대음악들 그리고 익숙한 팝이 흘러나올 때의 시청각적 효과는 상투적인 독해를 불식시키는 하나의 장치로 우리에게 도달한다. 파올로 소렌티노는 이 드라마를 통해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성과를 거두어냈다. 또 그의 나이가 아직도 '영'하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작품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킴은 자명하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HBO
ⓒ HBO, Sky Atlantic

영 포프
The Young Pope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
Paolo Sorrentino

 

출연
주드 로
Jude Law
실비오 올란도Silvio Orlando
다이앤 키튼Diane Keaton
스콧 셰퍼드Scott Shepherd
세바스찬 로체Sebastian Roche
세실 드 프랑스Cecile De France
하비에 카마라Javier Camara

 

제작 HBO, Sky Atlantic, Canal+
공개 WAVVE
제작연도 2016
상영시간 600분(10부작)
등급 15세 관람가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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