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흠뻑! 빠지는 순간
[Editorial] 흠뻑! 빠지는 순간
  • 오세준
  • 승인 2021.10.17 0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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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SNS에 올린 바다 사진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캡처를 해버렸다. 카페 실내 멀리로 펼쳐진 푸른 바다를 계속해서 보고 있자니, <나니아 연대기: 새벽 출정호의 항해>(2020) 속 주인공들을 나니아의 세계로 데려가는 그림처럼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듯했다. 테라스 뷰로 드넓게 보이는 바다와 하늘에는 서로를 마주한 파도와 구름이 데칼코마니처럼 그려졌다. 휴대폰의 작은 화면이 야속하게도 더 크게 그 사진을 보지 못해서 아쉬울 정도. 그러면서도 생전 바다 한번 못 가본 사람이 마냥 괜스레 청승을 떠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무튼 '그 바다'는 나 같은 집돌이, 지독한 일 중독자에게 잠시나마 '여행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을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J에게 "덕분에 힐링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J는 "과거 제주도 여행을 갔던 날에 찍은 사진"이라며, "자신도 그 바다에 다시 가고 싶어 올렸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그 순간만큼 우린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처지였다. 그 바다가 왜 그토록 인상적이었을까. 그건 어쩌면 '코로나 매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작년부터 업무로 출장이 아니고서야 동네 밖을 나간 적이 없으니, 발바닥에 바닷물도 아니고 발가락 틈 사이에 해변 모래알갱이라도 묻혀보고 싶을 정도. 고작 사진 한 장에 의자에 딱 붙은 궁둥이가 들썩거리는 내 모습에, 앞으로 '어디 가서 함부로 집돌이라고 말하면 안 되겠구나'하는 건 왜인지.

그 순간 타인의 인상이 나의 인상이 될 수 있는 '공유라는 힘'에 '이것이 SNS가 가진 순기능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구글 알고리즘으로 홍수처럼 끊임없이 내려오는 쓸모없는 정보와 시도 때도 없이 구매를 유도하는 상품들 속에서 '누군가의 사진'은 그것들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다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의 취향을 분석한 인공지능(AI)의 이미지들보다 타인의 취향이 녹아든 이미지가 나의 시선을 더 강렬히 사로잡고 응시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미지란 것은 결국 타인의 눈으로부터 만들어진 세계, 그 대상과 도치된 세계가 아닐까. "이미지는 드러난다. 그것은 한 통의 편지만큼이나 선명하고도 순수하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 티캐스트
ⓒ 티캐스트

"경치 좋다."

"아버지와 함께 자주 왔어요."

"있잖아. 뭔가 비슷하지 않아?"

"맞아. 바다만 있으면 딱 가마쿠라야."

'사치', '요시노', '치카'는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한 길에서 이복 여동생 '스즈'를 15년 만에 처음 마주한다. 헤어지기 직전 그녀가 보여준 산으로 덮인 마을 경치를 보며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바닷가 마을 가마쿠라를 떠올린다. 그들은 어떻게 초록으로 덮인 산을 내려다보면서 푸른 바다를 떠올릴 수 있었을까. 스즈의 시선이 닿는 곳에 그들 또한 닿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통해서 아버지와 보냈던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가족'이라는 관성적인 말보다도, 아버지와 함께 마을을 내려다보던 네 인물들의 경험이 동일시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기에 사치, 요시노, 치카는 스즈가 향하는 시선 너머로 '바다'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정취는 결국 네 인물들이 흰 물결이 밀려오는 모래사장 위를 걷는 결말에 있다. 그곳은 아버지가 보여주던 마을 언덕이 아니다. 언덕에서 저 멀리 보였던 바다, 집에서 한없이 가까운 바다이다. 영화에서 바다 이미지는 '그렇게 함께 살고 있다'는 관계성을 투영한다. 그들을 구속하는 관습적인 것들은 밀어내고, 서로를 이해하며 가까워질 수 있도록 잡아당기는 인물들의 몸짓은 분명 파도의 운동과 닮았다. 네 인물들은 살아온 환경과 아버지와의 관계가 모두 다 다르지만, 그들은 같은 곳에 있다. 영화는 끝에 이르러 수미상관으로 그들을 다시금 한곳에 모이게 하고는 바다 너머를 향하도록 한다. 그들은 무엇을 응시하고 있었을까. 

그렇게 'J'가 보여준 사진은 산에서 바다로 그리고 한 가족으로 이어지는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속 주인공들의 여정을 떠오르게 하였다. 언젠가 그 사진 속 바다가 그려진 장소로 도착할 순간과 함께.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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