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컷 젬스> '사프디 형제'의 숫자놀이와 미국의 숫자놀이
<언컷 젬스> '사프디 형제'의 숫자놀이와 미국의 숫자놀이
  • 배명현
  • 승인 2021.10.11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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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프디 형제의 방식으로 2008년도 비꼬기"

아담 맥케이 감독의 영화 <빅쇼트>(2015)가 가장 메타적인 방식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여(설명)주었다면 사프디 형제는 같은 사건을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보여(비꼬아서) 주었다. 너무나 명징하게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를 담고 있는 사프디 형제의 <언컷 젬스>(2019)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위치'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이 영화는 전작 <굿타임>(2018)과 마찬가지로 '뉴욕'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지구 반대편인 에티오피아이다. 무너진 광산에서 노동자 무리는 부상한 노동자를 중심으로 광산의 동양인 관리자에게 거친 항의를 한다. 마치 이 부상(사고)의 원인이 관리 소홀과 부실한 처우 때문이라는 듯, 위태로운 상황이 보여 진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 두 인부는 무너진 광산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자신들이 찾은 한 원석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원석 안으로 들어간다. 마치 우주 속 성운의 가스구름을 유영하듯 이곳저곳을 유영하던 카메라는 갑자기 공간을 뛰어넘어 내장으로 도착한다. 이곳에서 다시 카메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내시경을 담는 모니터 앞으로 이동한다. 그 다음 줌 아웃으로 잡히는 건 내시경 때문에 잠들어있는 주인공과 의료진들뿐이다.

 

ⓒ A24

이 이동은 이상하다. 불필요할 정도로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인물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오히려 인물에게 다가가려다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왜인가. <언컷 젬스>의 서사가 보여주려는 운도 지지리 없는 인물을 예고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물론, 이런 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오프닝의 수순을 거꾸로 밟아가는 이 영화의 엔딩'은 뭐라고 해야 할까. 집착에 가까운 도치가 보여준 영화적 이미지를 뭐라 말해야 할까. 영화는 시작부터 오프로드를 달리듯 거칠게 시작한다. 뉴욕 거리의 삶이 날것의 대사로 전달된다. 존 카사베츠의 영향을 크게 받은 방대한 대사처리는 영화적 효과에 있어 유쾌하고 효과적이다. 관객을 효과적으로 매혹 시킨 뒤, 영화는 그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하워드(아담 샘들러)는 영화의 첫 시작에서 등장한 오팔을 케빈 가넷(케빈 가넷, 이하 KG)에게 빌려주고 셀틱스의 우승반지를 받는다. 후에 대사로 설명되지만, 이 오팔의 가격은 10만 달러이다. 하워드는 빌린 우승반지를 담보로 삼아 받은 돈을 가넷의 경기에 모두 베팅을 한다. 경기 결과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완벽하게 성공한다. 그러나 다시, 이 베팅은 하워드의 빚쟁이들이 이미 손을 쓴 뒤였다.(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그리고 <언컷 젬스>의 이야기는 다시 한번 반복된다. 경매에 올라온 오팔이 상상 이상으로 낮은 가격에 책정되자 하워드는 마지막 한 방에 모든 것을 건다. 하워드는 KG에게 다시 올인을 하고 베팅을 막으려는 빚쟁이들을 가게 방탄유리로 만들어진 반 안에 가두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결과는? 도박에 유일하게 감이 좋은 하워드는 대박을 터트리지만,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빚쟁이 아르노 부하의 총에 맞는다. 이야기는 두 번 반복되었다. 하지만 첫 번째 이야기에서 배운 것은 없었다. 온갖 악다구니 속에서도 '오히려, 대박'을 외치며 더 큰 배팅에 목숨을 건다. 왜? 어차피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공한다면 이전에 저질렀던 잘못은 증발해버리니까. 오히려 베팅을 걸 수만 있다면 거는 게 안전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사프디 형제는 오팔을 '지금-여기의 뉴욕'으로 가지고 오기 위해 일종의 재현을 한다. 아프리카 탄광에서 10만 달러를 주고 가지고 온 하워드는 가넷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 10만 달러에 샀어"

"2배 벌었구나?"

"원래 100만 달러는 벌 수 있었어! 근데 겨우 얼마야? 6만 5천 벌었네?"

"에티오피가 깜둥이들에게 10만 달러를 주고 100만 달러 받을 물건을 강탈해 왔는데 잘못됐다는 생각이 안 들어?"

 

ⓒ A24

누군가는 안전을 외주화해버린 터에서 일을 하지만 세계의 돈, 금융, 증권, 은행, 종합보험, 대출 등, 등, 등, 등. 그러니까 자본이 모여드는 이곳에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100만 달러를 10만 달러에 벌 수 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KG는 연민, 혹은 동정 가득한 말로 하워드를 압박한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예상해보자. KG가 주급으로 에티오피아 노동자들의 몇 년 치 연봉을 받고 있을지. <언컷 젬스>를 추동하게 하는 힘은 곧 '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과 같다. 돈과 욕망, 욕망과 돈. 심지어 지금까지는 그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자신들의 유대인적 정체성마저 사프디 형제는 이번 영화를 통해 내비치고 있다. 그렇다면 더욱더 재미있어진다. 이 영화에서 승리한 사람은 누구인가? 하워드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판에서 죽어버렸고 아르노는 돈도 돌려받지 못하고 부하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다음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오팔을 손에 넣고 게임까지 성공한 KG인데, 막상 이 판에서 자신이 이긴다고 돈을 딴다거나 얻는 것이 있지도 않았다. 그나마 가장 성공한 인물은 현찰을 배송한 줄리아인데, 그녀가 돌아왔을 땐 어떤 새로운 비극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 이 영화는 인물들을 직렬 연결해 놓은 쇼트를 넘어 다시 영화의 시작으로 돌아간다. 그 시작의 입구는 당연히 자본이 만들어낸 파국의 결과인 총상이다. 그 고통스러운 구멍 안으로 카메라는 이 세상의 눈 혹은 이 세상을 보는 눈을 쑤셔 넣는다. 얼마간 혈관을 타고 가라앉던 카메라는 어느 순간 다시 우주의 가스 구름 어느 공간을 부유한다. 그러나 다시 어딘가를 통해 나와야 하지만 영화는 잠시 멈춘다.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별들이 보이는 가운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이런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밤이 지나면 다시 낮이 오고 카메라는 에티오피아의 낮을 날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영화는 다시 시작할 거라고. 영화의 서사는 한 번의 변주를 통해 두 번 반복을 만들어 냈다. 이 두 반복의 차이는 원인에 있지 않다. 욕망을 통해 나아가고자 하는 힘이 존재할 뿐이고 그 결말에서 만난 파국은 욕망들의 충돌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이 영화가 끝난 뒤 두 번의 경제 위기를 겪은 우리는 어떤 곳에 살고 있는가. 물론, 영화는 세계에 대한 위기를 알려주기 위한 대피 사이렌 내지는 경보기 같은 도구가 아니다. 다만 몇몇 영화는 이상하리만치 거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A24

언컷 젬스
Uncut Gems
감독
베니 샤프디Benny Safdie
조쉬 사프디Josh Safdie

 

배우
아담 샌들러Adam Sandler
케빈 가넷Kevin Garnett
폼 클레멘티프Pom Klementieff
라케이스 스탠필드Lakeith Stanfield
이디나 멘젤Idina Menzel
주드 허쉬Judd Hirsch
에릭 보고시안Eric Bogosian
줄리아 폭스Julia Fox

 

제작 A24
제공 Netflix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130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공개 2020.01.31

배명현
배명현
인생의 어느 순간 아! 하고 만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을 만나려 자주 영화를 봤고 여전히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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