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용서의 고행 끝에서 돌아오고야 마는 것
<아버지의 길> 용서의 고행 끝에서 돌아오고야 마는 것
  • 김민세
  • 승인 2021.10.0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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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론가 갔지만 계속 가야 하는 생의 길"

세르비아에서 일어난 실화를 담은 <아버지의 길>(2020)은 사회 부조리를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덴 형제, 켄 로치의 영화들과 비교된다. 빈곤층의 고통이라는 소재부터 핸드헬드가 주가 되는 촬영 방식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부패한 사회 복지원의 모습은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리바이어던>(2014)에서 등장하는 악덕 시장을, 길에서 만난 개의 죽음을 마주하는 장면과 식탁을 등에 짊어지고 가는 이미지는 박정범의 <무산일기>(2010)와 <산다>(2014)라는 두 영화의 엔딩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아버지의 길>은 우리가 익히 봐왔던 영화들을 돌아보게 만들며 사회 고발 리얼리즘 영화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람 포인트는 영화 내의 기호들이 리얼리즘의 성취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가 될 것이다.

 

ⓒ 엣나인필름

하지만 단지 이 영화를 빈곤층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회 고발 리얼리즘으로만 정의 내리기에는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길>에는 평범한 것처럼 전개되다가도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수수께끼 같은 순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들에 집중하려는 이 글은 영화가 주는 주된 감상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텍스트가 만드는 균열이 주는 인상, 또 다른 해석과 관람 방식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길>이 평범한 영화가 아님을 불현듯 자각하게 된 때는 니콜라(고란 보그단)가 한 건물의 빈 강당에서 노숙을 하게 되는 장면에서부터다. 니콜라가 자신의 가방을 베고 의자에 누워 잠자리에 들면, 잠시 후 노숙인 두 명이 몰래 그의 가방을 훔치려다가 실패한다. 깨어난 니콜라가 노숙인 중 한 명의 멱살을 잡고 가방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를 때, 다른 한 사람은 부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둘의 싸움을 말리지도, 니콜라를 향해 보복하지도, 도둑질 사실이 들켜 도망가지도 않는다. 그는 마치 잘못했다는 듯이 어쩔 줄 몰라하며 가만히 서서 그들의 몸싸움을 지켜본다. 이 사건은 300km가 넘는 니콜라의 여정 안에서 잠깐의 해프닝으로만 존재할 뿐, 앞으로의 서사적 방향에서 어느 전환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히 가능하지만 주인공의 목표를 가로막는 서사적 장애물로서 기능하는 것을 거부한다.

 

ⓒ 엣나인필름

여정 속 다른 사건들도 그러하다. 니콜라는 길에서 만난 개와 잠자리의 온기를 나누고, 늑대 무리를 만나지만 위험 없이 그들 사이를 지나간다. 고속도로 위를 걸어 다닌 그를 체포하는 경찰, 우연히 만난 옛 직장 동료, 히치하이크로 만나게 된 기독교 신자 모두 그를 목적지 방향으로 데려다주며 여정에 도움을 준다. 지쳐 쓰러져서 도착한 병원에서도 어떠한 갈등도 일어나지 않으며 병동 옆자리의 노인은 그에게 진솔한 조언을 건넨다. 한 마디로 여정의 과정에서 그를 실질적으로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에게 여정을 떠나라고 말하지 않았고, 사실상 가로막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를 수도 베오그라드까지 가게 하는 것은 부패한 사회 복지과이지만, 차비가 있음에도 300km의 걸음을 내딛는 것은 니콜라 스스 의지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니콜라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고난 속으로 밀어 넣고, 영화는 마치 몸싸움을 지켜보고만 있던 노숙인처럼 그저 그를 내버려 둔다. 그의 여정은 보이지 않는 신에게 자신을 증명하려 하는 고행의 퍼포먼스이며 신의 위치에 있는 영화는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의문을 일으키는 또 다른 장면은 니콜라가 편의점에서 하룻밤을 지낼 때이다. 니콜라가 편의점에서 잘 수 있게 친절을 베푼 직원은 그에게 신문을 보여주며 '이 사람이 당신이 아니냐'고 묻는다. 이에 대해 니콜라는 자신이 아니라고 답하고, 신문의 내용은 끝내 우리에게 확인되지 않는다. 과연 신문의 주인공은 니콜라였을까. 만약 맞았다면 그는 왜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직원이 차 세차를 하고 있으면 술에 취한 고객들이 직원을 괴롭힌다. 맥락 없이 등장한 이 장면은 그 어떤 의미의 여지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이 장면이 조심스레 니콜라의 시점 샷이라고 생각해보고 싶다. 자신이 나온 신문 기사를 보고 자신을 스스로 부인하는 니콜라. 직원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음에도 그냥 보고만 있는 니콜라. 이 두 장면은 '그가 무언가를 모른 체하고 있다'는 투박한 가정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 엣나인필름

이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이웃들에 의해 반복된다. 니콜라가 돌아왔을 때, 잠가놨던 문은 열려있고 집은 황량하게 비어있다. 그리고 니콜라의 집에서 가구를 훔쳐 간 이웃들은 돌아온 그를 모른 체하고 눈을 피한다. 이웃들은 왜 니콜라를 모른 체하는가. 그의 물건을 훔쳤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그렇다면 괴롭힘당하는 편의점 직원을 보고 있을 때 그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도와주지 못하는 죄책감이 들 것이다. 나아가 니콜라가 자신을 부인하고 모른 체한 것 또한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300km를 걸어 베오그라드로 가게 하는 원동력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이전에 죄책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아내의 분신을 막을 수 없고 자녀들을 위탁가정에 넘겨야 하는 현실 앞의 무력감, 무능함, 죄책감. 그가 스스로 고난의 여정에 뛰어드는 것은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지만 진정한 고난의 시간은 여정의 끝에서 찾아온다. 영화는 니콜라가 베오그라드까지 가는 과정을 영화 전반에 걸쳐 보여주지만, 마을로 돌아오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고 마을에서 또 어딘가로 향하는 장면을 이어 붙인다. 또한 여정을 위해 집을 나설 때 열쇠로 잠근 문은, 돌아왔을 때 이미 열려있다. 어디론가 갔지만 계속 가야 한다. 잠그고 나갔지만 이미 열려있다. 그의 진정한 고행은 300km를 훌쩍 넘는 앞으로의 인생의 길 그 자체이며, 5일 동안 잠가두었던 인생의 무게는 열쇠로 다시 열지 않아도 결국 찾아오고야 만다. <아버지의 길>은 그 여정의 끝에서 찾아오는 현실의 공포와 함께 다시 시작한다. 3개의 빈자리를 앞에 두고 홀로 식탁에 앉는 그의 침묵이 내포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 사라진 가족이라는 과거의 죄책감과 그 자리로 돌아올 가족이라는 미래의 책임의 무게이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엣나인필름

아버지의 길
Father
감독
슬로단 고르보비치
Srdan Golubovic

 

출연
고란 보그단
Goran Bogdan
보리스 이사코비치Boris Isakovic
나다 사르긴Nada Sargin
니콜라 라코체비치Nikola Rakocevic
밀란 마리츠Milan Maric

 

수입 전주국제영화제
배급 엣나인필름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20분
등급 12세이상 관람가
개봉 202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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